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소년이여 일상이 되어라"
[Critique] "소년이여 일상이 되어라"
  • 김경수
  • 승인 2022.10.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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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그리고 '안노'의 기나긴 레브레터

시리즈 〈에반게리온〉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문장은 인물의 대사가 아닌, OST인 〈잔혹한 천사의 테제〉의 첫 소절이다. "잔혹한 천사처럼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이 문장이 드러내듯 〈에반게리온〉은 열네 살, 이제 막 사춘기가 된 소년 이카리 신지의 성장을 다루는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기에 있는 소년이 강제로 상실과 고통 등 성장통을 경험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다루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시리즈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설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음울한 세기말 풍의 미장센, 메카물의 전통을 계승한 격렬한 전투씬, 복잡하고도 매력적인 세계관, 모에화 요소가 가득한 캐릭터 등 시리즈만의 개성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이카리 신지가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는 데에 있다.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신지가 지니는 우울과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되 그것을 갈등의 기점으로 삼아서 그를 계속 극한에 가까운 상황으로 몰고 가며, 보통 사람이 견디기 힘든 상황에도 그가 에반게리온에 타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또한, 가장 잔혹해야 하는 상황에 동요를 삽입하는 등 신지에게 가혹할 만큼의 연출을 제 개성으로 삼는다. 그만큼이나 신지에 애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셈이다.

 

영화 <에반게리온: Q>(2012)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 T-JOY

"소년이여 신화가 되라"라는 OST의 가사는 소년 이카리 신지가 에반게리온 초호기를 타고 사도로부터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보다 훨씬 큰 의미로 다가온다.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소년은 영웅으로 자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영웅으로 지목된다. 여기서부터 안노의 문제의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소년이 성장하는 교양소설이 세기말 일본에서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뉴밀레니엄을 앞둔 미지의 공포,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 사회의 혼란, 1960년대 급진 좌파 학생운동이었던 전공투 운동의 실패로 인한 진보 세력의 무력화 등 사회적인 배경이 이 작품을 둘러싸고 있다. 무엇보다도 옴진리교가 저지르는 사린가스 테러의 전조가 일본 사회 전반에 감돌던 시기에 등장했다. 사회의 불안이 가중되는 데에 비해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에너지가 소진된 시기에 〈에반게리온 TVA〉(1995-1996)가 등장했다. 일본 서브컬처 비평가 우노 츠네히로는 〈에반게리온〉을 둘러싼 이러한 사회적인 맥락을 되짚으며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가 발생한 시기와 〈에반게리온〉이 방영된 시기가 중첩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카리 신지'는 그 시기 일본의 절망감을 마주했던 안노 히데아키 본인을 투영하는 캐릭터이면서도, (물론 미디어가 만든 환상이기는 해도) 더는 자신이 소망했던 미래를 소유할 수 없다는 당시 일본 청년(더 정확히는 오타쿠)들의 정서적 불안을 투영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안노 히데아키는 이카리 신지가 자라는 과정을 무작정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에반게리온〉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제법 일상적인 일이다. 이카리 신지는 에반게리온에 억지로 타야만 하지만, 본인이 도맡아야 할 책임을 거부하려 애쓴다. 자신으로 인해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에바 파일럿들의 일이 뒤얽히기도 하며,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타인에게 느끼는 마음의 장벽은 AT필드라는 형상으로 드러나며 레이와 아스카는 각각 어머니 같은 존재와 첫사랑을 드러낸다. 일상성의 붕괴는 곧 세계의 붕괴로 드러나며, 안노의 사소설로 다루어져야 하는 사적인 불안은 사도와 세계의 존망을 두고서 결투하는 메카물로 변형되어서 드러난다. 한 개인이 세계를 얼마나 인식하느냐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로서 드러나는, 이른바 세카이계의 시초가 되었다.

<에반게리온>은 안노 히데아키의 사적 불안이 공적 불안으로 확장되면서 탄생한 시리즈인 셈이며, 팬들 사이에서 숱한 논란의 대상이었던 TVA의 엔딩은 이러한 맥락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신지가 심적 고통을 고백하자마자, 타인들이 이를 듣고서는 급작스레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며 급작스레 미장센이 스토리보드로 바뀌기 시작한다. 팬들에게 모든 것이 겨우 만화에 불과하다는 부조리를 마주하게끔 하고, 신지를 아니메 밖으로 불러낸다. 우노 츠네히로는 이를 전공투 운동 이후 세계가 진보하리라는 전망이 파탄한 뒤로 가상 세계에 숨기로 한 옴진리교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자기계발서 풍의 엔딩이라 비판했지만 동시에 반대를 뜻하기도 한다. 가상 세계를 가상에 불과하다고 폭로하며, 현실을 고통으로 가득한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서는 좌절을 견딜 수 없는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던 개인을 구출해내고자 하는 안노의 메타 비평일 수도 있다. 이는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생긴 결과이기도 하나, 어느 측면에서는 납득할 만한 결말이었다.

 

ⓒ (주)라이크콘텐츠

안노 히데아키는 사적인 고통과 공적인 고통이 교차하는 어떤 자리에서〈에반게리온〉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신극장판까지 제작하면서 시리즈를 계속 수정하고자 하는 욕망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에반게리온〉 세계관의 개연성을 고집하는 일은 되려 안노가 되려 벗어나고자 하는 가상으로의 도피로 다시 도피하는 셈이다. 〈에반게리온〉은 세계관을 계속해 부정하고, 그것을 메타-픽션으로 만들어야만 오히려 개연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개성은 완성되지 않는 데에 있는 셈이 아닐까. 안노의 사적인 영역을 존중하면 안노가 사회를 마주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4부작은 필자에게 오히려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펼쳐지는 시리즈가 아니라 안노의 연작소설로 느껴졌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2021)는 〈에반게리온 TVA〉는 물론이며,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과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되려 〈신 에반게리온: 파〉(2009)와 〈신 에반게리온: Q〉(2012)의 세계관을 이어가지만, 그마저 연결점이 흐릿하다. 〈신 에반게리온 파〉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Q〉 사이에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사건으로 인한 단절이 발생해서다. 〈신 에반게리온: 파〉에서 아야나미 레이를 구하고자 한 신지의 각성은 니어 서드 임팩트의 기폭제로 작동한다. 또한 니어 서드 임팩트로 인해서 이카리 신지와 레이, 아스카, 마리 등은 14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성장하지 않고 몸이 그대로다. 재난의 원인을 누구 하나에게 돌릴 수 없다. 차라리 우발적인 발생에 가깝다고 보는 게 더 납득하기 쉬운 상황이다.

이는 〈신 에반게리온: Q〉에서 이카리 신지를 우울감에 빠지게 한다. 더군다나 신지와 그 또래의 신체는 테츠카 오사무의 〈우주 소년 아톰〉(이후로 정형화된 신체에 갇혀서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소년이라는 클리셰를 담은 신체로 탈바꿈된다. 그들은 어른의 정신을 닮으려 애쓰나 어른으로 자라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 더는 성장할 수 없다는 아이들의 좌절감을 한층 더 깊게 만드는 것은 이카리 겐도의 정체다. 거기다 이카리 겐도가 이끄는 네르프가 사실 사도로부터 인류를 지키고자 하는 단체가 아니라 인류보완계획을 통해서 인간을 학살하고자 하는 단체로 드러나며, 그간 〈에반게리온〉에서의 설정과 어긋나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설정의 변경에는 〈에반게리온〉이 그려내는 디스토피아와 〈신 에반게리온: Q〉이후에 그려내는 디스토피아의 결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는 안노의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안노 히데아키는 〈신 에반게리온: Q〉 이후 제작한 〈신 고질라〉(2016)에서도 전후 일본의 패배의식이 만든 캐릭터인 고질라를 되살려낸다. 이는 불가항력의 재난이었던, 동시에 원전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오류 등 인재(人災)도 뒤엉켜 있는 재난이었던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삶을 드러내려는 목적에서다.

〈신 에반게리온: Q〉는 신이 되고자 인류보완계획을 실현하려는 이카리 겐도,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이카리 신지, 그를 위로하고자 하는 카오루 등 재난에 상처 입은 인간들을 그대로 드러내되, 같이 피아노를 치던 카오루의 예정된 죽음으로 잠깐의 위안마저 끔찍한 재난의 참상 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안노의 세계관은 과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팬의 분노를 사기에는 충분했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 다카포〉에서 앞선 작품에서 드러낸 설정을 수습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심각했다. 우려대로 2021년에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 다카포〉가 개봉한 뒤 팬들의 갑론을박이 일었다. 최고의 결말이냐 최악의 결말이냐를 두고 말이다. 다만, 필자가 전자의 편을 지지하고 싶은 이유는 이 영화가 그간 일본에서 등장한 대지진을 다루는 포스트-후쿠시마 애니메이션의 응답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느껴져서다.

 

ⓒ (주)라이크콘텐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 다카포〉의 플롯은 복잡하다. 카오루가 자기 대신에 DS초커를 쓰고 자폭한 뒤로 이카리 신지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에 이른다. 카오루의 죽음은 서드 임팩트를 못 막았고, 신지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식음을 전폐한다. 이카리 신지는 서드 임팩트 이후로도 살아남은 농촌 공동체로 떠나며, 거기서 벌써 성인이 되어서 제 몫을 다 하고 사는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아야나미 레이와 아스카도 거기서 신지 곁에 머무르며 공동체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아야나미 레이는 인간이었던 기억이 없는 채로 마을에 적응해나가며, 이카리 신지가 마음을 열기까지 그를 적극적으로 감싼다. 그녀는 차츰 자신이 네르프를 벗어나서 살 수 없는 복제인간라는 것을 깨달아가지만 신지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녀는 신지에게 둘의 추억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선물하고, 신지의 눈앞에서 자폭해버린다. 신지는 레이의 죽음을 계기로 이카리 겐도가 이끄는 네르프를 없애고 그가 포스 임팩트를 발동해서 인류보완계획을 실행하고자 하는 것을 막으려 빌레에 합류한다.

어느덧 빌레를 이끄는 함장이 된 미사토는 무리한 작전을 실행하다 위기에 처하고, 아스카는 죽고 만다. 이카리 신지는 이카리 겐도와 맞서려 한다. 신지는 이카리 겐도를 따라서 마이너스 우주 깊은 곳에 있는 골고다 오브젝트에 간다. 골고다 오브젝트는 겐도와 이카리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소로, 여기서 이 둘의 과거가 교차한다. 이카리 겐도의 인류보완계획은 아내의 죽음을 견디지 못했던 이카리 겐도가 그녀를 다시 만나려 하는 데에서 비롯된 실험이며, 실현되는 순간에 인류는 감정도 자의식도 없이 하나의 개체로만 살아가게 된다. 신지는 자신이 타인의 죽음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듯 겐도도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종용한다. 그때 겐도는 신지에게서 유이의 모습을 언뜻 본다. 신지는 때마침 도착한 미사토에게서 모든 상황을 끝낼 무기인 의지의 창을 건네받고 자신이 타고 있는 초호기를 창으로 찔러 모든 것을 끝내려 한다. 이때 유이가 나타나 겐도와 함께 죽기를 선택한다. 둘이 죽는 것을 보고서 신지는 에바에 흡수된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한풀이를 하고 일상으로 되돌아오며, 모든 에반게리온은 사라지고 만다.

신지는 새로운 세계에서 마리와 연인이 되어서 일상을 영유하게 된다. 새로운 세계에서 레이와 아스카, 카오루는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신지가 앉아 있는 플랫폼 너머에 서 있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의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초반에 등장하는 '마을'이다. 서드 임팩트가 생긴 이후에 농촌은 이 작품에 앞서서 동일본 대지진을 다룬 여러 애니메이션의 공간들과 닮아있다. 신카이 마코토의〈너의 이름은〉(2017)과 〈날씨의 아이〉(2019)에 나오는 시골이 그러하며, 호소다 마모루의 〈미래의 미라이〉(2019)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와 도쿄가 아득히 멀 듯이 농촌을 신화적인 공간으로 되돌리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에 비해〈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의 농촌 공동체는 일상적인 공간으로 드러난다. 그간의 대지진 영화들은 도시와 시골 공간을 동떨어진 것으로 나누고 둘을 봉합하려고 시도하는 데 비해서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시골을 유토피아로 내세운다. 이전의 영화들이 해내려는 마술적인 연결은〈너의 이름은〉에서 잘 드러난다. 각각 농촌과 도시에 있는 남녀가 하나의 육체로 이어져 둘이 하나의 육체를 공유하고 있다는 설정을 만든다. 이 설정은 운석이 떨어진 후에 재난이 발생한 농촌과 도시 사이에 둘을 이어져야만 하는 연결고리를 만든다. 무스비로 불리는 이 연결고리는 둘이 같은 국가에 있다는 사실을, 둘이 같은 육체를 공유하고 있다는 상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설정은 일본인들이 대지진이라는 재난을 맞닥트려서 서로 연대하고 애도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다. 이때 이 둘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게끔 되며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로 이어진다.

반면 안노 히데아키는 다른 길을 택한다. 도시가 사라져 버린 세계를 전제로 두며, 농촌 공동체에서 신지와 레이, 아스카가 일상을 학습하게끔 한다. 명령 없이 산 레이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신지는 공동체의 의미를 배워나간다. 거기서는 모두의 노동과 삶이 존중받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자연과 사회주의가 어우러지는 제 3 마을은 이카리 겐도가 세우려 하는 감정도 자의식도 없어져서 모두가 평온한 유토피아와 정반대다. 사람들이 "니어 서드 임팩트 이후에도 나쁜 일만 있던 것은 아니라"면서 애써 상처를 털어내며 재난을 견디는 모습은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선의를 지니고 안녕을 내일 다시 만나기 위한 주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로 드러나는 듯했다. 안노가 이 마을에 세 아이를 살게 하는 것은 에반게리온에 억지로 타야만 하는 과거의 절망적인 상황과는 정반대다. 신카이 마코토가 무스비라는 끈으로 이어내야 했던 타인과의 연대는 이 영화에서 초자연적인 설정 없이도 가능해진다. 안노는 재난으로 망가져 버린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는 보통 사람의 삶을 예찬하며, 서로를 선의로 대하는 세계가 아이들이 자라야 하는 터전이라고 이야기한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여행한 뒤에야 〈에반게리온〉의 세계를 신지가 다시금 경험하게끔 한다. 변증법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여정은 형식 그 자체로 진보를 긍정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동일본 대지진은 물론 어떠한 재난이 생겨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느껴진다.

 

ⓒ (주)라이크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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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의 또 다른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이카리 겐도가 에반게리온 이매지너리의 탄생을 설명할 때이다. 이카리 겐도는 에반게리온 이매지너리가 허구와 현실을 똑같이 믿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존재라 이야기한다. 이같은 설명은 앞서 이야기했던 옴진리교를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허구와 현실을 똑같은 선상에 두는 그들은 인간을 동물적인 인간과 신적 인간으로 나누었고, 후자로 초월해야만 인간종을 교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이카리 겐도가 인류보완계획을 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안노는 겐도를 통해서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고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자 타인을 죽이기에 이르렀던 옴진리교와 오컬티즘에 빠져 있던 기성세대를 명백히 지시한다. 겐도는 신지를 압도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겐도와 신지가 대립하는 순간 특촬물처럼 연출되는 몽타주 씬들은 이 둘을 마치 천사와 악마처럼 대비되는 존재로 그려내지만, 힘이 압도적으로 센 것은 희망의 창을 쥔 신지 아니라 절망의 창을 쥔 겐도 쪽이다. 안노는 이때 신지가 겐도를 죽이기보다는 겐도와 신지가 대화하게끔 한다. 카지 료지의 대사에 드러나듯 "다독여주며 자리를 비켜달라고 위로해야 주어야 한다"라는 선택지를 제시함으로 말이다. 신지가 그러했듯 겐도도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며 둘을 동시에 다독인다.

안노는 구세대가 신세대 앞에서 참회하고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그린다. 겐도는 신지를 통해서 유이를 애도하고, 자리를 순순히 비켜준다. 무작정 아버지가 악의 화신으로만 그려지던 원작에 비해서 아버지를 용서하기까지 한다. 이는 신지가 아버지와 같은 절망을 경험했음에도 어른으로 자라나서이다. 이처럼 한층 유해진 태도는 신지뿐만이 아니라 안노의 성장을 보는 듯해서 시리즈 팬의 입장으로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의 결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만 꺼내던 신지는 어느덧 자라나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유년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아스카는 신지의 기억에서 14살이 아니라 28살이 되어서 죽는다. 이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결말과 똑같은 미장센으로 연출해 거기서 어른으로 자라나지 못한 애어른 아스카를 자라게 한다. 마찬가지로 레이를 떠나보낼 때도 과거의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푸티지들을 써서 그녀를 추억의 저편으로 보낸다. 카오루까지 애도하고 난 뒤에야 신지는 에반게리온을 떠나보내고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신지는 그를 구하러 온 마리와 이어지게 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떠나보내고, 첫사랑과는 이루어지지 않고 평생 갈 줄 안 친구와는 헤어진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난 뒤에야 신지는 어엿하고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한다. 신지의 성장담은 에반게리온 세계관에서는 흔한 것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는 흔하디흔하다.

안노 히데아키는 신지를 완전히 일상으로 되돌려 보내며 미래를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세대에게 일상이라는 희망을 주려 한다. 리츠코의 대사대로 '절망의 리셋'이 아니라 '희망의 계속'으로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구원하려 한다. 비록 영화에서 연출하는 여성의 신체를 관음하는 듯한 숏이 시리즈의 팬이 아닌 이에게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 〈에반게리온〉이 21세기의 『데미안』이라 생각하기에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시리즈와 구극장판, 신극장판을 정주행한 뒤에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를 마주할 때의 감동은 구구절절 이야기해도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나조차 한때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3.0:다카포〉에 나오는 신지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며, 비슷한 성장통을 경험했기에 이 작품에 지니는 애정은 완전히 사적일 수밖에 없다. 이 기나긴 러브레터는 안노가 사적인 감정을 신지에게 투영하듯이 쓰인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는 소년이 신화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눈물로 누구도 구할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고 "안녕, 나의 모든 에반게리온"이라 말하며 힘든 시기의 추억을 되새기고, 타인과 부대끼면서 일상을 살아나가기를 바라며, 철없는 저지르는 상대방과도 대화하고 감당할 줄 아는 조금은 선의를 지닌 보통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안노가 지나쳐야만 했을 방황들, 그리고 그가 돌아 돌아서 겨우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은 수고로워서 눈물이 흘렀다. 마지막에 버드아이즈 숏으로 비추는 우베신카와역의 풍경과 히타다 우카루의 OST 〈One last Kiss〉가 어우러지면서 소년이 마주하는 세상이 앞으로 아름다우리라는 것을 감히 지레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글 김경수, rohmereric123@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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