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영화 만드는 일을 '덕질'할 수 있을까"
[Interview] "영화 만드는 일을 '덕질'할 수 있을까"
  • 이지영
  • 승인 2022.10.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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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덕> 오세연 감독

오세연 감독에게 '덕질'이란, 나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만들기를 덕질하는 일이 가능할까. 감독은 그 힘들었던 고군분투의 과정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성덕>만큼은 정말 덕질하면서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와이드 앵글 경쟁 부문의 최대 화제작이며, 이후 모든 영화제 마다 '티켓팅' 매진 행렬이 이어질 정도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오세연 감독의 <성덕>이 9월 28일 극장 개봉하며 관객들을 만났다. 이제 1만 영화가 되었고, 제25회 우디네극동영화제, 제7회 런던 아시아영화제에도 초청받은, 이 작지만 강한 다큐멘터리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 오드AUD

개개인의 서사가 모여 영화가 되어가는 여정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그날'이 오기 전, 누군가의 골수팬이기 이전에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오세연은 무슨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가 궁금했다. 한예종 영화과 과정에 없는 다큐멘터리를 온몸으로 부딪혀 스스로 터득해가야 했을 텐데,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성덕>이 나올 수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어떻게 나 자신과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가, 개개인의 서사가 모여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실제로 그림자로 남아있는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는 일만큼이나, 필름메이킹에 이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성덕>은 이 여정을 담은 기행문이다.

세상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감독은, <성덕>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어떤 고마운 팬들보다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에 어느 모진 악플러보다도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라고. 오세연의 작업실에서, 창작자 오세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던 당시를 함께 회고했다. 결국에는 긴 심층 인터뷰가 되었지만, 유머 감각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이지영

1만 관객을 돌파한 것을 축하한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올해 시사회의 성공적인 반응에 이어 극장 개봉작으로 관객들을 만난 소감은 어떠한가.

오세연

부산국제영화제 이후에 1년여 동안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마다 영화가 이슈가 되다 보니, 관객분들이 객석을 가득 메워 주시는 편이었다. 하지만, 개봉을 하고 나니 또 느낌이 색달랐다.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은 매번 즐거운 경험이었고 힘이 되는 말씀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영화제는 특수한 행사 같은 성격이 있어서 어떤 마케팅 수단 없이도 영화를 순수하게 보고 싶어서 오는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우호적인 반응이 보장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개봉했을 때는 객석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니까 더 긴장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더 큰 응원과 사랑을 받았다. 사실은 1만 관객이 큰 목표이기도 했는데 그것을 이룰 수 있어서 정말 기쁘기도 했다. 개봉 후에 재미있던 점은, GV행사 때 오픈 채팅을 열어서 질문을 받는데, 관객들이 그 자체를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GV(관객과의 대화)가 끝났는데도 그 방에 남아 관객들끼리 수다를 떤다든가, 기사를 공유하거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카톡방의 인원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신기했다. 처음 개설할 때는 정원이 100명이었는데 계속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원을 늘리기도 했다. 대화를 할 때도 친한 친구 대하듯 대해주는 것 같다.

ⓒ 오드AUD

이지영

GV 카톡방이 이렇게 활성화되는 경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

오세연

영화제 때는 아무래도 혼자서 모더레이터 분들과 단독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개봉 후에는 영화 인터뷰이들과 GV를 여러 번 진행했다. 그래서 감독 겸 모더레이터로 GV를 했는데 그런 경험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영화에 출연한 친구들이랑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는 것도 흥미로웠고, 일을 하고 있지만 놀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지영

영화 속 인터뷰의 연장선상인 것 같다. 

<성덕> 시사회에서,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즐겁고 특별했다. 시사회가 아닌 ‘팬싸인회’라는 덕후 맞춤 용어부터, 성심을 다한 팬 서비스로 ‘오덕(오세연 덕후)’를 양산하고 있다. <성덕>이란 영화는 영화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고, 감독과의 팬미팅 후에 집에 갈 때에야 비로소 끝난 느낌이랄까. 관객들에게 어떤 총체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나.

오세연

관객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의도는 애초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덕>은 덕질에 대한, 그리고 팬들에 대한 영화이다 보니, 다른 독립영화에서 주 관객층이 시네필로 인식이 된다면 <성덕>의 관객은 팬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크다. 그래서 팬 경험 자체를 영화의 마케팅으로 접목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나눴다. 포스터를 공개할 때도 보통, 티저 포스터와 메인 포스터,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우리만의 용어로 '데뷔 포스터'라고 불렀고, 감독의 입봉작을 '오세연의 핫데뷔' 이런 식의 마케팅을 많이 시도해 주신 것 같다. 실제로도 반응이 좋았고 나 자신도 재미있기도 했다.

 

오세연 감독 ⓒ 오드AUD

이지영

정준영 사건 이전에, 한예종 영화과에 진학하여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오세연은 어떤 영화를 찍고 싶었는지가 궁금하다.

오세연

사실 영화감독의 꿈은 오래 가지고 있었지만, <성덕>이 첫 영화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전에는 드라마적인 극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지만, 영화는 말이 없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고, 조용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실험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고 만들어보고 싶었다. 여러가지 하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기본적으로는 말이 별로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

이지영

하지만 <성덕>은 굉장히 말이 많은 영화가 아닌가. 아이러니하다.

오세연

그렇다. 영화 만드는 과정에서 그 괴리가 느껴져서 많이 힘들었다. 나는 애초에 웃긴 영화를 만들게 될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 심지어 코미디 영화도 거의 안 보는 편이다. 그리고 대사가 적은, 말 없는 영화가 멋지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고 나니, 사실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도 그렇게 말이 없지는 않는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울림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영화 속에도 유머감각을 다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에서도 꽤 많은 말들이 나온다. 홍상수의 영화도 좋아하는데, 말 그 자체이지 않나 (웃음)

영화 속 내레이션도 특별히 기능이 없으면 굳이 쓰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성덕>을 찍으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하기 싫어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다는 괴리감이 들었지만, 나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 영화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은 것 같다.

이지영

앞서 필자가 쓴 글(<'성덕' 우상의 사회적 죽음과 이후의 일상>)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성덕>은 '덕질'의 의미나, 그 안의 내생적인 원리를 뜯어보게 해주었다. 감독 개인에게 덕질의 의미, 그리고 이 시대의 덕질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오세연

내가 생각할 때, 덕질은 나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덕질할 때는 거울을 보는 횟수보다 휴대폰 화면을 보는 횟수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내 얼굴보다는 그 사람의 얼굴을 훨씬 많이 보면서 살아가고, 그러면서 행복을 느끼니까. 그것이 나한테는 덕질의 큰 의미이다.

이 시대의 덕질은 어떻게 보면, 유행성의 시대라고 해야 할까. 많은 것들이 유행으로 오고 가는 것 같다. 물론 누구 한 명을 오랫동안 좋아하는 덕질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위 '핫하다' 싶은 사람들을 누구나 좋아하고 그들이 활동을 마치고 들어가면 다른 사람에게 몰려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경향들이 보이는 것 같다. 내 기준에서는 그것이 과연 덕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가 생각할 때 덕질은 일정량 이상의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볼 때 유행성이라도 돈을 쓰기는 쓴다. 그것도 좀 신기하다. 나에게 덕질은 아주 진득하고 깊이 있는 것인데, 요즘은 유행성이 되어가는 그런 느낌도 든다.

이지영

왜 이런 유행성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나.

오세연

사람들이 재미와 자극을 계속 찾는 시기인 것 같다. 덕질의 공백기를 못 기다리는 것 역시도, 일상의 행동 패턴이랑 겹쳐진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십여 분의 시간 동안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많다. 현대인들은 가만히, 쉬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그렇게도 한데, 화장실에서도 무조건 무엇을 봐야 하는 것 같다.

이지영

덕질할 때는 거울보다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더 많이 본다고 했는데, 아이돌을 생각할 때는 내가 닮고 싶은 이미지도 있지만, 나랑 닮은 구석을 좋아하는 부분은 없었나.

오세연

내 경우엔 닮아서 좋아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닮아간 것 같다. 좋아하면 닮고 싶지 않은가. 물론 그 와중에 어떤 비슷한 지점이 있어서 좋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정준영)을 처음 좋아할 때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스스로 표현하는 법도 잘 모르고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재미있는 친구이다가도 그다음에는 나 자신을 모르겠고, 공부도 재미있는지 모르겠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때, 그 사람을 보고 자유로워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고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끌림을 느꼈을 수도 있고.

 

ⓒ 오드AUD

이지영

<성덕>에는 우연적이되 진실된 요소가 주는 매력과 감독의 신선한 연출과 아이디어에서 오는 매력이 공존한다. 객석의 반응이 뜨거웠던 요거트 막걸리 씬처럼 우연이지만 사실적이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감탄스러운 점이 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성덕사'에 가서 친구를 인터뷰 한 것이나, 굿즈 장례식 같은 경우는 연출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이러한 요소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스토리로 만드는 작업은 어떠했나.

오세연

사실 그 연결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영화를 만들 때,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는 기획하고 구성하는 그런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그 시간을 너무 적게 가졌다. 급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온갖 실수와 우여곡절을 거쳐서 작품을 완성했다. 프리-프로덕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지 못했고,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 바로 한두 달 있다가 일단 찍게 된 것이다. 이후에 시간이 조금 나서 여러 제작 지원 사업을 준비하면서 심사를 위한 기획안을 만들었는데 실제 영화를 만들 때 쓰이는 계획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고 이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것 같다.

촬영 전에 큰 그림을 그리고 가기보다는 우선 찍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찍고, 찍을 때마다 촬영 계획서를 썼다. 일시, 시간, 장비, 인터뷰, 질문 같은 것도 있지만 내가 이것을 왜 찍어야 하는지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전 스케치 겸, 내레이션으로 쓸 만한 것들, 가기 전의 마음에 대해서 쓰기도 했다. 조금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그것들을 다 붙이는 작업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이 굉장히 내게 힘들었기 때문에 거의 2~3달 동안 슬럼프 시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가기도 했다. 매일 영화를 생각하지만, 영화 구성에서 좀 부족한 것 같고 촬영분도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초반 촬영분은 카메라가 흔들리고, 후반에는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것처럼 2년 반동안의 변화도 있었다. 이것이 한데 모여 영화가 된다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그런 고민의 시간이 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이지영

그렇다면 슬럼프를 극복한 계기가 있었나.

오세연

영화 만들기가 어떻게 보면 주먹밥 만들기와 비슷하다. '이 주먹밥을 어떻게 뭉칠지' 고민하던 시기에 조연출을 해준 친구가 해줬던 말이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가 기행문 같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한 말이 있다.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날짜순이나 시간 순서대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어떤 편집이 이루어지고,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서 전체 여행의 어떤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기행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인터뷰한 순서나 일어난 시간 순으로 붙일 필요도 없지 않겠나. 친구의 이런 말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사람이 실제로 겪은 일의 순서와 별개로, 나에게 일어난 말과 사건의 타임라인으로 다시 재구성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인터뷰도 더 교차적으로 편집이 되었고, 중간중간에는 이동도 보여주게 되었다. 그리고 재판처럼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시간순으로 배치를 했다.

이지영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온 것인가.

중간에 재판이라는 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정준영이 검찰에 송치되었을 때, 법원 바깥의 풍경들을 묘사하는 장면이 흥미로웠고 법정 내부의 장면이 더욱 궁금해졌다. 어찌 보면 가장 극적일 수 있는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묘사를 생략한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나.

오세연

일단은 법정 내부를 촬영하고 녹음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그랬다. 사실, 재판을 갔다 와서 마음이 많이 안 좋았었다. 영화에는 재판에 입장하기 직전의 상황들은 영화에 담기지만, 그 안에서의 일은 공백이 되고 그 뒤에 내가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안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기보다는 거기에서 나온 직후에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심경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장면에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재판이 끝나니까 당시에 3~4시 이렇게 식사시간이 지나 있었는데 법원 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물을 받아먹는데 식사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온수가 아닌 찬물이 나온 것이다. 그 라면을 자세히 보면 엄청 딱딱해 보인다. 그래서 그걸 씹어 먹는데 너무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왜 다 이렇게 됐을까, 생각도 들고.

 

ⓒ 오드AUD

이지영

미디어에 비치는 우상의 가공된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있다. 사소한 질문이지만,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정준영의 초상은 어떻게 보관하고 있나. 다락방에 있는 굿즈들과 함께 보관되고 있는지.

오세연

굿즈들은 부산 집에 있고 이 그림은 서울 집에 있다. 굿즈들은 사실 촬영 이후에 한 번도 열어본 적 없기도 하고 굿즈를 촬영한 것은 촬영 초반이었다. 그림은 작년에 영화 편집을 하던 도중에 그렸다. 영화에서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팬이 스타를 대할 때 이미지에서 환상을 가진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그 그림을 그려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생 라이브로 한 번에 그린 것이고 포스터에도 올라가게 되었다.

이지영

그렇다면 이제 이미지의 환영에서 벗어나 감독 스스로 카메라를 들게 되었는데, 영화를 통해 좀 더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을 것 같다.

오세연

솔직히 말해, 나는 다큐멘터리를 공부해 본 적은 거의 없지만 이 장르를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전공하고 있는 학과는 영화학과인데 다큐멘터리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단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주변에서도 방송 영상과에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하니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전과하는 거냐고, 자퇴하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고민이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찍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실인가, 과연 진실을 촬영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네모난 프레임 안에, 프레이밍을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진실이든 사실이든, 있는 그대로의 일부를 일정 부분 회수하는 것 아니겠나. 세상은 네모난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100% 순수한 어떤 것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출과 의도가 분명히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성덕>도 그런 영화다.

이지영

이것은 다큐가 가져야 하는 윤리와도 밀접할 텐데, 어떤 씬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감독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었나.

오세연

어떤 원칙을 세우지는 않았다. 인터뷰의 양이 워낙 방대했고, 한 사람당 2~3시간 씩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인터뷰이들이 각각의 캐릭터라고 생각하려고 한 것 같다. 누군가는 일관적으로 화만 낼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자기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이 혼란스럽게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그런 캐릭터를 토대로 그 사람이 했던 말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하려 했다. 빼려고 노력한 것이 있다면, 너무 과한 욕설이 아닐까. 이 영화가 좀 과격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은 평소에 욕을 잘 안 하지 않나?

이지영

나도 가끔은 할 때가 있다. (웃음)

오세연

나도 지금은 그나마 사회인이 되어서 덜 하는 편이다. 그런데 친구들과 너무 편하고 가까운 관계다 보니, 카메라가 있음에도 나랑 이야기할 때면 마치 추임새처럼, 띄어쓰기 한번마다 욕을 넣기도 했다. 그런 부분에서 본인들도 좀 부담스러워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지영

그렇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본인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한 것도 감독의 역량인 것 같다.

오세연

나 또한 굉장히 신기하다.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이것은 장식일 뿐이고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인터뷰 내내 많이 했다. 그래서 인터뷰이도 그렇게 임해준 게 아닐까 싶다. 유독 카메라를 아주 의식하는 인터뷰이도 있었다.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만큼 '잘해보세요'라고 말하는데 나도 깜짝 놀랐다.

 

ⓒ 오드AUD

이지영

<성덕>에는 분명 사회 고발적인 메시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영화에서 심리 분석적인 측면이 우세하다고 느꼈다. 특히 직접적인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모호한 지대에 있는 1020 세대 여성들이 느끼는 혼란, 양가적인 감정, 수치심, 분노, 상실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심리를 담아내었다. 이것은 무엇보다, 감독 스스로 당사자성이 있었기 때문에 내릴 수 있었던 선택이었을까.

오세연

영화가 팬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처음 기획할 때 나 자신도 그런 상처를 받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좀 더 큰 바람은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서였다. 어떻게 보면 그냥 범죄자일 뿐인데 그 사람을 여전히 지지하는, 영원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릇된 우상화라고 할까. 보통 기획 단계에서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한국 현대사회의 우상화의 역사' 이런 생각을 해볼 정도로 우상화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 촬영에 들어가자, 인터뷰를 가장 먼저 시작하기도 했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다 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해야 되는 이야기는 결국 이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 큰 주제를 다룰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이 영화로 해야 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릇된 우상화의 사례 중, 연예인 팬덤뿐 아니라 정치적인 팬덤도 있는데, 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어느 정도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 상처받은 마음을 좀더 얘기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까지 한 적이 없었고, 팬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림자처럼 치부가 됐다. 그리고 '팬덤'이라고 해서 집단적인 성향으로 묘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 개개인의 얼굴들이나 목소리를 보여주는 것이 의미 있겠다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인 것에 더 집중했다.

이지영

그릇된 우상화라는 공통분모로 연예인 팬덤과 정치적인 팬덤을 연상시킨 것은, 몰이해와 무관심 속에 방치된 집단에 대한 이해의 반경을 한 차원 더 넓히고자 한 이유 때문인가.

오세연

이해의 반경을 넓히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우상화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팬들을 볼 때 정치적인 팬덤이 연상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 두 집단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고민이 많이 되었다. 직관적으로 두 집단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것을 본 사람이 나와 비슷하게 느꼈다면 성공한 것이고. 또 어떻게 보면, 남아있는 팬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그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지만, 태극기 집회는 매주 토요일마다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실은 잔존하는 팬들을 만나기 전에 태극기 집회를 먼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서로 비슷한 마음일 수 있으니까.

 

ⓒ 오드AUD

이지영

일기를 통해 박효실 기자의 존재를 기억해내고, 그와의 대담에서 다시 박사모로 연결되는 꼬리를 무는 구성이 흥미롭다.

오세연

아까도 설명하였듯이, 이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촬영 순서도 편집 순서와 전혀 무관하다. 사실 태극기 집회는 박효실 기자님을 만나기 1년 전에 촬영한 것이고, 편집할 때 그렇게 구성을 한 것이다. 기자님을 뵈었는데 같은 생각을 말씀하시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영화에서 연결이 그렇게 된 것이지, 기자님의 말씀을 따라서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이지영

박효실 기자를 찾아갈 때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데, 지금은 같이 공식석상에도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관계의 진전이 있었나.

오세연

기자님을 처음 알았을 때는 고등학생이어서, 오빠를 공격하는 무서운 기자님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분은 존재조차 모르는 나라는 사람이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일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사과는 남을 위한 것인데, 마치 내 마음 편해지자고 사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것들이 컸기 때문에 연락을 거의 1년 동안 고민하면서 못 드렸다. 그러다 어떤 시점에 가서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한다. 뭔가를 바라지 말고 그냥 연락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이 영화를 만들 때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다. 팬들도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팬이었기 때문에 가해를 한 대상 중 하나가 기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만나 뵙고 싶었고, 구구절절한 4천 자 정도 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 그 분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너무도 흔쾌하게 도와줄 것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씀하셨다. 인터뷰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부분이 컸고 그 뒤로는 여전히 내게 진짜 좋은 어른, 멋진 사람 이렇게 남아 있다. 영화 개봉 전에도 둘이서 놀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런 존재가 되었다. 사실 기자님을 만난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변곡점이 됐기 때문에, 고마운 대상인데 기자님도 나에게 이런 인생의 한 챕터를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항상 말씀해 주신다. 그런 아름다운 관계이다.

이지영

영화에서 '구오빠'를 어른의 롤모델로 삼았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대상은 잃었지만 새로운 더 좋은 어른, 그런 관계를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10대 시절의 일기를 읽는 장면에서는 솔직하고 대담하게 과거와 대면하고, 자기반성에서 오는 사유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과거와 화해해 가는 과정을 그렸는데, 10대 시절, 그리고 촬영 중이던 당시 자신을, 지금 한층 성장한 감독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오세연

영화 촬영 초반에 기획하고, 촬영도 핸드폰으로 한 두 번 정도밖에 안 했을 때 제작 지원사업 때문에 영화에 대해 피칭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심사위원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난생처음으로, 앞으로 만들 예정인 영화를 소개하는 낯선 자리였다. 당시 심사위원 한 분이 "영화를 덕질하듯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무슨 소리인가, 솔직히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영화를 만든 모든 시간이 아름답고 행복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힘든 점도 너무 많았고, 2년 반이면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지나서 보니, 그럼에도 즐겁고 재밌게 했던 것 같다. 결국 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내 인생을 무기 삼아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고, 이렇게 살아서 만들어진 영화이니까. 내 삶과 영화 만들기를 분리할 수 없어서 그 점이 힘들기는 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재밌게 만들었던 것 같다. 친구들도 많이 도와주어서 고마웠다.

오세연 감독 ⓒ 오드AUD

이지영

인터뷰 초반에 '덕질이란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라고 했는데, 영화 만들기도 덕질이 가능한 것일까.

오세연

솔직히 앞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은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성덕>이 사람들한테 어떤 평가를 받든 상관없이 영화를 생각하면 굉장히 애틋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고 마음이 힘들기도 했지만, 처음이었고, 하고 싶어서 찍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영화 만드는 외의 제3의 내가 없었다. 매일 쓰고 편집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영화를 찍고 있다는 상태가 항상 존재했으며, 그것이 내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영화 만드는 시절도 덕질하듯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 외의 나 자신이 10%도 안 될 만큼 덕질하듯 영화에 매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해 주고, 극장에서 5~6번씩 보시는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지만,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나고, 정말 심한 악플러들도 있지만, "죄송하다. 제가 더 싫어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지영

종결부에서는 그 모든 시련을 무릅쓰고 다시 덕질을 시작하는 덕후들의 의지를 그렸고, 주인공인 감독 자신도 다시 덕질을 할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똑같은 상처, 똑같은 일들이 다시 반복되기를 우리 모두 바라지 않을 것이다. 덕질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성덕>이라는 영화가 앞으로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인가.

오세연

사실, 이 영화로 사람들이 무언가를 깨닫고 영향을 주고 그런 것은 전혀 없다.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없다. 나는 교훈을 주거나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뭔가를 생각한다면 각자 나름의 것이긴 하겠지만, 뭔가를 계속 좋아하셨으면 하는 마음인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너무 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게 된 이상, 100% 신뢰하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갖기가 어렵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안 좋아하고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마음 자체를 부정하지 말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지영

지금은 <성덕>일정으로 바쁘겠지만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 궁금해진다. 앞으로의 계획들이 있는지.

오세연

우선 11월 초에는 『성덕 일기』라는 책이 나온다. 영화 홍보가 끝나갈 무렵에는 작가로서 활동이 다시 시작될 것 같다. 나는 글 쓰고, 말하고, 뭔가를 찍고, 편집하고 이런 것들을 정말 좋아해서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다. 그것이 영화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리고 지금 영화를 전공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다큐만 할 거냐, 극영화는 안 할 거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왜 그 둘을 구분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당분간은 극영화, 드라마, 또 단편 영화 이런 것들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다큐멘터리는 항상 하고 싶지만 당장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다. 그래서 일단 내년에 학교 때문에 단편 영화를 찍어야 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요즘은 여행이 너무 가고 싶다. 혼자 멀리, 여행 가서 하루키처럼 글을 쓰고 싶다.

[인터뷰 이지영, karenine@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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