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당신은 멸망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NETFLIX]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당신은 멸망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 이상용
  • 승인 2023.12.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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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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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에스마일 감독이 루만 알람이 2020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옮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뉴욕에 거주하는 한 가족이 근교 해변가 빌라를 렌트하고, 휴가를 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평화로울 것만 같은 가족들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난다. 해안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거대한 유조선이 다가오더니 파라솔을 펼쳐놓은 모래사장으로 돌진하고, 집 밖에서는 사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급기야 인터넷을 비롯해 자동차 GPS가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다. 급기야 빌라의 주인이라는 흑인 부녀가 한밤중에 현관문을 두드린다.

보통의 가족이 겪는 일상의 균열은 이런저런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흑인 부녀의 수상함은 조던 필의 <겟 아웃>(2017)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빌라의 주인인 스콧 역의 마허셜라 알리는 <그린 북>(2018)의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배우이다. 그런 탓에 흑인 부녀의 등장은 <겟 아웃>의 이미지와 다를 거라는 예상을 갖도록 만들기도 한다. 샘 에스마일은 동시대 영화의 여러 이미지들을 흥미롭게 구겨넣는다. 이들에게 일어난 사태가 미국 혹은 세상의 파멸로 치닫는 양상은 넷플릭스의 화제작인 애덤 메케이의 <돈 룩 업>(2021)을 떠올리게도 한다. 특정한 집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도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아폴칼립스의 서사를 혜성이나 외계인과 같은 외부적 존재로 향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내부적인 파멸을 다룬 점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나선다.

개인적으로는 한 집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고전적 아포칼립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연상시킨다. 좀비 비슷한 것이 나온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심지어 '시체 3부작'의 첫 영화에는 '좀비'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것은 사슴이나 홍학이 전부이다. 하지만 집 안에 갇힌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 서로에 대한 불신이 일으키는 공포 그리고 백인 아만다와 흑인 스콧 사이에 피어나는 감정은 누가 뭐래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보여준 영향력이다. 좀비들이 창과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은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는 이 작품의 대표적 장면인데 사슴 떼에 둘러싸인 두 여성(아만다와 루스)이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소리지르는 5부의 장면은 이러한 장르의 영화들에서 자주 경험하게 되는 특유의 고립감과 공포의 발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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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많은 영화적 이미지가 연상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새롭게 정립하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정도로 탁월하지는 않다. 다만, 현실 가능한 세상의 파국에 대한 시나리오를(특히 미국인이 지니고 있는 내면적 공포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영화적 이미지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유조선이 해안가로 밀려오고, 여객기가 수직 낙하하는 장면들은 포스트 9.11의 공포를 또 한 번 영화적으로 재현한다. 이러한 테러의 가능성에 대해 아랍권은 물론이고(공중에서 내리는 삐라의 문구를 통해), 사이버 테러를 벌인 국가적 위치로 한국과 중국이 언급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인물들의 대화 중에 살포된 삐라의 초기버전 중에 한글로 적힌 것도 보았다는 진술이 등장하는데(중국어인지 확실치 않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느낀 뉘앙스는 한국을 직접적으로 향한 것이기보다는 현재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에 대한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 한국을 물타기하는 정도로 곁들이는 것으로 읽힌다. 조금 더 나아가면 한국 혹은 한글에 대한 언급은 K팝으로 대변되는 '한국어'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미국의 현실(문화) 속에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버 테러로 인해 벌어지는 몇몇 장면은 꽤나 흥미롭다. 유조선이 해안가에 무단으로 상륙하고, 비행기가 추락을 하고, 전기자동차의 대명사인 테슬라 자동차가 완전자율주행으로 도로를 향해 달려오다가 자신들끼리 부딪혀 파손된 채 서 있는 장면(이에 대해 앨런 머스크는 직접적으로 테슬라 자동차에 대한 항변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올리기도 했다)은 '사이버 테러'의 재난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누리는 문명의 이기가 언제든 공포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섬뜩하다. 한 마디로 '언캐니'(uncanny)를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여럿 등장한다. 프로이트의 용어이자 그가 쓴 글의 제목이었던 운하임리히(Unheimliche)를 영어로 옮긴 언캐니는 국내에서 '낯선 두려움'으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글의 맥락을 따라 제대로 옮기면 '낯설어지는 친밀함'에 가까울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의 힘은 뉴욕에 살던 한 가족이 도시의 주변에서 휴식을 보내던 중 사방에서 몰려드는 '친밀성의 공포'를 묘사 것에 있다. 영화의 제목인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서 '비하인드'에 해당하는 것은 바로 일상의 '이면'이 드러나는 언캐니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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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속에서 바라보는 것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 관한 여러 해석이 늘어나겠지만,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43분 53초부터 시작되는 인물들의 시선을 교차편집하는 일련의 몽타주다. 스콧의 딸 루스가 집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비행기를 타고 오는 자신의 어머니가 무사히 도착할지를 걱정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집 밖으로 나간 인물들의 세 가지 시선은 파국을 바라보는 각자의 방식을 드러낸다. 한 지붕 아래 모인 두 가족은 하룻밤을 보낸 뒤 휴대폰은 여전히 연결되지 않고, 지금 일어난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에단 호크가 연기하는 백인 가족의 아버지 '클레이'는 신문을 사오겠다는 이유와 함께 자동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그가 신문을 사러간다는 이유도 나름 흥미롭다. 나중에 스콧과 함께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던 인테리어 업자 '대니(케빈 베이컨)'를 찾아갔을 때, 그는 클레이를 향해 신문의 1면만 읽으니 세상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신문 혹은 신문의 1면이다. 그것은 이 세계의 정보량과 속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니의 경우처럼 음모론이나 소문에 덜 휘말린다는 강점도 있다. 이처럼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파멸의 현재를 그려낸다.

무엇인가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스콧'은  2,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이웃 헉슬리의집으로 향한다.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하는 클레이의 아내 '아만다'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에 뜬 긴급 문자를 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메시지는 금방 사라져 버린다. 아만다는 자신이 본 것을 공유하는데 두 개는 정전 소식이고, 하나는 해커가 배후일 거라는 내용었다. 해커가 배후라는 소식에 스콧은 '사랑해, 버그'처럼 별거 아닐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2000년에 있었던 악성 바이러스의 이름이다. 사랑해라는 이메일을 클릭하는 순간 바이러스가 컴퓨터를 덮친다. 수십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필리핀 십대 둘이 벌인 짓이었고, 이번에도 그와 같은 해프닝일 거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등을 돌린 채 커피를 젓는 모습은 정반대의 뉘앙스를 풍긴다. 그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지만 제대로 말하지 않으며, 나중에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했다고 해도 명쾌해지지는 않는다. 그가 아는 것의 확실성은 정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판단한 여러 추정치일 뿐이다. 스콧의 해석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지만 명백하지는 않다. 그 역시 정치적 권력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인물이기보다는 주변에서 정보를 얻어듣는 인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할수록 아만다의 의혹은 오히려 커져만 간다.

또 한 명의 주요하게 보는 인물은 클레이의 막내딸 '로즈'다. 로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별장의 정원에 사슴들이 모여있는 것을 본다. 무엇인가 경이로운 사태가 일어났고, 이 사태의 배후가 궁금하기보다는 이 사태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호기심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십대인 동시에 '미드' 마니아인 로즈의 태도를 보여준다. 인터넷이 차단되자 프렌즈의 후반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답답해한다. 하지만 일어나는 현실에 대해 '웨스트 윙'과 같은 미드를 언급하면서 이 사태가 무엇인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주변에서는 소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지만, 어느새 로즈는 독자적으로 행동을 하며 숲속을 모험한다.

상대적으로, 스콧의 딸인 루스는 로즈가 열어놓은 프렌즈 화면을 보고 철지난 노스탤지어라며 비판한다. 루스는 냉정하고 현실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지만 동시에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클레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아버지 스콧에게는 클레이가 자신을 유혹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정작 자신이 클레이에게 던졌던 질문은 제자들에게 유혹을 느꼈는지였으면서 말이다. 루스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인물인 동시에 현실적인 척 하면서도 가장 두려움을 표출하는 인물이다. 지하실에서 아버지 스콧과 함께 있을 때 "만약 세상이 망하면 누구도 쉽게 믿어선 안된다는 거에요. 백인은 특히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루스는 그 누구보다 어머니가 부재를 두려워하면서 어머니를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그에 반해 로즈는 어머니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 이른다). 숲속의 오두막 앞에 사슴들이 다가오자 두려움을 느끼며 어쩔 줄을 모른다. 이를 본 아만다가 달려와 사슴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사슴들이 물러가자 아만다를 끌어안는다. 루스는 '프렌즈'의 세계가 낭만적 거짓이라고 비판했지만, 어쩌면 파국의 현실에서 루스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낭만적 도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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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클레이, 스콧 그리고 로즈를 중심으로 교차 편집되는 세 개의 시선의 묘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시내로 향하던 클레이는 자동차의 라디오와 네비게이션 버튼을 눌러보지만 작동하지 않는다. 스콧은 헉슬리의 집에 도착해 아내와의 문자를 확인하고 연락을 달라고 하지만 문자 자체가 전송되지 않는다. 한편 두 가족의 아이들은 풀장에서 평화로운 오후를 보낸다. 아치는 수영복을 입고 나타난 루스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로즈는 아침에 보았던 사슴으로 인해 쉼없이 숲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도로 한 켠에서 클레이는 낯선 스페인 여자를 만나지만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여자를 뒤로한 채 시내로 향하던 클레이는 삐라를 뿌려대는 거대한 드론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마주한 것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바깥의 현실이다. 그는 대학교수이지만 그의 지식은 파국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이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 차창 밖으로 응시할 뿐이고, 하늘에서 뿌려대는 삐라에 공포를 느끼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도망칠 뿐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차에 붙어 있던 삐라의 아랍 문자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컴퓨터나 구글이 없다면 클레이의 지식은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다.

스콧은 헉슬리의 집으로 들어가 차고를 뒤지던 중 위성폰을 발견한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는 집 앞에 펼쳐진 해변가로 나간다. 그는 모래에 묻혀 있는 시계를 발견하고 들어올리다가 잘려진 팔을 발견한다. 놀라 넘어진 그는 한 시체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해안가 전체를 본다. 온갖 쓰레기 더미가 밀려온 거대한 재난의 풍경을 목격하던 중 하늘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클레이 가족이 보았던 유조선처럼 스콧을 향해 돌진한다.

집으로 돌아온 스콧은 아만다에게 자신이 본 것들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직업은 세상을 지배하는 패턴을 읽는 것이고 그것을 오래하다보면 미래가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패턴은 불안정하고 이상했다. 이것은 필리핀 십대들의 것과 다르다며, 현재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스콧은 정보를 읽는 자이다. 그의 직업은 돈과 관련된 것(주식과 자산)이라고 짐작되고, 미국의 군수산업을 위해 기여했다는 것을 밝히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가 보는 파국의 현실은 협소하다. 그가 해변가에서 시계를 발견하고, 시계를 들어올리자 팔 전체의 조각이 보이며,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은 파편적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읽어나가지만 쉽사리 전체를 통찰하지 못하는 그의 한계를 고스란히 이미지로 구현한다.

스콧은 앞으로 펼쳐질 몇 가지 가능성을 알고 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확신하지 못하며, 그에 따른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는 못한다. 그저 알고 있는 파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추론하고 해석할 뿐이다. 그는 이것이 특정한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의 절차에 따라 삼단계를 거쳐 미국이 붕괴될 것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들은 강 건너 뉴욕의 거대한 폭발을 목격하기에 이른다. 그가 파악하는 순간 이미 현실은 끝장나 버리는 것이다. 

보는 것에 있어서 흥미로움을 주는 인물들은 로즈를 비롯한 아이들(자식들)이다. 로즈는 아침에 사슴 백 마리가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며 숲으로 향하고, 낡은 오두막을 발견한다. 오두막에 들어간 아치는 이곳 창문으로 로즈가 자는 방이 보인다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놀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로즈의 관심은 아침에 본 사슴들이다. 그들의 등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고민하면서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로즈의 시선은 호기심의 시선인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응시하는 시선이다.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점에서 스콧과 유사해 보이지만 스콧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해석하려고 든다면, 로즈는 새로운 볼거리를 쫓는 십대로 묘사된다. 그녀의 말은 주변 사람들을 향해 있기보다는 자신을 향해 있고, 그 폐쇄적인 회로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이것이 새로운 열정인지 아니면 또 다른 탐닉인지는 모호하지만 오빠 아치와는 다르게 본 것들을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가족들 중 누구보다 먼저 집 안에 은닉된 벙커를 발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모두가 불안에 떠는 상황에서 굉음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모두 거실에 모인다. 이들은 클레이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는 밖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 유일하게 들고 온 것은 드론이 뿌린 삐라다. 모두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아들 아치가 게임을 할 때 보았다면서 뒤에 적힌 내용은 모르겠지만 앞쪽의 그림은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의 세계 속한 게임, 인터넷, 드라마 등이 결국 현재 벌어지는 세계의 파국을 설명하는 단초들이 된다. 이 작품은 세대의 차이를 가르면서 게임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게임처럼 펼쳐지는 파국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무엇을 볼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행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의 주요한 방식으로 전달되면서 영화와 현실 사이의 접점을 연결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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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계)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실재(계)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매트릭스>(1999)에서 모피어스가 깨어난 네오에게 건네는 유명한 대사다. 그는 매트릭스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이 말을 던진다. 이 말을 널리 퍼트린 인물 중의 하나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그는 바디우가 『세기』에서 20세기의 특징으로 설명한 '실재에 대한 열정'을 가져오고, <매트릭스>를 비롯한 가상의 현실을 다룬 영화가 어떻게 실재를 보여주었는가를 언급하면서 9.11 테러를 비롯한 일련의 역사적 사건과 실재의 침입을 흥미롭게 뒤섞는다. 책으로 서술한 여러 층위들을 다 서술할 수 없겠지만 국내에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출간한 출판사의 소개들이 개략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9.11 테러 이후 우리는 다분히 미국적 입장을 반영한 '악의 축'이니 '무한한 정의'니 하는 말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테러리즘'에 '이슬람'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하지만 지젝은 그것을 '놓친 기회'였다고 말한다. 우리가 9.11 테러를 통해 진정으로 읽어내야 했던 것은 승자 독식의 안온한 자본주의 체제(그는 이것을 매트릭스에 비유하였다)의 균열 그 자체이다. 지젝이 보기에 9.11 테러는 우리의 '안온한 삶'을 깨뜨리는 '악'이 아니었다. 마치 19세기 산업사회의 몰락을 드러내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처럼,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자기파괴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지젝의 말처럼 "9월 11일, 미국은 자신이 그 일부로 속해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것을 잡지 않았"던 것이다."

한 철학자가 보기에 테러를 통한 균열은 실재의 침입이었지만, 미국(세계)은 깨어나기보다는 또다시 상징(계) 혹은 상상(계)의 이미지를 덧입혀 버리며 안전한 지대로 돌아가 버렸다. 이 사태를 문명의 충돌 운운하며 과거의 프레임을 덧씌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결국 실재의 침입은 지젝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안전한 영화 속에서 '재난과 아폴칼립스와 묵시록'의 형태로만 등장한다. 동시대 영화는 세계(미국)의 파국에 대한 안전상자인 셈이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역시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은 달라진, 상자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순간들이 목격된다. 이 영화를 아포칼립스물에 한정시키면 확실히 부족한 서사의 정보를 느낄 것이다. 정말 사이버 테러가 일어난 것인지, 사건을 벌인 곳은 아랍의 어느 국가나 단체인지, 한국인지 중국인지 등 명확하지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를 실재의 침입을 구현하려고 애쓴 영화로 본다면 두 아버지와 아이들이 보는 것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더 다채롭게 읽을 수가 있다.

교수인 클로이는 여전히 미국의 강건함과 보수성 속에서 실재의 침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며, 흑인이자 데이터를 읽는 스콧은 미국이 공격당할 거라는 여러 가지 예측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이 구체화 되었을 때 빠르게 파국을 예상하는 인물이다. 두 인물이 속한 위치로 보았을 때 대학은 이미 낡은 프레임이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첨단으로 예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스콧이 클로이 이상의 부를 축적한 흑인이라고 해도(해변의 빌라는 스콧의 것이며, 아만다가 시스템을 통해 잠시 빌린 곳에 불과하다. 그것이야말로 인종의 서열이 역전된 미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스콧이 훨씬 더 부의 위치에서 높다는 것을 가리킨다)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비행기를 타고 오다 죽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아내와 돌보아야 하는 딸이 곁에 있는 미국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인종적 불안을 표출하는 인물은 스콧의 딸인 루스이며, 그는 위기의 상황으로 인해 이전의 인종적 계급과 차별이 다시금 재현될까 불안해 한다. 아마도 그녀가 '프렌즈'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미드가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계급의 노스탤지어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클로이의 아들 아치는 포르노와 각종 스트림의 동영상 그리고 게임에 노출된 우리 시대의 십대이며, 현재에 일어나는 파국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파국을 게임으로 즐기는 세대이며, 파국과 게임이 식별되지 않는 인물이다. 다만, 주요 인물들 중 누구보다 자신의 신체에 일어난 실재의 침입을 경험한다. 음파의 공격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치는 자신의 이빨이 빠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어른들은 걱정을 드러내지만 정작 아치는 그다지 아프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이 간극 또한 흥미로운 설정이다.

'프렌즈'의 열독자이자 미드의 애호가이며, 사슴을 비롯한 진기한 볼거리들을 추격하는 로즈에게는 이 파국이 새로운 미드의 한 페이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재의 열정을 따라 그것이 무엇인지 홀로 모험해 보지만 결국 그녀가 도달하는 것은 거대한 미드의 창고다. 흥미로운 것은 로즈가 사라진 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빌라로 홀로 돌아온 로즈는 허기가 심하게 진 듯 음식을 먹다가 벙커를 발견하고 그 누구보다 먼저 들어간다. 이곳에는 그토록 원했던 것이 있다. 벽장에는 프렌즈의 모든 시즌 DVD가 진열되 있었다. 어쩌면 로즈가 그토록 열망하던 것은 새로운 세계의 파국이 아니라 '벙커' 안에 있는 미드들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 있다. 로즈는 더 이상 바깥에 나가 새로운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파국의 현실에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은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 채워져 있다. 그것은 또 다른 파국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열릴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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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포스트모던 사회, 즉 우리가 속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실재'에 대한 욕망이 발생하는데  공교롭게도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 실재의 삶을 어느 정도 거짓으로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작품은 피터 위어의 <트루먼 쇼>(1998)다. 트루먼이 방송국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은 실재를 맞이하는 순간(<매트릭스>에서는 알약을 선택한 후 누에고치 같은 장치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현재의 삶이 워낙 치밀하게 연출되어 있는 탓(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20세기를 모방한 매트릭스 프로그램으로)에 오히려 쇼의 현실을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이 작품을 두고 자유를 찾아 문을 열고 나선다는 식의 해석은 꽤 상투적이고 고전전인 이해일 것이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트루먼이 아니라 이 쇼를 보며 열광하는 시청자들이다. 그들이 트루먼의 탈출을 보며 감동하는 것은 트루먼의 자유에 대한 공감이 결단코 아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났을 뿐이다. 지젝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를 이해한다면, 언제든 시즌2가 만들어질 것이며, '에이미쇼'가 되든, '제임슨쇼'가 되든 '태일쇼'가 되든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상관이 없다. 어쩌면 그들의 반응은 드디어 한 시즌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환호가 아닐까.

아무려나 실재의 침입은 그 모든 것을 일으키는 균열이며, 안온함과 평화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최소한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그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한다. 보다 충분히 말해졌으면 하는 것들이 있지만 굉음을 통해, 유조선과 비행기의 추락을 통해, 완전자율주행모드의 값비싼 테슬라의 붕괴를 통해 그리고 사슴과 홍학의 출몰을 통해 충분히 실재라는 것이 우리의 상징과 상상계 안으로 어떻게 들어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설명하자면, 사슴과 홍학의 등장은 숲에 빌라를 짓는 인간의 거주지가 자연을 훼손한 형태에 불과하고, 언제든 자연(사슴, 홍학)이라는 실재가 방문(침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영화 속 양식은 두 가지다. 로즈처럼 호기심을 갖고 따라가보거나 루스나 아만다처럼 소리를 지르며 쫓아내려고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방식도 실재의 침입을 막을 수는 없다. 가려진 존재였을 뿐인 실재는 문득문득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파국의 순간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순간 실재는 우리 앞에 선다.

이것을 언캐니와도 연결하여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언캐니의 순간들이 관객들을 건드리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공포의 형태는 전쟁이나 테러가 아니라 정전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것임을 명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반나절 동안 카카오톡이 작동하지 않자 일어났던 혼란을 떠올리면 된다. 그것이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문자가 전송되지 않고, 통화가 되지 않는 영화 속 많은 장면들은 우리의 현실을 건드리고 있다. 펜데믹 또한 그러하다. 언제든 인식하지 못했던 바이러스 형태의 실재가 침입하여 우리를 패닉 상태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포스트 911 영화가 아니라 포스트 팬데믹 영화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 영화의 실재성…

지젝이 바디우가 언급한 '실재의 열정'을 따라가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 여기에 있다. 현실의 삶은 끊임없이 실재의 침입을 받아왔지만, 이 경고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부드럽고 아름답게 바꿔버리는 것이다. 지젝은 20세기를 지배했던 실재에 대한 열정이 결국 실재와의 대면을 피하는 역설적 전략이었음을 강조한다. 쉽게 말하자면, 타이타닉 사건은 아주 끔찍한 인류 기술 문명의 재앙이자 실재였지만 제임슨 카메룬의 <타이타닉>(1997)은 실재의 공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도슨과 로즈의 낭만적 사랑으로 바꿔버린다. 우리가 <타이타닉>을 20세기 말의 가장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로 기억하는 것은 '타이타닉'의 실재를 망각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최소한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의 결말이 이 실재성의 침입을 점점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스콧의 3단계 프로그램 설명과 함께 이 영화의 장면들을 정리하여 편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이 영화가 스콧의 말대로 국가붕괴에 이르는 과정임을 대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일으킨 것은 대니의 말처럼 미국의 적은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있다.

아무려나 오두막에 있는 아만다와 루스는 강건너 뉴욕이 불타오르는 것을 목격한다. 카메라는 위로 올라가 폭발하는 뉴욕의 곳곳을 보여준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강력한 실재다. 그것이 바깥에서 벌어지는 파국이라면, 또 다른 파국은 로즈가 원하던 DVD들이다. 파국 속에서도 사람들은 소비를 멈추지 않고, 안온한 벙커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맞이해야 하는 새로운 파국의 형태다(실내로의 침잠은 펜데믹 시기에 많은 이들이 선택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 순간 가정용 주류 소비는 급상승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가 중반 이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 영화는 파국을 맞이하는 순간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외부이든 내부이든 실재의 침입은 우리의 삶을 더욱 폐쇄적으로 가둬버린다. 그것은 얼마나 끔찍한 미래, 아니 현실인가.

 

ⓒ NETFLIX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재난 영화의 연출자와 제작사다. 하이어 그라운드는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부인 미셸 오바마가 2018년에 설립한 회사다. 그동안 어린이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지만, 첫 극영화로 내놓은 작품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이다. 실제로 오바마는 이러한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국가 비상사태의 메뉴얼에 관해 조언을 해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오바마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은 연출과 각본을 맡은 '샘 에스마일'이다. 샘 에스마일 감독은 드라마로 먼저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해커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경험한 에스마일은 <미스터 로봇>으로 천재 해커 엘리엇 역에는 라미 말렉(Rami Malek)을, 그리고 상징적 아버지에 해당하는 미스터 로봇 역에는 크리스찬 슬레이터(Christian Slater)와 함께하며 이 작품으로 2015년에 방송된 시즌 1을 통해 골든글러브와 에미상에서 각각 2관왕을 차지했다. 새로운 시즌을 더한 <미스터 로봇>은 2015년에서 2019년까지 제작되었다. 

샘 에스마일의 십대 시절은 스탠리 큐브릭 영화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대에서도 영화와 컴퓨터를 동시에 전공했고, 그의 이력에는 해커로 활동을 하다가 근신을 처분받은 것도 있다. <미스터 로봇> 이후 에스마일은 10부작 <홈커밍(Homecoming)>을 선보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퇴역 장병을 대상으로 하는 재활센터 '홈커밍'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줄리아 로버츠다. 그 인연이 이번 작품으로 이어지면서 에단 호크를 비롯한 쟁쟁한 배우들이 참여하는 아포칼립스물로 구현되었다.

샘 에스마일의 영화적 이미지가 큐브릭만큼 촘촘하고 영화 전체를 관장하는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큐브릭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꼈던 특유의 인류학적 통찰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해박함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큐브릭만큼이나 차가운  이미지들은 우리를 응시하도록 이끈다. 무엇보다 이 묵시록은 너무 먼 미래나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다. 우리의 현재는 단 한 번의 굉음으로도 무너지고, 이빨이 빠지며, 미드를 보지 못하는 답답함 속에 가둬놓는다. 아무것도 없는, 영도의 삶 위에서 현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인류는 이미 좀비의 상태가 아니겠는가. 이 작품의 그 출발점을 세세히 그려낸다.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poema@ccoart.com]

 

ⓒ NETFLIX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Leave the World Behind
감독
샘 에스마일
Sam Esmail

 

출연
줄리아 로버츠
Julia Roberts
에단 호크Ethan Hawke
마허샬라 알리Mahershala Ali
마이할라 헤럴드Myha'la Herrold
케빈 베이컨Kevin Bacon
파라 매켄지Farrah Mackenzie
찰리 에번스Charlie Evans
바네사 아스필라가Vanessa Aspillaga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41분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2023.12.08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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