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다리가 내려준 기적 ['바튼 아카데미' #1]
귀와 다리가 내려준 기적 ['바튼 아카데미' #1]
  • 박정수
  • 승인 2024.02.28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규칙은 유지이자 보수이지, 결코 더하지 못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욕심쟁이'일 것이 숙명이다. 지금 여기를 따분하게 여기고, 그 너머를 끝없이 갈구하는 '의지'가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 그렇기에 인간은 '복권 당첨', '휴가', '은퇴', '선거', 심지어 현실에 도래하지 않은 첨단 기술 '다운사이징' 등을 열망하며, 낙관적으로 미래를 꿈꾼다. 

미국 영화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그 바람이 헛된 것이라고 비관해왔다. 그 이유는 어차피 인간은 만족하지 못할 것이기에, 또한 인간의 예측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외부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이로써 실패로 귀결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인의 작품에선 이상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현실에 '남겨진 사람들'(영화의 원제)이 연거푸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페인이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에선 크리스마스의 '풍성한 식탁'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이때, 남겨진 사람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은 '이동'이다. 만약 그들에게 원활한 이동권이 보장되었다면, 결코 남겨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거부당하고 배태된다 한들, 어떻게든 발과 다리로 뒤쫓아 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이동권이기 때문이다. 그 힘은 도입부부터 나타난다. 성탄절을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는 성가대의 모습이 포착되는데, 이들의 화음에는 약소한 문제가 있다. 이윽고 지휘자가 부조화를 바로잡아 화음은 아름다워지고, 이후 페인은 영화감독에게 주어진 이동권인 '편집'을 이용하여 어딘가로 건너간다. 신성한 빛을 계시하여 캄캄한 밤을 몰아낸 '베들레헴'의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으로 말이다. 즉, 도입부의 이동은 아름다움을 열어젖힌다. 그렇다면 남겨진 사람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바로 '심미성'이다.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의 배경인 바튼 아카데미는 자손에게 권력과 부를 세습하고자 하는 부르주아지들이 선택하는 명문 사립학교다. 학생 대부분은 백인이고, 유색인종 학생은 성가대의 흑인 소년, 인도계 학생, 한국인 유학생 예준(짐 캐플란)에 그친다. 또한 1970년 당시 부르주아 및 쁘띠 부르주아일 수 없었던 흑인들은 청소부, 관리인, 조리사 등 백인들을 부양하는 프롤레타리아로 학교에 존재한다. 여기서 이동이 허락된 인종은 백인이다. 성가대 시퀀스 이후,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바튼 아카데미의 입구가 담긴 '롱숏'이 이어진다. 그 속을 거닐고 있는 백인 학생들은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누군가는 신나게, 누군가는 안온하게 길을 걸으며 카메라가 포착하는 혹독한 설경 너머로 멀어진다. 앞선 도입부를 생각해봤을 때, 이들은 춥고 서늘한 프레임을 떠나 따스하고 정겨운 차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학생들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게끔 길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치우는 청소부 대니(나힘 가르시아)는 '클로즈업'되며 붙잡히고, 삽에 한가득 모인 눈을 버리기 위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에게 허용된 운동은 오직 빗자루질뿐이다. 조리실에 발이 묶인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또한 창문을 바라보지만 절대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없다. 메리의 아들 커티스는 사실상 유일했던 흑인 '바튼맨'이었지만, 학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학으로의 이동이 제한되었고, 강제로 끌려간 전장에서 전사하고야 말았다.

이후 폴(폴 지아마티)의 연구실을 포착한 시퀀스에서, 페인은 사무실을 구성하는 사물들을 흡사 정물화처럼 촬영한다. 사물이 담긴 '필로우 숏'은 대니를 포착할 때 허용되던 일말의 떨림조차 없다. 그 이유는 사물은 자의로 움직여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목적과 편의를 위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동의 권력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백인의 이동을 위해서 유색인종이, 인간의 유용함을 위해 사물이 멈춰 있어야 하는 것처럼, 약자의 이동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교사, 학부모 등의 기득권은 피지배자를 고정시키며 제 이동을 원활하게 보장한다. 가령 털리(도미닉 세사)의 친모(질리언 빅맨)는 새로운 남자(테이트 도너번)와 재혼하였고, 그와의 안락한 신혼여행을 위해 방해꾼이 될 수 있는 아들의 성탄 연휴를 금지한다. 연휴 내내 털리는 따분한 학교에 발이 묶일 뻔했다. 이때 전후가 찰나 동안 겹쳐지는 형식 '페이드인'이 사용되는데, 과거에서 현재로 온전히 이동하지 못하고, 현재에 중첩되는 과거를 가시화한다. 소년에게 기숙학교라는 과거의 숏이 현재, 미래로 스며들며 이동이 제한되는 것이다. 이후 폴과 학교를 떠난 사실이 탄로 나자 친모와 양부는 아들의 이동권을 더 확실하게 박탈할 수 있는 '사관학교'에 보내려 한다.

심지어 영화에서 모두 다 이동하려하면 길이 꽉 막혀서 필히 '교통 체증'이 발생하거나 '추돌 사고'까지 발생한다. 이로써 모두는 자신들의 이상향에서 멀어진다. 2주간의 성탄 연휴에 들뜬 학생들은 모두 다 짐을 싸기 바쁘다. 즉 요리조리 이동하려 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남학생들의 이상을 실현해주는 도구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동하려던 남학생들은 갑자기 발을 떼지 못한다. 모두가 어지럽게 이동하며 서로가 잘 가꿔둔 이상향을 짓밟게 되는 것이다. 다이너에서 '핀볼'을 두고 털리와 다른 남자 손님들이 충돌한 현장 역시 똑같은 사례다. 내가 기대하거나 계획한 시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에 반하는 가치관을 가진 타인을 어떻게든 주저앉혀야 한다.

 

ⓒ 유니버설 픽쳐스

이동이 보장된 부모들은 남겨진 학생들의 발과 시선이 닿을 수 없는 외국을 유랑한다. 헬리콥터를 타고 스키장으로 떠난 네 명의 학생 역시 비루한 기숙학교 너머의 휘황한 풍경과 마주했을 것이다. 페인은 남겨진 학생들의 부모가 머무는 미국 바깥, 네 명의 학생들이 마주했을 스키장 풍경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이 나아간 프레임 외부를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며, 그만큼 이동은 열려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임을 역설한다. 페인이 선택한 35mm 필름의 매체성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에 비해서 아스라하고 흐린 35mm 필름은 그만큼 현재-현실에서 멀어져 다른 시공간을 유영할 수 있다. 그래서 역으로 부동은 절망적인 제한이다. 남겨진 이들에게 가능한 것은 정규 학기의 반복이자, 기껏 가능한 욕망이라 한들 이미 지니고 있던 포르노 잡지, TV 프로의 '재방송'에 그친다. 한때 짜릿한 감각이었다고 한들, 되풀이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감각은 힘이기 때문에 똑같은 세기를 반복해서 자극받으면 '굳은살'이 박여 둔감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로 인한 권태는 유한한 자신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폐쇄적인 사람도 해당한다.

때론 스스로를 거두고 타인에게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페인은 영화 중반까지 '불통'을 부각한다. 폴은 깐깐하다. 성적을 너그럽게 매기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은 불만이 많다. '코넬대'에 가지 못할까봐, 이로써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교칙을 까다롭게 지키는 폴 역시 학교와 제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그만큼 엄격하다. 이들 모두는 제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서 상대에게 토로하기 바쁜 '화자'로 등장한다. 동시에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그들은 상대 의견을 수용하는 '청자'로 절대 변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예배하는 시퀀스가 대표적으로, 신부는 바삐 떠들어대지만 이후 클로즈업되는 그 누구도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다. "너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털리와 쿤츠(브래디 헤프너)는 서로 따지기 바쁘고, 폴은 동료 교사와 신경전을 벌인다. 털리가 아버지(스티븐 손)와 재회한 순간도 마찬가지다. 털리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다움을 기대하지만, 정작 그는 아들의 발화에 집중하지 않으며 편집증에서 비롯된 의심만 늘여놓는다. 즉 이동권이 보장된다고 한들, 스스로의 표상에 갇혀서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 역시 부동을 자처하는 셈이다.

물론 이동권이 보장된다 한들, 모든 이동이 가능하진 않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설정은 폴이 '고대 문명' 교사라는 점이다. 그는 바튼 아카데미와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역사 교사이기 때문에 더 깐깐할 수밖에 없다. 명명백백히 검증이 완료된 과거는 사실이라는 항구에 무거운 닻을 단단히 정박하기 때문이다. 복수 답안이 가능한 현재, 이로써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미래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이동이 항상 아름다움을 연결하지도 않는다. 이동은 '변화'인데,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 욕심이 끝도 없는 인간은 이동으로 인한 변화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고대한다. 폴이 성탄절 파티에서 리디아(캐리 프레스턴)와의 데이트를 긍정적으로 그려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페인의 작품답게 실제로 펼쳐진 현장은 개인의 상상과 늘 딴판이다. 폴이 데이트를 기대한 리디아는 실상 다른 연인과 달콤한 입맞춤을 갖는다.

 

ⓒ 유니버설 픽쳐스

폴처럼 이동이 두려운 인간은 특정 공간으로의 진입을 제한하고 실망을 미연에 방지한다. 바튼 아카데미 연휴에는 체육관으로의 이동이 금지되어 있다. 그 이유는 기어코 헬스장에 뛰어 들어간 털리의 탈골된 어깨, 끔찍이도 고통스러워하는 소년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끌려간 군인은 왼손이 절단되거나 전사하고, 들뜬 마음으로 스티장에 간 쿤츠가 뒤집어진 얼굴로 나타나니, 항구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동을 제한하는 규칙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규칙은 유지이자 보수이지, 결코 더하지 못한다. 우리가 새로운 경험을 개척하기 위해선, 상실을 감내하고서라도 용감하게 이동해야 한다. 털리는 곤히 잠든 폴의 '열쇠 꾸러미'를 가로챈다. 이후 선생 및 학교 관계자만 진입 가능한 여러 공간을 누비고 다닌다. 이때 털리는 먹고 마신다. 즉 규칙을 위반하고 이동하며 자신의 몸 안에 무언가를 '채운다.' 더함과 더불어 존재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한다. 보스턴에 동행한 메리는 자매 페기(주아니타 펄)와 오랜만에 상봉하는데, 그 만남은 메리의 입가에 부재하던 미소를 되찾아주고, 주인 잃은 아기용품과 커티스라는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페인은 이를 형식으로 가시화한다. 영화 초반 급식실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트래킹 숏'은 식사를 하는 학생, 교직원의 얼굴을 광활하게 담아낸다. 즉 이동에 의해서 하나의 숏은 무수한 형태를 가질 수 있게 되는데, 이에 반해 고정된 카메라로 클로즈업한 폴의 얼굴은 다양한 가능성으로부터 단절·고립된다. 비로소 폴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카메라가 트래블링 숏으로 변했을 때, 리디아가 가져다준 크리스마스 쿠키라는 선물과 만난다.

또한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은 귀를 닫았었기에 타인에게 이동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입을 닫고 귀를 열 때, 그렇게 나의 주체적인 이동과 더불어 상대의 이동 역시 존중할 때, 모두에게 이동권이 평등하게 보장된다. 다이너의 핀볼 소동은 모두 다 각자의 규칙만 고집하며 상대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발생했다. 불통으로 인한 대치가 양측의 이동을 제한했고, 이후 힘이 센 성인 남자들이 털리를 압도하여 소년의 이동을 '도망'으로 제한했다. 다행히 폴과 리디아가 중재하여 소통하자 이후 원활하게 걷는 모습이 이어진다. 폴이 털리의 사정을 귀담아듣고 함께 정신병원에 가는 시퀀스도 그렇다. 여기서 기득권이 약자의 이동권을 제한하지 않을 때 만인의 이동이 가능해지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털리가 대니의 청소, 폴이 메리의 감자 깎기를 나눠서 짊어진 흑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었고, 리디아와 메리가 털리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폴이 의견을 청취하여 보스턴 현장학습을 허락한다. 

 

ⓒ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의 결말에서 폴은 교사로서 마지막 권위를 이용하여 털리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자신 역시 인생 2막으로 나아간다. 즉 페인은 인생이 귀와 다리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신작에서도 주인공들이 기대한 '탄탄대로'는 늘 불발한다. 그것이 예측하기 어려운 이동의 필연이다. 동시에 이동은 예기치 못한 기쁨을 안겨다 줄 수 있다. 계획에 없던 헬기의 도착, 파티 및 볼링장으로 이동한 털리가 즉흥 데이트를 즐기는 것처럼, 절망이 확실시된 순간에도 이동은 희망을 계시한다. 즉 우리는 털리가 폴에게 가르쳐주는 '볼링'처럼 경쾌하고도 유연하게 미끄러질 수 있어야 한다. 분명 그 이동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나, 항구성보다 더 짜릿하고 신선한 선물을 보답할 것이다.

[글 박정수 영화평론가, green1022@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감독
알렉산더 페인
Alexander Payne

 

출연
폴 지아마티
Paul Giamatti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Da'Vine Joy Randolph
도미닉 세사Dominic Sessa
캐리 프레스턴Carrie Preston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3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4.02.21.

박정수
박정수
예술은 현실과 차별화된 고유하고도 독립적인 차원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타 예술 매체와 구분되는 고유한 시각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만의, 오직 영화만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영화는 현실에서 비롯되고, 인간에게 이바지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예술, 인간-영화를 이어내는 교두보와 같은 글을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