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th DMZ docs] '황금도둑의 전설' 전설을 영화로 벗겨내기
[15th DMZ docs] '황금도둑의 전설' 전설을 영화로 벗겨내기
  • 이현동
  • 승인 2023.09.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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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칠레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보일 때 슬프다고 생각해요. 무의미하죠. 우리가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문화적 표식이 없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테아레)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테아레' 감독의 문제의식은 위 문장과 함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영화가 할리우드를 각주 삼아 공간성을 배제한 모조품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는 물음은 그에게도 동일한 것이었다. 그가 말한 '문화적 표식'이란 순전하게 고유의 지정학적 요소일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방식으로 영화가 존립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정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란의 풍경, 지아장커의 중국 인민 등 이들의 모든 공간은 특정 기호를 산출한다. 정글이란 공간은 언제든 회귀적 속성을 지닌 부활하는 객체를 상정하고, 테헤란과 이란에서 키아로스타미는 늘 반복해서 같은 길을 올라가는 모습을 통해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지아장커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가 중국을 벗어난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는 점도 동일할뿐더러 영화와 국가를 접촉하는 형태에 있어서 실재와 허구가 언제든 서로를 침범하길 바라왔던 아티스트들이었다. 공간과 인물, 사물이 밀접하게 영화를 근거지로 액조틱(exotic)한 스타일을 구현하는 건 상업적, 작품성 측면이나 여전히 과제임은 분명하다.

픽션-논픽션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는 별다른 편집과 설명 없이도 공간 하나로만 영화의 본질을 설명하려는 실험 영화감독의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재와 허구는 더 이상 규범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가령 장 클로드 루소, 제임스 베닝, 마이클 스노우, 존 스미스, 샴바비 카울에 이르기까지 이미지는 스스로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를 통해 진동함을 인식하게 되는 주요하다는 것이다. 과하게 말하자면 현재 상업을 의식하는 복제되고 있는 영화 이미지에서 '뤼미에르'에 조금 더 가까운 형태로 소급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공간을 긴 시간 응시하는 것이 곤욕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장르 규범에 의해 반사되고 있는 영화란 존재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신설된 섹션인 익스팬디드는 장병원 프로그래머의 말에 의하면, '다큐멘터리와 픽션, 즉 극영화 재현의 형식을 변용하는 영화들을 소개함으로 (장르) 범위를 새롭게 확장'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밝혔다. 물론, 이 섹션을 제외하고도 형식적으로 픽션과 논픽션이 구별이 불가능한 영화들이 있는데, <황금도둑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테아레 감독은 이 영화가 아카이브와 아카이브가 일어난 장소가 영화의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아카이브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그 사건에 포함되었던 인물과 그 인물의 행적을 픽션적으로 쫓는 이들과 함께 연결되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부부>(2022)가 떠오르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가 쓴 일기는 실제이지만, 특정 공간을 배우가 돌아다니는 장면은 허구다. 이 두 지점이 목가적인 풍경과 결합할 때 영화의 기류는 실재와 허구라는 범위를 초월하여 감각으로 감응하게 된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황금도둑의 전설>은 안달루시아의 카디스 대성당에 있는 유물을 훔친 칠레 국제 도둑 '알베르토 카밀로 칸디아'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참고로, 그는 유럽에서 수감되었다가 29세의 나이에 칠레에서 살해되었다.

먼저, <황금도둑의 전설>에서 '감독이 염두하고 싶은 형식이 무엇인지'를 짚을 필요가 있다. 감독은 알베르토 카밀로 칸디아의 이야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카밀로뿐만 아니라 영국, 네덜란드, 호주, 신문에서 다양한 지역에 이러한 사건이 유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순히 카밀로만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그려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충분한 재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황금도둑의 전설>은 실재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뒤섞으면서 전설로 알려진 이야기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알 수 없는 이야기처럼 방치한다. 황금을 채굴하는 이와 칸디아의 동료와 가족, 청년 부랑자들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 화면에서 채굴꾼은 황금에 대한 욕망으로 산에서 살해된 시체가 많다고 고백한다. 야망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고백하는 채굴꾼의 말은 쓸쓸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전설의 도둑 카밀로를 살해했던 한 남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로 포문을 열게 되는 이 이야기는 욕망의 폐해를 다시금 보고하면서도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후 설명할 테지만, 젊은 부랑자와 남자의 관계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사건에 대한 전말을 밝히는데 동원되는데, 이는 영화가 유일하게 다큐멘터리로 기능하게 만드는 요소다. 텍스트(논픽션), 프레임(픽션)의 경계를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고 불균질하게 만든다. 부랑자들은 길바닥에서 도시로 이동해 텐트를 치고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이동하는 경로와 행방을 삭제한 채 그 프레임 사이에 배경을 삽입하는 효과는 프레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를 특권화할 기회를 제공한다.

 

부랑자가 성당 근처에 도달한 후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논픽션을 픽션으로 위장하기 시작한다. 이 부랑자들은 잔디에 잠들어 있는 남성의 몸을 수색하고 도둑질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내 신분증을 보고 같은 고향인 파라과이 라티노네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중단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이어서 영화는 급박하게 성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핸드헬드로 포착한다. 이때 내레이션과 그 부랑자의 말이 교차한다. 내레이션은 그들의 행동을 명확하게 묘사하지만 부랑자들의 행동은 생략된다. 부랑자들이 유물을 훔치고 환희에 찬 모습 이전까지 도둑질이 발생했던 위치를 시점 숏으로만 잡는다. 더 나아가 단순히 그들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주제의식을 멈추지 않는다.

보물이 묻혀 있는 땅을 찾아 떠나는 카밀로를 살해한 남자와 부랑자들이 조우하고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굉장히 수상한 장면인데, 생각해 보면 성당을 도둑질하는 부랑자들은 전설의 도둑인 용의자 카밀로와 동료를 재현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장면은 그들의 관계를 다시금 재구성하는 장면이 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돌변하는 주요한 장면이다. 이 지점에서 주요한 키워드는 욕망이 아니라 '우정'이 된다. 물질이 지배하는 땅에서도 우정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가령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2019)가 함께 땅에 묻힌 우정의 이야기를 잔잔한 유머 스타일로 영화를 지탱하고 있다면, 이 영화도 그 지점을 공유한다.

그들은 함께 호수와 수풀에 숨겨진 금가루를 찾는다. 귀를 잃었다는 사실이 내레이션으로 등장하고, 수풀 사이에 숨겨진 귀가 묘연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역시도 계속해서 실재와 허구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대표 장면이다. 세 명을 익스트림 롱 숏으로 잡는 마지막은 그들의 우정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그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예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넓은 벌판을 걷는 장면과 함께 카밀로의 시신 옆에 있었던 보물을 내레이션 장면은 그런데도 그들의 우정이 끝까지 함께 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장면이라 믿고 싶어진다.

 

한편, 필자는 로드무비로 보이기도 하는 <황금도둑의 전설>이 갖고 있는 아즈마 히로키가 말한 '우편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로드 무비는 필연적으로 여행(관광)의 의미를 내포한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좌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긍정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때 아즈마 히로키가 『관광객의 철학』에서 짧게 언급한 '우편'과 영화를 '여행'으로 말하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그는 '우편'을 이렇게 설명했다.

"반면 '우편'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 세계의 여러 실패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런 한에서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효과를 발휘한다는 현실적인 관찰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편적'은 어떠한가? 여기서 우편적이라는 말은 어떤 물건을 지정된 곳에 잘 배달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배'(우편), 즉 배달의 실패나 예기치 않은 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을 많이 함축한 상태를 뜻한다. 관광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편적'이다."

<황금도둑의 전설>은 '전설'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며, 우리를 장르 안에서 유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좋은 의미에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우린 한 영화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거주자가 아니라 관광객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키아로스타미의 이 말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실재를 찾는 과정이 감독의 작업만이 아닌 관객에게 주어진 의식적인 행위이고, 미완성의 영화가 만드는 틈을 메꾸는 자'라고 말했다. 무의식이 아닌 의식적으로, 공허한 시선이 아니라 즐거운 여행을 온 기분으로,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황금도둑의 전설
Otro Sol
감독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테아레
Francisco RODRIGUEZ TEARE

 

출연
이반 카세레스
Iván Cáceres
클라우디오 팔라페Claudio Palape
후안 피사로Juan Pizarro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85분
공개 제15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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