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ney+] '킬러들의 쇼핑몰'이 호칭과 명칭의 진부함을 다루는 방법
[Disney+] '킬러들의 쇼핑몰'이 호칭과 명칭의 진부함을 다루는 방법
  • 변해빈
  • 승인 2024.02.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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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어 있으나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의 축"
ⓒ Disney+

지난해 캐스팅 보도 당시 <킬러들의 쇼핑몰>은 강지영 작가의 원작과 동명인 '살인자의 쇼핑몰'로 소개된 바 있다. 제작 과정에서의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여하간 최종적으론 '살인자'가 '킬러'로 수정된 제목이 되었다. 그런데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자면 인물들이 살인자와 킬러 중 무엇으로 불리는가는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 주인공 정진만(이동욱)을 포함해 그의 동료들이 소속된 ‘바빌론'은 살인 청부업을 일삼는 용병 회사이고, 어떻게 불리든 그들이 살인을 저지른단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진만의 죽음 후 그의 조카 정지안이 영문 모른 채 살해 위협을 받는다는 중심 설정에서도 살인 행위 자체를 고려하자면 두 명칭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인물들이 ‘킬러'가 되어야 했다면, 이 명칭의 변화는 드라마가 인물들의 살인에 자의가 개입되어 있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청부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인물에겐 근로자로서의 자아가 덧씌워져 있다. 굳이 따지자면 업(嶪)이라기보단 직(職). 살인을 경제 활동으로 삼는 ‘킬러'와 자기 뜻에 따라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살인자'를 구분하길 요청한다. 그러므로 <킬러들의 쇼핑몰>은 인물들이 어떤 이유에서 용병이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고용된 존재이며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개인적인 이유로 일 도중 누군가를 죽여선 안 되지만 개인적인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위험수당을 따져 물어야 하고 무기형 로봇이 등장하자 괜스레 대화의 위에 ‘실업'을 올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르물의 리얼리티를 결정짓는 요소가 (스펙터클이 강조된 매끈한 기표를 덜어내고) 인물의 사소한 지점, 생활의 질감을 그대로 남겨두는 쪽으로 변화된 지도 오래다.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쾌감보다 인상적인 건 정진만과 정지안, 두 인물의 시간이 어긋나있단 점이다. 두 인물은 동시간대 만나지 못한다. 극은 정진만이 자살했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하고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던 정지안은 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귀향한다. 그들이 함께 존재하는 건 과거의 시간 분이다. 무엇보다 그 과거에서조차 그들은 서로 핏줄로 연결되었다 뿐 하나의 집에는 두 개의 생활반경이 존재한다.

 

ⓒ Disney+

<킬러들의 쇼핑몰>은 정씨 성(姓)으로 묶인 혈연 기반의 계보가 쌍방향으로 작동하게끔 배치한다. 먼저, 정진만에서 정지안으로 이어지는 축. 정진만의 과거가 현재를 막강하게 휘어잡는 이 드라마에서 또 하나 드러나지 않는 건 정진만이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용병이 되었는가이다. 이권 감독은 원작과 달리 시리즈에서 정진만의 과거를 더 보여줬다고 말하지만, 그의 과거는 그의 삶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정진만의 과거는 정지안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쓰인다. 과거 바빌론에 베일(조한선)이란 인물이 합류하면서부터 정진만이 이끌던 팀은 서서히 와해하기 시작한다. 베일은 상부 지시를 무시하고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까지 마구잡이로 살해한다. 그는 살인 행위를 즐기는 것이다. 문제는 베일을 저지하려던 정진만 또한 자신의 판단이 시키는 대로 그를 살해하려다 실패한다.

<킬러들의 쇼핑몰>이 더 강조하는 쪽은 살해의 실패에 있다. 베일 역시 정진만의 일가족을 모조리 살해하려다 실패한다. 정지안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권 감독이 강화한 정진만의 과거는 신분 세탁하고 민간인처럼 살 것인가, 혹은 살인을 저질러 정진만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서 정지안이 후자를 택하게 된 필연적 이유를 만든다.

정진만의 일 아닌 살인을 둘러싸고 제기된 물음은 오래간 개방된 채 방랑하다 정지안의 문제로 옮겨붙는다. 단지 정진만과 혈연으로 이어져 죄 없이 죽을 위기에 처해진 정지안에겐 바로 그 이유에서 면죄부가 주어진다. 정지안은 살인이란 행위에 담긴 무언가를 고심하기보단 상황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적극적으로 표출할 뿐이다. 정지안이 극심한 두려움을 표하긴 하지만, 그것은 자기를 죽이려 달려드는 의문의 존재들에 대한 원초적 반응이지 그 자신이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을 죽이는 행위 자체에 대해 가지는 윤리적 문제로 집약되진 않는다. 그러니 극의 절정에서 정지안이 이성조(서현우)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 그녀가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인가는 큰 갈등 거리가 아니다. 정진만이 용병이 된 과거는 지워져 있지만 정지안이 살기 위해 총을 드는 이유는 구체적인 명분이 주어진다. ‘혈연'은 애초에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로 작동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킬러들의 쇼핑몰>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해당하는 살인 수단과 방법이다. 실질적으로 이 드라마의 정체성은 제목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살인에 사용되는 도구와 그것 활용법에 있다. 그런데 지하 벙커인 ‘쇼핑몰'의 무기는 철저히 봉인되어 있다. 정지안은 화려하고 성능 좋은 살인 무기들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스스로 공간과 사물을 이용해 설계한다. 그때마다 정진만의 과거 목소리가 오버랩되며 돕는다. "잘 들어, 정지안"하고 말하는 주체가 정진만에서 정지안 스스로에게로 이행하는 흐름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정진만이 종결하지 못한 악연이 혈연의 맹목적인 연결로, 곧 불운으로 유전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 Disney+

연결되었지만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의 축.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정진만'과 ‘정지안'이라는 인물의 이름이다. 액션/스릴러/누아르 장르물에서 보호자 및 피보호로 얽힌 관계는 사실상 호칭으로 모든 복잡한 이해관계가 단번에 정돈된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아빠, 오빠, 남편에서 아저씨라는 호칭에서 담론적인 흐름과 함께 등장한 엄마와 언니까지. 호명 대상인 이들은 호출자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서 극을 이끌곤 한다. ‘삼촌'은 이 계보 안에 등장한 또 다른 보호자이다. 하지만 정지안이 그를 삼촌이 아닌 "정진만"하고 칭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자동적으로 "정지안"이란 이름을 의식하게 만들고 그들을 독립적인 하나로 이해하게 만든다. 극의 말미 정진만의 자살이 위장이었음을 알리며 다시금 정지안과 재회하게 만들 때, 그의 귀환으로 하여금 분명해지는 건 독립성을 갖추고 스스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성장담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일과 다름없다는 그 깨달음까지도 정지안 스스로 알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이 의미 있는 건 단지 새로운 여성 킬러(캐릭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어서라기보단, 그 과정을 통해 정진만의 지워진 과거가 윤곽을 드러내어서다. 두 개의 이름은 ‘가족'으로 단일화되기보단 동료, 같은 시간을 걸어온 존재로 나란히 발음된다.

그러므로 정지안의 살해된 부모를 대신해 그녀의 법적 보호 대상이 된 정진만,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 ‘애틋함'이란 단어는 다소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애틋해 보인다면 도리어 그들 각자에게 달라붙은 기구한 사연과 결코 끈끈히 달라붙지 않는 거리감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시즌제를 겨냥한 다소 진부한 결론이라 할지라도, 정진만의 회생에 일말의 감정이 일어난다면 두 사람이 근사한 말을 건네거나 그럴싸한 포옹 하나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장르적 긴장은 그들을 다짜고짜 한 프레임으로 묶어내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얼굴의 수행을 각각의 프레임에 담을 뿐. 한 존재를 안다는 것, 그 존재에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은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봄'으로써 가능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 거리감을 끝내 유지하는 절제력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 Disney+

킬러들의 쇼핑몰
A Shop for Killers
연출
이권, 노규엽
각본
이권, 지호진

원작
강지영

 

출연
이동욱
김혜준
서현준
조한선
박지빈
금해나
이태영
김민

 

제공 Disney+
제작연도 2024
상영시간 8부작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4년 1월 17일 ~ 2월 7일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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