유튜브를 통해 영화를 해석하는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지만, 어떤 영화의 경우에는 해석이 아닌 '감각'(경험)에 가까운 관람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자크 오몽이 "영화는 하나의 담론이기 전에, 무엇보다 하나의 감각적 경험"이라고 말한 이유는 어떤 영화는 무엇보다 감각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예속된 형식과 끊임없이 감각을 부딪쳐야 하는 영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가 바로 그렇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스토리가 없다고 말한다. 스토리가 없다는 건 쉽게 말하자면, 형식에 의해 영화가 구동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의 영화는 해석과 감각 사이에서 불화를 조장하면서 비평적 접근을 유발한다. 여기서 비평은 각각의 프레임을 해석할 때라기보다 전체를 구성하는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불가항력적으로 요구된다(물론 비평이란 상대적으로 배분되는 개별요소와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더불어 비평은 점차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되는 시류와 맞물려 개념과 형식으로 해체하는 방식으로 향유하게 됐다. 이때 고다르가 언급하듯이 영화는 사유이자 사유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포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아피찻퐁의 영화도 이러한 맥락 안에서 1960년대 미국의 구조주의 실험영화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서 구조주의 영화란 관객의 수동적인 관람 태도를 거부하고 능동적 관람 태도로 전환되는 시기의 영화다. 관객과 독자적인 관계를 맺는 이 영화형식은 사유하는 의식으로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피찻퐁의 가능성을 발견한 건 아시아 필름을 서구 영화제에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영국 영화평론가이자 아시아 영화전문가 '토니 레인즈'(Tony Rayns)로부터였다. 아피찻퐁의 영화가 2000년 밴쿠버 국제 영화제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는 작품 활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자국내 여러 정치적 상황은 아피찻퐁이 국제적인 명성을 거두기 시작할 때도 조명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제한하였다. 본격적으로 칸에서 불법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인 <친애하는 당신>(2002)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수상했을 때 태국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언급되지 않았고, <열대병>(2004)이 심사위원상, 베니스 경쟁부분 진출작 <징후와 세기>(2006) 또한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할뿐더러 일정 부분이 삭제되기도 하였다. <엉클 분미>(2010)가 황금종려상을 받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군부와 왕가 체제로 운영되는 엄격한 검열은 아피찻퐁이 태국을 떠나 작품 활동을 작정하기로 한 이유가 되었다. 이는 중국에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지아장커'나 '왕빙' 등의 작가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하고도 유사하다.
올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3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인디비주얼⟫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상영된 아피찻퐁의 단편영화들에 관하여 앞서 박정수(「[아피차퐁 위라세타쿤 #1] '전생 여행'의 로드맵」), 변해빈(「[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 전경화된 심상을 담아낸 물신으로서 스크린」) 평론가가 잘 설명한 만큼, 이 글은 태국이라는 국가가 가진 예술성 혹은 독립영화의 불모지 같은 장소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아피찻퐁이 어떤 국가, 지역, 태생적 배경을 가졌는지는 살펴보겠다.
태국과 정글
태국은 영화란 매체가 등장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영 시스템이 빠르게 갖춰진 나라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식민주의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정치 상황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태국 영화사가 1897년부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상황과 맞물리면서였다. 특히, 1930년대 파누판 유콘 왕자가 할리우드를 견학하면서 영감을 받아 설립한 영화사(Thai Film Company)는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뮤지컬과 사극을 중점으로 한 연간 250편이 제작되기도 하는 성공 가도를 거두었지만, 1977년도에 18세 이하 청소년 영화 관람으로 제한되면서 영화산업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1990년대 중반기에 이르러 다시금 영화산업이 부흥했지만, 세계 영화계를 사로잡을 만한 경쟁력 있는 영화는 제작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은 방콕에 있는 시네필 문화를 활성화하며 점차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거의 유일하게 태국에서 독립영화를 만들었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자국 시네필들을 열광하게 했고, 국제적으로도 태국 영화에 관심을 두도록 한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시카고예술대학(SAIC)에서 유학한 그는 1960년대 구조주의 실험 영화의 영향을 받았고, 이런 방법론을 태국의 지형적 특성과 접목하면서 독특하고도 새로운 영화미학을 탄생시켰다. 또한 게이임을 공공연히 밝혀온 그의 성 정체성은 태국으로부터 외부자로 자리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양친이 모두 의사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지역성'인데, 그가 거주하고 생활했던 고향 이산은 동북부 지방을 의미하는 장소로 태국 영토의 3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최빈곤층이 거주하는 이 지역은 여러 민족이 혼재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정부가 독단적으로 행하는 국가 정책을 다른 지역에 비해선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피찻퐁 영화가 이산에서 촬영되었던 건 다분히 우연적이라기보다 의도적인 측면이 있다.
더 긴밀하게 살펴보자면 '이산'은 본래 라오스 왕국의 통치 아래에 있다가 태국으로 편입된 지역으로 라오스와 메콩강 사이에 경계를 두고, 국경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지역민들은 공간을 규정하고 살지 않았다. 메콩강 주변에 형성되어 있던 정글과 그 안과 밖에서 거주하는 이산인들은 근대교육 정책과 중앙집권 체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는 계속해서 발전하며 새로운 근대국가로 정체성을 이산 지역민들에게도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산어를 배제하고 태국어를 교육하기 시작했고, 점차 풍습과 전통은 소멸하여 갔다. 아피찻퐁의 문제의식은 이와 맞물려 영화에게도 이어져 왔다.
그러나 아피찻퐁의 관심은 소멸한 지역성을 다시 복권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를 영화로 복권할 때 발생하는 영향이란 국가주의를 반대하는 선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경계 사이에 틈입하고 있었던 풍광들이 어떤 이미지로 서로 관계를 맺는지가 더욱 중요했고, 이는 '정글'이란 공간을 빌려 예술로 격상시키는 데 더욱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피찻퐁의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정글은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고, 모든 가능성이 개방된 시원적 공간으로 위치한다. 신체를 은밀히 숨길 수 있는 정글에서 도리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유령과 같은 형태를 지닌 초월적 존재다. 그의 영화는 정글을 탐험하면서 유령과 환생 등이 말하는 불교 세계관을 통해 서구권 영화가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거부하면서 탄생한 영화다.
아피찻퐁의 정글 탐험기
아피찻퐁의 영화가 각각의 요소를 통해 대비를 갖고 영화를 만드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전통/현대, 과거/현재, 사실/허구, 시골/도시, 젊음/노년, 짝사랑/쾌락 등의 소재는 아피찻퐁이 두 종류의 세계를 결합하기보다 개방하고 해체한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이산'이란 지역 특성과 역사, 그리고 본인의 상황을 투영시켜 거칠고 투박하게 이미지를 직조한다. 생각해 보면 정글은 할리우드에서 지나치게 신화화되어 있거나 대중 친화적으로 언표된 장소이며 흔히 로컬라이징이 된 장소다. 이를테면 디즈니의 <정글북>(1967)이나 <타잔>(1999)과 같은 스펙터클한 서사와 매력적인 인물들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인물은 희화적으로 묘사되고, 그들이 가진 유쾌함은 대중들에게 미국의 영웅주의가 갖고 있는 정서를 간결하게 소비하게끔 했다. 마치 단발머리의 근육질의 타잔이 고함을 지르며 파트너인 제인을 구하는 모습은 미국의 위용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아피차퐁은 정글에 다른 감각을 심어주는 데에 큰 의미를 가진다. 그는 조금 더 메타적인 의미에서 정글을 탐색한다. 그에게 정글은 마법의 공간이다. 이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공간이며 그를 비평하는 많은 이들이 규명하듯이 불교 세계관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예를 들어 <열대병>에서는 ‘변신’이 주제로 등장하며 인간이 서로 다른 생명체와 연결되고 의존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환생이란 주제를 정글에서 다룬다. 영화 <엉클분미>의 본래 제목은 <전생을 기억하는 엉클분미>다. 이 영화에서 ‘소’의 존재는 <열대병>에서 등장했던 정글에서 죽었던 소를 떠올릴 수 있게 되며, 몸에서 빠져나와 유령처럼 희미하게 길을 배회하던 영혼이 <엉클분미>에서 환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다음으로 신장 질환을 겪고 있는 분미는 곧이어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 죽은 아내 후아이의 유령이 찾아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후아이는 분미를 동굴로 데려가고 꿈에서 깨어난 분미는 동굴에서 태어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때 분미의 이야기는 현재와 꿈의 경계에서 현재, 과거, 미래 시제가 혼재된 몽타주가 어떠한 예고 없이 연결된다. 또한 <징후와 세기>에서 전반부와 후반부는 작은 시골 마을의 병원, 현대식 병원과 나누어지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서로 비슷한 공간과 직업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후반부를 보더라도 전반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메콩호텔>(2012)에서도 이는 적확하게 드러난다. 남자 주인공인 통은 어느 순간 마사토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영화 끝에는 통이 죽고 마사토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난 말로 환생할 거예요, 그리고 벌레로도 살아보고, 다시 인간이 되려면 얼마나 지나야 할지... 난 필리핀 남자로 태어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항상 날 따라오겠죠" 이러한 환생의 구조는 앞서 이야기했듯 데칼코마니 구조, 즉 대비 효과를 통해 정글이란 퇴적된 공간 안에서 미세하게 변모하는 정글을 드러낸다. 그 차이와 반복 속에서 정글뿐만 아니라 공간 안에 예속된 구조로부터 시원의 의미를 재발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수평적 배치는 일상에서 식별하지 못했던 차이를 공간과 시간을 통해 보게 해준다. 최근 영화 <메모리아>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2014년 태국 군부 쿠데타로 인해 처음으로 콜롬비아라는 외부에서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도 태국을 논할 수 있는 영화로 정글과 도시를 오가는 장면에서 우린 정글 이산을 떠올릴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어떤 이는 정치적으로 아피찻퐁의 영화를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런 차이와 반복이 주는 역할이 아닐까.
아핏차퐁은 "영화가 유령 같다"고 말한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형체가 있는 것. 그러니까 허구로부터 실제를 창조하거나 뒤집는 과정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피찻퐁에겐 "영화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무언가"다. 이런 경계 사이를 왕복하는 그의 영화는 그가 스트리밍 서비스 'MUBI'에서 꼽은 리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픽션과 논픽션, 실험 영화 등의 특정 장르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마치 그가 다루는 정글처럼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언제든 개방할 수 있는 영화적 장소로 정글을 택하고 있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