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텍스트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NETFLIX]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텍스트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 이현동
  • 승인 2023.10.0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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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연극, 그 사이에 있는 내러티브"

기상천외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이 넷플릭스와 함께 네 편의 단편영화(<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쥐잡이 사내>, <독>)를 탄생시켰다. 재밌게도 이 작품들은 모두 '로알드 달'의 단편 소설집을 원작으로 한다. 로알드 달은 주로 아동문학을 다뤄온 작가다. 그의 첫 번째 동화책으로 잘 알려진 『그렘린』은 월트 디즈니의 의뢰를 받아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하였고, 이후 『제임스와 슈퍼복숭아』, 『마녀를 잡아라』 그리고 영화로도 익히 알려진 『찰리와 초콜릿 공장』, 『내 친구 꼬마 거인』, 『마틸다』  등을 통해 20세기 가장 사랑받는 동화를 만든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다만, 웨스 앤더슨이 선택한 로알드 달의 작품들 중에 아동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백조>밖에 없다는 점은 어쩌면 그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으로 관측된다. 앞서 앤더슨은 로알드 달의 작품 중 <판타스틱 Mr. 폭스>(2005)를 장편으로 제작한 바 있다. 감독은 이 작품을 제작하고 난 다음 10년을 넘게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를 고심하고, 로알드 달 가족에게 자문해 영화를 만들었다.

한편으로 넷플릭스가 코엔 형제를 통해서 <카우보이의 노래>(2018)와 같은 단편을 통해 보여주었던 가능성은, 온전히 작가에게 주어진 창의적 과업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여건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건화되고 산업화된 영화 현장에서 작가주의 영화는 흥행을 도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단편 영화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넷플릭스의 지원은 작가에게 유효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영화 <백조>(2023) ⓒ 넷플릭스

웨스 앤더슨은 이번 네 편의 단편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형식을 변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 작품들 대부분 숏의 길이는 상대적으로 길게 구성이 되어 있는데, 중요한 건 숏의 단위가 '텍스트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리액션과 연출은 책 내용을 고스란히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그가 말하듯 이번 작품들이 "연극과 영화 사이에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it had to be something between theater and cinema)고 언급한다는 점에서 둘을 결합하는 텍스트는 주요한 요소다. 예컨대 영화와 연극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한 이전의 작품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수많은 레퍼런스가 공전하는 미국을 결국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세계를 변주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 또 이 영화는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원인 규명이 불가한 사건을 통해 격리 조치를 당하는 마을 사람들은, 당시 영화를 제작하던 시기가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 현실과 비현실을 왕래하는 통로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화 내에서도 구별된 공간과 연출을 선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이번 단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네 편의 단편에서 두 종류의 세계는 영화 안에서 내레이션과 연기를 담당하는 배우뿐만이 아니다. 외부에서 사건을 조명하는 내레이터인 '로알드 달'(레이프 파인스)은 실존 인물로 자신이 기록한 텍스트를 온전히 읽는다. 둔감한 대부분 감상자는 그가 새로운 형식을 고안해 낸 작품이라고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애스터로이드시티>의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두 종류의 대칭과 동일한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3편도 아니고 5편도 아닌 4편인 짝수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그렇기에 이 작품들은 전작 <애스터로이드시티>를 연결하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급진적이기까지 보이는 텍스트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이번 단편영화가 볼륨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정보량과 더불어 압축된 형식이 주는 전달력이 굉장히 넓다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그간 웨스 앤더슨 영화가 보여주었던 단점이 상쇄되고, 오히려 장점이 더욱 부각될 수 있는 주요한 예시가 아닐지 싶다.

 

영화 <쥐잡이 사내>(2023) ⓒ 넷플릭스

네 편의 단편(<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쥐잡이 사내>, <독>)에서는 웨스 앤더슨이 소유한 특유의 캐릭터 모델링과 배경 디자인이 언어를 통해 더욱 강하게 서사와 밀착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나 소설 속 텍스트 읽어나가는 배우의 무표정과 음성, 실시간으로 세트장이 변화하는 연극적 구성은 완고하게 그의 특성을 강화한다. 해외 한 매체에서는 이번 단편을 보고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지나가다 깜짝 놀랄 정도(?)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앤더슨이 그의 이론을 수용하고 적용하는지는 알 수는 없다. 다만 앤더슨의 영화를 옹호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영웅이나 스타가 없는 스타일의 연극을 선호했고, 극적 속임수가 배제된 전형화된 인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격렬하게 찬양했는데, 개인적인 동기나 심리가 아닌 단순성과 즉물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돌이켜보면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는 극적 서사가 동원되거나 혹은 배우 대부분이 과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배우와 배역, 인물과 관객에게 주어진 거리 두기를 수행하고 관습을 거부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브레히트적이다. 또한 브레히트는 배우가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임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로 무대에서 코멘트하여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이런 과감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매체의 특성을 사유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도식화된 매체 특성을 해부한다. 앤더슨의 영화는 그간 미장센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분명 소모적인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번 네 편의 단편에는 이러한 측면이 어느정도 해소되는 듯 보인다. 내러티브도 그렇지만 배우의 연기가 기존의 연기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점과 특히나, 모든 인물이 마치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처럼 연기하고 있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 ⓒ 넷플릭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와 <독>을 중심으로 : 배역이 공존하고 교차되는 순간

맨 먼저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인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네 편의 단편에서는 내레이션을 통해 실상 텍스트(원작)를 읽고 있기 때문에, 결국 크게 살펴볼 수 있는 요소는 '앤더슨이 어떻게 미장센을 구성했겠느냐'일 것이다. 특히, 연극적 요소의 개입 또한 흥미롭지만, 각각의 단편에서 기용되고 있는 배우들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먼저, 베네딕트 컴버비치와 벤 킹슬리, 데프 파텔이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와 <독>을 살펴보자. 이 두 작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베네딕트 컴버비치'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태도를 갖고 있다.

먼저,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 베네딕트 컴버비치는 세상을 뜬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독신자를 자처한 41세 중년 '헨리 슈거'를 연기한다. 헨리는 시골집 한 채 값인 페라리를 몰고 다니고, 자신을 꾸미는데 과감히 돈을 쓰며, 채워지지 않는 돈에 대한 욕망으로 도박과 주식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헨리가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임다드 칸(벤 킹슬리)에 대한 보고'라는 제목의 책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다. 임다드 칸은 눈을 가리고도 밖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였는데, 그는 우연히 어느 정글에서 수행에 정진하는 한 남자를 만나 그 능력을 전수받게 된다. 책에 적힌 대로 훈련을 시작하게 된 헨리는 3년 3개월이라는 노력 끝에 카드 뒤에 있는 숫자와 글씨를 모두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박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그는 돈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 중 가장 주요한 것은 전 세계에 병원과 고아원을 짓는 것이었다. 그가 다가오는 죽음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병원과 고아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데프 파텔은 의사와 매니저로 영화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독>(2023) ⓒ 넷플릭스

관객인 우린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는 한 중년의 모범적인 성장을 보게 되지만, <독>에서 보이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해리 포프(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친구 우즈(데프 파텔)는 그의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집에 방문한다. 해리는 침대 위에 누워서 친구에게 강력한 독을 가진 우산뱀이 이불 밑 배 위에서 자고 있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친구는 여러 방법을 간구하다가 우산뱀 해독제를 갖고 있는 의사 간더바이(벤 킹슬리)에게 연락하여 방문을 요청한다. 상황을 본 의사는 마취제를 사용하여 뱀을 마취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15분이 지나고 이불 안에 있는 뱀을 확인하려 들췄지만 뱀은 없었다. 깜짝 놀란 해리는 발버둥을 치고, 그것을 본 간더바이는 헛웃음이 나오고 만다. 악의가 없었던 헛웃음은 해리의 분노를 촉발하게 되고, ‘더러운 벵골 시궁쥐’라며 인신공격을 시도한다. 이것은 말리던 우즈에게도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간다바이에 우즈는 해리를 향한 마음을 되돌리려 하지만, 실망했는지 받아주지 않는다. 이때 전경 앞에 표기된 "BRITISH JUTE"라는 간판은 영국 출신 배우인 그들을 자학하는 블랙코미디처럼 보인다. 특히나 영국 국적이지만 인도계 혼혈인인 벤 킹슬리나 데프 파텔에게 순수혈통 영국인, 심지어 국왕의 후손인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욕을 하는 모습은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배우의 외적 요소를 부여하는 현실/비현실의 요소이기도 하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와 <독>에서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연기한 헨리와 해리는 전혀 다른 인물상으로 등장한다. 해리가 가진 과격함은 헨리에게선 전혀 볼 수 없고, 반대로 헨리가 막대한 돈을 소유하면서 얻은 고뇌도 해리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이 두 작품뿐만 아니라 <백조>와 <쥐잡이 사내>에서도 중첩되는 배우와 배역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서사'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백조>와 <쥐잡이 사내>에서 루퍼트 프렌드는 내레이션과 사건을 관찰하는 자로 소소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 레이프 파인스가 쥐잡이로 등장하는 <쥐잡이 사내> 같은 경우에는 앞서 말한 예시가 맞아떨어진다. 그가 펼치는 로알드 달의 연기는 전체적으로 이야기임을 증명하는 형식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쥐잡이 사내>에서는 서사를 행위하는 자로 등장한다. 서사를 운반하는 그가 연기자로 개입할 때 이 영화는 배역의 충돌을 통해 서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부각한다. 필자는 지난 <애스터로이드시티>에 관한 글(「앞으로도 웨스 앤더슨을 기대해야 하는 이유 ['애스터로이드 시티' #2]」)을 쓰면서, 그의 작품에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그의 다음 영화가 파격적인 변용이나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질문에 이번 네 편의 단편은 만족할 만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렇게 앤더슨의 영화도 미장센이 아닌 서사로 말하는 영화가 될 수 있는 건 각본의 위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즉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빼어난 앤더슨의 연출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네 편의 단편이 앤더슨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다시금 일깨워 준 작품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감독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
랄프 파인즈Ralph Fiennes
데브 파텔Dev Patel
벤 킹슬리Ben Kingsley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37분
등급 12세 관람가
공개 9월 27일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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