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과정' 아닌 '결과'로써의 고독
[interview] '과정' 아닌 '결과'로써의 고독
  • 홍상현
  • 승인 2022.09.2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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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작 <하모니움> 후카다 코지 감독
후카다 코지 감독은 첫 번째 칸영화제 초청작 「하모니움」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부분 심사위원장을 수상한다.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기사장(슈발리에)에 빛나는 젊은 명장의 출현이었다. (C)mk2
후카다 코지 감독은 첫 번째 칸영화제 초청작 「하모니움」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부분 심사위원장을 수상한다.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기사장(슈발리에)에 빛나는 젊은 명장의 출현이었다. (C)mk2

그날의 하늘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흐렸나, 아니, 봄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었나? 이상기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설령 봄볕이 따듯한 화창한 날이었더라도 뇌리에 각인되진 않았으리라. 매일 울려 퍼지는 환난의 전주곡으로 인해 깊이 침잠되어있었으니까. 한국에서는 최초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왔고, 국방부가 확진자 발생을 이유로 전 병력의 영내대기를 명령했다. 석 달 만에 돌아온 일본 집과 주변 상황도 달라져 있었다. 간신히 자택격리는 면했지만 빼곡하게 잡혀있던 약속은 모두 취소되었다. 방역을 위한 기본권 통제가 국회 긴급안건으로 올라왔고 여객기 운항도 대부분 중단될 거라는 예측이 나왔다. 뭔가 시시각각 숨통을 죄어드는 느낌. 서재의 벽시계가 정오를 향해 가고 있을 무렵 업데이트된 SNS 포스팅을 발견하고 눈시울을 붉힌 건 바로 그때다.

 

히라타 오리자 페이스북(2020년 3월 6일 오전 11시 58분)
히라타 오리자 페이스북(2020년 3월 6일 오전 11시 58분)

히라타 오리자 선생.

극단 청년단의 수장. 현대인의 정체성을 냉철하게 파고드는 지적이고 세련된 작풍의 드라마로 아시아 무대예술의 역사를 견인해 온 거인, 연극을 통해 시민교육에까지 공헌해 온 당대의 지성. 게다가 아직 한류 비슷한 것도 없었던 시절 연세대에 유학해 한국어가 유창한 이른바 '코리언스쿨'. 그즈음 당신의 제자이며 청년단 단원인 심우(bosom friend), 후카다 코지와 가뭄의 단비 같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일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동조압력에 의한 도시봉쇄를 뚫고 필자를 만나러 오려던 후카다와의 사이에 당신이 계셨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후카다와의 첫 만남은 2011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사(도쿄대)의 연구실로부터 도보 20분 거리, 작은 원룸 아파트처럼 생긴 히라타 선생의 고마바아고라극장에서였다. 그가 페스티벌디렉터를 맡았던 고마바아고라영화제. 이제는 대부분 세계유수의 국제영화제를 누비는 위치에 올라가 있는 청년영화인들이 모였다.

 

2011년부터 한국의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어온 후카다 코지 감독. 작품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하모니움」이 처음이다. (C)mk2
2011년부터 한국의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어온 후카다 코지 감독. 작품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하모니움」이 처음이다. (C)mk2

하마구치 류스케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초청작 <열정>(2008)을, 토미타 카츠야마리코 테츠야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국도 20호선>(2007)과 <옐로우 키드>(2009)를, 요코하마 사토코BFI런던영화제 초청작 <저먼 + 레인>(2007)을 가져왔고, 후카다는 같은 해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하게 되는 <환대>(2010)를 전야제에서 공개했다.

이는 일본영화사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순서는 조금 다르지만, 시리즈로 따지만 일종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환대>의 오리지널 장편영화 <하모니움>(2016, 제목을 클릭하시면 영화의 VOD 관람이 가능한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주)이 5년 뒤 후카다에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안겼으니까.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기사장(슈발리에)에 빛나는 젊은 명장의 출현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철공소를 운영하는 토시오(후루타치 칸지 분)는 아내 후미에(츠츠이 마리코 분), 어린 딸 호타루(시노카와 모모네 분)와 함께 살지만,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다. 어느 날 옛 친구인 야사카(아사노 타다노부 분)가 수감생활을 마치고 그를 찾아온다. 토시오는 가족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집에 들이고 함께 생활한다. 토시오와 달리 다정하고 예의 바른 야사카는 아키에와 호타루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야사카가 토시오 일가의 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오면서 그들의 잔잔한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한국의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지 11년 만에 VOD로 공개된 <하모니움>으로 한국의 일반관객을 만나게 된 심우와 이야기를 나눴다.

 

후카다 코지 감독은 아사노 타다노부 배우에게 항상 다른 캐스트들과의 소통을 최대한 의식해줄 것과 더불어, 복역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답게 교도소에서의 습관에 심신이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C)mk2
후카다 코지 감독은 아사노 타다노부 배우에게 항상 다른 캐스트들과의 소통을 최대한 의식해줄 것과 더불어, 복역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답게 교도소에서의 습관에 심신이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C)mk2

홍상현

2011년 <환대>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을 수상하신 이래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를 모두 섭렵하셨습니다. 하지만 일반에 작품이 공개된 것은 이번 <하모니움>이 처음이신데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후카다 코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영화작가로서 제게 많은 격려가 되었지만, 영화팬으로서도 20대 시절부터 많은 한국영화를 접했고, 그로부터 성장에 필요한 많은 자양분을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한국 관객 여러분께 자작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이죠. 공개에 관여해주신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홍상현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옆얼굴>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셨고, 같은 해 <더 리얼 씽>(2020)으로 두 번째 칸영화제 초청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간은 별 소식이 없으셨는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후카다 코지

본래 영화를 준비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1년에 한 편 정도의 페이스로 신작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게 도리어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이후에는 일본의 미니시어터 지원활동에 관여하면서 새 영화 <러브 라이프>(2022)의 준비와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올해 9월 9일에 개봉하게 될 텐데요.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에 참여할 뿐더러 한국과 관련한 내용도 나오는 작품인 만큼 아무쪼록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홍상현

제가 굳이 <환대>를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언제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주목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하모니움>은 감독의 전작 중에서도 유난히 <환대>와 맞물리는 지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작은 동네공장을 운영하는 부부가 등장하는데요.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이는 그들은, 사실 언제 변화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입니다. 여기서 외부자의 개입이 드라마의 발단으로 기능하잖아요. 단지, <환대>는 희극적인 느낌이 강했던 반면, <하모니움>은 마치 <환대>의 다크버전 패러디 같은 느낌입니다.

후카다 코지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하모니움>과 <환대>는 그 창작과정에서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순서상으로는 <하모니움>이 <환대>보다 먼저 기획되었는데요. 제가 <하모니움>의 시납시스를 쓴 게 2006년 무렵입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아직 경력이 일천해서 제작투자를 받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하모니움>의 파일럿판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의 앞부분 즉, 가족 내부에 떠돌이들이 뒤엉켜 들어와 후비집어 놓고 떠난다는 플롯만을 떼 내어 영화로 만든 겁니다. 그게 <환대>였죠. 두 작품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후카다 코지 감독이 「하모니움」의 시납시스를 쓴 것은 2006년.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경력이 일천해 제작투자를 받기가 어려웠기에 이야기의 앞부분을 따로 떼어 내 파일럿 형식으로 「환대」를 만들었다. (C)mk2
후카다 코지 감독이 「하모니움」의 시납시스를 쓴 것은 2006년.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경력이 일천해 제작투자를 받기가 어려웠기에 이야기의 앞부분을 따로 떼어 내 파일럿 형식으로 「환대」를 만들었다. (C)mk2

홍상현

《버라이어티》의 저널리스트 메기 리는 칸 프리미어 리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로베르 브레송이나 오시마 나기사로 통하는 비평적 사려 깊음으로 가족들 사이의 상처에 다가서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삼자의 시선에서 보면 역시 이 두 거장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후카다 코지

물론,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은 직접적인 인용이라기보다 무자각의 영향일 거라 확신합니다. 제가 영화학교를 다닌 것은 맞지만 교실에서보다는 10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직접 감상한 영화들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웠거든요. 특히, 브레송의 연기와 신체의 움직임에 대한 시선, 관객의 상상력을 신뢰하는 지성. 오시마 감독의 사회와 마주하는 방식 등은 영화팬이던 저를 대단히 흥분시켰습니다.

 

홍상현

일본영화에 대한 이야기하다 보면 문학과 영화의 상관관계, 즉, 영화화에 대한 화제가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하모니움>의 경우는 좀 다르지요.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동시에 동명소설도 출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하모니움>의 이야기가 영화와 소설이라는 두 가지 서사장르로 존재하게 된 이유입니다. 역시 영화의 스토리텔링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신 건가요?

후카다 코지

<하모니움>의 소설화는 원래 영화의 홍보를 위해 제작사가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프로 소설가에게 노벨라이즈를 맡길 것이냐, 아니면 제가 스스로 집필할 것이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제시되었는데요. 직접 집필하는 길을 선택한 거죠. 저 자신이 어릴 적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10대 시절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거든요. 그러다가 영화에 빠져들면서 소설가의 꿈은 잊고 지냈는데 갑자기 '뒷문 입학'처럼(웃음) 길이 열리니 마다할 수가 없더라고요.

영화와 소설은 원래 방법론과 문법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소설버전과 영화버전의 <하모니움> 또한 별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소설의 출간이 예정되어 있었던 까닭에 영화의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결말을 맺었어요. 이를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 다시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기에 소설로나마 성취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소설 『하모니움』은 제작사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다만 후카다 감독은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영화와 전혀 다른 결말을 맺었다고 한다. (C)mk2
소설 『하모니움』은 제작사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다만 후카다 감독은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영화와 전혀 다른 결말을 맺었다고 한다. (C)mk2

홍상현

흰 와이셔츠와 붉은 티셔츠, 인원수가 달라지는 식사 등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함의의 상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후카다 코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직접적으로 의식한 작품은 히치콕의 <레베카>(1940)였습니다. 이 작품의 훌륭함은 극 중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여성 레베카가 화면 밖에서 내내 영화를 지배한다는 점이죠. <하모니움>에서 아사노 타다노부 배우가 맡은 역할도, 특히 후반에서는 그런 존재로 설정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사노 배우가 가장 폭력적으로 보이는 장면에서 흰 와이셔츠와 빨간 티셔츠를 대비시켰고, 후반에서는 그가 화면에 보이지 않더라도 빨간색이 화면에 비치는 것만으로 다들 아사노 배우의 존재를 인식도록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식사 장면의 경우, 저는 일종의 정점 관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반복은 적절하게 사용하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심정이나 관계성의 변화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써 기능할 수 있으니까요.

 

홍상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유럽의 영화제 관계자들과 <하모니움>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표현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즉, 서사의 전형성으로부터 탈각해서, 사실주의적인 묘사와도 거리를 두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해서였는데요. 저는 이 원인이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말하는 '낯설게 하기'를 구현하고 계시기 때문 아닐까 싶었습니다.

후카다 코지

영화 팬인 저는 그동안 영화영상의 문법에 있어 현실이 재구축되는, 즉 샷과 구성, 몽타주에 의해 영화적 이모션(emotion)이 일어나는 순간에 매료되어 왔습니다. 이는 사실주의적 리얼리즘(자연주의적 내추럴리즘이라고도 바꾸어 말할 수 있겠는데요)만으로는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이죠. 한편, 시네필 출신 감독은 영화사를 사랑하고 참조한 나머지, 심취하는 영화적 쾌락자체가 클리셰가 되어 버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반복해 버릴 위험을 항시 안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인 까닭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고요.

 

후미에 역의 츠츠이 마리코 배우는 작품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C)mk2
후미에 역의 츠츠이 마리코 배우는 작품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라도 된 것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C)mk2

홍상현

<하모니움>에는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존재감을 어필하는 인물, 야사카가 등장합니다. 선악의 이미지를 교차해 보여 주다가 어느 순간 악마화되는 모습이 공포를 자아내는데요. 한편으로는 에드거 앨런 포우의 소설로부터 착안한 <바다를 달리다>의 라우트, 즉, '자연'처럼 모럴로부터 독립적인 순수한, 상징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후카다 코지

그렇죠. <바다를 달리다>의 라우트와 <하모니움>의 야사카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의 폭력의 상징, 불합리하게 아무 이유 없이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자연의 절리에 겹치지는 캐릭터들이니까요.

 

홍상현

아사노 배우에게 감독으로서 어떤 것을 요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후카다 코지

항상 다른 캐스트들과의 소통을 최대한 의식해 주실 것과 더불어, 복역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답게 교도소에서의 습관에 심신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아울러 저 또한 이, 어쩌면 모순될지도 모르는 2개의 상태가 공존을 유지하도록 힘썼어요.

 

홍상현

작품 초반에서 소위 일반인과 가장 가까운 캐릭터로 보이는 토시오의 변화도 놀랍습니다. 다만 이 개성이 야사카와 어떻게 캐미스트리를 일으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는데요. 결과가 대단히 성공적이더군요. 대비, 혹은 대립하는 두 남성을 연기하고 있었던 배우들의 조합을 위해 어떤 연출 플랜을 세우셨나요.

후카다 코지

우선, 토시오로 분한 후루타치 칸지 배우는 <환대>에서 야사카에 해당하는 틈입자의 역을 맡았습니다. 그랬다가 <하모니움>에 캐스팅되었는데요. 이 작품에서 후루타치 배우에게 그가 두각을 보이는 이질적인 캐릭터가 아닌 지극히 일상적이고 조용한 인물을 연기하도록 했다는 점이 제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영화감독에게 있어 최대의 일이 캐스팅이라 생각하는데요. <하모니움>의 대립적인 두 인물을 아사노 배우와 후루타치 배우가 연기해주시는 게 결정된 시점에서 이미 케미스트리는 예정되어 있었던 거 아닌가 싶어요. 틈입자로서 서사를 주체적으로 견인하는 아사노 배우의 캐릭터와 수용자로서의 연기에 상당한 재능이 있는 후루타치 칸지 배우의 기량이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환대」에서 틉입자의 배역을 맡았던 후루타지 칸지 배우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조용한 인물인 토시오로 분해 아사노 타다노부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C)mk2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환대」에서 틉입자의 배역을 맡았던 후루타지 칸지 배우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조용한 인물인 토시오로 분해 아사노 타다노부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C)mk2

홍상현

배우 츠츠이 마리코의 발견이야말로 <하모니움>이 거둔 큰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꽤 오래전 일이 되겠지만, 그를 캐스팅하게 된 동기와 함께 촬영을 준비하면서의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후카다 코지

츠츠이 마리코 배우는 처음부터 후보자의 한 사람으로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외모가 제가 생각하는 후미에의 이미지에 대단히 가까웠기 때문에 출연을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전반과 후반에서 인상이 달라지는 양면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도 큰 요인 중 하나였고요.

다만, 리허설을 거듭하며 촬영을 진행하는 가운데 츠츠이 배우에게서 이러한 것들 이외의 장점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홍상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후미에는 전반부와 후반부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그런 그를 통해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셨던 건가요.

후카다 코지

이 영화의 큰 주제 중 하나는 폭력을 어떻게 그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떻게 폭력을 직접 그리지 않고 폭력의 본질과 그 영향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하는 거였지요.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폭력이 행해진 뒤에도 내내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모습을 그릴 필요가 있었어요. 따라서 '폭력의 영향'을 가장 구체적으로 내재화하고 있는 후미에의 존재는 중요했습니다.

 

홍상현

<하모니움>을 볼 때마다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되는 신이 있습니다. 후미에와 호타루가 벤치에 앉아있을 때 공간적 배경이 바다로 전환되는 장면인데요. 제게는 작위적인 감정의 고조를 피하려고 하는 인상이 강한 감독의 작풍을 떠올려 볼 때 무척 예외적으로 강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신이에요. 어떤 의도로 구상하시고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하셨는지요.

후카다 코지

'꿈 장면'에는 시나리오상으로 두 가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딸과 온화하게 마주하고 싶은 어머니 후미에의 심상, 다른 하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있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깊은 골, 그러니까, 누구나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고독이지요.

만약 누군가 이 장면이 감정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그 감상자에게 이 대척점이 아주 친근하기 느껴졌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모니움」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라, 원래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아,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있구나’하며 스스로의 상황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말하자면 고독에 관한 영화죠.” 후카다 코지 감독의 말이다. (C)mk2
후카다 코지 감독은 말한다. "「하모니움」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라, 원래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아,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있구나'하며 스스로의 상황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C)mk2

"<하모니움>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라, 원래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아,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있구나'하며 스스로 상황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말하자면 '고독'에 관한 영화죠.

작품을 즐겨주신, 그리고 즐겨주실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한 편의 영화가 아무쪼록 일본과 한국이라는, 바다를 사이에 둔 두 나라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혀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후카다는 다시 한번 올가을 개봉 예정인 <LOVE LIFE>애 대한 홍보를 덧붙였다. 그는 이전부터 한국로케를 계획, 촬영팀의 입국을 위해 비자까지 신청했지만 코로나19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와중이라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이 작품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자기 PR을 부끄러워하는 겸허한 성품 탓에 아시아영화로는 유일하게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는 사실은 끝내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무쪼록 한국 관객에 대한 후카다의 뜨거운 마음이 담긴 새 영화로 그에게 한국의 극장가에서 '리얼타임'으로 한국관객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사람의 관객이자 영화적 동지, 그리고 깊은 애정을 가진 심우로서.

[인터뷰 홍상현,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ㆍ일 양국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 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 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주최 디지콘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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