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th SIFF] '최초의 기억' 등을 맞대고, 손을 맞잡고
[49th SIFF] '최초의 기억' 등을 맞대고, 손을 맞잡고
  • 김민세
  • 승인 2023.12.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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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로 손을 건넬 때"

<최초의 기억>의 1부에는 유독 포옹하는 모습들이 자주 목격된다. 금주와 동근은 추위에 떨며 밖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다가 민주가 등장하자 서로의 몸을 놓고 민주와 함께 포옹한다. 요선과 은경은 둘만 남은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서로를 껴안다가 상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서로의 몸을 뿌리친다. 이 포옹은 유사하게 다시 한번 반복된다. 금주와 동근이 숙소 바닥에 누워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다가 동근은 민주와의 약속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선과 은경이 점검 중인 목욕탕에 남몰래 들어가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다가 요선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눈물을 흘린다.

이 포옹의 순간들은 포기되길 반복한다. 더불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동근이 민주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때 금주에게는 동근의 시선조차 허락되지 않고, 요선이 직장상사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때 은경에게는 요선의 시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공적인 공간에서의 포옹은 제삼자로 인해 포기되고, 이들에겐 눈 맞춤의 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포옹의 욕망이 가로막힌 상태에서 이들은 막다른 곳으로 향한다. 금주와 동근이 껴안고 있는 공간은 민주에 의해 소개된 적 있는 숙소인데, 이들이 이불을 깔고 누워 있는 방이 앞선 씬에서 잠깐 문을 여닫았던 두 개의 방 중 하나인지, 아니면 동근이 올라갔던 계단 위의 다락방인지는 짐작이 가질 않는다. 요선과 은경이 껴안고 있는 공간은 점검으로 운영이 중간된 자치센터의 목욕탕인데, 센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이 공간은 둘에게만 진입이 허락된 은밀한 공간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은 온전한 포옹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1부에서 등장하는 두 갈래의 서사는 포옹의 욕망을 지닌 채 그 위치와 경로를 짐작할 수 없는 각자의 세계 가장 깊숙한 곳으로 진입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기이한 장면은 금주와 민주가 문이 닫힌 목욕탕 앞에서 끝내 포옹하는 장면이다. 그 뒤에 따라오는 장면(요선과 은경이 목욕탕에서 대화하는 1부의 마지막 숏. 앞서 요선과 은경이 포옹이 이루어지고 요선이 눈물을 흘리는 앞서 언급한 숏과는 다른 장면이며 동일한 앵글에서 이루어진다)과 함께 놓았을 때, 이 장면은 그들 등 뒤에 놓인 벽 하나를 두고 조응하지 못하는 두 가지 세계를 증명한다. 다시 말해, 이 장면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의 공간을 바라볼 때, 필연적으로 벽 너머의 또 다른 공간은 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장면에서의 포옹은 금주와 민주의 관계를 봉합하는 그들의 세계 안에서는 이루어지지만 근접한 공간에서의 단절된 세계 아래 있기에 어딘가 미심쩍게 다가온다.

'최초의 기억'을 발굴한다는 목적 아래서 행해진 가상의 영화인 1부가 끝나면, 1부의 영상을 지켜보고 있는 실제 배우들의 모습으로 2부가 시작된다. '연기 워크숍'이라는 제목의 2부는 1부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영화를 피드백하고, 각자가 연기한 자전적 캐릭터를 서로 바꾸어 연기하는 모방독백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워크숍을 지도하는 송문은 배우와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의 관계가 마치 빛과 그림자와 같다는 말을 한다. 배우와 인물은 다르지만, 붙어있고 공존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때 한 배우의 입에서 나온 '공존의 기술'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1부에서 보았던 포옹의 순간들, 특히 금주와 민주의 포옹이 이루어졌던 미심쩍은 공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르지만 붙어있고 공존하는 존재들을 가로막고 있는 닫힌 문. 또는 벽. 송문의 말은 그 벽 너머를 볼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벽의 앞에 놓인 것과 뒤에 놓인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말일까.

 

3부 '모방독백'에서 배우들은 각자 준비해 온 독백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 여기서 송문은 배우들에게 두 가지를 요청한다. 서로의 연기를 준비해 온 파트너끼리 자신이 입고 온 옷을 바꾸어 입고 연기할 것. 그리고 파트너는 서로 등을 맞대고 상대방의 존재를 느끼며 연기할 것. 모방독백의 장면은 결국 그들에게서 빛과 그림자를 보겠다는 듯이 흑백 화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가 첫 번재 연기자인 은경의 정면을 담을 때, 자연스레 등을 맞대고 있는 요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요선의 뒷모습이 은경의 몸 바깥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을 뿐이다) 반대로 요선의 정면을 담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카메라가 연기하고 있는 사람의 정면을 봤을 때, 연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볼 수 없게 되고, 카메라가 180도 가상선 반대편에서 연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봤을 때, 연기하고 있는 존재를 볼 수 없게 된다. 맞대고 있는 등은 벽이 된다. 1부의 끝자락에 놓였던 미심쩍은 공간과 막다른 벽은 이렇게 배우의 몸 안에서 현현한다.

은경이 독백을 할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요선의 옷을 입고 요선을 연기하는 은경이다. 그리고 수시로 카메라가 요선의 정면으로 돌아올 때, 상황은 복잡해진다. 은경의 옷을 입고 자신을 연기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자는 요선일까, 은경일까. 은경의 외피를 두르고 요선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자의 정면 위로 요선을 연기하는 은경의 목소리가 들릴 때, 이때 요선은 입을 열지 않고 말들을 뱉어내는 자동 기계처럼 보인다. 보이지 않는 서로의 존재를 은연중에 환기할 수 있는 것은 목소리라는 형태로 주어지는 연기다. 이 목소리는 연기하고 있는 자를 비출 때 우리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불러오고, 연기의 대상을 비출 때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모호한 상태에 놓인 복화술 기계로 만든다. 그래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을 중심에 두고, 180도 가상선 위를 오가는 숏과 역숏을 지켜보고 있는 일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수많은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이 된다.

세 명이 파트너가 된 금주, 동근, 민주의 독백 장면에서 배우들은 셋이 함께 서로의 등을 맞댄다. 영화는 등을 맞대 몸과 몸의 포옹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끝내 이들의 손을 맞잡게 하는 특별한 선택을 한다. 누군가의 존재를 재현하는 데 놓였던 얼굴과 말의 몽타주와 달리, 그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맞잡는 손의 클로즈업은 재현의 논리를 벗은 투명한 숏이다. <최초의 기억>이 금주와 민주의 포옹 이후로 기다리는 시간은 결국 이 작은 몸짓의 순간이다. 이때 민주가 금주와 동근에게 건네는 손은 벽을 뛰어넘는다. 또는 겹쳐진 두 손의 형상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순간이다.

안선경은 전작인 <나의 연기 워크샵>에서 연기된 상황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날 것의 몽타주를 다소 난잡한 방식으로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최초의 기억>에서는 벽을 과감하게 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 벽의 안과 밖이 공존하는 순간의 이미지가 떠오르길 기다린다. 때로 영화는 벽을 허물고 충돌시키는 것(몽타주)을 포기하더라도, 작은 몸짓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클로즈업)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 minsemunji@ccoart.com]

 

최초의 기억
The Initial Memories
감독
안선경, 장건재

 

출연
서동근
이금주
강민주
백요선
조은경
엄선영
강동윤
박종환

 

제작 모쿠슈라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20분
공개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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