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 우상의 사회적 죽음과 이후의 일상
'성덕' 우상의 사회적 죽음과 이후의 일상
  • 이지영
  • 승인 2022.09.2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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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물러난 카메라, 그 자리에 남은 이들의 얼굴을 포착하다"
ⓒ 오드AUD

2019년 3월, 버닝썬 사태에 연루된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물 제작 및 유포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 중학생 시절부터 정준영의 팬으로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성공한 덕후' 소위 '성덕'이었던 감독 오세연은 성범죄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팬카페에 남아 성 범죄자를 옹호하는 일부 팬들을 목격하고 의문을 느낀다. 신뢰하고 애정했던 공인이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직접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지만 양쪽의 수치를 동시에 느낄 수 밖에 없는 팬들은 과거의 기억을 통째로 부정할 수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자칫하다가는 '우리 오빠가 그랬을 리 없다' 혹은 '내가 잘못 보았을 리 없다'고 믿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과거와는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가?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몰랐기 때문에 무고하고, 결백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죄책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떠난 이들은 남은 이들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 안고 다음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다큐멘터리 <성덕>은 한 가지 물음에서 파생된 질문과 성찰들을, 덕질에 고충을 겪고 있는 모든 덕후들을 향한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와 함께 담아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재학 중인 오세연 감독의 솔직하고 재기 넘치는 첫 데뷔작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매진 행렬에 이어, 관객 시사회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오덕(오세연 덕후)'라는 새로운 팬덤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가 객석의 이토록 뜨거운 반응과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밀레니얼 세대 이후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특히 여성) 10대를 타겟으로 한 K-pop 특유의 아이돌 문화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였을 것이고, 살면서 한번쯤은 신뢰하고 지지했던 공인의 추락으로 배신감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며, 지금도 어떤 대상을 '덕질하는 중'일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오드AUD

<성덕>은 '덕질'이라는 독특한 감정이나 행동 양태의 한 생애를 담은 일대기이다. 2022년인 지금 '덕질하다'라는 단어는, 아이돌처럼 멀리서 추앙하는 대상 뿐 아니라 '현생'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에게 깊이 몰입하고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로, 어쩌면 사랑의 대체어로도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현실 세계의 사랑이 주로 개인과 개인의 일대일의 관계라면, 스타와 팬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다대일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유사연애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그리고 팬들로 하여금 스타가 자신을 군중이 아닌 일대일로 자신을 인지하고, 특별한 팬심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강렬하고도 중독적인 욕망을 갖도록 한다. 오세연 감독이 과거 '구 오빠' 정준영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복을 입고 팬 사인회에 참석했던 심리나, 각 소속사별 아이돌과 일대일 채팅을 하는(실제론 다대일) 포맷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B어플의 성공, 그리고 팬픽과 같이 2차 창작을 하는 팬들의 모습은 이를 뒷받침한다.

스타의 인지와 인정을 바라는 팬들의 욕망은 K-POP 산업의 굿즈 비즈니스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상품의 구매력은 곧 아이돌의 실물을 만날 확률로 직결되고, 소장품의 컬렉션을 팬이 스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직접적인 애정의 척도로 삼기 때문이다. 한정판 굿즈를 소장할 수록, 아이돌이 지금-여기 있었다는 증거인 사인본을 들고 있을 수록 충실한 팬이란 증거가 된다. 이러한 굿즈 경제는 은연 중에 가치 사슬의 가장 말단에 있는 최종 소비자에게조차, 소비 대상의 모든 행보를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인식을 심는다. 소비 대상이 성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자신이 지불한 돈이 결과적으로 같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즉 사회악에 기여했다는 공모자로서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 오드AUD

그렇기 때문에 '굿즈 장례식' 씬에서 이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추억에 잠기는 감독과 조감독의 '웃픈' 모습은 그 가수를 대하는 것 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어디 보이기 부끄럽고 버려야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과거에 들인 노력이나 비용, 순수하게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범죄자에게는 전자발찌가 아니라 '전자목찌'를 채워야 한다며 희번득한 분노의 표정을 짓기도 하고, 그래도 죄값을 치른 이후엔 죽지 말고 숨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자신에게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범죄자를 좋아했다는 자기 혐오와, 순수한 마음으로 덕질했던 자신에 대한 자기변호 기제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바라보던 존재가 갑자기 증발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허공이 아닌 곁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얼굴 표정을 바라본다. 세상을 보는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스타에게 맞추고, 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거나 간과했던 시절을 고백하며, 이제는 어떤 '오빠'를 위해서도 아닌 독립 창작자로 거듭난 오세연의 카메라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대포 카메라를 든 예전의 자신을 닮은 팬들의 뒷모습을 기록한다. 나아가 이런 사태를 되물림 하며 여전히 불편한 진실들을 은폐하는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자 한다.

이때 감독은 세대론으로 확장하여 거시적으로 조망하기 보다는 한때 가수 조민기의 팬이었던 자신의 쾌활한 어머니를 인터뷰하며 세대 간 전승되는 '실패한 덕후'의 운명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기를 택한다. 과거 정준영을 덕질하던 어린시절의 자신을 바라보던 부모의 관점과 시선을 알게 되면서, 과거와 어떻게 화해할 지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최초로 정준영의 범죄의혹 보도기사를 써서 무차별 공격을 받았던 기자를 찾아가서 전체 팬들을 대신해 사과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은 2차 피해자와 연대를 회복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겉보기에 전혀 접점이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 집회와 아이돌 팬들의 행동 양식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맹목적인 우상화의 덫에 빠진 팬덤에 대한 이해의 차원을 한층 넓힌다.

<성덕>은, 자신의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바친 우상의 갑작스러운 사회적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20대 중반 여성 창작자의 애도의 서사이다. 우상의 추락과 사회적 수명의 다함은 자신을 오랜 세월 지탱하고 성장시킨 한 세계, 이익창출과 마케팅을 위한 이미지로 쌓아 올린 한 세계의 종말을 나타낸다. 영화는 아직까지도 부인과 분노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애도를 온전히 다 마치지 못한, 실패할 준비가 덜 된 덕후들의 마음도 함께 헤아리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타협과 수용 단계를 거치며, 인간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회복하기까지 고군분투하는 실패한 덕후들의 지지 않는 마음을 긍정한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오드AUD

성덕
Fanatic
감독
오세연

 

출연
오세연

 

제작 해랑사
배급 오드AUD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85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9.28

이지영
이지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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