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th DMZ docs] '앙헬 69' 유령의 영화
[15th DMZ docs] '앙헬 69' 유령의 영화
  • 이현동
  • 승인 2023.09.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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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무엇이든, 어떻게든 되돌아올 것 같은"

올해 제15회 DMZ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앙헬69>(2022)는 세계에 잠입한 유령의 시선과 죽음으로부터 일탈한 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다채롭게 기록한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아피찻퐁 위라세타꾼과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유령이 등장하는 몇몇 영화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금 유령에 대한 지울 수 없는 물음 앞에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유령의 정체는 무엇인가'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유령을 바깥 어디에 속해 있는 국지적 사태가 아니라 실재의 경험을 구성하는 일반적 사태라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유령이 다른 세계에 속하지 않고, 현실 세계로부터 기원한다는 말이다. 유령은 죽음으로부터 닥쳐온다. 삶 이후, 유령은 기억을 숙주 삼아 형태를 유지하고, 그리고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 소환된 존재로 탈은폐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피찻퐁이 영화를 '유령'같은 존재라 규정한 건 또 다른 의미에서 영화가 완성되고 상영될 때 그 순간 죽기 때문이다. 탄생과 죽음, 이것은 부정적이라기보다 어쩌면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과정과 같다. 영화가 죽고 과거와 현재를 또는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서로 접속시킬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는 건 역시 시간과 공간에 잔존하고 있는 유령 때문이다. 이제는 범지구적으로 유행과 문화를 어디서든지 빠른 속도로 교류할 수 있게 된 것도 이에 상응한다. <앙헬69>에서 Anhell69란 아이디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던 청년 카밀로 나히르의 죽음은 유령으로서 거주하는 공간이 SNS임을 드러내는 예시로 작동한다. 이는 유령이 한 공간에서 머무는 것을 벗어나 개방된 장소를 활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앙헬69>는 유령의 영화다. 콜롬비아 메데인이란 도시에서 도사리는 유령의 특성은 낮과 밤이 은유하는 세계에 대한 것이다. 이 도시는 클럽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자유로운 도시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 로마가톨릭 신자가 많은 보수적인 정신 또한 갖고 있는 도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영화에서 평평하게 낮과 밤을 구분한다. 낮에는 노동을 하다가, 밤에는 클럽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은 제스처는 이러한 구도를 엄밀하게 세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디스토피아가 된 메데인을 영화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도시가 마약 카르텔로 명성이 자자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활동했던 무대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죽음이 오가는 도시, 마약으로 크고 작은 분쟁이 있는 도시가 바로 메데인이었다. 여기에 유령과 콘돔 없이 처음으로 섹스한다는 설정은 단순히 스펙트로필리아(귀신과 성적관계에서 성욕을 느끼는 형태)가 아니라 게이의 존재를 비인칭적 묘사로 변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이 변용은 영화 속 인물들을 유령으로 암시하고자 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많은 청년은 실제 죽기도 한다는 점에서 합치된다.

<앙헬69>의 이러한 특징은 재현의 요소와 은유를 결합한 트랜스 혹은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정치·문화·경제·사회에서 조건화된 공간을 전회의 대상으로 삼기 위한 노력이 시선을 변용하는 데 중점이 있다면, '형식' 역시나 그 조건에 해당한다. <앙헬69>은 비인칭(도시)-인칭(인물)이라는 문제를 명증하게 담아내기 위해 쇼트를 분할한다. 메데인이라는 공간 이미지를 다루는 익스트림 롱 숏은 인물들의 삶과 거리감을 유도하기 위한 구도로 활용되고, 인물들은 주로 클로즈업된다. 이 두 종류 구도는 도식적이기도 하지만, 한층 더 간결하게 이 영화가 주력하는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스스로 유령이 된 '테오 몬도야'

영화 속 '테오 몬도야' 감독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장례차 안에 있는 관속에 누워 있다. 창밖을 통해 어렴풋이 안을 비추는 진홍색 불빛은 영화에 계속해서 맵핑되고 있는 질감이다. 이 불빛은 유령이 된 청년들의 눈빛이 되기도 하고, 그들이 만끽하고 있는 자유로운 몸짓을 조명하는 빛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콜롬비아 도시 메데인의 밤을 광활하게 찍는 익스트림 롱 숏과 게릴라 현장과 함께 2016년 산세바스티안에서 열린 콜롬비아 평화 협정에 관한 푸티지와 함께 이어서 현재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전환과 함께 미래를 약속할 것이란 희망을 의연하게 읊조리는 그의 내레이션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져올 수 있을까. 예수를 생각하며 자위했던 것을 고해성사하고 제명을 당한 시기인 13세 때를 상기하는 내레이션은 다름 아닌 감독 테오 몬도야의 음성이다. 이어서 그의 유일한 취미생활이 마리화나를 피우며 종일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는 고백은 영화가 자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서서히 감독 자신의 방을 패닝 하는 장면과 아무도 없는 장편 영화 캐스팅 과정을 위한 빈 공간은 앞으로 유령이 될 이들에 대한 짤막한 암시를 포함한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청년들에게 묻는 말들은 그들의 성격을 규정한다. 이름과 직업, 게이라는 성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모두 그들의 미래를 전망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음을 지시한다. 앵벌이, 그래픽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 웹캠모델, 드랙퀸, 감독의 첫 작품 <소돔의 자식>(2020)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카밀로 나하르의 모습까지를 담는다. 영화의 주요한 키워드는 미래다. 부자가 되고 싶고, 현재에만 충실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그들의 삶에서 영화는 주요한 문제점을 시사한다. 이들의 인터뷰는 몇몇 대상자의 실제 죽음에도 무관하게 계속해서 조명된다. 이 숏에는 불행과 슬픔, 고통이라는 자기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만 점철되지 않는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게이 중 한 명은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말한다. 다른 한 명은 "가장 친근한 것"이라 말하는데, 이들의 인터뷰에서 관객인 우린 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영화에서 줄곧 콜롬비아 우파 정권에게 시위를 가하는 장면도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그들의 삶과 깊은 연관을 지니는 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어쩌면 푸티지보다 콜롬비아에 잘 알려진 감독 빅토르 가비리아가 운전하고 다니는 장례차가 더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테오 몬도야의 섭외로 출현하게 된 빅토르 가비리아는 무엇보다 민주화 운동과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대표 작품인 <장미꽃 파는 소녀>(1998)는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모델로 한 작품이고, 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실제 장미꽃을 파는 소녀를 섭외하고 그들과 함께 18주 동안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콜롬비아의 현실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길거리에 장미를 파는 소녀에게 장미를 구입하는 장면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콜롬비아의 현실을 강조한다. 그는 장례차를 몰고 다니며 콜롬비아에 곳곳마다 사망선고를 하는 것이다. 영화를 대표하는 세 종류의 구도, 장례차와 콜롬비아의 전경, 유령과 자유로운 밤, 인터뷰는 어떻게 그들이 유령으로 도래하는 지를 묵묵하게 보여준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알리 아바시'의 <성스러운 거미>(2022)에서도 편견으로 연쇄되었던 도시의 전경을 거미줄로 묘사했던 것과 같이, <앙헬69>에서 보여주는 콜롬비아의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 자살과 약물 과다 복용, 질병으로 인한 죽음 등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공백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또한, 리노 브로카의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1975), 차이밍량의 데뷔작 <청소년 나타>(1992)나 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스토리>(1985) 등이 즉각적으로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결코 희망과 공존할 수 없는 동시대 청년들의 종말을 시대와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라는 점이다.

"미래란 개념 전체가 그냥 환상인 것 같아요" 평화 협정으로 인한 테오 몬도야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 그리고 게이들이 말하는 (미래가) 환상이라는 고백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감독은 이런 문제의식이 지정학적 위치에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장르야 어찌 됐든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시선의 문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가동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정글'에서 유령을 소환해 냈다면, 테오 몬도야는 콜롬비아 메데인'이라는 공간 안에서 기꺼이 원혼이 되어 현재를 기록한다. <앙헬69>는 어디서든 무엇이든 어떻게든 유령이 되어 돌아올 메데인의 사람들을 위해 감독 스스로 기꺼이 환대할 것임을 보여준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앙헬 69
Anhell 69
감독
테오 몬토야
Theo MONTOYA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74분
공개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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