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7] '우리의 하루' 홍상수가 찍은 다큐멘터리
[홍상수 #7] '우리의 하루' 홍상수가 찍은 다큐멘터리
  • 이현동
  • 승인 2024.04.2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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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예술가의 솔직한 하루"
ⓒ 영화제작전원사

홍상수는 '지각'을 시험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각이란 대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객관주의적 믿음이 아닌, 더 나아가서 주의가 발휘되어야 하는 운동성을 지닌 모종의 행위를 뜻한다. 주의를 발휘해야 하는 영화는 쉽게 말하면 두 부류다.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실험주의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실험주의일까, 다큐멘터리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린 실험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점차 단조로운 형식을 구사한다. 신작 <우리의 하루>에서는 2, 3번의 줌 인과 줌 아웃, 몇 번의 패닝 말고는 전혀 움직임이 없다. 이처럼 형식의 부동성과 내제된 의미의 운동성을 적절히 논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건 몽타주의 가능성이 주요하다. 물론 단순하게 보자면 몽타주마저도 롱테이크를 주로 활용하는 홍상수 영화에서는 사뭇 난감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번 영화에는 이야기를 중간마다 구분할 수 있는 자막과 두 종류의 그룹을 통해 명료하게 몽타주가 제시되고 있다.

영화의 제목에 '우리'가 들어간 <우리 선희>(2013)가 '선희'를 중심으로 한 영화였다면, <우리의 하루>의 '우리'는 그 대상을 조금 더 '실제의 우리'로서 확대한다. 여기서 '실제의 우리'란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한 '홍상수와 김민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강화하는 오브제로 영화에선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는 감독 기주(김승윤)가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기록일 뿐만 아니라 실제 대상을 정직하게 앵글에 담는 활동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실제와 밀접한 대상이 된다. 전작 <물 안에서>에서는 성모가 돌 틈 사이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여인을 보고 대화를 나눈 다음, 그 장면을 똑같이 찍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영화 안에서도 영화 안에서 재현의 법칙이 성립될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는 모방의 법칙 이 모든 것이 양립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하루>에서도 카메라, 그리고 다큐멘터리 장르는 유사한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다큐멘터리의 대상이 홍상수를 의미하는 홍의주(기주봉)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스스로를 반영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 영화제작전원사
ⓒ 영화제작전원사

영화에서의 우리와 실제의 우리

<우리의 하루>는 명확하게 상원(김민희), 홍의주 두 그룹을 보여준다. 여기서 호명되는 '우리'는 정수(송선미)가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유독 상원에게만 친근감을 표시하는 고양이는 이 두 그룹이 유사한 방식으로 묶여 있음을 보여준다. 후에 알게 되지만 70대에 접어든 시인 홍의주도 고양이를 키운 바가 있다. 이 예시와 더불어 <우리의 하루>는 이런 유사성의 원리를 계속해서 심어둔다. 인물의 배치, 언어와 제스처, 공간의 활용이 중첩함으로 영화는 프레임 자체에 머물지 않고 외화면 바깥으로 점차 튕겨 나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결코 윤리, 도덕, 교훈과 같은 주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매번 다른 장소에서 술을 마시며 주정을 부리고,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논하는 모습에서 우린 그 모습이 누군가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례 짐작하게 된다. 그간 홍상수는 영화에 자신으로 유추되는 직업군인 감독, 시인 등의 예술가를 등장 시켰고, 심지어는 현재 자기 연인인 김민희를 통해 영화를 실제와 같이 전개시켰다. 가령 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했었던 김민희에게 배우 지망생인 지수(박미소)가 배우를 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솔직함'에 있다는 그녀의 대답은 홍상수 영화 내부를 투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간결한 힌트가 된다. 이러한 투명성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은 '우리'를 짚어보기 위해 방금 제시하였던 그 유사성의 논지에서 몇몇 장면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첫 시퀀스에서 긴 잠에서 깨어난 상원이 고양이 우리와 시간을 보낼 때 그녀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은 은밀하게 심어둔 자기를 표상하는 이미지로 보인다. 마치 이 영화를 형식을 형상화하는 듯 보이는 이유는 거울은 결코 그림과 같은 모방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이기 때문이다. 상원은 피곤한 나머지 다시 침대에 가서 눕는다. 여기서 침대의 배치는 오른쪽인데, 의주가 침대에 눕는 장면에서 침대 배치는 왼쪽이다. 곧이어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는 먼 친척인 외사촌인 지수가 계단을 오르는 신이 있고, 홍의주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찾아가는 배우 지망생인 송재원(하성국)의 첫 신에도 역시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존재한다. 상원과 의진은 라면에 고추장을 넣어 먹는 습관까지 동일하고, 먹을 당시에 상원은 오른쪽에 앉아있고, 의주는 왼쪽에 앉아 있다. 병원에서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이야기에 의주는 망설이다가 재원에 의해 술을 마시게 되는 장면과 처음에 와인을 먹지 않고 있던 김민희가 후에는 와인을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만약 프레임을 데칼코마니처럼 다시 결합한다고 한다면 어느 한쪽에도 공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양립이 '우리'라는 대명사에 깊이 잠식하고 있으며, 이것이 실제임을 명시하는 역할을 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이 영화가 있는 그대로 사실임을 주저하지 않는다.

 

ⓒ 영화제작전원사
ⓒ 영화제작전원사

<우리의 하루>를 보고 있으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데칼코마니>(1966), <금지된 재현>(1937), <연인들>(1928) 같은 그림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비평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데칼코마니>를 분석하며 유사(원본을 전제)와 상사(원본이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언명했다.

"유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게 하지만, 상사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 친숙한 실루엣이 감추는, 못 보게 하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게 한다. (중략) 그림의 공간에서 쫓겨나고, 각자 자신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사물들 사이의 관계에서 배제될 때, 유사는 사라진다." ― 미셸 푸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고려대학교 출판부, pp.64~65

위는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해당한다. 두 종류의 표상이 아이러니한 상태로 표시될 때도 우리의 질문은 되돌아가는 위치에 대한 물음으로 이행되는 것이다. 가령 시인의 성은 왜 '홍'으로 시작하는가. 규명하진 않지만, 시인은 왜 이혼하게 되었으며, 딸 한 명과 떨어져 산다고 말할 때 왜 섭섭하지 않다고 한 걸까.(실제로 홍상수는 딸이 한 명 있다)

자기를 반영할 때 영화는 유사와 상사의 관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영화에서 삶이란 원본을 전제하면서도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두 가지를 횡단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재원이 술에 취해 의주에게 묻는다. "사는 게 뭐냐, 사랑이 뭐냐, 진리는 뭐냐"에 그의 답은 단순하다. 찾을 능력도,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있으면 어때?"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대답은 홍상수 영화가 이런 물음으로부터 해방됨을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시'가 요즘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은 '시=영화'를 대변하는 말처럼 들린다. 홍상수가 제작과 배급을 도맡아야 할 수 있는 자기 회사인 전원사를 출범하고 이제는 대범하게 자기의 말을 영화적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네가 읽고 있지 않느냐. 누군가가 읽으면 된다'는 의주의 말은 관객 수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 홍상수의 태도와 비슷하다. 시를 쓰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시인과 같이 홍상수 또한 영화감독이 된 것도 즉흥적이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표명하는 듯 보인다.

이어서 가위바위보를 10판 하자는 의주의 장난스러운 제안에 기주와 재원이 응답한다. 각 그룹이 3명으로 구성되고, 가위, 바위, 보라는 경우의 숫자가 3가지라는 것 또한 영화에서 끊임없이 구조화되는 유사, 중첩의 요소다. 그리고 과연 홍상수라면 이 장면에서 어떤 디렉션이 있었을까를 묻게 된다. 두 사람이 용무가 있어 떠난 후에 옥상에 올라간 의주는 치킨과 술, 담배를 꺼내고 영화가 마무리가 된다. 의주에게 옥상은 현재 그가 위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장소다. 결국 그 옥상에서 쓸쓸하게 있는 의주는 홍상수의 내면이 아닐까. 그러나 그에게도 희망을 예견할 수 있다면 김민희의 프레임이 끝난 장소가 옥상이 아닌 집이라는 점을 염두해 보자. 홍상수는 옥상에서 내려와 김민희를 만날 것이다. 그때부터 영화는 영화가 아닌 셈이다. <우리의 하루>는 '영화가 어떻게 현실로 은유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다. 이처럼 어떤 영화는 화면 밖으로 나와 실제가 된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영화제작전원사

우리의 하루
In Our Day
감독
홍상수
Sang-soo Hong

 

출연
기주봉
김민희
송선미
박미소
하성국
김승윤

 

제작|배급 영화제작전원사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8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10.1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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