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플루토' 이 세상의 모든 증오의 순환을 끊으려는 안간힘
[NETFLIX] '플루토' 이 세상의 모든 증오의 순환을 끊으려는 안간힘
  • 김경수
  • 승인 2023.12.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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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야말로 더 인간적이라 느끼게 된다"
ⓒ 넷플릭스(NETFLIX)

가끔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품이 있다. 2003년에 공개된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가 그러하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20세기 소년>, 『몬스터』 등의 만화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거장이다. 봉준호 감독도 그의 팬이라고 자처하며 그와 인터뷰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미디어믹스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대표작인 『몬스터』는 2004년에 TVA 애니메이션으로, <20세기 소년>은 2008년에 3부작 실사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에 비하면 <플루토>의 애니메이션화는 다소 더딘 편이다. <플루토>는 원작이 공개된 지 20주년이 지난 2023년 10월 26일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2003년보다는 2023년에 더욱 어울려서다. A.I와 비인간의 문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등에서 계속되는 전쟁, 혐오 등 작품을 관통하는 여러 주제가 오히려 2023년에 더 절실히 다가온다.

<플루토>는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의 우상 '데즈카 오사무'가 그린 <철완소년 아톰>의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인 <지상 최대의 로봇>을 각색한 만화다. 원작은 겨우 40분가량의 에피소드이며 플롯은 단순하다. 만화는 쵸치쵸치 아바바 3세가 100만 마력의 로봇 플루토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플루토는 명령에 따라서 지상 최강의 로봇 일곱 기를 죽여야 한다. 그 일곱 로봇은 산을 지키는 몽블랑과 전투 로봇인 헤라클레스와 브란도, 형사 로봇 게지히트, 보육원을 운영하는 엡실론, 귀족 로봇 노스 2호, 철완 소년 아톰이다. 아바바가 로봇 살인을 벌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원래 술탄이었으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가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자신과 신하 아브라가 만든 플루토가 지상 최대의 로봇이라는 것을 증명해 자신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다. 권력에 대한 뒤틀린 욕망을 플루토에 투사한 셈이다.

플루토는 몽블랑과 노스 2호를 단숨에 처치할 정도로 강하다. 그는 여섯 로봇을 다 처치한 다음에 아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아톰은 플루토와 싸우는 와중에도 그 인근의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플루토는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아톰에게 감명받아서 마음이 뒤흔들린다. 그때 200만 마력의 보라가 등장한다. 플루토는 보라와 맞서 싸우다가 폭발하고, 아톰이 보라를 마저 처리한다. 이 에피소드는 <철완소년 아톰>의 주제를 함축한다. 이 에피소드는 10만 마력인 아톰이 지혜를 통해서 각성해 100만 마력의 플루토에 맞서는 초인적 존재로 거듭난 에피소드다. 데즈카 오사무는 전쟁을 경험한 평화주의자로 평생 전쟁을 일으킨 권력과 테크놀로지를 비판했다. 테크놀로지의 기반에 지혜와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아톰의 각성으로 드러난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이 짧은 에피소드에 살을 더해 본인만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한다.

 

ⓒ 넷플릭스(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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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는 이야기 구조는 장편소설을 읽는 듯하다. 이는 <20세기 소년>, 『마스터 키튼』에서도 드러난 우라사와 나오키의 개성이다. <플루토>는 아톰이 아니라 유로폴 형사로 제작된 로봇 게지히트를 주인공으로 한다. 작가는 원작을 <블레이드 러너>(1982)를 생각나게끔 하는 느와르풍의 서사로 각색한다. 만화는 숲을 지키는 몽블랑이 파괴되고, 로봇 인권법을 제안한 로봇법학자 베르나르도 랑케가 잇따라 피살되면서 시작된다.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범인이 사체에다가 두 개의 뿔을 흔적으로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게지히트는 현장에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사실에 경악한다. 로봇이 인간을 살해하는 것은 프로그래밍이 되어있지 않을뿐더러 로봇법 13조에 위반되어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한 로봇에 의한 살인은 지금은 폐허에 감금 중인 브라우 1,589가 저지른 한 건뿐이다. 그는 노스 2호까지 살해당한 뉴스를 접한 뒤 본인을 포함한 지상 최고의 로봇 7기가 살해 대상이라는 것을 곧장 알아차린다. 또한 보라 조사단이라고 불리는, 일곱 로봇을 제작한 과학자까지 표적인 것을 알아낸다. 그는 온 힘을 다해서 범인을 추적하지만, 수사 도중 자신이 감당하기가 버거운 진실을 발견한다.

데즈카 오사무의 원작 <지상 최대의 로봇>과 달리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에서는 플루토의 정체가 정체불명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플루토는 후반에 본체를 드러내기 전까지 회오리 너머로만 드러날 뿐이다. 그의 전작 <20세기 소년>에서 사이비 교주인 친구가 미스터리로 남겨진 것과 비슷하다. 다만, <플루토>에서 느와르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게지히트가 플루토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수사 능력이 아니다. 게지히트는 <20세기 소년>에서 중간에 진범이 드러난 것과 마찬가지로, 6화에 이르러 아브라와 사하드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부터 아톰이 다른 로봇의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고 플루토와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느와르는 마지막 2화를 위한 토대일 뿐이다. 또한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원작에서 능력만 드러났을 뿐이지 배제된 로봇 각자의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또한 브라우 1589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되었으며, 보라와 플루토 등의 설정도 아예 달라졌다. 그 결과 40분짜리 애니메이션은 만화책 8권, 1시간짜리 에피소드 8화 분량이 되었다. 애니메이션은 관객이 에피소드에 잘 이입할 수 있게끔 에피소드의 순서를 조정한 차원에 그친다. 내용상 달라진 부분은 후반부에, 설정에 대한 설명조의 대사가 조금 더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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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사와 나오키는 데즈카 오사무의 주제를 계승하면서도 증오라는 감정에 대한 탐구도 더한다. <플루토>에서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제39차 중앙아시아 전쟁이다. 이 중앙아시아 전쟁은 원작이 쓰일 당시에 일어난 이라크 전쟁과 비스름하다. 트라키아 공화국에서 페르시아 왕국이 대형 살상 로봇을 지니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다음에, 보라 조사단을 보내고 침공까지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리우스 14세가 만들려고 한 로봇은 사막 녹지화를 위한 것이었다. 보라 조사단은 대형 살상 로봇이 없다고 보고했는데도 트라키아 공화국 대통령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침공해서 폐허로 만든다. 이는 인간을 청소하고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 닥터 루즈벨트가 알렉산더를 속여서 저지른 일이다. 다리우스 14세가 이를 모르고 보라 조사단를 오해하고 원한을 품은 것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다. 징병을 거부한 로봇인 엡실론을 제외한 모든 로봇이 PTSD를 경험하고 있으나 로봇의 기억은 인간의 기억과는 달리 삭제되지 않는다. 여섯 로봇이 은퇴를 선택하고 타인과 공존하는 삶을 꾸리려 하는 것도 트라우마를 잊으려는 안간힘으로 보인다.

영국 문화학자 '사라 아메드'에 따르면 증오는 피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생겨난다. 타인을 증오하는 이는 정상성을 가정하고, 자신을 정상성의 범주에 속하는 주체라고 여기는 환상에 갇힌다. 그 환상 아래서 주체는 그 정상성에서 벗어난 타인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그 피해의식의 다른 이름이 증오다. 이 증오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진다. 아메드는 혐오 정동을 자본의 순환과 비교한다. 상품 A에서 상품 B로 교환되는 과정에서 가치가 발생하듯이, 증오도 A와 B라는 두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축적된다는 식이다. 이 증오는 단순히 인간이 로봇에게 가하는 증오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로봇 둘 다에게서 드러나며, 로봇은 인간을 닮아가면서 증오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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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사와 나오키가 제일 먼저 그려내는 에피소드는 '노스 2호와 음악가 던컨'이다. 던컨은 시각장애인으로, 전자악기를 혐오하고 피아노만 고집하는 외골수다. 그는 어릴 적 본 풍경에 사로잡혀서 그 풍경의 정서를 음악으로 그리려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던컨은 노스 2호를 노골적으로 혐오하면서 그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혐오한다. 로봇에게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노스 2호는 던컨이 잠꼬대로 부르는 멜로디를 기록하고 던컨의 고향인 보헤미안에 가 민요를 수집하면서 던컨이 음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우며, 던컨의 트라우마를 정확히 기록한다. 던컨은 그제야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쓰려는 음악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노스 2호는 더는 전쟁터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호소한다. 그제서야 던컨은 노스 2호에게 음악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노스 2호가 음악을 한다는 설정은 우란이 인간의 슬픔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린다든지, 게지히트를 상실한 헬레나가 다정해진다든지 하는 감정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먼저 인간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인간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는 주제의식이 만화 전반에서 반복되면서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흥미롭게 던진다. 또한 로봇이 인간을 배운다는 모티프도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던컨이 노스 2호를 증오하는 메커니즘은 작품 전반에서 반복된다. 던컨과 노스 2호의 갈등은 가장 개인적이다. 이후에 드러나는 반종교 단체는 던컨과 노스 2호 사이의 개인적 갈등을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한 차례 더 나아가 페르시아에 대한 트라키아의 태도는 이를 국제적인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던컨과 노스 2호의 에피소드는 이 만화가 결국 증오의 악순환을 차단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만화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에피소드는 텐마 박사가 발명한 가장 완벽한 로봇이다. 가장 완벽한 로봇은 99억 명의 인격을 프로그래밍하고 거기서 자신이 어떠한 인간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기에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증오나 슬픔 등의 치우친 감정을 삽입하는 순간에 그는 곧장 깨어나 악마가 된다. 그 결과물이 가족을 상실하고 악마가 된 아브라이며 그의 아들 사하드, 사하드의 메모리칩이 이식된 플루토라는 것을 통해서 작가는 영원히 고민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긍정하고, 그리고 증오에 사로잡히지 않아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증오의 사슬을 끊어내자는 이야기는 만화의 여러 서브플롯에 반복된다.

특히, 게지히트는 제 아들을 죽인 이를 증오에 사로잡혀서 죽인 로봇이다. 그러나 그의 동생을 구하고 증오의 사슬을 끊어냈으며, 그 자신도 증오로는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반성한다. 플루토도 가족을 상실한 자신의 아버지가 지니는 증오를 이어받았으나 결국 그것에 저항하기에 이른다. 아톰은 게지히트의 메모리칩을 이식받고 인류를 파괴하겠다는 증오에 사로잡히지만, 게지히트의 기억 메모리를 통해서 증오가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과 비슷해진 나머지 살인을 저지른 브라우 1589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닥터 루스벨트를 처치하고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 생겨날 수 있는 또 다른 혐오를 끊어내기에 이른다. 이같은 서사는 혐오가 일상화된 21세기에 이같은 서사는 큰 울림을 주기 마련이다. A.I와 혐오 등이 뒤엉킨 2023년에야 이 만화의 플롯이 더욱 두드러지는 이유다. 증오의 메커니즘을 정치적 문제로 파고들기보다는 실존적 문제로 치환한다는 한계가 있기는 해도 충분히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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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그려낸 형식이야말로 이 만화/애니의 핵심이다. 일곱 대의 로봇은 서로가 죽거나 위험에 처할 때마다 꿈 등으로 서로의 고통을 체감한다. 이는 몽타주 컷으로 드러나 있다. 이는 만화에서는 흔하나 불교의 인연을 생각나게끔 하는 장치다. 인간이 서로 고통을 곧장 체감하지는 못하는 데에 비해서, 로봇은 이어져 있는 데이터로 서로의 고통을 느끼고 연대한다. 이것이 시각화되면서 관객은 오히려 로봇이야말로 더 인간적이라 느끼게 된다. 또 이는 여러 인물의 증오가 맞부딪히면서 생기는 감정의 파장을 확대한다. 또한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몽타주 컷은 만화를 빠르게 전개하는 장치로 쓰인다. 이 만화의 이야기가 제법 거대한 데에 비해서, 속도감이 빠른 것도 몽타주 컷의 기능 중 하나다.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몽타주 컷 사이의 생략된 시공간을 다 그려야만 한다. 이 애니메이션의 속도감이 원작에 비해서 다소 느리다고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를 충실히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되 그 감정의 빈틈을 서스펜스가 아니라 로봇의 감정으로 가득 메웠다. 로봇의 감정이 이만큼이나 절절하게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이 처음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특히, 게지히트의 플래시백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속도는 만화에서는 그려내기가 힘든 것이다. 그 기억이 유지되는 순간이 바로 연출의 정수가 아닐까. 컷과 컷 사이를 일부러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관객에게 감정을 이입할 틈을 주는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플루토>를 처음 접한 것은 인터넷 밈 덕이다. 한 소년이 눈이 퀭하게 쓰러져 있고, 그 소년 옆의 소녀가 물끄러미 보는 상황이다. 네티즌은 이 소녀의 말풍선에다가 "일어나 돈 벌어야지", "일어나 출근해야지" 등 대사를 삽입하면서 놀았다. 어쩌면 이 만화와 애니에서 그토록 일상적이고 웃긴 감정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만화가 그만큼 로봇을 인격으로 잘 그려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넷플릭스(NETFLIX)

플루토
PLUTO

 

제작 Studio M2
제공 넷플리스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8부작
공개 2023.10.26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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