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슬립' 잠을 허락하지 않는 밤의 세계
'빅슬립' 잠을 허락하지 않는 밤의 세계
  • 이현동
  • 승인 2023.11.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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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잔잔한 희망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 찬란

<빅슬립>(2022)에서 몽타주와 미장센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감독이 영악한 것인지 정직한 것인지를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사실 이 영화는 극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채 마치 다큐처럼 찍은 느낌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핸드 헬드로 찍은 부분, 그리고 강력한 서사와 캐릭터가 갖고 영화적 무게감이라는 것이 없는 측면에서 그렇다. 활기로 가득한 영화가 있는 반면에 무기력함을 품고 있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후자에 해당한다. 또한,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다루며, 브로맨스를 찾아볼 수 있다는 지점에서는 최근 개봉한 <화란>(2023)이 동시에 상기된다. 배우 홍사빈과 송준기가 열연을 펼친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어떠한 사회적 함의를 끌고 오지 못하는 과부화된 이미지로 즐비하다. 그들을 비추는 얼굴과 몸은 그저 기계적으로 영화에 복무하는 나사에 가깝다. 이와 반대로 기계적으로 볼거리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빅슬립>은 기대할 만한 특정한 요소가 전무하다.

이렇듯 <빅슬립>에 관한 단편적인 감상을 나열하고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감독의 야심이 아니라 메시지에 그 카메라의 기능을 집약하고 있는 정직한 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서이다. 이 영화는 김태훈 감독이 십 년 정도 학교 밖 아이들과 소년원을 나온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토대로 연출됐다. 오해가 아닌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 영화는 연기도 연기지만, 촬영하는 방식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먼저, 필자는 종종 로베르 브레송이나 브루노 뒤몽, 아키 카우리스마키, 스트로브 위예, 홍상수 등의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가 무엇일까를 자문해 볼 때가 있다. 연기는 과하면 과할수록 관객에게 파토스를 쉽게 주입할 수 있는 반면 메시지의 강도는 저하된다. 이 감독들의 영화들은 연기를 통해 고유의 스타일을 구축하거나 서사가 현실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사유하게 한다. 즉, 이들의 영화는 연기를 포기하는 데에 있다. 

<빅슬립>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기영'(김영성)의 연기와 태도가 바로 영화 표면의 밀도를 결정하는 주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기영의 표정은 일관적으로 신경질적이며 음조도 날카로운데, 이는 영화의 분위기와도 연관성을 지닌다. 그의 연기는 무엇보다 실제 현실과 마찰하고 있는 에너지로 보인다.

 

ⓒ 찬란
ⓒ 찬란

어둠과 빛

<빅슬립>의 배경은 주로 어둡다. 그 어둠을 잘 관찰하면 감독의 의도인지 모를 빛이 공존한다. 영화는 어둠과 빛의 대조가 아니라 서로를 혼재된 상태로 은은한 긴장을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영화는 어둠이 가득 찬 다리 밑에서 가정 폭력으로부터 도망간 열일곱 살 가출 청소년 '길호'(최준우)와 '영범'(김한울)의 대화에서 시작한다. 어디 가는지를 묻는 영범에게 모른다고 말하는 길호의 삶이란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이를 보면 감독이 다루는 공간이란 일상에선 흔히 발견할 수 있지만, 어둠이 있을 때는 식별할 수 없는 바기사적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을 다룬다. 빛을 피해 도주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빛은 늘 도전이자 먼 희망처럼 존재한다. 곧이어 20평 남짓한 집에 거주하는 기영은 바깥에 겨우 뜬 빛에 의존하여 일어난다. 그는 베란다로 가서 식물에 해악이 갈 수 있는 담배를 피운다. 그럼에도 식물의 모습은 꽤 싱싱하게 뻗어 있다.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계속해서 이러한 이중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영은 어둠과 빛 사이에서 단단한 안식처로 인물들을 대한다. 가출 청소년 길호와 공장 동료 초은(이랑서), 그리고 새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공간은 기영이 활동하는 무대로 설정한다. 그는 외면적으로 볼 때 건조하고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이중성을 지닌다.

출근하러 나온 기영은 빌라 앞에 위치한 정자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길호를 발견한다. 길호를 보며 책상 위에 놓여있는 담배와 라면을 치우라며 야단을 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을 끄지 않는다. 공장으로 출근한 기영은 점심에 담배를 피우며 울고 있는 초은을 바라본다. 그리곤 집으로 퇴근하기 전에 기영은 부모님 집에 들러 병에 걸려 요동하지 않는 아버지를 챙기고 새어머니에게 용돈을 준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공간을 분산하고 각각의 어둠을 나열하는 초반 시퀀스는 기영의 시선 혹은 감독의 시선으로 점철된다. 소외된 자를 향한 시선은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닌 일상에서 이루어짐을 지시하고 있다. 그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여전히 정자 앞에서 서성거리는 길호를 집으로 불러 하룻밤을 재워준다. 자신이 불쌍하냐고 묻는 길호에게 기영은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불쌍한 거야"라며 반박한다. 기영이 잠들고 난 후 손전등을 켜 방을 둘러보는 길호는 벽에 걸린 기영의 어린 시절 사진을 확인한다. 이 사진은 가정 폭력의 대상자였던 기영이 가족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주요한 단서다. 그가 베란다에서 기르는 식물들도 옛 어머니의 정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기르고 있었던 흔적 중 하나다.

기영은 사장으로부터 특별한 일을 하달받는다. 폐기물을 산에 불법으로 배출하는 일이다. 공장에 기영의 불만을 느끼게 된 이 사건은 단순히 불법적인'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로 보면 길호와 같이 더 이상 사회나 가정에서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버리는 일과 동일 선상에서 취급할 수 있다.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께 폭력을 당한다는 길호의 사연을 듣고 기영은 기꺼이 집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때, 영화는 폭력을 시각화하지 않는다. 혹은 과거의 경험을 잔혹한 방법으로 플래시백 하지도 않는다. 아픈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증폭시키는 영화와 달리 <빅슬립>은 오로지 잔잔한 희망을 향해 천천히 나아갈 뿐이다.

 

ⓒ 찬란
ⓒ 찬란

직장 동료인 기영과 초은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기영은 자신이 야근을 해도 택시를 타야 때문에 남는 게 없다며 투정하는 그녀를 태워주겠다고 말한다. 기영을 중심으로 관계가 확장되는 이 이야기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은, 다시금 폐기물을 배출하러 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폐기물을 배출하는 일을 하러 짙은 어둠 속을 뚫고 도착한 산에서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비추다 기영은 함께 일하는 반장에게 불법적이 일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내 먹고 살아야 한다는 반장의 호소에 말을 거둔다. 자괴감에 빠진 기영과 집으로 가출 청소년 일행이 갑작스레 들이닥쳐 당황스러워하는 길호의 얼굴이 교차 편집된다. 이 두 장면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교집합 속에서 반장과 청소년들의 처지를 결합한다. 집에 들어와 이 현장을 목격한 기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길호와 일행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때 '잠'만 잤다며 잘못한 거 없다는 길호와 그 무리를 이끄는 리더의 말에도 기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쫓아낸다.

곧이어 길호와 일행들이 손전등을 들고 어둠 속을 배회하며 빈집에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밤새 술판을 벌인다. 아침이 되고 빛이 그들을 비출 때 잠자고 있던 아이들은 신고로 경찰에게 잡혀 취조당한다. 도난을 근거로 그들을 신고한 기영은 경찰서에서 길호와 마주한다. 자신은 가만히 있었다며, 개들이 (집)에 왔다고 소리치는 길호에게 우리는 기영의 이전 경험에 대한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기영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가출을 하고 문이 열려 있는 집에 몰래 들어가 추위를 피한 경험이 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온 기영이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일하는 직장을 빠져나와 길호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길호가 어디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나랑 엮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곤 문을 닫아 버린다. 기영은 길호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화분을 정리한다. 베란다가 완전히 정리된 이 장면은 그가 갖고 있었던 관계들에 대한 정돈일까.

이어 물건을 훔친 당사자인 영범이 기영에게 물건을 돌려주고, 길호의 위치를 알려준다. 길호를 찾아온 기영은 그 무리를 이끄는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다 무력으로 제압한다. 잔뜩 흥분한 기영은 그 무리에게 정신 좀 차리라며 소리친다. 이 장면은 신기하게도 폐기물을 버리는 현장과 그 과정이 사뭇 유사하다. 폐기물을 버리는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조명이 필요하듯, 다리 밑 어둠 속에서 아이들도 손전등을 들고 아무도 없는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이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장소에서 빛이란 어둠을 발굴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이 후반부 장면은 영화 전체를 포괄하면서 빛과 어둠의 관계가 갱신되거나 완결되는 결과로 기인하지 아니할뿐더러 행위를 수정해야 한다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도리어 폐기물 처리를 위해 다시 산으로 올라가 일을 처리하고 들어와 거실에 누워 있는 기영과 길호를 비춤으로 영화는 종료된다. 감독은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삶에서 멈추기를 결정한 것이다.

 

ⓒ 찬란

<빅슬립>은 구조를 정직하고 짜임새 있게 맞추고 일정한 리듬 속에서 사건을 배치한다. 몇몇 긴장감을 유도하는 장면은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단순한 패턴으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무엇보다 밀도 있는 현장감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기영과 길호라는 캐릭터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조율한다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진중하고 진실한 연기 톤을 구축하고 유지한다. 빛과 어둠이 은은하게 반사되는 인물의 얼굴은 사실 빛도 어둠도 아닌 다른 것을 주목한다. 씻으라고. 밥 먹으라고. 말하는 평범한 일상을 알려줄 기영과 같은 인물이 그들의 어둠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찬란

빅슬립
Big Sleep
감독
김태훈

 

출연
김영성
최준우
김한울
이랑서
현우석
김자영

 

제작 CINEBUS
배급 찬란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1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3.11.22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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