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영화 편지 임정환] '국경의 왕' 장르와 구조로 빚은 변증법적 영화
[한국독립영화 편지 임정환] '국경의 왕' 장르와 구조로 빚은 변증법적 영화
  • 김민세
  • 승인 2024.02.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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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홍상수, 그 너머를 향하여"
ⓒ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

홍상수가 <오! 수정>(2000)을 시작으로 반복과 차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진부하다 느껴질 때쯤, 가장 간결하고도 소박한 형식으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라는 어쩌면 당대의 한국 영화 중 제일 기이한 구조의 영화를 만든 이래로, 많은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은 한 편의 영화에서 또는 자신이 만든 일련의 영화에서 '구조'라는 형식이 줄 수 있는 어떠한 감흥에 대해 탐구했다. 이를테면 장건재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장우진의 <춘천, 춘천>(2016), 장률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이 그 적절한 예다. 혹은 이광국의 <꿈보다 해몽>(2014), 정가영의 <하트>(2019)의 이름을 꺼낼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포스트 홍상수'를 꿈꾸는 수많은 감독 지망생과 영화과 학생들의 습작들이 포함될 수도 있겠다.

물론, 이들의 영화적 개성이나 작가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포스트 홍상수'라는 임의적인 말로 정의 내리거나, 그의 아류들이라고 깎아내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홍상수는 이들의 출발지일까, 도착지일까'와 같은 질문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섣부르며 무의미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독립 영화'라고 불리는 여러 영화제 영화들과 학생 영화들 안에서 경향 내지는 자동화된 방법론으로 불릴만한 양상이 포착되고 있음은 분명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영화관이나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며 종종 홍상수의 이름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순간에 자주 마주하지 않았는가. 이때 홍상수는 타자에 의해 자동화되지 않는 치밀한 작가라는 점에서 떠받들어야 하는 우상이 되거나, 한국 영화의 한 영역을 수많은 반복과 복제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척결해야 하는 이단아가 되곤 한다. 강한 어조의 표현이긴 하지만,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 관객이 홍상수를 생각하는 방식임을 언젠가는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

임정환의 <국경의 왕>은 얼핏 보면 흔히 말하는 '홍상수 영화'라고 여겨질 수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앞선 목록들과 결을 함께 하는 듯하면서도 홍상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괴상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보기 드문 한국영화다. <국경의 왕>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여행 영화이고, 남녀의 재회를 다루는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며, 마약 유통 범죄를 소재로 한 누아르와 복수극의 틀을 가진 장르 영화이기도 하고, 일상으로부터 영화를 만들려는 창작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때로 어이없는 웃음을 남발하게 하는 장난스러운 코미디의 탈을 쓰다가도, 이상하리만큼 서늘하고 애처로운 순간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느슨하게 결합 된 2부의 구조(1부 '국경의 왕'과 2부 '국경의 왕을 찾아서'), 또는 세 가지 이야기(동철이 상상한 영화, 유진이 상상한 영화, 그리고 뒤늦게 유진과 동철의 관계가 밝혀지는 현실)라는 구조로 가능해진다.

<국경의 왕>은 각 이야기의 톤앤매너를 급전시키면서도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잃지 않고 구조라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리한 수작이다. 다섯 명 남짓한 스태프로 촬영된 초저예산 영화에 따라오는 기술적 결함과 조악함 또한 이 작품에서는 기이한 에너지를 발휘하며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이상한 장르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 기이한 에너지는 앞서 말한 영화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며 한국독립 영화의 새로운 '작가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국경의 왕>에서 가장 난감해지는 순간 중 하나는 1부 '국경의 왕'에서 동철의 영화가 유진의 영화로 넘어갈 때이다. 그 전환은 어떠한 맥락과 암시도 없이 갑작스레 이루어지며 그 경계조차도 모호하다. 3년 만에 재회한 후배 유진과의 만남을 담고 있는 동철의 영화는 거리 위의 대화 중간에서 끊어져 버린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범상치 않은 오페라 음악이 흐르고 세르게이와 혁기는 인터폴과 보안 같은 단어를 운운하며 주인이 죽은 물건을 옮기는 비밀스러운 작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유진의 영화로 전환되면 동철은 조금 전까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던 혁기와 만나 이전부터 알던 사람인 듯 편하게 대화한다. 오히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대화를 나누던 유진은 마약을 운반하는 정체 모를 운반자로 등장하는데 역시 동철은 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영화는 이렇게 각자가 상상하는 영화 사이의 간극과 교착점을 1인 2역의 배역을 통해서 거칠게 설정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창작자가 경험한 세계와 창작자가 상상한 세계 사이의 관계를 조심스럽지만 명료하게 전환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한여름의 판타지아>와는 닮았으면서도 엄연히 다른 방식이기에 흥미와 호기심을 넘어선 혼란스러움을 더한다. 더불어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영화라는 상상을 현실에 따라오는 주석 내지는 양태로서 설명적으로 기술했다면(1부에서 영화감독 태훈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2부에서 태훈이 상상한 영화가 따라오는 구조이다), <국경의 왕>은 반대로 난데없이 튀어나온 두 가지 이야기를 제시한 뒤 그 이야기의 탄생 배경을 거꾸로 추적하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의 내막이 설명되는 2부 '국경의 왕을 찾아서'를 보기 전까지는 근거가 불충분한 추측과 당혹감의 연속으로 이 영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
ⓒ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

앞서 말했듯이, 동철의 영화에서 유진의 영화로의 전환은 장르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철의 영화가 유럽 타지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소박한 일상과 우연적인 만남을 다루는 영화라면('홍상수 영화'에서 익히 봐온 것들이다), 유진의 영화는 누아르와 코미디를 넘나드는 이상한 장르적 혼종 같은 B급 영화이다. 기본적인 서사의 틀은 범죄와 추격, 그리고 복수로 이루어진다. 동철은 군대 선임인 혁기의 사업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와서 세르게이의 지시에 따라 마약을 운반하기로 한다. 그때 마약을 잘못 사용한 혁기가 실명하게 되고 사업이 위기에 처하자, 동철과 혁기는 세르게이로부터 도망친다. 동철은 실명한 혁기를 배신하는 듯하지만, 결정적인 동철의 도움으로 혁기는 세르게이를 암살하며 복수를 완성한다.

이러한 전형적인 서사의 장르성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뜬금없이 변주된 기호들로 상쇄된다. 일반적인 안약과 다를 것 없이 생긴 조악한 마약의 외관, 그리고 심각한 범죄에 관한 대화 중에 진행되는 고스톱판, 마약 거래가 진행 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개방된 거래 장소와 등장인물들의 과도하게 어설픈 행동들, 어딘가 의심쩍고 모자란 세르게이의 사업과 그것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는 동철과 혁기의 모습들이 그러하다. 특히 약효를 시험해 보겠다며 마약을 눈에 넣다가 실명해 버리는 혁기의 황당한 모습을 담아내는 10분가량의 롱테이크는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기어이 끝까지 응시하며 갈등의 진화를 오롯이 담아낸다.

1부 '국경의 왕'에 무심하게 던져진 인물들과 장르적 기호들의 미스터리는 2부 '국경의 왕을 찾아서'에서 밝혀진다. 유진은 동철을 사랑하고 있고 동철은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한다는 것. 세르게이와 혁기는 단지 인공눈물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우크라이나에 사업차 방문한 사업가라는 것. 유진은 영화를 위한 글을 쓰고 있고 그것이 굉장히 고통스럽다는 것. 1부의 대담한 이야기가 갖고 있던 미스터리의 겹들이 2부의 소박한 일상의 디테일들로 서서히 벗겨질 때, 발칙한 상상에 웃음 짓게 되다가도 왠지 모를 처연함에 쓴웃음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유진과 동철의 발화 사이에 끼어드는 1부의 이미지들, 즉 2부의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1부의 영화적 캐릭터의 몸은, 그리고 그것과 불화하는 2부의 현실의 몸이 만드는 간극은 영화라는 상상의 환상성과 영화적 몸들의 유령적 특성을 매정하게 들춰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부로 플래시백 하는 이미지들은 '그때의' 몸들을 되살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몸들이 소멸하고 있는 '지금을' 지켜보는 것이기도 하다.

 

ⓒ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을 비롯한 작가주의 비평가들이 언급하는 '작가'가 “특정한 장르의 전통에 놓였을 때 창조적인 자유를 펼치는 자”라면 임정환은 한국독립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작가'이다. <국경의 왕>의 미학적 긴장감은 특정 장르와 작가 사이의 진동으로만 발생하는 것뿐만 아니라, 롱테이크로 무색하게 흐르는 하나의 숏 안에서, 또는 구조 안에서 장르의 기호들이 서로 뒤엉키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경의 왕>의 형식(숏과 구조)은 그야말로 '변증법적'이다. 이러한 변증법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임정환은 그 쉽지 않은 것을 해내고야 만다. 2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민에 빠져 어딘가를 하염없이 응시하는 김새벽의 얼굴은 그 상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임정환의 얼굴이며 <국경의 왕>의 얼굴, 또는 한국 영화의 변두리에 놓인 초상이다.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 minsemunji@ccoart.com]

 

ⓒ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

국경의 왕
The King of the Border
감독
임정환

 

출연
조현철
김새벽
정혁기
임철

 

배급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1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9.02.28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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