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서울역' 인간으로 죽기
[연상호] '서울역' 인간으로 죽기
  • 배명현
  • 승인 2020.07.0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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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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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란 무엇인가. 언데드(Undead)의 한 종(?)으로써 시체가 되지 못 한 자다. 죽었지만 죽지 못한 자. 이 형용 모순은 좀비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일 것이다. 이들은 일종의 신체 강탈자로서 끈질긴 자기유지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들을 죽이는 것보다 이들에게서 도망치는 게 빠르다.

그렇기에 좀비를 다룬 영화에서는 법칙이 존재한다. 생존자들은 좀비에게서부터 도망을 쳐야 한다. 장르 성립의 법칙 중 제1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동한다. 이 이동은 부조리하다. 먼저 목적지가 부재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모르지만, 일단은 뛰어야 한다. 설사 안전한 공간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공간에는 새로운 위험이 발생한다. 그 불화는 대부분, 인간의 심적 동요를 통한 감정적 불화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좀비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극단적 상황을 관찰하기 위한 장르물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인간 기저의 비인간성을 확인한다. 이 위험한 견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험을 느끼게 한다. 진짜 위험한 건 좀비가 되는 것이 아니구나, 인간이구나라는 사실.

 

여기서 우리는 연상호의 <서울역>(2016)을 생각해보자. 이 영화는 좀비물의 법칙을 잘 이해한 동시에 연상호 특유의 암울한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서울역>에서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좀비가 발생한다. 우리가 보게 되는 첫 희생자는 노숙자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자. 영화 초반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던 두 청년의 대화 이후, 노숙자를 돕지 않는 것으로 감독은 이 점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우리 사회 안에 속해있는 동시에 배제되어 있다.

이 배제를 시작으로 그들은 증식한다. 노숙자를 중심으로 시작된 증식은 경찰서로 이동한다. 좀비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경찰(이 또한 장르의 법칙 중 하나)은 노숙자들의 폭동이라고 상부에 보고한다. 사회 유지에 목적이 있는 경찰은 이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후 좀비 영화의 문법대로 대규모 좀비가 출현하고 군상극의 형태로 변환된다. 경찰과 군대가 그 규모에 맞게 출동하지만, 이들 또한 무능하다. 연상호가 겨냥하는 지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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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은 5.18과 08년의 촛불시위를 경유한다. 계엄령과 살수차를 동원한 명박산성의 등장은 명백하게 한국의 근현대사를 명시한다. 때문에 <서울역>은 정치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소통 불가능과 경청의 부재를 명확하게 꼬집는다. 영화 초반 언어 전달력이 부족한 노숙자의 이야기를 잘 듣기만 했더라면, 하다못해 경찰서 안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 인간들을 구출했더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영화 안에서 북한 빨갱이의 짓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판단의 부재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부산행>(2016)에서 실시간 검색으로 다시 한번 북한의 소행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좀비물은 사실상 인간의 폭력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영화일 수밖에 없다. 연상호는 여기에 한국의 이야기를 첨가한 것이다. 가장 소외된 곳에서 발생한 절망이 확대된다. 이 확대는 정치적 무능을 일삼는 상위 계급으로 전염된다. 결국 이 전염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단 한 명만이 좀비화를 피했다. 인간으로 죽는 존재는 기웅 밖에 없다. 석규에게 칼로 목이 베인 기웅은 영화 내에서 좀비가 아닌 인간으로 죽는다. 그동안 보지 못한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기웅에게 인간사라는 축복(?)을 준 것일까. 유일한 죽음은 영화 속 수많은 언데드(Undead)들 중에서 가장 편안한 최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죽지 못해 귀천을 떠도는 시체들은 계속 인간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복수와 복수와 복수를 하기 위해. 연상호의 니힐리즘에서 죽음은 오히려 속 편한 죽음일지도 모르겠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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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Seoul Station
감독
연상호

 

출연(목소리)
류승룡
심은경
이준
김재록
장혁진
김종수
한성수
명승훈

 

제작 스튜디오 다다쇼
배급 NEW
제작연도 2016
상영시간 9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6.08.17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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