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OAFF] '사이드 바이 사이드' 지금, 당신 곁의 누군가
[2023 OAFF] '사이드 바이 사이드' 지금, 당신 곁의 누군가
  • 홍상현
  • 승인 2023.05.2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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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지 않거나 말로 할 수 없는 것"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인 허 룸」과 불과 한 달 간격으로 개봉한 이토 치히로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C)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사이드 바이 사이드>(2023)는 <인 허 룸>(2022)과 불과 한 달 간격으로 개봉한 이토 치히로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 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되돌아온 공

페이스북 메시지를 쓴다.

왠지 문제집의 해답페이지를 펼지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일본영화에 관한 글을 쓸 때, 해외의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현지의 동종업계 종사자의 위치를 가진 필자가 대부분의 창작자에게 작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건 이미 주어져 있는 현실이니까.

영화글이 연출이나 연기, 시나리오 집필 못지않은 창작의 영역에 속한다는 이야기야 수없이 들어왔고, 충분히 납득하면서도 대부분의 커리어를 형성한 곳이 언론매체여서인지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넘겨짚는다는 느낌에 거부감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연락하고 있는 대상은 가장 신뢰하는 친구의 한사람인 유키사다 이사오. 시시때때로 잡담을 나누고, 신작을 만들 때는 반드시 연락이 오며, 필자의 추천사에 번번이 기뻐해주는 그에게 보내는 질문은 지난 4월 14일 현지 개봉한 두 번째 프로듀스 작품 <사이드 바이 사이드>(2023)에 관한 것이었다.

"기획의도에서 언급하신 '매직리얼리즘' 말인데요. 조금만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없을까요?"

신작 <리볼버 릴리>의 후반작업이 한창일 테니 시간이 좀 걸릴지도. 하지만 답이 도착한 건 딱 40분 뒤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까지 감안하면 거의 실시간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으려나.

"글쎄요? 제가 생각하는 매직리얼리즘이란 비일상적 요소를 일상의 서사에 그려 넣는 겁니다. 대립되거나 충돌하지 않게요. 영화이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셔서 저보다 해박하실 테니 오히려 홍 씨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데요."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는, 그 세월 동안 매년 한 편 이상의 장편상업영화를 만들어왔고, 그중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썼던, 게다가 독서가로도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가 프로듀스 작품의 감독, 이토 치히로를 위해 논리를 끌어다 대는 건 일도 아니겠지. 허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키사다 이사오가 '저럴 필요까지 있나' 싶으리만치 솔직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이쪽으로 넘어온 공.

 

‘비주얼리스트’ 이토 치히로의 재능은 「사이드 바이 사이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C)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비주얼리스트' 이토 치히로의 재능은 「사이드 바이 사이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 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오해하지 않기

우선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피안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시골 마을. 그곳에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청년 '미야마'(사카구치 켄타로)가 연인인 '시오리 모녀'(이치카와 미카코이소무라 아메리)와 함께 살고 있다. 미야마는 워낙 선량한 품성의 소유자이기도 하거니와 신비한 능력으로 몸이 불편하거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이들을 치유하는 선행까지 베풀어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야마의 곁에 수수께끼의 사내(아사카 코다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껏 접해온 종류와는 다른 사내의 마음을 더듬으며 도쿄로 향하는 미야마. 수수께끼의 사내는 기타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후배 '쿠사카'였고, 미야마는 그에게 한동안 잊고 지내온 옛 연인 '리코'(사이토 아스카)와의 사이에 일어난 '어떤 사건'의 전말에 대해 듣게 된다. 그렇게 그녀와 재회하는 미야마. 이제 자신이 내버려 둔 채 떠나왔던 과거와 마주해야 한다.

이상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기억에서 지워져 있던 충격적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초능력자의 활약을 그린 작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원안에 오리지널 시나리오까지 쓴 이토 치히로가 분명히 밝히고 있거니와 <사이드 바이 사이드>의 제작의도는 관객들에게 장르적 재미, 혹은 쾌감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지금 누가 있는지, 그동안 누가 옆에 있었는지, 삶을 돌아보면 몇 사람의 옆모습이 떠오르는지, 그게 과연 누구였으면 좋겠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데 있으니까.

 

첫 장면에서 미야마와 함께 앉아있는 낯선 사내. 누구나 볼 수는 없는 그는 쿠사카이지만, 쿠사카가 아니다. (C)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첫 장면에서 미야마와 함께 앉아있는 낯선 사내. 누구나 볼 수는 없는 그는 쿠사카이지만, 쿠사카가 아니다. ⓒ 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생령

대개의 빼어난 작품들이 그렇듯 <사이드 바이 사이드> 역시 도입부부터 남다르다. 이 대목에서 인용하고 싶은 것이 오사카아시안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평론가 테루오카 소조의 다음과 같은 코멘트다.

"버스 안의 사카구치 켄타로를 보여주는 권두의 몇 컷만으로도 이미 영화는 이후의 범상치 않은 시공간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

첫 장면에서 버스에 타고 있는 미야마 얼굴을 비쳐주던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 옆자리에 앉아있는 쿠사카가 보인다. 아니, 정확하게는 쿠사카가 아니라 그의 '생령(Ikiryō)'이다. 그러나 집념은 있으되 미야마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겐지 이야기』의 황태자비보다는 『1Q84』의 시청료징수원의 생령에 가깝다. 둘의 정체성은 차가 터널로 들어가 안이 어두워지는 순간 어디선가 스며들어오는 빛에 대한 노출 여부로 구분된다. 이는 미야마의 눈에 보이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리얼리즘(모두에서의 '일상')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표현주의적('비일상적') 요소를 그려 넣는 매직리얼리즘의 특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 하나 예로 들 만한 것이 이주노동자 장면. 미야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세를 호소하는 마을의 이주노동자 민(파이 민 탄 분)을 만나러 가는데, 두 사람이 마주치는 순간 관객들은 증세의 원인이 심리적인 것(향수병)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자리에서 미얀마에 있어야 할 민의 아버지가 서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사라지고 삶과 죽음까지도 혼재하는 영화적 세계에서 어떤 이질감도 없이 함께 있는 사람들. 스와 노부히로의 2020년 작 <바람의 목소리>에서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미학적 시도(aesthetic attempts)가 관찰된다. 동일본대지진으로 발생한 지진해일에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고 히로시마에서 지내던 하루(모토라 세리나)는 무작정 고향인 이와테를 향해 떠나는데, 그 과정에서 가족들을 만나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스와 노부히로는 이 장면을 다른 장면과 매끄럽게 연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꿈을 꾸고 있을 때, 우리는 아무리 부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꿈속에서 망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고요. '뭐야, 살아있었잖아?'하며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던가요? 그러다가 깨어났을 때 비로소 '아, 꿈이었구나'하는, 영화에서는 상투적으로, 꿈과 환상을 현실 속의 어떤 지표를 통해 구분하지만, 결국 환상이라는 것도 내적인 현실이다. 이런 생각으로 환상과 현실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연출했습니다."

 

이토 치히로는 캐릭터의 설명과 심리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컬러를 사용한다. 예컨대 미야마에 대한 애증을 벗어내지 못한 리코의 상징색은 검정이었다. (C)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이토 치히로는 캐릭터의 설명과 심리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컬러를 사용한다. 예컨대 미야마에 대한 애증을 벗어내지 못한 리코의 상징색은 검정이었다. ⓒ 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업그레이드

물론, 이토 치히로가 스와 노부히로라는 특정 작가의 미학적 시도를 창조적으로 재해석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설령 어떤 상호관계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무자각의 영향일 공산이 크겠지. 게다가 이것만으로는 필자가 <사이드 바이 사이드>를 몇 번이나 다시 보았던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이미지와 사운드에 최대한의 정보를 담아내는 이토 치히로의 연출이 스토리텔링에서 거둔 영화적 성취(cinematic achievement)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니까.

이 부분의 논의를 위해 2018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의 <바다를 달리다>(2018)의 게스트 뷰에 참석했던 후카다 코지를 만나보자. <하모니움>(2016)이 칸영화제에서 파문을 던진 이후 2년만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 영화는 그만큼의 충격 또한 던져주었다. 인도네시아어로 바다를 뜻하는 이름(라우트)의 사내(딘 후지오카)는 홀연히 나타나 이런저런 기적을 행하다 느닷없이 손짓 한 번으로 아무런 갈등도 없던 인물의 목숨을 앗아간다. 선악의 이미지를 교차해 보여주다 어둠으로 치닫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러 가는 마당에) 눈에 띄는 붉은 티셔츠를 입는 야사카(아사노 타다노부)보다도 한참 더 나간 묘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후카다 코지는 예의 선한 미소와 함께 이하의 전제를 붙였다.

"여러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겠고, 당연히 최대한 성실하게 답해드리겠습니다. 다만, 부디 제 말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영화란 세상에 나오는 순간 모두의 것이 되고, 저는 그저 작품에 여러분보다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2011년 교토대학교와 시아쿠라대학교가 공동개최한 지진해일 및 방재에 대한 심포지엄의 기록을 맡았던 그가 남아시아대지진과 동일본대지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는 의도로 만들었다는 <바다를 달린다>에서 라우트는 이름이 상징하는 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타이틀 롤, 다시 말해 바다의 화신이다. 모럴로부터 독립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후카다 코지는 거추장스러운 표현을 더하기보다 관객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길을 택했다. 영화언어의 문법 ― 쇼트와 구성, 몽타주 ― 에 의해 일어나는'이모션(emotion)'은 관객들을 이 지점까지 인도하는 나침반이다.

다만 <사이드 바이 사이드>의 미야마는 <하모니움>의 야사카나 <바다를 달리다>(2018)의 라우트처럼 "아무 이유 없이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자연의 절리"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카구치 켄타로라는 배우가 지닌 "압도적인 투명성"에서 영감을 받은, 선하고 애처로운 존재다. 따라서 이토 치히로는 평온한 공간 속에서 완만하게 움직이는 그의 몸을 유연한 카메라워크로 잡아냄과 더불어, 때로는 대담한 생략조차 망설이지 않는 편집으로 나름의 속도감과 깊이를 구현했다. 아울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후쿠시마 나오카의 프로덕션디자인이다. <인 허 룸>에서 미야코(바바 후미카 분)의 방을 욕망이 엇갈리는 부조리극의 무대로 그려냈던 그녀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에서 '모든 생명과 그 시간이 살아 숨 쉬는 숲'이라는 경이로운 소우주를 선보인다. 그렇게 최근 일본영화의 대표작들이 보여주는 미학적 시도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한층 업그레이드 된 성과들로 증명되듯, "말로 하지 않거나 말로 할 수 없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 등을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싶어 하는 이토 치히로의 작가적 욕망은 매직리얼리즘이라는 필터를 통해 2023년 상반기의 수작을 탄생시켰다.

 

예고대로 무척 중요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 허 룸」의 스스메. 세 번째 작품에서는 새로운 주인공까지 세 사람의 캐릭터가 프레임에 담기게 될까. (C)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예고대로 무척 중요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 허 룸」의 스스메. 세 번째 작품에서는 새로운 주인공까지 세 사람의 캐릭터가 프레임에 담기게 될까. ⓒ 2023 Side By Side Film Partners

다음엔 셋?

애초에 <사이드 바이 사이드>에 관심을 갖게 된 최초의 동기는 '다른 것 같지만 주제에 있어서는 <인 허 룸>과 같은 영화로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주인공인 스스메(이구치 사토루 분)가 등장할 것'이라던 이토 치히로의 예고였다. 그녀의 말대로 스스메는 상상조차 못했던, 애초에 이 이야기 자체가 과연 현상계에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벌어진 것이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 즈음에서 필자는 생각했다. 그럼 두 작품과 비교해 다소 엔터테인먼트성이 높다는 세 번째 작품에서는 새로운 주인공과 이구치 사토루, 사카구치 켄타로가 같이 등장하게 될까? 어느 쪽이든 그 또한 만만찮은 작품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글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사이드 바이 사이드

Side by Side

감독

이토 치히로Chihiro Ito

프로듀서

유키사다 이사오Isao Yukisada

 

출연

사카쿠치 켄타로Kentaro Sakaguchi,

이치가와 미카코Mikako Ichikawa,

이소무라 아메리Ameri Isomura,

아사카 코다이Kodai Asaka,

사이토 아스카Asuka Saitō

 

배급 Happinet Corporation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30분

등급 미정

현지개봉 2023년 4월 14일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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