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앳' 비로소 당신이 주인공임을 깨닫기까지
'러브 앳' 비로소 당신이 주인공임을 깨닫기까지
  • 오세준
  • 승인 2019.11.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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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크리픽쳐스
'올리비아&라파엘', 사진 ⓒ 크리픽쳐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그의 저서 <사랑 예찬>에서 "사랑은 차이(둘)에 의해서 실행되는 실존적 어떤 세계다"라고 말하며, 사랑은 '둘만의 경험', '둘이 등장하는 무대'라고 표현한다. 바디우가 말한 대로 하나가 아니라 둘, 두 사람이 서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아름답게 격상시켜야 다가오는 '사랑'. 프랑스 영화를 보고, 프랑스 철학자의 말이 생각났다고 말하면 지나친 농담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그렇다면 다시,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사랑에 빠졌다면 이 역시 낭만적인 농담일까. 아니면 기막힌 우연일까.

소설가를 꿈꾸는 '라파엘'(프랑수아 시빌)은 학교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그는 이것저것 물건들이 쌓인 창고 같은 곳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올리비아'(조세핀 자피)에게 말을 걸지만, 비상벨을 눌러버리는 실수로 수위를 피해 다급하게 학교를 빠져나온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첫눈에 기절할 정도로' 사랑에 빠져버린다.(재치있게 두 사람이 기절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작되는 영화는 두 사람이 학교를 졸업하고, 연인이 되며, 결혼하는 모습과 함께 '라피엘'이 자신이 오랫동안 써 온 소설 '졸탄'으로 성공하며, '올리비아'가 피아노 대회에서 상을 받고, 교사가 되는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아내 '올리비아'와 다투고 만취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 '라파엘'은 평소와 다름을 느낀다. 베스트셀러 스타 작가로서의 삶은 간데없고 중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으며, 아내 '올리비아'는 자신을 아예 모른 채 유명 피아니스트로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평행세계로 오게 된 원인이 운명적 사랑이었던 올리비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그녀의 사랑을 얻으면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다가가지만, '마크'라는 완벽한 남자친구가 버티고 있다. 그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 '펠릭스'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녀는 마크에게 다시 돌아가고,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현실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표류하고 만다.

 

사진 ⓒ 크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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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충실성: 이것은 나날 이후의 나날로 인해 극복된 만남의 우연

관객에게 있어 이 영화가 가진 '평행세계'와 같은 판타지 로맨스 영화는 그리 낯설지 않다. 가까운 예로 길 정거 감독의 <이프 온리>, 로베르트 슈벤트케 감독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 등이 대표적이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을 다시 사랑하기 위한 시도'는 어쩌면 더는 달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118분이라는, 긴 동안 필자가 지루해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있었던 이유에는 <러브 앳>만이 가진 '당신이라는 불가항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라파엘의 소설 '졸탄'으로 시작하는 영화, 그의 첫 독자가 '올리비아'임을, 또 올리비아의 연주를 처음으로 들어준 사람 역시 '그'임을 떠올린다면 <러브 앳>이 평행세계를 통해서 두 사람이 '어떠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라파엘과 올리비아는 사랑하는 사이이며, 동시에 '작가와 독자', '연주자와 청자'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즉 두 사람은 각각 상대방의 첫사랑이며, 처음으로 상대방의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라피엘이 성공에 취해 올리비아의 연주회를 가지 않은 것, 결정적으로 그가 소설 마지막의 여주인공 섀도우(이 인물의 모티브는 올리비아)를 죽이는 비극으로 완성한 것이 평행세계로 떠밀려가는 계기로 작용한다. (심지어 이 소설을 더는 올리비아에게 읽어보라고 주지 않는 것까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평형 세계 속에서 홀로 올리비아와 사랑했던 기억만을 가진 라파엘. <러브 앳>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두 사람이 '다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재현'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1시간 넘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라파엘의 모든 시도는 '올리비아와의 사랑'이 아닌 '올리비아가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작용하며, 또 자신이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의 천재적인 능력이 아닌 '올리비아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함이다. 그가 더는 올리비아의 청자가 아니고, 올리비아를 독자로 생각하지 않은 그 세계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진 ⓒ 크리픽쳐스
사진 ⓒ 크리픽쳐스

라파엘은 자신이 쓴 소설 '졸탄'의 결말을, 두 주인공 모두가 죽지 않는 결말로 바꾸면 자신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책상 서랍에서 과거 고등학교 시절 써놓은 노트를 꺼내어 다시 소설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올리비아의 연주회가 시작하기 전, 그는 소설을 무사히 그녀에게 전달한다. 그렇지만 차마 다 읽지 못한 채, 무대 위에 올라선 그녀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치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녀가 연주하는 모습을 본 라파엘은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 공연장을 빠져나가고 그녀에게 준 소설을 다시 가져와 쓰레기통에 넣는다.

바디우의 표현을 한 번 더 빌리자면, <러브 앳>은 '사랑의 지속을 향한 모험의 구축'이라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만남에 사랑에 빠지다'라는 뜻의 'Love at Second Sight'라는 영화의 영어 제목은, 분명 '첫눈에 반하다'라는 뜻의 'Love at First Sight'를 연상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라파엘이 올리비아의 연주를 보고는 다시 원래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인 소설을 버린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피아노를 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돌아갈 세계에서 누릴 모든 것보다 지금 두 눈에 보이는 '그녀의 행복', 그녀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진 ⓒ 크리픽쳐스
사진 ⓒ 크리픽쳐스

 

왼손의 강한 c#단조의 전주와, 이어 긴장감을 자아내는 오른손의 움직임으로 연주가 시작되는 '쇼팽의 즉흥환상곡', 화려하면서도 격정적인 선율을 반복하는 이 곡은 두 사람의 사랑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애수 어리면서도 낭만적이다.

 

또다시,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라는 바디우의 말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과연 둘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까? 무대 위에서 빛나는 올리비아를 위해서 이전 세계에서 자신이 몇십 년 동안 만들어온 삶을 포기하는 라파엘의 선택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초월하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 이 결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당신'이라는 사람을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전투이고 투쟁이다. 그래서일까. 라파엘 이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모든 일들이 올리비아를 주인공으로(사랑의 의미로써)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싸워온 것처럼 다가온다.

연주를 마친 올리비아는 라파엘을 찾아 공연장을 빠져나온다. 다시 마주한 두 사람. 그렇게 우연이 고정되는 순간, 영화는 다시 사랑을 선언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낭만적인 삶을 갈구한 라파엘. 올리비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오직 그만이 경험하는 사랑이라는 환상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라파엘이 다른 세계로 넘어와 긴 시간 방황했던 만큼 사랑은 둘의 경험이기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그만큼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나와 너,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사진 ⓒ 크리픽쳐스
사진 ⓒ 크리픽쳐스

러브 앳
Love at Second Sight
감독
위고 젤랭
Hugo Gelin

 

출연
프랑수아 시빌
Francois Civil
조세핀 자피Josephine Japy
벤자민 라베른헤Benjamin Lavernhe
까밀리에 를르쉐Camille Lellouche
아마우리 드 크레양쿠르Amaury de Crayencour
에디뜨 스꼽Edith Scob

 

배급 크리픽쳐스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1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9.11.27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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