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 넷플릭스에 등장한 복제의 왕
[NETFLIX]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 넷플릭스에 등장한 복제의 왕
  • 함윤정
  • 승인 2023.07.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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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인물, '넷플릭스'라는 무대에 서다"

2005년 당시 MBC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국내외 과학계의 중심에 섰던 황우석 박사에 관한 의혹을 보도했다. 언론과 황우석 측의 떠들썩한 갑론을박은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발표와 함께 종료된다. 황우석이 연구에 사용된 난자를 불법 매매했다는 점을 숨겼을 뿐 아니라, 그가 논문에서 주장한 11개의 배아줄기세포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후 황우석에게는 연구비 일부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이라는 법원의 처분이 내려진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자면 가히 거인의 몰락에 가까운 결말이다.

 

ⓒ 넷플릭스 

그런데 이 사건이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 명의 과학자를 향한 광신도적인 믿음의 메커니즘'에 있다. 황우석이 '국익' 프레임의 비호 아래 합리적 검증의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연구의 성취도나 과정의 투명성이 아니라,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낸 그만의 방식에 있었다. 쇼 비즈니스와 자기선전 마케팅에 능했던 그는 폐쇄적인 학계의 분위기, 안일하고 무책임한 언론, 순진한 대중 그리고 기회를 틈탄 정계의 활동에 힘입어 소위 '황우석 신화'의 서사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된 성취가 폭로되면서 일련의 신화는 한국 사회의 풍속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비극으로 완성되었다. 그간 황우석을 향했던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기대만큼이나 이후의 여파 또한 막심했다. 당시 극명하게 나뉜 대중의 공분은 각각의 영역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과학자로서 연구 윤리 혹은 생명 윤리를 경시한 결과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과 윤리적 검열 탓에 실제 성과가 가려지면서 국가적인 손실을 보았다는 입장 간 대립이 대표적이다. 생명 복제의 당위뿐 아니라 사건과 관련된 각종 찬반 논쟁은 오늘날까지 유효하게 남아있는데, 그런 점에서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이하 <킹 오브 클론>)은 과거의 쟁점을 재정식화하려는 하나의 시도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작품의 중심에 있는 이는 실제 인물 황우석이다. 언론 등 각종 매체를 통해 굴곡진 흥망성쇠를 경험한 그가 대중 앞에 재등장한 경로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중 하나인 '넷플릭스'라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킹 오브 클론>에서 황우석은 '무모하지만 숭고한 도전을 거듭하는 참 과학자'로서의 자기를 온몸으로 재현하는데, 넷플릭스는 이런 그가 자신의 전기를 다시 쓰는 작업에 흔쾌히 곁을 내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영화 <제보자> '이장환'(이경영)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스스로를 재현하는 복제의 왕

우리는 이미 '황우석 사건'을 다룬 한 편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바로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2014)다. <제보자>와 <킹 오브 클론>의 차이는 물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라는 상이한 형식에서 기인하겠지만, 두 작품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제보자>에서 황우석을 모티브로 가공된 인물 '이장환'(이경영)에게는 총 세 차례의 단독 장면이 주어진다. 사기 행각이 전면에 드러나기 직전 연구소에서 고뇌하는 이장환, 자신이 복제한 개 앞에서 사실상 변명에 가까운 반성을 실천하는 이장환, 병실에서 'PD추적'을 보다 화를 참지 못하고 리모컨을 집어던지는 이장환까지. 사실상 이들 장면을 끝으로 이장환은 영화에서 자취를 감춘다. 임순례는 결국 참회하는 이장환과 분개하는 이장환이라는, 하나의 인물에서 분기된 두 갈래의 가능한 상태를 관객 앞에 전시하는 것으로 인물의 서사를 갈무리한다.

<킹 오브 클론>은 <제보자>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황우석 박사의 몰락'이라는 부제와 함께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한국적인 상상력이 좀처럼 가닿지 않는 서사와 이미지에서 과감하게 출발한다. 오프닝에서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복제 개들을 소개하는 이는 다름 아닌 올해로 70세가 된 황우석 박사다. 각종 자료 화면과 인물의 현재 모습 위로 덧씌워진 음성은 예상한 것처럼 지난날 그의 과오를 축약하지만, 경쾌한 음악과 함께 타이틀 시퀀스가 시작되며 무거운 분위기는 급히 전환된다. 카메라는 도로 위를 나란히 달리는 자동차와 낙타 무리의 모습을 비춘다. 이토록 장관에 가까운 풍경 한가운데,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황우석이 또다시 등장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낙타를 몇 마리나 복제했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특유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150마리 이상"이라 답한다.

 

ⓒ 넷플릭스 

<킹 오브 클론>이 조명하는 인물의 현재, 혹은 황우석이 재현하는 그 자신의 초상은 몰락 이후를 살아가는 인물의 전형을 완전히 탈피해있다. 작품의 부제가 '황우석 박사의 재기'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다큐멘터리는 몰락한 과학자의 쓸쓸한 노년을 목격하리라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어버린다. 어떤 면에서 황우석은 마치 무한한 영광 속에서 살아온 인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타이틀 시퀀스가 끝난 후 카메라는 사막을 홀로 달리는 하얀 자동차를 비추는데, 자신이 운전 중인 차량의 스피커로 양희은의 '아침 이슬'을 듣던 황우석은 별안간 지난 삶의 궤적에 의미를 부여하는 독백을 덧붙인다. 음악이 슬그머니 비디제시스(Non-Diegetic Sound)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SUV와 운전대를 잡은 황우석의 모습이 교차로 비춰진다. 이토록 매끄러운 이미지의 연결은 마치 성공한(?) 남성의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활용한 자동차 광고를 연상케 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황우석은 자신이 몸담은 바이오테크 연구 센터를 소개하는데, 그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부총리이자 세계적인 부호로 알려진 만수르가 본인의 상관(Boss)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전하기에 이른다. 화면 바깥의 세계를 향한 공표처럼 들리는 독백과 광고 속 한 장면 같은 화면의 조합은 놀라움 또는 당혹스러움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단숨에 끌어모은다.

 

ⓒ 넷플릭스 

"하지만 감히 누가 이 부분을 신의 영역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요?"

<킹 오브 클론>을 연출한 아디띠아 타이(Aditya Thayi)는 작품의 초반부터 영화 <프랑켄슈타인>(1931)을 인용하며 미치광이 과학자 캐릭터에 황우석을 의도적으로 겹쳐 보이지만, 황우석의 복제 기술이 개인과 집단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환기하는 일 또한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일명 '황우석 사건'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거나 생명 공학에 관한 소견을 덧붙인다. 2005년 당시 <PD수첩>의 제작진과 제보자, 과학 전문 기자, NASA의 생명윤리부장뿐 아니라 황우석을 통해 죽은 낙타와 반려견을 복제한 이들까지. 아디띠아 타이는 그들 모두의 발언에 분주하게 귀 기울이며 다각도의 관점을 두루 전달한다. 이를 놓칠세라 그 흐름을 따라가는 데 집중하다 보면, 각종 쟁점의 극단 사이에서 정작 <킹 오브 클론>이라는 다큐멘터리 자체의 좌표를 가늠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치 않게 느껴진다. 마치 황우석에게 과학과 윤리 사이의 입장을 묻는 일이 끝내 무의미하듯이.

<킹 오브 클론>의 마지막 장면에서 최후 발언의 자리를 부여받는 이는 결국 작품의 주인공 황우석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18년 전 자신이 기만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소년 '현이'의 아버지 김제언 목사와 재회한다. 원망도, 악의도, 그렇다고 속죄의 기색도 없이 두 사람은 그저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이들처럼 행동한다. 과거의 "숭고했던 약속"을 언급하는 황우석에게 김제언 목사는 이 땅의 또 다른 '현이들'에 대한 사명을 가슴에 새길 것을 요청하는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 위로 황우석의 인터뷰가 덧씌워진다. 여기서 그는 유전자 복제 기술에 관한 숱한 오해, 즉 신의 창조 질서를 거역하고 스스로 신이 되려는 몸짓이라는 세간의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이전에도 황우석은 생명 복제(Cloning)에 관한 과도한 상상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며 해당 기술이 '유전적인 복제'에 국한된 것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죽음'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규정했던 그의 발언("체세포에 세포계로서 배양이 가능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그 단계까지 죽었다고 생각을 안 합니다.")을 떠올리자면, 탄생과 죽음에 취해지는 두 입장의 행간에서 묘한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혹은 자연)의 업무에 이의를 제기하는 황우석의 모습을 비추던 <킹 오브 클론>의 카메라는 이내 예배당에 나란히 앉아 기도하는 황우석과 김제언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이 각자 어떤 기도를 했을지 상상해 볼 여력도 없이 이 다큐멘터리는 다소 황급한 컷과 동시에 막을 내린다. 엔딩 크레딧이 작품의 끝을 알리기 직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황우석의 몸짓이 오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소름 끼칠 정도로 일관된 그의 태도 때문일까 혹은 다큐멘터리의 조작(편집) 때문일까. 둘 중 어느 하나의 공으로 돌리기 어려울 만큼 양측의 선전 방식은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과 매체가 서로를 발판 삼아 모종의 목적에 수렴하는 풍경. 황우석의 마지막 질문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글 함윤정 영화평론가, badasal2@ccoart.com]

 

ⓒ 넷플릭스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
King of Clones
감독
이다티야 타이
Aditya Thayi

 

출연
황우석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85분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2023.06.23

함윤정
함윤정
부산 가덕도에서 생활하며 영화와 바다에 대해 생각하고, 극장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운영하는 꿈을 꾼다. 미학을 공부하러 간 대학에서 영화를 찍은 후로 좋은 관객이 되면 나은 삶을 살게 되리란 이상한 믿음을 갖게 됐다. ‘좋은 관객’이란 무엇일까? 나의 글과 말은 늘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좋은 관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영화를 더 아끼게 되고, 지난밤 꿈에서 본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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