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th DMZ docs] '최악의 아이들' 아이들은 누구를 위해 울고 웃는가
[15th DMZ docs] '최악의 아이들' 아이들은 누구를 위해 울고 웃는가
  • 김민세
  • 승인 2023.09.2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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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불편한 성공담, 또는 저항의 블랙코미디"
ⓒ 영화 <최악의 아이들>

<최악의 아이들>은 논픽션 다큐멘터리로 착각하기 쉽다. 가상의 영화 촬영 현장을 무대로 하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네 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로 시작하고, 영화 전반에 걸쳐 비전문 배우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을 불러온다. 카메라는 영화 밖에서 영화 안을 향하는 시선과 '영화 속 영화'를 촬영 중인 시선을 넘나들고, 프레임은 투박하게 줌인 줌아웃하는 저화질 캠코더 녹화 화면과 도시의 풍경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시네마스코프,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셀프캠을 도발적으로 자유롭게 오간다.

프레임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세 층위로 분류할 수 있다. 감독을 비롯한 영화 스태프를 연기하고 있는 전문 연기자들, 현지에서 캐스팅되어 주어진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비전문 배우들, 그리고 앞선 두 층위의 그룹의 주변에서 주어진 연기인지 즉흥적인 논픽션의 리액팅인지 구분되지 않는 연기를 펼치는 또 하나의 비전문 배우 그룹들이 그러하다. 공동 연출로 이 영화에 참여한 '리즈 아코카'와 '로마네 게헤'는 각 층위의 배우들이 하는 연기를 서로 충돌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앙상블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너지에 집중하는데, 이를 비롯한 앞선 요소들을 통해 <최악의 아이들>은 사실상 픽션에 가까운 제작 방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픽션과 유사한 외형을 지니게 된다.

 

ⓒ 영화 <최악의 아이들>

겉으로 보기에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움과 모호함을 유지하려는 것 같은 <최악의 아이들>이 '영화 속 영화'라는 설정을 통해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사실 단순하고 주제적이다. 오히려 영화는 '영화 속 영화'의 내용이 그들의 실제 삶과 겹쳐지는 모큐멘터리적 광경을 그려내며 지적이고 모호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논픽션으로서의 아이들'이 '픽션으로서의 영화 제작 환경'에 놓였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 자체와 그 사이에서 일어나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주목한다. 가령 촬영의 중요한 단계로 묘사되는 라이언의 싸움 장면과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가는 장면의 스펙터클은 폭력과 해방, 변수와 불확실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영화는 이렇게 불확실의 현실이 영화라는 통제와 맞부딪히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묘사하며 통제되고 가공될 수 없는 현실 날 것의 에너지를 지속해서 상기시킨다.

반면 영화는 '영화 제작'이라는 메인 플롯을 진행함과 동시에 메인 플롯이 결말로 전진하는 것을 방해하는 주변의 플롯을 수시로 끼워 넣는다. '영화 속 영화'의 배우로 등장하는 메이리스가 갑작스럽게 출연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나, 마일리스가 촬영 중에 스태프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픽션의 서사가 갖는 리듬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미결의 형태로 증발해버린다. 이러한 증발하는 서사는 우연과 불확실에 기반하는 다큐멘터리 서사의 미학을 달성하며 목적 지향적인 '영화 제작'이라는 메인 플롯에 윤리적으로 저항하는 또 다른 서사가 된다.

 

ⓒ 영화 <최악의 아이들>
ⓒ <샤세 로얄>(2016)

이상한 점은 영화 제작이라는 가상의 상황과 더불어 생생한 논픽션의 현현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과 주변의 서사가 어느 순간부터 픽션임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순간이다.

영화의 후반부 릴리와 그녀가 짝사랑하는 스태프가 사적인 만남을 갖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들을 정적인 투숏과 싱글숏으로 담아낸다. 이내 사랑을 거절당한 릴리가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때, 그 위로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 연속적인 상의 두 장면은 거칠고 투박한 이전의 장면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양식적으로 찍혔다는 인상을 준다. 촬영 내내 화나 있던 라이언이 릴리와의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환하게 웃는 모습과 그 얼굴을 기어이 프리즈 프레임으로 잡아내고 있는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이때 사랑이라는 우연과 분노라는 에너지는 각각 비극적 결말과 희극적 결말로 인위적으로 봉합된다. 이 두 얼굴은 리즈 아코카와 로마네 게헤의 첫 번째 단편 <샤세 로얄>(2016)의 마지막 숏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연히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샤세 로얄>은 어찌 보면 <최악의 아이들>의 전신과 같은 영화다. 하지만 <샤세 로얄>의 마지막 숏은 영화 출연 기회가 무산되어 낙심하는 소녀의 얼굴이 아니다. 소녀가 전화를 끊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집안을 정신없이 누비고 신경질 낼 때, 그 모습을 그저 침묵하여 지켜보고 있는 남동생의 얼굴이다. 이 주변인의 초상이야말로 픽션의 장막을 뚫고 나오며 논픽션의 짙은 현실감과 페이소스를 내뿜는다.

<샤세 로얄>이 픽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논픽션의 얼굴로 고개를 돌린 반면, <최악의 아이들>은 논픽션인 듯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픽션의 결말에 항복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메이리스가 대변하는 주변인의 초상은 그 순간 증발해버린다. 릴리의 눈물이 비극적 주인공을 그려내기 위한 어설픈 연기처럼 느껴진다는 말은 과장일까. 라이언의 마지막 웃음이 가공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거짓된 두 얼굴은 영화 전반에 흐르던 우연과 불확실의 스펙터클을 결국은 조작된 듯한 감상적인 두 엔딩에 굴복하게 만든다. 혹은 이 당혹스러운 엔딩을 마주하고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볼 수는 없을까.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를 때, 현장의 감독 가브리엘은 라이언에게 동요 없이 가만히 자리에 서 있을 것을 요구한다. 액션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비둘기들이 하늘을 가득 메울 때, 그와 대비되게 라이언은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다. 그때 라이언의 몸에 있던 불확실의 에너지는 가브리엘의 카메라 안에서 이미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라이언의 마지막 웃음은 가브리엘의 카메라 속 텅 빈 스펙터클을 향한 서늘한 조소일 것이다.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 minsemunji@ccoart.com]

 

ⓒ 영화 <최악의 아이들>

최악의 아이들
The Worst Ones
감독
리즈 아코카
Lise AKOKA
로마네 게헤Romane GUERET

 

출연
맬로리 와네크
Mallory Wanecque
티메오 마하우트Timéo Mahaut
요한 헬덴베르크Johan Heldenbergh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0분
공개 제15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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