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생태계의 핏줄을 만져보며
'수라' 생태계의 핏줄을 만져보며
  • 이현동
  • 승인 2023.07.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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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지 못했던 여백의 이미지"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부분 대상은 황윤 감독의 <수라>(2022)이다. 7개의 경쟁작 중에서 이 영화가 수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하진 않겠지만 짐작할 수 있는 건 황윤 감독이 지속적으로 환경 문제를 피력해 왔다는 사실이다. 동물원이란 공간구조와 시스템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작별>(2001), 도로 위에 로드킬을 당하는 야생동물을 소재로 한 <어느 날 길 위에서>(2008), 공장식 축산 구조의 문제를 다뤘던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는 그녀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한다. 그녀는 자신이 녹색당 당원임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기도 했다. 동물권 보호를 소재로 한 그녀의 작품들은 그 일관성을 대변하고 있다.

<수라>의 수상 이유를 예측해 보기론 환경 보호를 향한 축적된 관심이 카메라에 유효하게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군산시에서 발생한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인해 파괴된 갯벌과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계속해서 발걸음을 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간 영화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황윤 감독은 전면에 서서 스크린 위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스스로 영화 속으로 뛰어든 그녀는 직접 수라 갯벌에서 조그마한 숨을 내쉬고 있는 생명체들을 마주하고, 다시 감독으로서 카메라에 그것들을 세심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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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에서의 시간은 연대 순서대로 온전히 조합되지 않는다. 어떨 때는 결과에서부터 원인으로 반대로 원인에서부터 결과로 이행하기도 한다. 연대 순서를 간과하고 얻는 효과라는 건 특정한 스타일도 아니고, 표현 방식도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 '잠재된 의미'를 탐사하는 데 함의가 있다. 결국,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건'이며, 특히 사건보다도 '이미지'다. 이 영화를 담고 있는 많은 이미지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구술된다. 이는 영화가 동기화하고 있는 주제를 강화하기 위한 아카이빙이다. 이미지는 서로를 불러온다. 영화 속 이미지는 생략된 시간을 불러오기도, 더 나아가 확장되어 뚜렷한 기록으로 남는다. 이미지의 여백을 삽입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첫 화면에 소리를 녹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다. 이들은 <수라>를 연출한 황윤 감독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인 오종필의 아들 오승준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도 소리를 저장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시간을 환기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수라 갯벌에 대한 의문과 문제 제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영화 초반 “수라의 시간이 쌓여갔다”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그 시간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길 바라는 소망과 함께 어떻게 시간이 쌓이는 지를 보여주기 위한 예고이다. 개인적인 일로 서울에서 군산으로 이사를 한 황윤 감독은 자신이 2006년에 겪었던 새만금 사업의 시행에 관한 트라우마를 상기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새만금 사업이 진행되기 전부터 어민 중 인연을 맺었던 기화 언니, 그에게 어디에 카메라가 있어야 할지를 알려줬던 이강길 감독은 이 영화의 배경인 군산에서 끝나지 않는 고된 싸움의 시초를 보게 한다. 또한 갯벌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삼보일배를 했던 성직자들의 고군분투는 결국 위정자들의 결정을 막지는 못했다.

곧 영화에는 갯벌을 매립하고, 세계 최대의 방조제라고 선전하는 장면이 잡힌다. 어민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투쟁하는 장면과 낙심하며 바닥에 앉아 슬픔을 토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간척사업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음을 보고한다. 시간이 흘러 '새만금 사업 때문에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어민들은 최근까지도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한다. 초반에 이러한 쇼트 나열은 혼란스러운 당시 정황을 잠시나마 가늠하게 하고, 중반이 돼서야 점차 환경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2015년에도 여전히 공사는 진행되고 있었고, 멸종위기로 지정된 검은머리갈매기와 같은 새들이 공사 현장에서 방치된 채 있었다. 생태계의 파괴는 빗물에 죽어버린 조개들을 통해서 강력한 의의를 획득한다. 오래전 죽은 조개껍데기를 만지작거리는 감독의 손가락엔 복잡한 슬픔이 묻어 있다.

 

생태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365일 바닷물을 기다렸던 게들에게도 악몽이었다. 게뿐만 아니라 갯벌에 사는 모든 생물은 무차별적으로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었던 새만금생태조사단은 매뉴얼을 만들고, 살아남은 생물들을 조사함으로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직하려 한다. 여기서 단순히 갯벌은 생태계를 이루는 군산이라는 지역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조사단은 갯벌을 살리는 것이 우주를 살리는 것이라 말한다. 2002년 마오리 족장이 인사동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장면은 단순히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단 하나의 생태계라도 파괴될 때 연속되는 문제를 동시에 인식했던 사람들의 몸부림이었다. 이 사업은 그 땅을, 그 바다를 죽음의 호수로 만드는 재앙이었다. 도요새들은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월동을 마치고 시베리아로 가는 중 군산에 있는 갯벌을 거친다. 갯벌에서 먹이를 찾아 생계를 이어가는 새들이 터전을 잃는다면 생태계 위기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순환의 멈춰버린 자연은 곧 파멸을 야기하고 말 것이다.

조사단은 간척사업의 가장 큰 허점이었던 물이 오염되는 것을 발견한다. 방조제 수질 조사를 통해 물의 상태를 환경부에 보고하고, 해수를 유통할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긍정적인 내용도 잠시 우리는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 새소리를 체크하다 비행기를 쳐다보는 승준과 마주한다. 인간의 욕심은 소리마저도 약탈하는 것일까. 미군기지가 신공항을 세우려 한다는 소식은 감독의 트라우마를 다시금 소환한다. 20년 전 대법원과 진행되었던 소송으로 넘어가 새만금간척사업의 판결에 손을 들었던 장면, 돌무더기가 갯벌에 매립되는 장면, 많은 어민의 부르짖음과 오버랩되는 공무원의 환희 어린 표정은 생태계에 무심한 시선을 복기하고 있다. 수라는 미국 땅이 아니며 각각의 동물들의 영토라는 내레이션과 신공항을 반대하는 엽서를 든 어린아이의 클로즈업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로 전가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오종필 단장과 다음 세대인 아들 오승준으로 넘어가는 과정 또한 이러한 연대를 포괄한다. 공항이 건설되지 않기 위해서 그 영역에 멸종위기 종이 있어야 했다. 승준은 포기하지 않고, 멸종 위기 2급인 속새의 소리를 녹음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의 노력과 숙고는 희망을 암시한다.

 

황윤은 영화 막바지에 말로만 전해 듣던 도요새의 비행을 보게 된다. 수많은 도요새가 하늘 위를 활공하고 그 소리는 기계의 굉음이 아니라 자연만이 낼 수 있는 웅장한 소리로 들린다. 그 아름다움이 끊기지 않길 바라는 종필과 황윤의 바램은 우리의 바람이 된다.

영화는 끝으로 부감 숏을 통해 갯벌이 살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단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한다. 마치 핏줄과 같이 구성된 갯벌의 형태는 생명의 쉼터이자 연장을 결정짓는 자궁처럼 보인다. <수라>는 이곳이 인간과 관련 있다 사실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 문제가 지엽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언한다. 특히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모범 사례로 불릴 만한 사회 윤리와 미적 탐구를 풍성하게 묘사해 냈다는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호소하지도 않는다. 황윤 감독은 시간과 공간이 빈번히 혼재되고 삽입되는 몽타주가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규칙에 제약받지 않고 뚝심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냈다.

나는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멍하니 쳐다보다가 영화에 등장했던 생명체의 숫자를 무심코 세어보았다. 총 24마리였다. 많은 생명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24마리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조사단은 그사이에 멸종되거나 터전을 잃어버린 많은 생물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여백의 이미지는 우리가 채워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라는 '비단에 놓은 자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이 영화가 지금도 어떠한 부정적인 수식어로도 표기되지 않는 '수라'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기를 소망해 본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수라
Sura: A Love Song
감독
황윤
Hwang Yoon

 

출연
황윤
오승준
정희정

 

제작|배급 스튜디오 두마·미디어나무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8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3.06.21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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