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파트2' 이토록 비극적인 악인의 승리
'듄: 파트2' 이토록 비극적인 악인의 승리
  • 김경수
  • 승인 2024.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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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자"

<듄: 파트2>를 본 다음에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드니 빌뇌브'의 필모그라피를 통틀어 가장 스펙터클한 순간이, 타락한 예언자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가 민중을 전쟁으로 안내하는 순간이어서다. 그는 대규모 전투를 촬영할 때마저 이토록 수많은 군중을 서사에 동원한 적이 없을뿐더러, 멀리서 군중의 움직임을 포착하려고 한 적도 없다. 물론, 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흔한 구도이지만, 최소한의 오브제만 화면에 배치하는 그의 세계에서는 낯설다. 이를 그저 할리우드 시스템에 흡수된 미장센으로 보아야 할까. <듄: 파트2>의 복잡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듄: 파트2>는 폴 아트레이데스가 프레멘의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이방인에 불과한 폴 아트레이데스가 지도자로 거듭나도록 한 것은 남부 프레멘 출신의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다. 스틸가는 폴이 리산 알 가입이라는 구원자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폴이 첫 전투를 마치자마자 그는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를 대모로 무턱대고 세우려 한다. 레이디 제시카는 임신한 채로 (모래벌레에게 추출한 것으로 알려지는) 생명의 물을 마셔서 프레멘의 역사와 트라우마를 전승하는 의식을 거친다. 레이디 제시카는 순간적으로 독을 해독한 것에 불과하지만, 스틸가는 이를 폴이 리산 알 가입이라는 증거로 아전인수하며 그를 당혹에 빠뜨리기만 한다.

한편 무앗딥이라는 이름의 프레멘의 전사로 거듭나며 챠니(젠데이야)와 연인으로 발전한 폴은 스파이스를 흡입하고 문득 수백만 명이 죽는 환상을 본다. 폴은 어머니가 자신을 남부로 부르는데도 자신이 남부로 가는 순간 수백만이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또한 챠니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한편 전편에서 아라키스를 점령하는 데에 실패한 하코넨 가문은 소시오패스라고 불리는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불러내서 프레멘을 섬멸하는 계획을 진행한다. 페이드 로타의 급습에 분노한 폴은 남부로 내려가서 생명의 물을 마신 다음에 메시아 리산 알 가입으로 숭배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는 우연히 만난 스승인 거니(조시 브롤린)에게 레토가 숨겨둔 핵폭탄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하코넨가를 섬멸하려는 작전을 진행한다.

<듄: 파트2>는 폴 아트레이데스의 복수가 시작되기 직전에 그친 <듄:파트1>의 속편이다. 다만, <듄:파트1>과는 다르게 빌뇌브의 금욕적인 연출이 두드러진다. 우선 원작과 그것을 시각화했던 린치의 <사구>(1984)에서 그려진 여러 기괴한 비주얼과 설정을 최대한 배제한다. 또 캐릭터가 모순적이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폴의 적수로 그려지는 페이드 로타의 경우가 그러하다. 페이드 로타를 그려내는 톤과 캐릭터의 불일치는 자칫 감독의 오류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페이드 로타가 등장하기 직전 베네 게세리트와 왕가는 그를 미치광이로 이야기한다. 정작 페이드 로타가 등장할 때 감독은 스크린을 흑백으로 전환하고, 표현주의 영화를 생각나게끔 하는 강렬한 명암 대비를 설정해 그를 종교적인 뉘앙스로 그려낸다. 그가 부하를 별것 아닌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순간만 해도 페이드 로타는 예측불허한 캐릭터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행동은 프레멘을 섬멸하겠다는 하나의 목적만 따라가며 끝까지 예상이 가능한 범주에서만 그려진다. 폴과의 결투에 임할 때는 되려 절도를 지키며 행동한다.

폴과 레이디 제시카, 스틸가, 거니 등 영웅 캐릭터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가 과묵하고 본인의 신념에만 충실하다. 챠니와 레이디 제시카 등을 시대에 걸맞게 주체적인 여성으로 각색하고, 이들에게 저마다의 힘과 동기를 준 것도 감독의 금욕적인 연출에 부합한다. 이들은 얼굴이 클로즈업되더라도 제 감정이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는 감정의 진폭이 적으므로 하코넨가에 대한 아트레이데스가의 복수가 만드는 카타르시스마저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듄: 파트2> 속 드니 빌뇌브의 금욕적인 연출은 <그을린 사랑>(2012)을 기점으로 반복되는 그리스 비극에 기반한 세계관을 영화의 문법으로 그려낸 데에서 시작된다. 비극은 고대 아테네의 시민이 원형 극장에서 진행되는 국가 차원의 제의에 가깝다. 비극은 민주정이라는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며, 비극과 민주정은 생태적으로 연관되어있는 것으로, 비극이야말로 질문하고 비판하고, 전복함으로써 민주정의 의식 혹은 검문자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폴리스 내부의 신적인 가치(보수적인 이념)와 인간적인 가치(진보적인 이념)의 충돌을 상연해 시민 전체에게 공유하고 정치적인 문제 제기가 진행되는 공론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두가 아는 이야기인 신화에 기반해야 했으며, 날것의 대사와 돌발적인 상황이 최대한 배제된다. 최근 전설적인 SF소설만을 영화화하는 드니 빌뇌브처럼 말이다.

그리스 비극 가운데 특히, 소포클레스 비극은 주로 둘이나 셋 사이의 인물이 대화하는 상황으로만 진행된다. 살인이나 근친상간 등 큰 사건이 생기더라도 대사로 처리되기 마련이다. 무아와디의 희곡을 기반으로 한 <그을린 사랑>부터 시작해 그의 영화는 액션을 연출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둘이나 셋 가량 캐릭터가 대화하는 에피소드가 연속해서 등장한다. 살인이나 액션마저도 카타르시스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벌어진다. 빌뇌브가 중시하는 것은 액션이나 전쟁 등의 몸짓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본인이 대화 씬을 혐오하며 대화는 연극과 TV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정반대로, 그의 영화는 대화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듄: 파트2>는 이를 애써 부정하며 대화가 진행되어야만 할 부분까지 무성영화적인 이미지로 채우려다 보니, 플롯이 잘 이어지지는 않고, 무거운 이미지만 계속된 영화로 완성되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문제는 비극의 핵심인 '코로스'다. 코로스는 신화적 세계관으로 보이는 비극 속 세계관과 바깥 사이의 매개체가 된다. 비극에서 코로스는 간혹 상황에 개입해 상황을 둘러싼 정념을 환기하거나 그 상황에 대한 윤리적인 곤란함을 해설한다. 드니 빌뇌브의 세계에서 코로스는 그가 순수한 이미지와 사운드라고 이야기한 풍경이다. 그의 풍경은 항상 안개가 눅진하게 끼어 있거나 모래와 낙진이 흩날려 '생명체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황량하다.

앞서 드니 빌뇌브는 <그을린 사랑>과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2015)에서 이라크와 멕시코 국경 지대 등 분쟁이 가득한 황량한 세계를 직접 다룬 바 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초반과 마약 소굴에 등장한 널브러진 시체는 명분뿐인 분쟁에서 인간은 시체에 불과하다는 그의 비극적인 인식을 직접 노출한다.

<블레이드 러너2049>(2019)에서부터 그의 이미지는 은유적인 문법으로 그려진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에서 당시에 그리스를 뒤흔든 테베 산불이 코로스로 인해서 우회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빌뇌브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황폐한 풍경으로 동시대의 풍경을 우회적으로 그린다. <블레이드 러너2049>(2019)에서 K(라이언 고슬링)가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만나러 황무지로 갈 때, 방사능의 낙진이 짙게 깔린 그곳의 풍경은 호주 산불이 지나간 직후의 종말론적인 풍경을 생각나게끔 만든다. (<지옥의 묵시록>(1979), <전함 포템킨>(1925) 등을 오마주한) <듄>의 몰락하는 아트레이데스가의 풍경은 가자 지구 폭격을 생각나게끔 한다. 다만, <듄: 파트2>에서는 이 풍경 연출이 정반대가 된다.

<듄>에서 폴은 안개나 모래 등 자연과 인간이 극단적 대비를 이루는 낭만주의 회화 구도를 빌린다. 폴은 시종일관 언덕 위에 서서 있는 프리드리히의 회화 「안개 위의 방랑자」 속의 방랑자로 보인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거대한 존재를 마주하는 이미지는 발견하기 흔하다. <듄>의 샤이 훌루드와 <컨택트>의 외계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낙진이 가득한 도시에 있는 거대한 석상과 후반에 등장하는 거대한 홀로그램 조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숭고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빌뇌브의 인생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1968)에서 인류가 처음 모노리스를 마주하는 순간을 다르게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이 이미지가 자본, 그리고 그 집적으로 제작된 스펙터클로 보인다는 이현동 평론가의 지적은 타당하다.

<듄>에 이르기까지 빌뇌브의 영화 속 숭고미는 이미지를 폐쇄적으로 보이게 가공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 미장센은 전지구적인 재난을 한 데에 압축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SF를 그리지만, 그의 영화에는 린치의 <사구>와 달리 기상천외한 디자인이 배제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되려 이는 세계의 바깥을 상상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유물론적인 태도와 이어진다. 빌뇌브는 풍경에 인간을 배치해서 거대 담론에 있게끔 한다. 한편으로, <듄: 파트2>에서 폴은 사막의 생태계에 적응해 샤이 훌루드를 탈 수 있으며 원자폭탄으로 아라키스를 파괴한다. 즉 폴은 세계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자가 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플롯, 차원에서도 빌뇌브는 그리스 비극을 반복한다. <그을린 사랑>부터 <듄: 파트2>까지 그의 영화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반복하는 듯하다. <그을린 사랑>에서는 근친상간이라는 반전으로 비극적인 설정을 가져다 썼고, 그 뒤부터는 하마르티아라는 설정을 되풀이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하마르티아는 과녁이 빗나가다라는 희랍어인 hamartanein에서 비롯한 단어로 무지나 오만 등 캐릭터의 결함으로 인한 도덕적인 과오를 이야기한다. 다만, 하마르티아가 성립하려면, 또 이를 용서하거나 연민하려면 행위자는 단순한 무지로 인해 행동하는 것(홧김에 저지르는 등)이 아닌 행동을 해야 하며, (악의에 기반하지 않은) 무지로부터 기인하고 무지 그 자체가 오류의 원인인 행동에 기반해야 한다. 여기에는 오류와 우연이라는 이중적인 요소도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드니 빌뇌브의 캐릭터는 보통 우연에 기반해 행동하는 편이었다. <블레이드 러너2049>(2019)와 <콘택트>(2017)에서는 본인이 구원자라는 오인이 서사를 진행하는 동기가 된다. 그 오인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외부인의 존재를 몰랐기에 그 존재의 큰 뜻을 서서히 알아가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이 두 작품에서 주인공의 오인은 용서된다. 그 오인은 보통 이미지로부터 온다. 『오이디푸스 왕』의 결말에서 오이디푸스가 눈알을 제거한 것을 보았을 때, 그리스의 비극은 반-시각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가 보는 것이 곧 우리가 아는 것이 되고 그것이 오인의 원인이 된다.

드니 빌뇌브가 그려내는 SF에는 보통 이미지에 매혹당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라이언 고슬링)는 이식된 꿈 이미지에 붙들려 있고, <컨택트>의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는 죽은 딸 한나와의 추억에 사로잡힌 듯이 비추어진다. 마찬가지로 <듄>에서 폴은 느닷없이 반복되는 챠니의 이미지에 매혹당한다. 다만, 그는 물론 관객들도 그녀가 프레멘의 일원이라는 정보를 제외하면, 그녀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녀는 누구이며, 언제 등장하는지가 <듄>의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K는 이미지를 근거로 스스로 구원자라고 착각하며, 뱅크스는 헵타포드의 시간관을 이해한 뒤 미래를 마주하고 한나가 죽으리라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폴은 프레멘에게 구원자 퀴사츠 헤더락으로 불리지만, 그는 영웅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무력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듄: 파트2>도 초반까지는 폴이 퀴사츠 헤더락이자 리산 알가입이라는 사실이 우연으로 펼쳐진다. 이는 그의 친구이기도 한 놀란의 문제의식과 이어진다. <오펜하이머>(2023)의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이 세계의 멸망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히는 과정 역시 그러하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문제는 그 뒤다. <듄: 파트2>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할 때, 코끼리를 생각하는 동시대의, 그리고 남성의 인지적인 편향을 다루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후반에 이르러 폴은 수백만이 죽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듄 세계관에서 스파이스가 LSD 등의 향정신성 약물로 비유되고, 샤이 훌루드를 착즙해 만든 생명의 물이 각성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폴의 환상은 잘못된 환상에 불과하다. 그는 스틸가의 맹목적 지지에 힘입어 오류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빌뇌브의 필모에서 보여진 여러 짜깁기된 이미지(몽타주)는 구원에 이르는 계시에 가까웠다면, <듄: 파트2>에서 짜깁기된 이미지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폴이 이야기하는 파국을 저지하는 길은 관객 혹은 프레멘에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불안을 만든다. 틈날 때마다 리산 알 가입을 외치는 스틸가의 초상은 트럼프를 구세주로 만들고 MAGA(Make Great America Again)을 외치는 레드넥과 충분히 연결해서 볼 만하다. 그는 우스꽝스럽게 그려지지만 동시에 모두를 파국으로 이끄는 자다. 그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것은 폴과 맹신에 대한 거리두기로 작동하나, 후반부부터는 그마저도 드러내지 않는다.

폴의 애인이기도 한 챠니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스틸가와 폴은 인지 편향에 사로잡힌 멍청이로 드러나야 했다. 감독이 챠니의 관점을 마련하지 못했고, 캐릭터에 집중하느라 스틸가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프레멘이 보는 폴에 대한 시선을 배치하지 못한 사실도 이 영화의 미흡한 지점이다. <오펜하이머>의 수동적인 태도에 비하면, 빌뇌브는 조금이나마 동시대의 불안한 감각을 더 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그는 폴 아트레이데스가 군중을 몰고 가는 장면을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그려내 이 시대의 예정된 파국을 드러낸다.

드니 빌뇌브는 <듄> 내한 컨퍼런스에서 그가 퀘벡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종교적 신앙을 없애려는 1970년대의 세속화 운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영화는 앞으로 폴 아트레이데스가 소멸하는 과정을 그려낼 것이다. 그는 <듄> 원작에 깃든 메시아에 대한 경고를 그려내고자 했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다만, 원작을 그대로 그려낸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드니 빌뇌브는 원작의 다층적 세계를 비극으로 정리하고 본인의 유년기를 동시대와 포개려고 시도한다. 이제 그 시도는 그의 유머 감각 없는 진중한 화법에 오히려 막히고 만 것이 아닐까. 폐쇄된 수도원처럼 엄숙하기만 한 그의 스토리텔링은 한 차례 더 이완되어야 할 듯하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듄: 파트2
Dune: Part Two
감독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출연
티모시 샬라메
Timothee Chalamet
젠데이아 콜먼Zendaya Maree Stoermer Coleman
레베카 퍼거슨Rebecca Ferguson
조슈 브롤린Josh J. Brolin
오스틴 버틀러Austin Butler
플로렌스 퓨Florence Pugh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작연도 2024
상영시간 166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4.02.28.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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