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우리가 보거나 듣는 것의 의미에 관한 틀을 깨고 불화시켜 외부의 목소리로 말하게 한다" (Art unframes and ruptures the meaning of what we usually see or hear, allowing it to speak in an outside voice.)
―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필립 파레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각적 경험을 유발하며, '현실과 허구의 적확한 경계가 있는지'를 의심하고 의문을 가중시킨다. 시간과 공간이 접착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품은 외부 조건에 의해 불균질한 움직임을 획득한다. 현재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필립 파레노: 보이스」는 '공간, 스크린 혹은 프레임의 제약 속에서 틈입하는 다양한 구성요소가 어떤 잠재력을 갖고 현상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여기서 궁극적으로 '본다'는 경험과 행위는 단지 신경 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기능적 연접 부위)를 통해 단지 물리적으로 주고받는 신호를 수집하는 데에 정체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상상하며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충하는 데 의의를 지닌다.
보이스(VOICE)의 뜻이 시각적으로 분류될 수 없음을 고려한다면, 모순적으로 시각적 형상으로 이뤄진 파레노의 작품이 단순히 물리적인 조작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적인 알고리즘인 자연과 시간의 법칙에 의해 조작을 당하는 형태로 다채롭게 운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기계로서 측정되는 그의 작품은 행위자로부터 구동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인 브뤼노 라투르는 '컴퓨터 도안에 그려진 기계가 종이 밖'의 생생하고 복잡다단한 환경 안'에 놓이게 될 때, 기계는 더 이상 기술적 대상이 아닌 '사회 기술적 사안, 하나의 화합, 하나의 퍼즐'로서의 사물이며, 바로 그 사물의 복잡한 관계망으로 바라봐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중심적에서 탈중심화되는 이 예술의 형태는 여러 네트워킹 속에서 적확히 포착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객체로 치환된다.
이를 가장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리움 미술관 외부에 배치된 작품 <막>(2024)은 인공두뇌학적 성격을 가지고 주변 데이터인 환경, 사회, 내부의 자극을 수집하여 '단어'와 '문구'로 스스로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기압계, 온도계, 지진계는 환경을 이해하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동원되고, 이때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가 운율로 활용되어 감정을 전달한다. 공간 주변을 공명하는 <∂A>(2024)는 <막>과 연결되는 소리로서 외부 데크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스피커에 의해 송수신된다. 경계를 해체하며 시공간 전체를 재해석하는 이 두 작품은 최근 필립 파레노의 관심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공간이 구성되는 원리와 규율이 점차 다채로운 프로세스로 인해 변칙적으로 운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의 예술은 세상 밖에 거치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세상 밖 어디든>(2000)은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안리'의 원본 이미지의 저작권을 구입하여 시장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전환된 캐릭터를 다룬다. 자유로운 존재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놓는 안리는 평평한 캐릭터에서 가상 세계에 머무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밖에 머문다.
사물을 움직이는 공기
필립 파레노는 일상에서 규정되고 규제된 현상을 파기하면서 여러 요소가 밀접하게 연결된 네트워킹의 과정에 주목한다. <리얼리티 파크의 눈 사람>(1995-2023)은 1995년 일본 도쿄에서 큐레이터 얀 호엣(Jan Hoet)이 기획한 《Ripple Across the Water》에서 회사원들이 점심시간마다 모여 식사하는 기린 공원(Kirin Park)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눈사람 모양의 얼음 조각을 매일 교체해 설치하고 그들은 점심시간 동안 눈이 녹는 조각을 응시한다. 흙을 섞어 현실성을 부여한 <눈 사람>(2013-2014)은 디스토피아 색채를 덧칠하여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공간이 일상화되는 과정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과 온도의 면제를 받은 공간이 감각적으로 어떻게 조건화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과 <여름 없는 한 해>(2024), 그리고 <차양 연작>(2016~2023)은 공간을 부유하면서 현실 너머에 있는 시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소리와 같이 비가시적인 공기를 동력 삼은 <내 방의 또 다른 어항>은 특정한 조건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물고기 모형과 같이 어항에 탑승함으로 관조의 대상이 되며 더불어 작품으로 동기화된다. 물고기가 공기 중에 떠돌아다닐 때 그 근방에는 <여름 없는 한 해>가 관객을 마주한다. 이 작품에서 연주자가 없이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는 악기에 장착된 시퀀싱 프로그램에 의해 구동된다. 피아노 위에 떨어지는 주황색 인공 눈은 이 작품이 가진 멜랑꼴리아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구현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AI와 자동화된 예술의 현현을 예고한다.
넓은 그라운드에 설치된 <차양 연작>은 극장 입구의 화려한 불빛 차양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극장 간판을 빛내기 위한 도구였던 차양은 여기서 할로겐의 빛과 그 발광체만 남겨두었다. 여기서 주요한 작동의 원리는 <막>과 같이 온도, 습도, 풍량의 환경 조건에 따라 다르게 발광하면서 차양은 고정된 매개체에서 탈환된다. 차양과 함께 <움직이는 벽>(2024)이 그라운드를 횡단하면서 동선과 시선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 이는 사물의 이주로 공간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음을 모색하면서 관객의 시선은 또 다른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파레노는 <최초의 차양>(2016-2024)를 통해 생성과 소멸이라는 테마로 스크린에서 명멸하고 있는 세 가지 영상 <마릴린>, <C.H.Z(지속적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 <귀머거리의 집>을 개시한다. 영상의 인터미션마다 스크린을 점거하는 빛과 움직이는 스피커는 공간감을 확장하여 어딘지 모를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에 휩싸이게 한다. 그리고 <최초의 차양>은 18세기 후반 물리학자인 에티엔 가스파르 로베르가 판타스마고리아라 불린 공연에서 여러 종류의 광원을 이용하여 빛의 강도, 영상의 크기를 스크린 뒤에서 조작하여 사람들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 것을 다시금 복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이 융합되는 생생한 경험은 동시에 영상이 픽션이라는 사실이 발각될 때 구조화된다.
특히, 세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릴린>은 배우 마릴린 먼로가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 머물렀을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 배우가 등장하지 않지만 1인칭 시점으로 공간 구석구석을 배회하는 이 작품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배우의 음성을 내레이션을 통해 재구성한다. 마릴린 먼로의 필체를 학습한 로봇이 화면 속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가면서 이 영화의 장르는 그녀의 실재를 완벽히 재현하는 것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마자막에 이 영상이 줌 아웃되면서 발견되는 촬영 현장의 모습과 여러대 배치된 카메라를 광원으로 보여주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조망하게 된다.
<보이스>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약호로 작품과 일상 속에 잔류함을 드러낸다. ChatGpt가 등장하며 우리에게 신호하는 것은 인터넷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언어와 문장이 점차 인간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파편에 불과한 이를 조합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은 AI는 24시간 돌아가며 스스로 네트워킹을 지속한다. 필립 파레노는 시간을 기반으로 컴퓨터 프로세싱 작품은 연결된 채 계속해서 작동한다고 말했다. 사물이 공간을, 공간이 사물을 서로 반영하는 그의 예술론은 세계가 하나의 스크린이자 무궁무진한 네트워크가 난입하는 세계 자체를 사유하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구현했어요. 이번 전시를 개별 작품을 집결해 선보이는 자리가 아닌 통합적인 경험의 장으로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뮌헨의 Haus der Kunst과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 <보이스>는 완전한 AI기반 멀티미디어가 어떻게 예술을 전복할 수 있는 지를 예언하면서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세계를 사유하게 한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