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th Venice] '아모르' Amor에 탑승하여 Roma로 이동하기
[80th Venice] '아모르' Amor에 탑승하여 Roma로 이동하기
  • 이현동
  • 승인 2024.03.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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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지표들이 만나는 지점들에 대하여"

제80회 베니스영화제에서 비경쟁 논픽션에 선정된 비르지니아 엘레우테리 세르피에리의 <아모르>(2023)는 엄마의 죽음 이후에 갖게 되었던 기억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과거와 현실이 서로 교집을 이루는 이 영화의 레퍼런스의 기원은 1998년 7월 12일 엄마가 투신한 장소인 티베르 강을 중심으로 확장된다. 자연과 도시의 지표를 탐사하기 위해 사용된 여러 사진과 그림 등의 도구들은 점차 개인의 기억에서 보편의 기억으로 이행한다. 이러한 과정을 다루는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형상은, '자연으로부터 도시로, 도시로부터 자연으로 이동하며 기억의 지표들이 어떻게 융합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작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2023년 SeMa-하나평론상을 수상한 장한길 평론가의 「부재를 스크리닝하기: 임철민의 〈야광〉」에서 마리안 허쉬가 정의한 포스트 메모리 개념과도 연동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먼저 오늘날 공동체가 홀로코스트와 같은 거대한 사건을 이제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때,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의 역할이 과거와의 연결을 상기가 아닌 '상상'으로 접촉한다고 할 때, 기억이란 규정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혹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일지를 논의할 수 있다. 특히나 개인으로부터 잔류하는 기억은 규정되어 있는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엇이다. 그 지표들이 계속해서 시간과 공간에 의해 지속적인 만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긍정과 부정의 기억을 동시에 가늠하면서 그 감각을 처리하기 위해 투쟁하지 아니하고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온전히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기억의 파편을 수집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 영화 <아모르>(Amor)

특히, <아모르>에서 특정한 공간인 로마에서 부유하는 기억의 지표들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는지를 탐구해 보면, 이 작품이 가진 성취와 의미는 단순히 개인과 관련한 자서전용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신비롭게도 분절된 아카이브가 한 작품으로 보이게끔 유도하는 요소는 관찰자인 관겍에게 주도되기도 한다. 감독의 첫 번째 단편인 <Piccoli naufragi>(2004)는 오로지 슈퍼 8 필름으로 촬영한 이 영화가 간직한 투박하고 거친 질감과 미완료된 내러티브를 의도하는 듯 보이는 공백은 그녀가 여전히 상기하고 있는 트라우마를 감각적으로 투사한다. 엄마의 사진이 집으로 보이는 공간 여기저기에 위치하고 그 사이로 삽입되는 욕조에서 흐르는 물의 흐름과 발광하는 빛, 그리고 엄마의 모습을 담은 과거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TV와 현재로 보이는 거실과의 분열된 숏은 결코 망각되기 힘든 기억의 순환을 드러낸다.

이러한 차가운 감각을 각인시켰던 단편 이후 선보인 <Home>(2007)은 창문과 텔레비전 등의 아기자기한 카툰 프레임 안에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따스한 가족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엄마가 아기를 껴안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한 커플이 춤을 추는 모습, 부모님의 연인 시절부터 결혼식 사진,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이 영상으로 상영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프레임인 현관문에 등장하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앉아 있는 인물은 익스트림 롱 숏인 관계로 정확히 식별할 수 없지만 감독임을 유추할 수 있다. 가공의 공간이었던 과거의 집이 디졸브 되면서 감독은 상상이란 프레임을 벗어나 복귀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이동한다. 아예 감독은 카메라 밖을 나가 버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발표한 <The Water's Tale>(2021)은 투신한 엄마의 신체를 입은 감독의 상상이 물의 흐름을 따라 수평적으로 움직인다.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몸과 감각을 상실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 어디에서 끝날지 우린 전혀 알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연의 풍광이 완전히 암전된 상태로 감독의 얼굴만 보이는 이 시퀀스는 공교롭게도 <아모르>의 첫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묘한 상상으로 연결된다. <아모르>는 정반대로 엄마를 상징하는 한 배우의 모습이 어둠에서 점차 자연으로 변용되어 가는 배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려 20년 가까이 기억을 회복하고 갱신하기를 고대해 왔던 감독에게 <아모르>는 무한한 창작 욕구로 자신의 기억뿐만 아니라 로마란 도시가 갖고 있는 풍광을 통해 삶과 죽음의 종착지인 묘지에 거취 할 인간을 다채롭게 아카이빙 한다.

 

ⓒ 영화 <아모르>(Amor)

기억하는 얼굴과 기억된 얼굴

<아모르>의 첫 장면에서 자연과 교차하여 있는 여성의 얼굴은 성서의 창조 역사에 등장했던 완전한 흑암 속에서 탄생한 자연의 기원에 대한 기묘한 감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반복해서 드러나는 이 여성의 얼굴은 '엄마의 얼굴'이다. 이것은 실제로 재현할 수 없는 영화적 얼굴을 나타내며 여성은 머리 스타일을 바꿔서 드러나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죽은 자의 얼굴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지의 의문에 봉착한다. 여성의 얼굴과 엄마의 사진이 교차하면서 겪는 의문은 우리가 기억하는 얼굴과 사진으로부터 기억된 얼굴의 불일치가 단순히 개인을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상기가 아닌 상상으로 조작된 영화적 기억은 이미지를 불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개방적 이미지로 둔갑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 여성의 감정 상태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 기억을 기입할 수 있는 능동적인 가능성을 갖게 된다. 가령 낭만파 선구자인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정신 이상을 보이는 인물을 그린 초상화를 떠올려 보면 제목이 부여되기 전에는 각각의 인물이 어떠한 상태인지 알 수 없다. 도벽 환자, 미친 여인, 도박에 빠진 여인 등의 광인의 얼굴은 보통 '연민'을 초래하기 위해 고안된 이 요소로 언표되기도 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얼굴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이 가진 기억을 매개로 그림을 정의하게 된다.

<아모르>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방비로 처음 여성의 얼굴을 마주할 때 겪는 곤혹스러움도 이와 동일하다. 그는 영화에 참고한 작품으로 조나단 글레이저의 <언더 더 스킨>(2013)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외계인인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은 단지 피부인 표면에 불과하며 언제든 파괴되고 부인당할 여지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스타시스템 안에서 너무나 똑같은 이미지, 즉 이상적인 여성의 얼굴로 보이는 스칼렛 요한슨과 <아모르>에서의 배우의 얼굴은 표준화된 형태를 벗어나 무표정이라는 혼재된 특질 속에서 발견될 때 그들의 얼굴은 하나의 새로운 주체로 발견된다. 들뢰즈는 이를 이항대립의 구조를 해체한 탈얼굴화라고 말한다. 구조적으로 소비된 표본을 제거하고 심지어 괴물까지 긍정할 수 있어야 하는 해체의 가능성. 그런 의미에서 <아모르>에서 클로즈 업된 얼굴은 영화 전체를 전복하는 몸이다. 감독이 자기 얼굴을 드러냈던 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감독은 사진과 사물을 집어 들고 그림을 그릴 때와 운전하는 장면에서도 자기 얼굴을 좀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내레이터로 역사와 사건을 소개하고 탐험하는 객체로 존재하게 한다. 슈퍼 8 필름으로 촬영한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고화질의 카메라로 촬영한 현재 안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엄마의 형상은 풍경 안에 방기된 채로 시간을 초월하고 배회하는 보편적 존재로 자리한다. 배우의 목소리도 일률적이지 않고 변화한다는 점에서 기억하는 자는 개인이 아니다. 공동에 가까운 개인은 기억에 의해 무한히 증식될 수 있는 영화의 주체를 관객에게 이행한다.

 

ⓒ 영화 <아모르>(Amor)

개인과 공동을 잇는 기억법

<아모르>의 밑그림이 되는 이미지는 자연과 도시다. 영화는 얼굴과 자연, 도시와 자연이 디졸브되는 첫 장면을 비롯하여 끊임없이 아카이브를 배열한다. 로마의 유적지, 일상의 풍경, 이전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나무 그림 위에 사진을 올려놓은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영화를 가장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는 '티베르 강'과 '물'이다. 물의 도시라 불리는 로마는 규모가 작지만 티베르 강의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사람들은 물을 편리하게 수급받을 수 있는 지정학적 특성이 있었다. 티베르 강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실제적 공간일 뿐만 아니라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의 기억과 경험이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인 알도 로시는 기억이란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가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첫 장소가 아니라 연결된 경험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 로베르토 로셀리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을 논의하면서 기억의 장소가 서로 다른 중첩과 퇴적 작용으로 매개될뿐더러 개인적 경험과 영화적 기억이 혼재되어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했다. 특히, 이탈리아 감독들의 환생처럼 보이는 파올로 소렌티노의 최근작이었던 <신의 손>(2021)에서 등장하는 몇몇 장소와 로셀리니와 펠리니 영화를 떠올리기에 무리가 없다. 가령 소렌티노 영화에서 소환되는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1950), <이탈리아 기행>(1954)와 펠리니의 <8과 1/2>(1963), <아머코드>(1973) 등은 이탈리아 영화가 갖고 있는 특정한 장소와 양식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후기 펠리니 영화에서 등장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만찬을 즐기는 장면과 사춘기를 경험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나이 든 여성에 투영하고 해소하는 서사는 기존 네오리얼리즘으로부터 해방을 유도하며 소렌티노에게도 고스란히 전승된다.

생각해보면 '물'이란 요소는 물리적으로 생명의 장소이자 정서적으로는 접촉의 장소이다. 이를 잘 드러내는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에 올랐던 파올로 비르지의 영화 <가뭄>(2022)은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마른 가뭄에 시달리는 로마를 그린다. 이 영화에서는 오프닝은 로마의 풍경을 하이 앵글 숏으로 촬영하며 말라버린 강을 강조한다. 가뭄이 시민의 삶을 모두 봉쇄할 정도로 파괴력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물이 부족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아모르>에서도 그렇지만, 로마에서 강이란 물리적 흐름뿐만 아니라 내부의 연결마저 의식할 수 있는 이미지가 된다. 로마가 가진 공통적 감각을 연결하기 위해 감독은 2016년 티베르 강으로 내려가 모든 대리석, 조각품, 전쟁의 흔적 등을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좋은 것, 끔찍한 것" 모든 것을 수집한다고 말하는 감독의 초반 내레이션은 비극적인 엄마의 사건을 로마의 보편 역사로 환원함으로 그 안에 잠재하고 있었던 공동의식을 끄집어낸다. 다음 장면에서 다리에서 투신한 엄마의 장소를 나타내는 그림과 물 아래를 탐사하기 위해 잠수부가 잠수복을 입고 물속을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일말의 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물을 탐험하는 1인칭 시점과 엄마가 방에 없었다고 말하는 내레이션 사이를 관통하는 이미지의 문은 <아모르>가 복원하고자 하는 기억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감독은 다시금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정면으로 문을 침투하여 들어간다. 그 정면에는 엄마의 사진이 있다. 롤랑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을 "현실과 과거의 이중적 위치가 결합"된 것으로 보았다. 사진을 읽는 과정에서 '그것은-존재-했었음'이라는 죽음을 현실로 자각할 때 우리는 내면적인 시선으로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을 바라보는 감상자에게 과거는 절대적인 '부동'의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진이 말하는 과거, 죽음의 기억은 개인에게 닥쳐올 불안을 사유할 수 있으므로 그 '부동'의 상태는 상상적 경험을 통해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회고의 장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자신의 집 주변을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감독과 이 시퀀스를 종료할 때 선택한 숏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방편을 제시한다. 주변부를 촬영한 영상이 밤까지 이어지다가 물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간 장면, 그리고 슈퍼 8 필름으로 촬영된 영상이 등장한다. 자연과 어울리는 단란한 가정의 모습, 로마의 유적들과 오래된 판화를 조명하면서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의 모습이 드문드문 등장한다. 이는 화면의 질감에서 과거를 연상하는 동시에 현실일 수 있다는 두 종류의 시간성을 제시한다. 과거는 현실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protention)을 위한 수단으로 시간의 흐름을 우리에게 고지하는 셈이다.

 

ⓒ 영화 <아모르>(Amor)

<아모르>에서 그 흐름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질적인 요소로 삽입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운전하는 장면이다. 형식적으로는 한편의 로드무비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영화가 운반해왔던 시간적 요소로 인해 <백 투 더 퓨처>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의 제목인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의 "미래로 돌아간다"라는 역설적인 뜻은 과거를 통해 미래가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모르>가 돌입하는 과거의 시간도 그와 같은 형태를 지닌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나아간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작인 <The Water's Tale>에서 시간을 유추할 수 있는 방향이 수평이었다면, <아모르>에서의 방향은 수직으로서 이동한다. 수평은 관성에 따라 이동 방향이 규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수직은 자동차라는 도구에 의해 방향이 결정된다. 이는 곧 운전자의 의지이며 이동하는 경로를 얼마든지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내포하기도 한다. 이 시퀀스는 일종의 영화를 표상하는 리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목적지를 연결하는 수단인 물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리적일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시간을 통합하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차 밖에 있는 풍경을 거꾸로 표현한 장면이 있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어머니가 실종된 날 밤 혼란스러웠던 정서적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삽입한 장면이다. 점차 도로가 중첩되고 분열되는 이 장면과 함께 여자 배우 얼굴 또한 뒤틀려 있고 피부는 물의 흐름과 함께 죽음을 암시한다. 이 장면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로 틈입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시이면서 감독이 기꺼이 마주해야 할 손실되고 손상된 기억이다.

우리는 로마의 도로 위를 배회하는 자동차에 탑승하여 과거로 나아간다. 로마를 형성하는 강이 서로 다른 이미지를 연동하고 가공의 인물이 과거와 현재에 틈입하며 과거와 현재를 재정립하고 있는 차의 운동성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변화를 촉구한다. 이때 시간성은 수축하지 않고 오히려 팽창하면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게 한다. 후반부에서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여 후반부에서 로마의 건국 신화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탄생 설화를 짤막하게 설명한다. 쌍둥이가 버려진 장소인 티베르 강에서 늑대에 의해 구조된 이들이 로마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신화는 널리 알려진 구원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가령 성서에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인인 모세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하다. 히브리인을 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태어난 남자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피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모세를 보호하기 위해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운다.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온 이집트 공주가 그를 발견하고 키운다는 이야기는 로마의 건국 신화와 쌍수를 이룬다. 이러한 서사와 물이 가진 이미지는 공동의식을 연동하는 원리가 되며 <아모르>의 결말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인 신화,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현재를 끄집어내 의미를 연동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차를 길가에 주차해 놓고 엄마의 시신이 발견된 밀비오 다리와 두카 디오스타 다리를 향해 가는 감독을 보여준다. 그녀의 손에는 그사이의 전경을 촬영한 사진을 들고 있다. 그녀가 로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고백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 전경이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곳. 그리고 손에 사진을 들고 프레임 안에 배열하는 이 장면은 사진으로부터 과거를, 카메라로부터 현재를 잇는 공존의 기술로 발휘된다. 마지막 장면이 개인의 과거를 규명한다는 지점에서 우리는 'Amor'를 거꾸로 읽으면 '로마'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억이 내포하고 있는 장소로 넘어가기 위해 로마의 대표성을 강조하는 티베르 강으로 나아가는 감독은 사랑과 로마를 병렬적으로 드러냄으로 구조적인 개인의 기억을 장소적인 것으로 마감한다. 그가 영화를 제작하면서 참고한 철학자인 조르다노 브루노는 무한 우주론을 이야기하면서 지구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시간, 우주, 생명체의 무한성을 주장했다. <아모르>는 영화라는 것이 특정 장르로 규정되지 않고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 다채로운 이미지를 조합하면서 무한하게 연계되어 있는 기억의 층위를 불러낸다. 티베르 강에 몸을 던진 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사진, 영화, 매체라는 타임머신은 결국 사랑이란 의미를 가진 아모르에 동시에 도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영화 <아모르>(Amor)

아모르
Amor
비르지니아 엘에우테리 세르피에리Virginia Eleuteri Serpieri

 

출연
라우라 리치올리
Laura Riccioli
오데타 튀닐라Odetta Tunyla

 

제공 서울아트시네마('2024 베니스 인 서울')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01분
공개 제80회 베니스영화제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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