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하야오의 진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
망각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하야오의 진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
  • 김경수
  • 승인 2023.11.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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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공포에 잠식된 세계에 보내는 탄식"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10년 반에 복귀한 애니메이션이며, 그가 은퇴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으로 인해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개봉 전까지 제목과 왜가리가 한 마리 그려진 포스터,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힌트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없어서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제목이다. 영화 제목이라기에는 다소 길고 딱딱하며 보는 이를 훈계하는 뉘앙스가 짙게 배어 있다. 차라리 강연 제목에 어울릴 법하다. 하야오는 이 영화의 제목을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제목에서 빌렸다. 어릴 적 어머니가 그에게 선물한 책이기도 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유년기의 하야오를 모티프로 한 듯한 마키 마히토는 어릴 적에 경험한 폭격의 트라우마에 허덕이는 소년이다. 그는 어머니가 있는 병원이 폭격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에 곧장 어머니 히사코를 보러 달려갔지만, 거기서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한다. 마히토의 아버지 쇼이치는 군수 공장을 운영하는 비즈니스맨으로 처제 나츠코와 재혼해 새 삶을 꾸리려 한다. 하물며 나츠코는 이미 쇼이치의 아이를 임신해 입덧까지 한다. 마히토는 아버지를 따라서 군수 공장이 있는 도쿄 교외로 이사한다. 그는 새 가정에 적응하지 못한 채로 겉돌기만 한다. 그는 거기서 저택 인근 연못에 사는 정체가 묘연한 왜가리를 마주한다. 왜가리는 어머니가 죽지 않고, 큰할아버지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그 인근의 성에 도피해 있다고 귀띔한다. 어느 날 나츠코가 실종된. 마히토는 이를 왜가리의 소행으로 보고 왜가리의 깃으로 만든 화살과 활을 손에 들고는 성으로 간다. 거기서 마히토는 왜가리의 안내에 따라서 지하에 있는 이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나츠코를 구하려는 여정을 떠난다. 

 

ⓒ Studio Ghibli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은 괴작이다. 이 영화는 언뜻 보기에는 지금껏 하야오가 제작한 열두 편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비슷하다. 쇼이치를 모시는 일곱 하인 할머니는 유바바와 닮아있다. 마히토가 왜가리를 따라서 성에 진입할 때 깊숙이 파인 홈은 <이웃집 토토로>의 나무 밑기둥에 생긴 구멍을 생각나게끔 한다. 성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스팀펑크 풍으로 그린 성과 비슷하다. 왜가리의 안내로 들어간 지하 세계 곳곳에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생각나게끔 하는 갑충이 돌아다닌다. 이야기의 틀도 마찬가지다. 그의 필모에 반복되는 시골 마을에 간 아이가 신화적인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 구조는 이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본 적 없더라도 충분히 하야오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브리를 처음 접한 관객보다 지브리의 필모를 성실히 따라온 지브리의 팬일수록 큰 충격을 줄 법한 영화다. 식인하는 잉꼬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와라와라 등 크리처가 쏟아져 나오는 연출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도 드러난다. 다만, 그 크리처에 부여된 제각기의 서사와 그 의미가 제대로 설명되었다. 또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감정선을 잡아주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과잉된 이미지 너머로 하야오의 트라우마가 흩뿌려져 있기에 그 이미지를 쉬이 소화하기가 힘들다. 전작과 달리 음악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기도 한다. 온갖 상징적인 이미지가 나오나 세계관의 윤곽, 거기에 담긴 의미와 감정이 잘 공유되지 않기에 관객은 파편화된 이미지에 몰입하거나 방황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온갖 곳에 흩어진 이미지가 매혹적인 것은 하야오의 상상력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그린 애니메이터 '혼다 타케시'의 몫이 큰 듯하다.

 

ⓒ Studio Ghibli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바람이 분다>처럼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가족 서사다. 마히토의 가족은 하야오가 애증하는 그의 가족과 비슷하다. 하야오의 아버지는 반전주의자이면서 군수 공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를 사랑했으면서도 아픈 아내를 내버려 두고 외도를 자랑하는 모순으로 가득한 인간이다. 이는 마히토의 아버지가 처제 나츠코와 결혼한 것으로 드러난다. 하야오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본인도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종종 작품에서 드러냈다. 반전주의자이면서도 전투기에 대한 애호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는 본인의 길티 플레저를 <바람이 분다>에서 그려냈다.

한편, 하야오의 어머니는 오랜 기간 폐렴으로 투병한 다음에 그와 정치적인 갈등을 빚었다. 그의 영화 곳곳에 아픈 어머니가 드러나고, 그를 치료하려고 하는 아이가 등장하는 것은 그의 유년기가 투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마히토가 나츠코를 언뜻 어머니와 닮은 존재로 보는 것도 그녀를 유사-어머니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집 토토로>와 <바람이 분다>에 드러난 아픈 여성은 그 트라우마가 드러나는 이미지다. 한편 여기서 이중적인 감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병이 완치된 다음에 드러나는 그녀의 호방한 성격은 그의 세계관에서 여전사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여자 주인공이 주로 등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인지 마더 콤플렉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츠코와 쇼이치 둘 다를 진짜 부모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하토의 복잡다단한 심경은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은연중에 암시되었다. 특히, 소녀가 성장하는 그의 이갸기 구조에서 드러난다. 본인이 노동을 도맡아 하면서까지 성장하려 노력하는 아이의 서사는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의 과거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하야오를 분석하는 여러 연구의 공통된 의견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마르트 로베르'의 도식에 따르면, 하야오는 지금 부모가 진짜 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생아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창작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 소품이면서도 1부와 2부를 잇는 가교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히사코라는 진짜 어머니가 선물한 책이어서다. 1부는 이러한 정황을 바탕으로 마히토가 왜 동화의 세계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지 심리적 정황을 마련한다.

 

ⓒ Studio Ghibli
ⓒ Studio Ghibli

영화의 2부는 하야오가 1부의 정황을 동화적인 세계관으로 가공한 서사다. 2부에 등장하는 이세계는 하야오가 어린 시절에 읽은 여러 동화를 짜깁기한 듯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왜가리를 따라서 구멍으로 빠진다는 설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나츠코를 찾으러 떠나는 여정은 『오즈의 마법사』를 보는 듯하다. 납치된 가까운 이를 찾으러 성에 간다는 설정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과도 비슷하다. 거대한 물고기와 배는 『바론 남작의 대모험』에서 빌려온 듯하다. 환상과 공포를 오가는 이세계의 크리처는 1부에 드러나는 미하토의 무의식 속 여러 이미지가 조합되어서 생긴 꿈처럼 보인다. 이세계에서 미하토를 섬기는 하인 키리코는 나츠코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로, 히사코는 불을 다루는 히미라는 정령으로 등장한다. 강인한 성격의 키리코와 히미, 그리고 나츠코는 하야오가 어머니에게 느낀 이중적인 감정을 그려낸 캐릭터로 보인다. 하야오가 대학교 시절 아동문학 동아리에서 스토리텔링을 배운 것을 염두에 두고 볼 때 노골적으로 동화를 짜깁기한 이미지가 가득한 2부는 본인의 창작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거기서 와라와라가 지구로 올라가 아이가 된다는 사실은 하야오가 지브리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2부에서 책을 너무도 읽은 나머지 성으로 사라진 큰할아버지가 등장하자마자, 거기에 투영된 하야오 본인이 영화의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야오야말로 소문난 독서광으로 <바람이 분다> 이전까지 일본이 아니라 외국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만을 그려온 작가이기에, 큰할아버지와 유사할 것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하야오와 관객 사이의 대화로 변한다. 큰할아버지의 입으로 하야오가 관객에게 하려는 말이 직접 드러난다. 큰할아버지는 미하토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자 그에게 블록을 건넨다. 이 블록으로 세계를 조화롭게 만들어보라는 식이다. 큰할아버지가 그에게 건네는 13개의 블록은 하필 하야오가 지금껏 제작한 지브리 작품의 편수와도 우연히 같다. 이때 앵무새 대왕의 훼방으로 그 13개의 블록은 사라진다. 이세계는 무너지고, 미하토는 큰할아버지의 말마따나 전쟁이 다가올 현실을 마주하며 이세계를 잊어야만 한다. 하야오는 동화로 제작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무너질 것으로 보는 것일까. 또 그가 지금껏 제작한 모든 작품에서 그러했듯 “살아라!”라고 반복하는 것일까. 하야오는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떠한 세계가 무너졌다는 사실 자체다.

하야오는 우리가 동화로 지은 세계에 갇혀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이후의 삶을 미래 세대에게 질문하는 단계로도 나아간다. 그러나 이 질문은 탄식에 가깝다. 이는 원작과 연결해서 볼 때 더 잘 드러난다. 이 영화의 원작은 사춘기를 지나는 중인 코페르(코페르니쿠스를 줄여서 만든 애칭이다)의 이야기와 그에게 조언하는 삼촌의 노트가 번갈아 등장하는 구성이다. 하야오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소년과 삼촌의 대화를 그리지 않는다. 세상살이를 조언할 삼촌은 애초에 없다는 듯이. 굳이 하야오가 영화와 전혀 무관한 작품의 이름을 빌린 이유는 무엇일까. 소년에게 삼촌처럼 조언할 존재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하야오의 탄식이 아니었을까.

 

ⓒ Studio Ghibli
ⓒ Studio Ghibli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하야오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전적 이야기를 설명하는 성의 탄생을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야오의 세계관에 생긴 결정적인 변화를 여기서 마주할 수 있다. 기존의 작품이라면 하야오는 자연의 정령으로 환상 속 세계가 어린이에게만 보인다고 얼버무렸을 것이다. 또 그것이 꿈이거나 한때의 추억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번 작품은 다르다. 이번 작품의 설정은 H.P.러브크래프트가 그려낸 코즈믹 호러와 맞물려 있다. 이 영화가 중반 이후로 플롯의 흐름이 예측이 힘든 것도 동화적 세계에서 벗어나 있어서다. 이 영화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중에서도 『우주에서 온 색채』와 설정이 비슷한 지점이 있다. 이 단편은 하늘에서 떨어진 행성이 그 일대의 생태계를 달라지게 했으며, 주인공이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해도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기에 모두에게 미치광이로 몰린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도 하늘에서 운석이 날아와 거기에 있는 생태계의 흐름을 했고 거기에 성이 탄생했다고 설명된다. 이는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거기서 개인이 실종되었다가 드러난다든지, 성을 본 큰할아버지가 이세계로 간다든지 하는 설정을 추가해서 본인만의 색채를 더한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이세계는 현실과 완전히 다르기에 항상 인물이 현실로 제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었다. 이제 하야오의 이세계는 느닷없이 생긴 공포이면서도 현실에 기반해 있다. 하야오는 2차 대전이 한창인 데다가 피로 뒤범벅된 현실과 운석이 떨어지듯이 느닷없이 창조된 이세계를 데칼코마니로 둔 다음에 그 둘 다 끔찍하다는 염세적인 세계관을 그려낸다. 하야오는 동화로만 지어진 지브리야말로 부르주아로 자신이 느낀 자기혐오와 위선, 모순으로 가득한 우주적 공포의 공간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간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는 가끔 드러난 잔혹한 이미지가 전면에 드러난 것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전쟁의 공포는 부조리한 데다가 설명되지 않으며, 예술은 세계가 끔찍해질수록 같이 끔찍해지기 마련이니까. 이세계에 논리적인 전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서 납득이 가능하다. 그러하다면 이 끔찍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지막에 왜가리가 마히토에게 건네는 조언은 기껏해야 열두 개의 블록에 불과한 예술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절망을 최소한 미래 세대가 망각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하야오의 진심이 아닐까.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Studio Ghibli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The Boy and the Heron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Miyazaki Hayao

 

출연(목소리)
산토키 소마Soma Santoki
스다 마사키Masaki Suda
시바사키 코우Shibasaki Kou
아이묭Aimyon
기무라 요시노Kimura Yoshino
기무라 타쿠야Kimura Takuya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수입|배급 대원미디어|메가박스중앙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23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3.10.25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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