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펠리니 생각
[Critique] 펠리니 생각
  • 이상용
  • 승인 2023.11.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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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과 1/2>과 <비탈리니>의 순수성과 현실의 이야기들

한동안 '펠리니'를 잊고 있었다. 펠리니가 망각된 자리를 메운 것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였다. 그들의 영화는 훨씬 더 이지적이었다. 펠리니의 잔상으로 남아 있던 것은 '니노 로타'(그는 <대부>(1972)의 음악으로도 유명하다)의 음악이었고, '세비야의 이발사'를 비롯한 여러 변주곡들의 흥얼거림이 떠돌 뿐이었다. <8과 1/2>(1963)에서 구이도가 복도를 걸어가다가 다리를 흔들며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장면처럼 말이다.

어느새 펠리니는 한국 관객들에게도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최근 그의 영화가 재개봉되었지만, 그다지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상영작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끈 작품은 펠리니의 대표작 <8과 1/2>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신기함은 여전했지만 무언가 소란스럽고 분주하기는 한데, 결국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요즘 문화의 단면이다. 펠리니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달콤한 인생>(1960)은 세 시간이나 된다는 이유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정작 영화를 보고 나면 30분 정도 흘러간 것 같을 수 있는데, 영화 혹은 '이해'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것일까.

 

ⓒ <달콤한 인생>(1960)

펠리니의 영화 두 편을 일주일 간격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펠리니의 영화는 확실한 에너지가 있다. 그것은 지적인 성찰과는 다른 것이다. 그의 영화는 화려한 외양을 지녔지만, 막바지에 다다르면 씁쓸한 내면을 드러낸다. 그때가 진짜 얼굴이다. <길>(1954)에 등장하는 공연들처럼, <비탈리나>(1953)의 카니발 장면처럼, <달콤한 인생>의 중간들을 채우는 뮤지컬적인 장면들처럼 시골의 변두리이든, 펠리니의 고향 리미니이든, 로마의 한가운데서든 주인공들은 모두 춤과 노래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슬픔과 연민이 밀물처럼 들어온다.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다. 화려한 무대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펠리니의 영화가 언제나 다다르는 곳은 무대 뒷면의 씁쓸하고 눈물 나는 현실이다.

한 편의 영화 속에 희극과 비극을 뒤섞는 것은 채플린을 포함한 무성 코미디의 거장들이 이미 성취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 수준 높게 완성한 이는 펠리니였다. 공교롭게도 <8과 1/2>까지 펠리니의 작품은 흑백영화였다. 당시 이탈리아 영화의 제작 환경이 그랬다. 또한 대부분의 영화가 후시 녹음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 때문에 펠리니의 제작 현장에서는 애초의 대본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후시 녹음을 통해, 입술의 싱크가 맞지 않아도 펠리니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 바꾸어 놓을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8과 1/2>이 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펠리니는 정말 이 영화의 상황처럼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수정하고, 바꾸어 가면서 많은 대사를 구겨 넣었다. 대사의 양이 많은 것도 후시 녹음이라는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광대들의 목소리

그런데 더 흥미로운 점은 펠리니와 채플린의 유사점이다. 두 예술가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관심사에 영화로 답한다. 채플린이 떠돌이 찰리라는 캐릭터를 벗어던지고 맨얼굴과 본인의 목소리로 등장한 작품이 <살인광 시대>(1947)다. 이 영화의 원제는 '미스터 베르두씨'다. 채플린의 초기 영화인 <황금광 시대>(1925)에 맞춘 번역 제목이지만 변하고자 했던 채플린의 의도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제목이다. 매카시즘의 열풍에 맞춰 채플린의 영화 혹은 채플린은 표적이 되었고, 친자소송이 벌어지면서 스캔들의 화려한 주인공이 되었다. 여성 편력이 없는 감독도 아니었으니 응당 그럴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중에 친자가 아님이 밝혀졌어도 채플린은 고스란히 양육비 책임을 떠안는 결과를 맞이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채플린은 더 이상 '떠돌이 찰리' 혹은 광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베르두라는 이름으로 제목을 걸고 등장한다. <살인광 시대>의 채플린은 연민과 동정을 유발하는 떠돌이가 아니라 여성(과부)을 살해하는 파렴치범 베르두로 등장한다. 그것은 채플린을 둘러싼 정치, 여성을 둘러싼 스캔들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었다. 채플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스란히 재현해 줌으로써 정면돌파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면돌파는 꽤 자주 실패로 돌아간다. 채플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몰락은 <살인광 시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만일 이 영화를 대중들이 받아들였다면 채플린의 역사는 지금과 다를지도 모른다.

 

ⓒ <8과 1/2>

펠리니도 유사한 경로를 거친다. 그는 <달콤한 인생>(1960)으로 엄청난 유명세와 성공을 누렸다. 이 작품은 1960년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흥행에서는 물론이고, 예술가적 성취도 절정에 이른 셈이다. 그런데 1963년에 선보인 <8과 1/2>은 칸이나 이전에 자주 가던 베니스(이탈리아인에게도 자연스러운 선택이다)에도 가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영화제의 첫선을 보인 곳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였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펠리니가 생각한 이슈 중의 하나는 더 이상 '영화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이 정도의 배짱을 지닌 감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작가들과 영화제의 관계는 암묵적인 존중감으로 유지되기 마련일 텐데 더 이상 영화제의 권위를 빌리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펠리니를 향해 어깨에 뽕이 찼다고 비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8과 1/2>을 보면 상황은 정반대임을 깨닫게 된다. <8과 1/2>은 고해록이다. <달콤한 인생>의 성공으로 인한 관심도를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붙었던 비난도 쉼 없이 등장한다.

"다음 영화는 무슨 작품입니까.", "또다시 절망으로 빠지는 영화를 만드실 건가요?", "제가 맡을 연기는 어떤 거죠?, "저는 몇 번 등장하나요?" 등등 제작자에 의해 벌어지는 우주선 세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장면은 절정이다. 영화에 대한 질문뿐만 아니라 감독 구이도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까지 이어지면서 그를 향한 관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구이도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뿐이다. 그런데 펠리니는 이러한 상황과 심경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면서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낸다. 채플린은 대중들이 사랑했던 떠돌이 찰리를 버리는 전략을 선택했지만 펠리니는 자신을 향한 관심과 고통으로 영화를 빚는다. 온갖 질문에 대해 도망치려는 한 남자를, 조금 더 우아하게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였다. 그 결과 세간의 평가는 이전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펠리니는 더 이상 <달콤한 인생>에서 파파라치(사진 기자의 이름이다. 조금은 다르게 불리는데 여기에서 파파라치라는 말이 나왔다)를 외치는 세속적인 감독이 아니라 우유부단한 내면을 영화로 승화시키는, 고통의 축제를 보여주는 감독으로 격상된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어쩌면 성공한 이의 이면을 구경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작고한 황현산 선생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잘 표현된 불행"에는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향기가 높다. 

 

ⓒ <8과 1/2>

하지만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 보인다고 해서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것은 동시대에 펠리니와 경쟁구도 감독으로 꼽혔던 '루키노 비스콘티'는 물론이고, 스승이었던 로셀리니도, 동료였던 안토니오니도 하지 못했던 결과다. 자신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다니 정말 그것이 통했던 것일까.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든다. <8과 1/2>에서 보여준 구이도의 내면은 철저하게 계산된 펠리니의 또 다른 가면이라고 불러야 적절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결론에 놀라게 되는 것은 영화 현장을 다루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서로 충돌하는 과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끝내 화합하여 '할리우드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데 반해 펠리니는 결국 영화 세트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손에 손을 잡고 군무를 추는 장면에 감동을 받는다고 하지만 무너진 세트를 구이도의 머릿속에서 세워버린 환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속의 여러 등장인물 중에는 펠리니의 시나리오를 돕기 위해 온 '도미에'라는 인물은 눈에 띈다. 그는 펠리니의 시나리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퍼붓는 비평가에 해당한다. 냉철한 지성을 우선시하는 도미에는 구이도의 시나리오를 두고 "영화를 근거없는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만들고 있어요."라고 비판한다. 이것은 <달콤한 인생>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된 펠리니의 영화 스타일이었고, 비판받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런데 <8과 1/2>은 한술 더 떠서 현실의 에피소드를 연속으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꿈, 기억, 환상까지 동원해 연결해 버린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60년 전의 영화이지만,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의 장면인지, 구이도의 환상인지를 헷갈릴 수가 있다. 그만큼 세련되었고, 실험적이며 동시에 우아한 에피소드의 나열이다.

많은 이들이 비판하던 근거없는 에피소드의 연속은 <8과 1/2> 이후 펠리니 영화의 주요한 스타일로 자리 잡는다. 그것이야말로 비판에 대한 정면 돌파였다. 에피소드의 나열만으로도 두 시간 동안 꽤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을 끌어안는다.

아방가르드는 이 시대의 유행이었다. 고다르 또한 영화에 대한 영화인 <경멸>(1963)을 선보였고, 안토니오니는 <모험>(1960), <밤>(1961), <일식>(1962)을 만들며 이탈리아 모더니즘의 선구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페데리코 펠리니는 살아가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사랑한 것은 비록 지나가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낭만성에 젖어있다고 비판할 수 있을지라도 '거리'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일관된 태도였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이미지와 에피소드를 연속적으로 나열하면서 '아방가르드의 대중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1960년대라는 유럽 문화의 특이성도 한몫을 거들지만 말이다.(이 시기에 유럽의 문학,영화, 예술은 여러 실험을 자유롭게 하였고, 대중들은 꽤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국한되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

 

친절한 아방가르드

자기반영적인 영화에 대한 영화로 알려진 <8과 1/2>에서  현실과 환상(꿈, 기억, 판타지)을 구별할 수 있다면 꽤 친절한 영화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구이도의 현실적 문제는 단순하다.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도대체 무엇인가 만들 자신이 없는 감독의 고민과 도주가 있고, 그의 주변에 나타나는 여자들을 원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도망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도망치려는 구이도의 욕망은 자주 환상,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야외 카페테리아에 구이도의 정부 카를라가 등장했을 때, 아내 루이자는 쌍심지를 켜고 불쾌감을 드러내지만, 구이도의 머릿속에서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는 장면으로 뒤바뀐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구이도의 머릿속에서는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하렘 장면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하렘이 펼쳐지는 공간을 보면 어린 시절을 떠올렸던 집 안의 장면과 동일한 곳이다.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집 안을 떠올렸던 순간은 한밤중에 나타난 모리스(광대 분장을 한 캐릭터다)가 텔레파시 쇼를 펼칠 때 등장한다. 모리스는 떠나는 구이도를 붙잡고 텔레파시 전송 실험을 한다. 모리스의 파트너인 안나는 구이도의 머릿속에서 "ASA NISI MASA"라는 글자를 읽어낸다. 구이도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다고 인정한다.

종종 인터넷에는 이 글자에 대한 엉뚱한 해석들이 돌아다니는데, 펠리니는 이러한 아나그램적 상징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불어넣는 스타일은 아니다(전기적 사실은 이 시기에 그가 정신분석학자인 융에 심취되었다고 전하지만 그래서 어린 시절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상징체계를 복잡하게 꾸며대는 감독은 결코 아니다).

텔레파시 쇼와 이어져 구이도는 이 단어가 등장한 어린 시절의 한순간을 떠올린다. 엄마는 목욕을 마친 어린 구이도를 수건으로 감싸고 침대로 데려다준다. 침대에는 구이도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이 있고, 한 소녀가 그림을 가리키며 밤에 움직일 수 있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소녀가 무서울 때를 대비해 알려준 주문이 바로 "아사 니시 마사"다. 그러니까 이 말은 구이도의 어린 시절을 가리키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을 가리키는 "로즈버드(<시민케인>)"같은 글자다. 하렘 장면의 집이 이때의 집과 동일한 것은 '목욕'하는 구이도를 둘러싼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펠리니의 영화는 던져놓은 의문을 직접적으로 영화 속에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나열적 편집을 차분히 보고 있노라면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거나 보완한다.

 

아무튼 <8과 1/2>에서 구이도에게 닥친 두 가지 문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공적인 문제가 영화 제작이라면, 사적인 문제는 여성들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요양원에서 일어나는 2주의 시간 동안 두 영역은 겹치고 충돌한다. 덕분에 구이도는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요양을 하지 못한다. 유일한 요양의 순간은 그의 환상이다. 환상 속에서 꿈의 여인이자 영화배우인 클라우디아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다시 여성의 문제이지만 구이도가 아내 루이자에게서도, 정부 카를라에서도 그리고 이상적인 여인으로 등장하는 클라우디아에서도 끊임없이 욕망하는 것은 휴식과 위안이다. 하지만 이 위안은 현실에서는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고(당연한 일이다), 그럴수록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의 압박은 커진다. 

영화는 요양원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차를 타고 가던 구이도는 사방이 막혀 있는 것을 본다. 차에 탄 사람들, 버스에 탄 사람들의 시선과 이상한 모습들이 등장한다. 구이도는 차 위로 올라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렇게 탈출하는가 싶었는데 해변가에서 제작자와 변호사가 발목에 묶인 줄을 잡고 끌어내린다. 그는 추락하면서 꿈에서 깨어난다. 이 장면에 대한 해석이 넘쳐나지만, 줄거리로 따지면 단순한 표현이다.

꿈장면과 깨어난 상황을 연결하면 제작자와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구이도가 영화를 만들기 전 신경쇠약에 걸린 탓에 요양원에서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펼쳐지는 2주간의 장면들은 모두 요양원에 머무는 구이도의 모습이다. 하지만 요양원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다. 제작자를 비롯한 아는 이들이 즐비하게 묵고 있고, 끊임없이 구이도를 부르며, 말을 걸고, 방해한다. 그는 온전한 휴식도, 자신의 영화를 위한 시간으로도 몰입하지 못한다. 아마 현실의 감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구이도 앞에 의사와 간호사가 나타난다. 그들은 아침부터 방으로 들어와 처방을 내리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물어본다. "이번 영화는 무슨 내용입니까? 희망없는 또 한 편의 영화요?"

구이도가 요양(휴식)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만의 환상으로 들어가 그의 이상형이자 꿈의 여인인 클라우디아를 호출해 내거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아침에 받은 처방대로 온천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동안 구이도의 머릿속에서는 클라우디아가 나타나 그를 바라봐주고, 물을 떠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구이도의 환상은 지속되지 못한다. 현실이 나타나 단절시키는 것이다. 도미에는 구이도에게 "급수대에서 일하는 아가씨의 급작스러운 등장은 대체 무슨 의도죠?"라고 묻는다. 

그것은 구이도의 환상이 단순한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화의 시나리오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임을 보여주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의도, 의미, 메시지'로 과잉되어 있는 영화에 대한 접근법들이다. 그저 개인의 욕망이지만 영화가 될 때 사람들은 궁금증을 갖는다. 구이도의 사적인 환상은 공적인 영화가 되었을 때 이러한 질문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구이도는 끊임없이 환상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환상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괴테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오직 왜곡된 환상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구이도 혹은 펠리니의 영화에 딱 들어맞는 경우다. 이 환상을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대면해야 하는 현실이다. 

유년 시절의 여성 사기리나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오디션 필름을 확인하고 있을 때 사기리나에 어울리는 여러 배우들이 나타나 기억 속의 장면을 재현한다. 그 배우들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어쩌면 구이도의 고통은 기억 속에 있는 오리지널을 재현할 수가 없다는데 있는 것은 아닐까. 대체해야 하는 유사품들의 나열 속에서 고르라고 강요받는 것의 괴로움이 아닐까. 그것은 비슷하지만 진짜는 아니다. 그의 영화는 오로지 환상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구성이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펠리니는 꿈이 바로 영화이고, 영화는 꿈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서로 간섭시킨다. 허구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 개인의 기억과 영화의 시나리오를 절묘하게 겹쳐놓는 반복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걸으면서도 이상하게 나아간다." 이 느낌이야말로 마치 꿈과 같지 않은가? 

환상은 일시에 많은 것을 해결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도와주는 인물이지만 비평가이기도 한 도미에를 처리하는 환상 장면은 구이도의 욕망과 환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한 예다. 극장의 의자 뒤에서 잔소리를 시작한 도미에를 보며 구이도가 눈짓을 하자 두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도미에의 얼굴에 검은 두건을 씌우고 목을 매단다. 곧바로 환상임이 드러나는, 다소 유치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이 장면에 열광했던 이가 있다.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이다. 그 또한 코미디의 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 <애니홀>(1977)

채플린 - 펠리니 - 앨런

펠리니와 우디 앨런의 유사성은 <8과 1/2>을 재해석한 <스타터스트 메모리즈>(1980) 때문이 아니라, <애니홀>(1977)의 두 장면 때문에 떠올랐다. 우디 앨런은 극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영화에 대해 비평을 해대는 콜럼비아대 교수를 향해 그의 말이 정확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위해 미디어 학자인 '마셜 맥루헌'을 화면 속으로 직접 소환한다. 맥루헌은 콜롬비아대 교수의 말이 맞느냐는 앨런의 물음에 "개소리"라고 즉답한다. 이것은 비평가 도미에를 교살하는 것과 같은 좀 더 우아한 표현법이다. 그리고 우디 앨런은 한술 더 뜬다. "세상일이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펠리니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거리두기에 조금 더 철저했던 앨런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장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논평한다. 펠리니가 기억과 내면과 욕망 속으로 침잠하도록 이끈다면 앨런과 같은 감독들은 이 효과를 논평으로 사용한다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좀 더 지적이기는 하지만 펠리니의 날것 같은 환상에는 말로 접근하기 힘든 에너지가 있다.

<애니홀>에서 앨런의 어린 시절 장면은 <8과 1/2>의 학교 장면과 유사하다. 사기리나에게 돈을 주고 룸바를 춰보라고 했다가 선생님들과 어머니로부터 지탄받는 어린 구이도의 모습은 여자애들을 건드렸다고 혼이 나는 어린 앨런과 닮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펠리니는 이에 대한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지만 앨런의 영화에서는 "과도한 성욕 운운"하며 합리화를 덧붙인다. 이 또한 펠리니와 앨런의 차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8과 1/2>은 끝내 영화도 안되고, 연애(결혼생활)도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우디 앨런은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 이어 또 한 번 <8과 1/2>을 인용하는 또 한 편의 영화를 내놓는데 <할리우드 엔딩>(2002)이라는 작품이다. 10년째 영화를 찍지 못하는 왕년에 잘 나갔던 빌 왁스만이라는 감독의 이야기인데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찍게 되었지만,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게 된다. 심리적 맹인이라는 진단이 나오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상태로 크랭크 인을 외친다. 이 영화의 제목이 <할리우드 엔딩>인 것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상황이어도, 엄청난 자본과 배우 그리고 스텝이 투여된 영화 현장은 그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 할리우드의 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은 대부분 '헤피엔딩'이니까.

하지만 펠리니는 달랐다. 그는 영화가 중지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위기에 빠진 구이도에게 다가온 남자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어요"라고 말한다. 기자들을 피해 책상 밑으로 숨은 구이도는 질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낸다. 장면이 바뀌면 총소리가 들린다. 이 기자회견을 현실의 장면이라고 여긴다면 구이도는 자살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 기자회견 장면은 구이도의 환상처럼 보인다(이 영화를 다루는 많은 글들에서 구이도의 자살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야말로 펠리니식 엔딩이다. 현실에서는 우주선 세트를 떠나는 도미에의 말을 빌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괜찮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세상의 무질서에 기여하기 위하여

"세상에는 피상적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질서에 또 다른 무질서를 더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돈을 잃는 것은 제작자란 직업의 일부입니다. 축하한다는 말 외엔 드릴 말이 없군요. 제작자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경망스러운 모험에 가볍게 연류된 데에는 말이죠. 향수나 죄책감은 가지지 마세요. 필요한 걸 창조 못할 땐 파괴가 창조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분명하고 그렇게 정당하게 존속할 권리가 있는게 과연 있을까요? 잘못된 영화는 제작자에게는 단지 경제적 문제이지만 그러나 당신에게는 최후일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이 전쟁터를 정화할 때 했듯이 모두 그냥 놔두고 소금을 뿌리는 게 더 낫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생, 청소, 소독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무의미에서 시작돼서 무의미로 끝나는 존재 가치 없는 말, 형상, 소리에 의해 질식되고 있습니다. 예술가라는 이름이 가치 있는 진정한 예술가에게 우리는 침묵을 배우라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요구할 게 없습니다."

도미에는 말라르메, 랭보 등을 인용하면서 비평가의 의미를 떠들어댄다. "우리의 사명은 추악한 모습으로 매일 세상으로 나오려는 수십만의 미완성작들을 일소하는 것입니다." 관객들이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비평 혹은 비평가의 불운한 사명이라면(그러니까 비평은 해설따위가 아닌 것이다) 사명이다. 아무려나 도미에의 이어지는 말은 구이도에게 향한다.

"실제로 당신은 당신 뒤에 완성된 한 편의 영화를 남기려고 했죠. 절름발이가 보기 흉한 발자국을 뒤에 남기듯이 남들이 당신의 오류로 채워진 형편없는 카탈로그를 유용하게 쓸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괴상한 오만입니까? 당신 인생의 누더기나 희미한 기억들, 당신이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군데 바느질하여 잇는 것이 대체 뭐가 중요합니까?"

제아무리 자기성찰적이어도 펠리니 자신에 대한 비판 중 이보다 더 신랄한 비판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펠리니 영화의 유년 시절이나 에피소드들의 나열은 인생의 누더기나 희미한 기억에 불과하고 사랑없는 대상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인용하여 바느질하는게 대체 뭐가 중요하냐는, 오늘날 동시대 감독들이 망각해 버린 뼈아픈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쓴소리를 하는 도미에는 펠리니의 자기분열적 캐릭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1960년대의 펠리니는 이러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가장 에너지 넘치는 30대 말엽과 40대의 감독으로서 매 순간 희미한 기억들의 넝마주이자가 되어 의미 있는 것으로 치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펠리니의 영화를 보는 것은 이러한 태도, 이러한 것을 완성하기 위한 치열한 에너지를 경험하는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 점점 중요하게 평가되는 도미에의 언급은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생, 청소, 소독 같은 것입니다."이다. 코로나 시대이기에 이 말이 더 실감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태는 좀 다르다. 펠리니의 영화에서 위생, 청소, 소독을 언급하는 것은 'PC주의'와 관련을 맺는다. 펠리니의 영화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그의 영화는 끊임없이 혼돈, 더러움, 매춘부, 욕망의 점액적 덩어리, 온천수와 종교적 세례를 뒤섞는다. 위생학적인 관점에서 펠리니의 영화는 청소해야 할 대상이지만 그는 에피소드의 나열과 혼돈 가운데에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자 했다. 도미에가 말하는 "추악한 모습으로 매이리 세상으로 나오려는 수민만의 미완성작들을 일소"하는 것에 대한 반증으로서 말이다. 

물론, 펠리니도 위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꾸만 순수성의 환상을 기입해 놓는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소환하고,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펠리니식의 속임수가 하나 있다. <8과 1/2>에서 순수성의 여인으로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CC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유럽 최고의 육체파 배우 중 한명이었다. 그녀의 명성은 BB(브리짓 바르도), MM(마릴린 몬로)과 같은 섹스 심벌이었다. 또한 어린 시절의 장면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가 뭐래도 동네 매춘부라 할 수 있는 사기리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펠리니는 위생학적 관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대놓고 파괴한다. 그러한 순수는 없다는 것, 그저 순수하게 여기는 자신이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보면 얼마든지 순수할 수 있다. 바라보는 자의 순수성이야말로 혼돈 속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이 영화 속 CC의 모습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턴>(1968)의 매력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분명 다른 아름다움의 CC를 충분히 보여준다.

 

ⓒ <비텔로니>(1953)

끝으로, <비텔로니>(1953)에 대한 짧은 인상을 남긴다.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 루저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리미니(펠리니의 고향이다) 지역에서 할일없이 소일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현지말을 제목으로 가져왔다. 5명의 비텔로니를 중심으로 그들의 허송세월을 보여주지만, 그 가운데 번뜩이는 윤리적 성찰과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펠리니가 만들어 낸 영화적 원형이 되어 이후 수많은 감독들에 의해 번안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1973)이다. 그러니까 무려 20년 뒤에 펠리니의 절친 중 하나가 된 스콜세지는 <비열한 거리>를 통해 자신의 동네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를 묘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비텔로니>라는 훌륭한 전범의 영화를 만들었던 펠리니가 십년 뒤에 선보인 <8과 1/2>을 통해서는 자신이 세운 전범을 해체하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길을 만들어 냈던 펠리니의 영화세계는 확실히 자기 파괴라는 기이한 에너지가 넘친다. 그것은 확신과 부정을 오가면서도 영화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한 예술가의 집요한 태도와 유아기적이고, 욕망을 숨길 줄 모르는 열정이 가져온 기이한 결과물이었다.

물론, 펠리니의 영화에는 다소 쉬워 보이는 구원과 열망이 있다. 가령 <비텔로니>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마로 향하는 모랄도를 배웅하는 소년 구이도의 존재처럼 말이다.(누가 뭐래도 네오리얼리즘의 반영적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구이도는 십 년 뒤 작품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되었고, 어느새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예술가의 초상이 된다. 이때 구이도는 더 이상 네오리얼리즘의 소년이 아니라 세파에 찌들었지만, 여전히 구원을 꿈꾸는 한 남자의 초상이 된다. 이 또한 순수성으로부터 변해버린 현실의 연결이자 펠리니 세계의 순환적 구현이다.

※ 추신

ⓒ 더숲 아트시네마
ⓒ 더숲 아트시네마

이 글은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된 <비텔로니>(10월 28일)와 <8과 1/2>(11월 4일) 강연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poema@ccoart.com]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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