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 혹은 존재할 것인가
[구로사와 기요시]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 혹은 존재할 것인가
  • 이현동
  • 승인 2023.12.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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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하여"

지난 12월 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된 《구로사와 기요시의 미니 특별전 : 숏의 감각》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큘로에서 최근 출간된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와 맞물려 흥미롭게 느껴진다. 기획전에서 소개된 작품은 총 다섯 작품으로, <큐어>(1997),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 <은판 위의 여인>(2016), <산책하는 침략자>(2017), <스파이의 아내>(2020)이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강연과 대담을 진행하고 무려 21여 작품을 소개했던 2004년도 회고전에 비하면 다소 약소하지만, 그 이후에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맨 먼저 떠오르는 물음은 이러하다. '호러영화로 상기되는 기요시는 과연 어떤 장르를 연출하는 감독인가?' 그는 2004년 회고전 당시 '나의 영화론'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주최자에 의해 처음에는 '나의 호러영화론'으로 의뢰되었던 이 강연의 이름을 바꾸고 단순히 장르가 아닌 영화라는 미디어를 기본적으로 '세계'를 그리기 위한 기술로 정의했다. 그의 발언을 보면 단순히 장르에 매몰되지 않는 시네아스트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물론, 호러영화가 그를 상징하고 대명사처럼 여겨진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초기작을 보면 특정 장르를 선호한다기보단 찍고 싶은 것을 찍겠다는 강력한 야심이 드러나 있다. 기요시는 1983년도 로망 포르노 영화인 <간다천 음란전쟁>(1983)과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1985)를 발표하면서 흥행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찍고 싶은 파격적인 시도를 개시했다. <일본 섹스 시네마>에서 주로 일본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제스퍼 샤프는 초기 고다르에게 오마주의 대상이었던 히치콕의 <이창>(1954)과 유사한 방식을 채택할 뿐만 아니라 영화 제목으로 배열된 책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퇴폐적 실험과 다채로운 오브제와 불가해한 서사를 통해 초기 고다르가 선보였던 형식을 오마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당시 로망 포르노의 대표 제작과 배급을 주도하였던 닛카츠에선 정해진 분량의 섹스 장면에 대한 요구 말고는 창작자에게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았다. 기요시뿐만 아니라 80-90년대 데뷔한 스오 마사유키, 소마이 신지와 같은 감독들은 로망 포르노 장르를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영화 활동에 참여한 인물들이다. 그가 회상하기를 비교적 규모가 컸던 아트 시어터 길드(ATG)과 같은 회사에서 데뷔작을 연출하게 되었다면 흥행이라는 제약 때문에 그때와 같이 파격적인 시도는 어려웠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기요시는 그 뒤로 장르적으로 호러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면서 평단에 지지를 받았다.

 

ⓒ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1985)

구로사와 기요시의 유령론

"영화는 비물질적이야. 그것은 유령이지." ― 파울루 로샤의 <건축가 올리베이라>(1993)에서 올리베이라의 말

서구에서 '유령'이 최초로 언급되었던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었으나 살아 있는 듯한 '환영'이라 말했다. 이어서 죽은 영혼이 죽은 자와 함께 있지 않을 때는 산 자와 함께한다는 사실과 유령은 항상 '돌아온다'는 것임을 진술한다.

영화에서 '돌아온다'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서 종종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유령이 된 남편과 함께 죽음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거나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귀가하기도 한다. 유령은 본래 자신의 기억에 밀착되어 있으며, 이는 주저 없이 기원의 문제로 회귀할 것을 명명한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산 자로 행위를 하며, 산 자처럼 보이나 죽은 사람들. 기요시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란 이처럼 유령처럼 보이는 이를 통해 도리어 심리학적 실험을 구축하는 데 있다. 가령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1985)에서 극도의 수치심을 수치로 측정하기 위해 히라야마 교수(이타미 주조)가 아키코(아소 우사기)를 나체로 벗겨놓고 실험을 감행하는 이야기는 다소 과장돼 보이긴 하지만, 기요시가 영화에서 다루는 형식에 대해 알 수 있는 주요한 힌트가 된다. 사실 수치심이라는 건 실상 표상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업은 실체하지 않는 요소를 실체화할 때, 영화적으로 어떤 구조를 형상할지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특히나 줌, 패닝, 틸업 등의 카메라 워크를 자주 활용하여 인물 관계의 미묘한 지점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미디엄 숏은 인간의 숏이 아니라 유령의 숏처럼 인물들을 쫓아다닌다.

이처럼 구로사와 기요시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유령 혹은 환영이란 보이지 않는 성질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기요시에게 영화란 올리베이라의 말처럼 그 자체로 유령인지도 모르겠다. 프레임 안에서 배치되고 활동하는 시공간의 풍광, 인물을 담는 모든 영화는 관객에게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믿음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유령처럼 다가오기 마련이다. 많은 감독이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병리학적 현상을 토대로 유령의 근거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기요시의 영화에선 어떤 원인과 근거를 명확하게 도출해 내기는 쉽지 않다. 또한 모종의 원한에서 유령이 된 원혼을 성불하기 위해 복수를 한다거나 유령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머물기 위해 과거의 서사를 동원한다든지 하는 클리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가 명시하고 있는 환영성이란 점차 물리적인 형상으로 변환되거나 아예 소멸하거나 하는 경계 속에 거주한다. 먼저 호러영화에 대해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기요시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건 존재하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서 어떤 긴장을 촉구하느냐다. 그가 호러영화에서 이상형으로 지목했던 <양들의 침묵>(1991)의 한니발 렉터 박사는 그러한 예시로서 설명된다. 분명 프레임 안에서 관찰할 수 있지만 그 너머에 무엇인가 있다고 여겨지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그의 영화는 종말 삼부작이라 불리우는 <큐어>, <회로>, <절규>에서 두드러진다.

 

<큐어> ⓒ 엠엔엠 인터내셔널

<큐어>에선 '최면'에 이끌려 발생하는 살인을 다룬다. 최면에 걸려 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공통으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의도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행동이라 말한다. 예전에 최면 요법을 '영술'이라 불렸다는 의사의 말과 이러한 의식을 전파하는 전도사인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유령과 같은 의식의 존재를 죽음으로 가시화한다. <회로>(2001)에서는 광범위하게 유포된 인터넷이라는 매개를 통해 세기말 이후 확산되었던 사회 현상이 어떠한 미래를 초래하게 될지에 대한 상상과 결부하고 있다. '유령을 만나고 싶습니까'라는 메시지를 받은 이들은 유령의 습격을 받고 결국 유령이 되어버린다는 설정과 그 과정은 보이는 존재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2007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밝힌 것처럼 기발한 방법으로서 '유령이 출몰하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 어떻게 사라지는가'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규>(2006)는 신원미상의 여성 유령이 형사 오시오카(야쿠쇼 코지)를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유령과의 관계를 추적하며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 이 영화는 <큐어>와 <회로>와는 다르게 오시오카만을 대상으로 한다. 영화에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마치 유령이 점거한 배경처럼 보인다. 철거되는 건물과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들이 해수에 묻는 장면과 더불어 그곳이 간척지였다는 사실을 상상해 본다면 미래를 열망하기 위해 도시는 과감하게 과거를 제거한다. 이를 우연히 죽음을 목격한 오시오카 역시 가해자인 셈이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죽어주세요"라는 반복된 귀신의 저주는 일본 사회를 향한 절규로 메아리친다. 유령이란 결국 돌아가기 위해 과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꽤 지나 호러 장르로 다시 돌아온 작품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2016)도 마찬가지로 인간을 강제하는 요소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다. 친밀감을 쌓고 대상을 유인하여 '약물'로 사람을 조종하는 옆집 남자 사이코패스 니시노(카가와 테루유키)는 엄밀히 말하자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인하려 한다. 마치 <큐어>의 마미야처럼 말이다. 불안과 공포가 인접해 있는 동시에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내려는 심리를 이용한 나시노는 보이지 않는 내면을 강제적으로 굴복시키려는 어떤 유령적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흥미롭게도 <큐어>의 마지막 장면은 유사한 면이 있다. 주인공인 타카베(야쿠쇼 코지)의 마지막 식당 씬 전에 그는 마미야가 최면을 통해 살인을 일으키는 방법을 은연중에 터득하고 타카베 또한 그 방법을 종업원에게 사용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그렇다.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에서 다카쿠라(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최면에 걸린 아내에게 약을 투약 받았음에도 약물에 중독되지 않고 니시노가 건내준 총으로 그를 쏴버린다. 니시노와 약물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는 약물 자체이며 약물의 특성에 면역이 있기 위해선 다카쿠라 또한 니시노와 같이 되어야 한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투약의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트릭도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심리를 다루는 의사나 형사가 등장하는 <큐어>나 <절규>,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 그전에는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가 있었다는 공통 요소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는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은밀하게 내재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내면을 강조하기 위해 심리로부터 그 과정을 찾는다.

 

<도쿄 소나타>(2009) ⓒ 스폰지이엔티

한편으로 현재를 기점으로 기요시의 후기 영화로 가정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도쿄 소나타>(2009)부터일 것이다. 전작으로 치부되는 <절규>에서 철거된 건물을 통해 일본의 사회 현상과 문제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를 더욱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은 <도쿄 소나타>다. 가부장적이며 남성주의적 일본 사회를 저격하는 이 영화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정 붕괴를 심화하면서도 이전 영화처럼 절망으로 영화를 종결하지 않는다. 차에 치여 죽은 것으로 묘사되던 가부장 아버지 류헤이(카가와 테루유키)는 한편으로 죽음으로부터 변화된다. 그가 다시 돌아와 식탁에서 엄마와 아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지 않을 때 밥을 먹을 수 없었던 제도 혹은 규율이 무너지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연주를 지켜보고 난 뒤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어떠한 절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뒤로 나온 <해안가로의 여행>(2015)도 마찬가지로 남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희망의 찬가가 울려 퍼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들이 단번에 떠올랐다. 가장 일본적으로 평가받는 겐지의 몇몇 영화들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있는데, 시대극에 해당하는 <오하루의 일생>(1952), <우게츠 이야기>(1953), <산쇼다유>(1954)는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동한다는 점에서 로드 무비면서 일본의 어두운 현실을 조망한다. 군데군데 표상하는 전쟁과 대립, 그 경계 안에서 펼쳐지는 죽음은 긍정할 수 없는 모습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해안가로의 여행>은 미조구치 겐지가 나열한 시대를 다시금 갱신함으로써 일본 곳곳에 있는 죽음의 역사를 희망으로 전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한 장소가 아닌 일상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가 갑작스레 파괴된 공간으로 변화되거나 인물이 소거될 때 우리는 일본을 휩쓸었던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재해를 떠올리게 된다. 느슨하게 본다면 다크투어리즘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이미지의 윤리적 혹은 수행적 차원을 자극하기보단 개인화된 일본 사회에서 죽은 이들과도 공명할 수 있는 희망의 풍경화를 고려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또한 실종된 남편이 3년 만에 다시 돌아와 여행을 떠나는 영화 속 모든 인물은 그것이 실재인지 비실재인지 알 수 없이 혼재되어 있다. 유령처럼 흩어져 있는 인물과 배경 사이에서 그들은 어딘지 모를 의문의 여행을 지속한다. 영화 후반부에 미즈키(후카츠 에리)가 유스케(아사노 타다노부)에게 "나는 궁금해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라 말하는데, 이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면서 체험을 증명한다. 실재와 비실재의 구분이 없는 영화적 상상력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귀결된다. 죽은 이와 함께 떠나는 우화와 같은 이 여행이 종결되는 장소가 남편 유스케가 죽었던 장소라는 점과 카메라가 향하고 있는 장소가 잔잔하게 흐르는 해안가라는 점은 대지진의 상흔으로부터 회복되고 있는 개인을 연상하게 된다. 특히, 일본이 패망하는 장면과 함께 폭파된 정신병원을 탈출한 아오이 우유가 울부짖는 <스파이의 아내>(2020)의 마지막 시퀀스의 바다와 <도쿄 소나타>에서 아내가 강도와 성관계를 맺는 위치가 해변이라는 요소는 일본을 언표하면서도 수몰된 유령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은판 위의 여인>(2016) ⓒ 안다미로

이를 잘 나타내는 또 하나의 작품은 <은판 위의 여인>(2016)이다. 은판에 이미지를 담는 고전 촬영술인 다게레오 타입을 사용하는 사진작가와 작가의 딸, 그 밑에서 일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촬영을 위해선 오랜 시간을 고정된 포즈를 취해야 하는데, 이것을 온전히 진행하기 위해 작가는 아내와 딸에게 약을 지속해서 투약한다. 작가는 부작용으로 인해 아내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딸에게도 약을 계속 투약한다. 작가의 집에선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문이 스스로 열리고 그 행적을 쫓아간 작가 앞에는 죽은 아내의 유령이 그를 마주한다. 이때 부작용으로 종종 정신을 잃는 딸이 계단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게 된다. 알바인 장(타하르 라힘)은 마리(콘스탄스 루소)를 병원으로 이송하려다 그만 옷이 차 문에 걸려 열려 있었고 무리하게 회전하려다 그녀는 강가에 추락하게 된다. 장은 차에서 내려 강가를 찾다가 뒤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 마리와 마주한다. 이제 그녀의 머리에는 상처도 없고 이제는 괜찮다며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관객은 유령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한다. 마리의 존재는 실재인가. 아니면 장의 시선에서만 머무는 유령인가 하는 두 가지 선택지는 역시나 기요시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구조인 가시-비가시적 이미지로 변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판 위의 여인>의 마지막 두 장면에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려다 교회 관리자에게 그 광경을 들킨 이후로 관객의 시선에선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마리를 한 공간에 있음을 가정하고 허공에 대화를 시도하는 장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차 안에서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마리에게 '집에 가고 싶어?'라는 이 물음에는 기요시의 영화의 유령론에 대한 핵심이 담겨 있다. 기요시가 돌아가고야 마는 물, 가족 등의 공간과 반대로 사라짐은 가장 영화적일 수 있는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반면에 <안젤리카의 이상한 사건>(2010)이나 <게보 앤 더 섀도우>(2012)와 같은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유령은 사건이 아닌 영화 안에서 통용되는 변칙의 가능성을 무위로 만든다. 그가 시간의 궤적을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감각적 체험의 대상으로 유령을 활용한다면 기요시의 영화에서 유령은 인물의 관계로부터 점차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연민과 회복과 희망 가능성을 부단하게 논구한다.

<산책하는 침략자>(2017)에서 외계인의 외형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마치 유령과 같기 때문은 아닐까. 외계인이 우리에게 강탈하는 것이 '개념'이란 사실은 실상 기억에 가깝다. <절규>에서처럼 뒤엉켜 있는 과거의 흔적을 복구하기 위해 요구되는 건 오로지 기억뿐이다. 영화에서 그들이 빼앗을 수 없는 사랑의 개념이란 기억하는 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기요시는 늘 관객에게 기억하는 자에게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고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기요시의 유령론은 시간 안에서 어떻게 사라질지를 골몰한다. 그의 결론은 그 세계가 외화면 밖으로 침노하여 앞으로 사라질 것들에 대한 따스한 관심으로 다가온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이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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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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