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맨' 개와 인간의 앙상블에 담긴 무심함과 비상함
'도그맨' 개와 인간의 앙상블에 담긴 무심함과 비상함
  • 변해빈
  • 승인 2024.01.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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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이라는 비극의 강력한 매개체"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라마르틴의 매력적인 문구("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부터 셰익스피어 비극에 이르기까지, <도그맨>이 인용하고 재구성한 요소들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유년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한 한 인생의 맥락이 어떤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을 겨냥하고 있는지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그런 것들이 그다지 고유한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극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문장들, 이를테면 인간보다 나은 개, 그런 ‘개의 유일한 결점이 인간을 믿는 것’이란 더글라스의 대사는 의미심장한 선언으로 사용된 그다음, 영화 속 상황과 일차원적으로 대입된다.

또한, 4년간 아이를 개 철창에 가둔 한 가족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도그맨>의 사건 처리 방식, 폭력성을 보여주는 정황은 극적인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시종 과잉되어 보인다. 어린 더글라스에게 가해진 아버지와 형의 폭력이든, 동네 갱들의 비상식적인 만행이든 애초에 서사를 요구할 만큼의 이해 대상은 아니(여야 겠)지만 해당 캐릭터들이 살인적 폭력과 죽음을 보여주는 데에만 몰두한다는 점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것이 의도라기엔 뤼크 베송의 세계는 늘 감당 가능한 정도를 넘어선 불행을 전해왔고, 지금의 관객에게 그런 불행이 기본값으로 받아들여지는 나태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 불행한 인생에 대한 감응을 끌어내기란 무척 까다로웠을 것이어서다.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도그맨>의 인상적인 지점, 더글라스로 분한 케일럽 랜드리 존스와 무려 124마리의 개가 선보인 앙상블을 떠올려 본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말로 그 앙상블을 형성하는 게 아니다. 예상 외로 정서적인 차원의 스킨십을 나누는 장면도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눈짓을 주고받는다. 보석을 훔치고 살인을 저지를 때도, 적절히 훈련된 개들은 더글라스가 보낸 은밀한 신호를 읽어내고 반응할 따름이다. 영화엔 더글라스와 개들 사이에 어떻게 이러한 긴밀함이 생겨났는지를 자세히 묘사하는 대목도 없다. 정확히는, 그저 투견으로 길러진 개들과 학대받는 아이의 공통점이 ‘본능’적으로 그들 사이 무언가를 발생시켰을 것이라는 게 전부다. 그리고 관객은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혹은 그러기 쉽지 않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도그맨>의 허술한 서사를 지적하는 지점 또한 인간 캐릭터를 향하는 것이지 개의 헌신 또는 구원을 문제 삼지 않는다(생애사가 반영된 더글라스의 진술이 지닌 파편적 특성과 연관되어 인물 위주의 서사 전개의 느슨함은 특히 강화된다). 단적인 예로, 더글라스와 수감된 그를 담당하게 된 정신과 의사 에블린의 관계 설정.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에블린이 더글라스를 대하는 태도, 더글라스가 에블린을 대하는 태도. 직업의식이나 윤리를 넘어선 경청과 말하기. 판단과 이해 이상의 교감. 그들이 아무리 서로에게서 자신의 고통과 유사한 형상을 알아보았다고 해도, 그 알아봄을 설명하기 위해선 본능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무언가 요구된다.

에블린이 지닌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 법적으로 접근 금지 처분을 받은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홀로 양육하는 젊은 여성(에블린은 아이를 임신한 채 집을 나간 더글라스의 엄마를 어쩔 수 없이 떠오르게 한다)이라는 설정 같은 것. 이는 극의 마지막, 흡사 더글라스를 보좌하다시피 존재하던 도베르만이 에블린의 집 주변을 수호하려는 낌새를 내비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물론 뤼크 베송은 꾸준히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받은 인간들을 혈흔과 광기가 난무한 현장에 보내놓고선 불가능하고 ‘비정상적’인 관계에 집착하고 욕망하게끔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발생하던 치밀하거나 위험한 관계를 둘러싼 함의는, 적어도 <도그맨>이 그려내는 개와 인간 사이에선 그다지 쓸모없게 느껴진다. 여러 장치로 자기 본모습을 가린 인물의 얼굴, 무심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개의 얼굴이 상호적으로 부딪히는 쇼트의 연결이면 충분하다고 여기게끔 만든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공교롭게도 개봉/상영 시기가 맞물린 최근 몇 편의 영화들에서도 개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었)다. 인간 속에 내재된 야만성을 지적하기 위해서든(예컨대 ‘짐승만도 못한’ 인간), 인간 사이에서 불가능한, 곧 규정적인 이해관계가 불필요할 때 가능한 지점을 보여줌으로써 구원의 맥락을 이야기하든, 영화는 동물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저마다의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데 신중을 기한다. 그런데 <도그맨>의 동물성에 대한 이해는 앞서 언급했듯 지극히 단순하다는 이유에서 독특하다. 뤼크 베송이 개들에게서 요구하는 지점, 말하자면 개들이 어떤 사건에 개입되는 방식, 그리고 개들을 화면 안에 비출 때 발생하는 적극성은 인간(더글라스)과 동등하지 않다. 개들은 어떤 동선과 움직임에 대한 합의된 계획을 따르긴 하지만 개들에게서 주체적인 성격이나 감정을 읽어내게끔 하는 얼굴을 찾기 어렵다.

어린 더글라스가 아버지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경찰을 기다릴 때, 한 마리의 개는 경찰차를 찾아 동네를 헤매고 더글라스 곁에 남은 개들은 상처를 핥으며 에워싼다. 더글라스의 생애에 있어, 개의 의미가 자리 잡는 대목이기도 한데, 문제는 이때 교차 편집되는 각 장면의 포커스는 개들의 중요한 움직임을 잠시 따르다가도 이내 경찰과 더글라스, 곧 인간에게 옮겨간다. 개들이 제공하던 비상함과 구원의 움직임은 이를 초과하는 더글라스의 충격, 경찰들이 자아내는 분주함 바깥으로 밀려난다. 개들을 찍은 카메라는 차라리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로써 <도그맨> 속 개의 연기에는 인간과 흡사한 차원의 감정적인 요청이 없다. 어쩌면 의사 에블린의 시점에서 재구성된 것으로도 이해되는 과거 장면들에서 그 포커스가 기울어진 쪽은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무엇이건, 더글라스를 보좌하는 도베르만의 정면은 극 중 여러번 등장하지만, 오히려 이 얼굴은 관객이 기대하는 바와 달리 단순하기에 믿음을 준다(개 얼굴 속 의중을 알 수 없다는 특징은 스릴러의 분위기를 자아낼 뿐이다. 데리다의 고양이와 같이 인간(성)을 발가벗음 속에 넣는 정동적 마주침의 순간은 더글라스의 진술(말)을 통해 대체된다).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더글라스가 자아내는 과잉된 감정 분출은 개들과 철저한 대비를 이루고 영역을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온전한 의미를 가진다.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그러므로 더글라스의 생애를 거론하는 데 있어 개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지만, 이들은 어느 정도 분리된 종일 수밖에 없다는 데서 도그‘맨’의 이야기는 두드러진다. 말하자면 <도그맨>은 더글라스가 어떤 인간적 결핍과 욕망의 굴레와 마주하며, 고통으로 점철된 생애로부터의 생존 본능을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본능이 억눌리거나 내 본능이 시키는 것의 문제.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 앞에서 엄청난 절망감과 자기혐오를 느낄 때, 드랙퀸 공연장에서 ‘비극’ 속 인물들을 노래하던 순간의 강렬한 에너지. 더글라스가 인간들의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랑, 감정적 유대의 문제는 감춤의 과잉된 얼굴 형상으로 매 장면 강하게 표출된다. 수백 마리의 유기견을 이끌고 어둑한 밀실을 전전하면서도 예술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자기 삶을 마주하려던 이 남자는 극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불행, 고통과 충돌하길 택한다.

엔딩의 더글라스는 마비된 두 다리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비틀거린다. 그리고 쓰러진다. 수백 마리의 개들이 신(십자가)의 앞에 쓰러진 더글라스의 곁을 지키고 선 순간의 전율은 불행, 고통에 오차 없이 맞아떨어져 가는 생애로부터 스스로 걸어 나가야만 하는 이의 ‘숭고한 비극’을 그저 거기 있는 것으로써 함께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도그맨
DogMan
감독
뤽 베송
Luc Besson

 

출연
칼렙 랜드리 존스
Caleb Landry Jones
조조 T. 깁스Jojo T. Gibbs
크리스토퍼 덴햄Christopher Denham
그레이스 팔마Grace Palma

 

배급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1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4.01.24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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