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 어떤 인생' 죽음 뒤에 연장하는 어떤 인생
'리빙 : 어떤 인생' 죽음 뒤에 연장하는 어떤 인생
  • 이현동
  • 승인 2023.12.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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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생은 죽을 것이고 이미 죽었을 것이다"
ⓒ 티캐스트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써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문장은 인생을 반추하게 만드는 동시에 기꺼이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불치병에 걸리거나 시한부 생활을 영위하는 한 인물이 이성과의 관계를 정리하거나 친구와 우정을 다시금 확인하며 여행을 떠나는 영화는 이제는 흔한 클리셰로,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는 서사이다. 그중에서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1952)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영화 중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료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였던 일본 사회에서 시민들의 민원은 영화에서와 같이 쌓여가는 서류 더미와도 같이 잊혀 질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변화와 희생이 너무도 사소하고 소박한 민원일지 모르는 놀이터 설립에 기여할 때, 이 영화는 큰 업적만을 주목하던 시기와 영화적 스펙터클에 대한 물음에 대한 아주 선량하고도 일상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이전 혹은 그와 동시대에서 영화를 연출한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 등이 일본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과는 다르게 그는 다채로운 장르 영화를 선보였다. 아키라가 일본 영화계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유는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범용성, 명료한 스토리텔링이라는 접근을 통해 이뤄낸 성취였다.

 

ⓒ 티캐스트

알려지다시피 <리빙: 어떤 인생>(2022)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1952)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리메이크이긴 하지만 <리빙: 어떤 인생>은 대부분 <이카루>와 동일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작을 뛰어넘는 감응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 <리빙: 어떤 인생>과 <이키루>는 영어 제목이든 일본 제목이든 동일한 뜻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의도는 완전히 다른 영화라기보다 <이키루>가 갖고 있는 소박한 형식을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리빙: 어떤 인생>의 첫 장면에서 8mm로 찍힌 화면과 사람들이 출근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정경과 신문의 만화를 보는 아이, 부감 숏과 롱 숏으로 영국의 이곳저곳을 비추는 숏은 원작인 <이키루>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이 숏은 뤼미에르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당시를 회상하는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이키루>의 첫 장면은 서류 더미를 차근차근 보고 있는 겐지(시무라 다카시)를 조명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영화가 주력하고 있는 형식을 암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기술성이 향상된 현재 시기를 설명하는 부감 숏(특히 시청에서)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당시 갖지 못했던 공간성을 부각하는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여기서 <이키루>가 캐릭터를 주조하는 활력과 <리빙: 어떤 인생>이 공간을 확대하여 의미를 증폭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런 부류의 영화가 캐릭터의 감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원작이 가진 장점을 따라가긴 쉽지 않다.

<리빙: 어떤 인생>은 배경 묘사인 첫 시퀀스가 끝난 이후에는 겐지에 해당하는 주인공인 윌리엄스(빌 나이)가 아니라 신입사원으로 일을 시작하는 웨이클링(알렉스 샤프)와 직원들이 정류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이후 윌리엄스가 기차에 탑승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직원들은 윌리엄스에 대한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시청에 도착한다. 서류로 가득한 공간은 시청의 관료주의를 형상화하는 도구로서 시민을 향한 의무를 상실해 버린 시대를 보여준다. 또한 윌리엄스는 “사람들이 별로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의심할까 봐” 서류를 쌓아둔다고 말하기도 한다. 놀이터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인들은 시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다들 미루기에 바빴다며 결국 다시 그가 일하는 공공사업과로 돌아와 하소연한다. 영화는 이러한 폐해 속에서 죽음을 통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알게 된 윌리엄스는 공무원으로서 행하지 못했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스트립쇼가 행해지는 클럽에서 다른 여자의 어깨에 몸을 기대기도 하고 한편으론 술을 홀짝홀짝 마시지만, 그의 행동에는 온전한 즐거움이 없다.

이후 윌리엄스는 함께 근무했던 발랄한 숙녀 해리스(에이미 루 우드)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그녀와 함께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그녀에게 활기차게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한때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미스터 '좀비'라는 별명이 생각났다고 말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미스터 '좀비' 별명은 마치 죽어있는 서류와 동일한 그의 성향을 짐작하게 하는 단어다.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해독이나 해결이 되지 않는 미완료 된 상태. 형식으로 굳어진 삶의 패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건 죽음이다. 그의 결연한 결단과 의지는 서류 더미에, 아래에 적혀있었던 놀이터 민원 앞에서 행해진다. 비가 오는 상황에도 직원들과 함께 장소를 탐방하기 위해 떠나는 시퀀스 이후 윌리엄스의 장례식 장면이 갑작스레 난입하면서 <리빙: 어떤 인생>은 기억을 탐구하는 영화로 변모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면 영화가 가장 서사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모범적으로 도약하는 순간은 윌리엄스의 죽음을 알리는 장례식 장면과 그 이후 동료들의 그를 떠올리는 순간이다. 이 후반부에서 겐지와 윌리엄스의 죽음 뒤에 플래시백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을 즉흥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등장했던 라쇼몽 효과는 파편화된 시퀀스 중 진실 된 기억을 찾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모되거나 손상된, 혹은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 관점에 의해 재구성되거나 확증되는 영화적 현실은 결국 화면 밖에 삶으로 진입하게 되어 있다.

 

ⓒ 티캐스트

누군가의 죽음 후를 회상하는 영화적 기법은 무엇인가를 가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과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상하고 이미지화하는 힘은 기억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행위를 촉구하는 미래 형태로까지 나아가는 해석을 부과한다. 그리고 얼마나 영화가 관객의 기억과 연장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영화는 지극히 경험적인 매체임이 분명해진다. 죽음을 예측하는 윌리엄스의 모습에서 불현듯 1년 전 암에 걸려 돌아가셨던 아버지의 생을 향한 활기를 떠올렸다. 죽음 앞에서 전보다 더 부지런하게 자신을 움직이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쩌면 죽음이란 삶에 활력을 부여하는 선생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 철학자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모든 경험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그 생명체가 사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보았다. <이카루>를 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렸다면 존 듀이의 말처럼 우린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예술을 향유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서사란 무엇일까. 아마 탄생과 죽음일 것이다. 영원히 '살 것'을 상상하기보다 '죽을 것이다'라는 시간을 전제할 때 우린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로 변주하는 영화의 힘을 사유하게 된다. 가령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서 이야기하듯 이미 일어나 버린 어떠한 파국을 통해 인간은 죽었고, 죽을 것이라는 시간적 개념을 예술을 통해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빙: 어떤 인생>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윌리엄스라는 인물에서 끝나지 않고 신입사원인 웨이클링(알렉스 샤프)을 통해 그의 삶이 계속해서 연장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게 된다. 놀이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그러한 예시다. 윌리엄스나 겐지의 죽음을 헛되게 하면 안 된다며 합심하며 결의를 다지는 직원들의 말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연장하고 있는 시선일 것이다. 애초에 이 영화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주인공인 윌리엄스의 삶을 추적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 이후 플래시백에서 윌리엄스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시청에서 사업을 관리하는 부서를 찾아가 정중한 태도로 설득하는 장면들, 지극히 연배가 있는 윌리엄스가 부끄러움 없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지정한 나이, 직급, 관계 등의 선입견이 사라지고 그 안에 휴머니즘이 삽입되고 있음을 들여다본다. 결론적으로 <리빙: 어떤 인생>이 가진 <이키루>와의 형식적인 측면을 비교해 봤을 때, 뛰어난 성취라 생각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카루>가 보여준 한 캐릭터가 가진 감정, 분위기가 갖고 있는 입체감은 <리빙: 어떤 인생>이 차마 가지지 못한 오리지널한 매력임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티캐스트

리빙: 어떤 인생
Living
감독
올리버 허머너스
Oliver Hermanus

 

출연
빌 나이
Bill Nighy
에이미 루 우드Aimee Lou Wood
톰 버크Tom Burke
알렉스 샤프Alex Sharp
리차드 커닝햄Richard Cunningham

 

배급|수입 티캐스트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2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12.1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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