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열정'은 미루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 '열정'은 미루어진다
  • 선민혁
  • 승인 2021.12.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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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세계의 시작, 그 이상의 이야기"

하마구치 류스케에 쏟아지는 관심이 뜨겁다. 절제된 언어로 인간 내면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도 하는 그의 영화는 스토리 라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이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첫 장편 연출작 <열정>에서도 그만의 영화적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모인 친구들, 이들이 품은 비밀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 'El Secreto'라고 적힌 식당 간판을 비추는 카메라는, 이 영화의 주제가 명확하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외도를 하는 인물들, 진실게임이라는 소재 등은 자연스럽게 '타인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 영화를 읽게 만든다. 또한 자신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신념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밀을 가진 타인과 극 중 카호(카와이 아오바)의 대사처럼 '몸과 마음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자신, 즉 '한 인간을 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 영화를 읽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열정>을 '하마구치 류스케 세계의 시작'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비밀과 진실에 대한 시선이 <열정>에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라는 주제적 일관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열정'에 대해 영화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사전은 열정의 의미를 '무언가에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영화 제목에서의 열정은 합리적 판단을 거치지 않고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으로써, '낭만'과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타카코(우라베 후사코)의 집에서 진실게임을 제안하며 토모야(오카모토 류타)가 하는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카호와의 결혼을 앞둔 토모야는, 과거에 타카코를 사랑했고 카호와 교제하는 중 타카코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토모야는 카호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타카코였다며,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카호를 버릴 생각도 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토모야의 열정'은 타카코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모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이는 타카코에 대한 마음이 식고 카호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타카코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카호는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으니, 모든 걸 잃을 위험을 지는 대신 카호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이다. 경제적 사고는 열정을 쫓는 것을 막는다. 열정으로 인해 카호를 선택한 것이 아닌, 단지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인 토모야는 진심으로 카호를 사랑하는 게 맞느냐는 카호 모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카호를 선택했던 과거의 토모야가 열정을 쫓지 못하는 인간이었다면, 켄이치로(오카베 나오)는 열정을 쫓는 인물이다. 토모야가 카호와 결혼을 하기로 했음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켄이치로는 굳어지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켄이치로는 토모야와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카호에게 이혼을 하면 자신과 결혼하자고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만, 농담이 아니다. 켄이치로는 카호를 여태껏 계속 사랑해왔다. 켄이치로가 이에 대해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이는 효율적인 판단이 아니다. 카호의 애인인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토모야가 바람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친구의 애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상식적이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지탄을 받을 만한, 기대되는 이득보다 손해가 명확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켄이치로에게는 타카코가 있다. 둘은 교제하는 사이는 아닌 채로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는데, 타카코는 켄이치로를 사랑하냐는 토모야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지만, 타카코의 집에 있는 다른 친구를 켄이치로로 오해하고 뺨을 때리는 타카코의 친척 하나의 반응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타카코는 켄이치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모야와 같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카호가 이별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타카코와 함께하는 것을 선택 했어야 했다.

이후 토모야, 켄이치로, 다케시(시부카와 키요히코) 세 친구는 열정을 쫓기로 한다. 토모야는 카호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자, 그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타카코에게 다시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것을 요청한다. 켄이치로는 토모야가 타카코에게 간 틈을 타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한 카호에게 토모야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음을 알리고 자신을 선택해줄 것을 요청한다. 다케시의 열정은 이들에 비해 단순하지 않다. 아내의 출산을 앞둔 다케시는 켄이치로에게 너는 아직 진정한 사랑을 모른다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돈을 더 벌고 싶어 진다고 이야기한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무언가에 열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다케시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 열정으로 임하고 있는가 싶은데, 그는 우연히 만난 타카코의 친척 하나를 사랑하게 된다.

 

ⓒ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결국, 이들의 열정은 모두 이뤄지지 않는다. 켄이치로는 카호에게 마음을 거절당하고, 다케시의 경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그의 열정으로 보든 하나를 사랑하는 것을 그의 열정으로 보든 그것은 모두 이뤄지지 않는다. 아내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아내 몰래 하나를 사랑함으로써 실패하였고 하나를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타카코를 찾은 다케시는 하나를 찾아가는 대신 타카코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게 된다. 토모야는 과거처럼 리스크를 고려한 합리적 선택을 하는 대신 이번에는 열정을 따르기 위해 카호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이별을 고한다. 그 여자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자신의 곁에 있어도 된다는 카호의 말에도 불구하고 토모야는 이별을 선택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집을 나가지만, 나간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서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이들은 열정을 쫓기로 결심하나,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매번 유예되기만 한다.

다케시가 행방을 알 수 없는 하나 대신 눈 앞의 타카코를 선택하고, 토모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타카코 대신 자신에게 헌신하는 카호를 선택하는 것과 같이 저비용 고효율의 선택지가 있어 그것을 고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고 있는 카호를 사랑한 켄이치로의 경우처럼 애초에 그것이 너무 무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열정
Passion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Hamaguchi Ryusuke

 

출연
카와이 아오바
Kawai Aoba
오카모토 류타Okamoto Ryuta
우라베 후사코Urabe Fusako
오카베 나오Nao Okabe
시부카와 키요히코Shibukawa Kiyohiko

 

제작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제작연도 2008
상영시간 1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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