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세지가 설교하는 야만의 시대 ['플라워 킬링 문' #1]
스콜세지가 설교하는 야만의 시대 ['플라워 킬링 문' #1]
  • 이현동
  • 승인 2023.10.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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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야만인인가"

스트리밍과 극장을 연결하는 시대로 변모하는 가운데 80대 노장 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아이리시맨>(2019)에 이어 Apple TV+를 통해 <플라워 킬링 문>(2023)을 선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영화매체 데드라인은 그와의 인터뷰에서 극장의 미래를 물었는데, 그는 "영화가 지난 100년 동안 계속해서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누구도 단언한 바 없으며, 25년, 5년, 작년까지만 해도 상황은 변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역시 신작을 통해 처음으로 시대를 거슬러 '서부극'에 도전하는 시도 자체가 변화와 접촉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자신을 서슴없이 갱신한다. 물론, 배경과는 무관하게 스콜세지가 가진 주제 의식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이 갖고 있는 거대한 모순인 아메리카 드림, 백인 우월주의와도 같은 구도 속에서 영웅주의를 소거하고 도리어 미국 신화로부터 붕괴한 인간을 그려내는 방식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 70-90년대를 보더라도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코미디의 왕>(1982) <좋은 친구들>(1990)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의 영화는 유독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뉴욕은 미국을 가장 잘 드러내는 '환상'적인 도시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 예술가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 문화가 범람하는 세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다. 스콜세지는 뉴욕이 가진 화려한 특성을 부각하려 하지 않고, 그 안에 어두움을 도려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신작 <플라워 킬링 문>에서 스콜세지가 뉴욕이 아닌 '서부'로 옮겨온 건 조금 더 미국의 어두운 양상을 확대하고, 심지어는 인류학적 계보에 대한 성찰로까지 전환할 수 있는 도구로 보인다. 이는 청교도 선민 주의를 갖고 있는 미국인들이 '서부'라는 장소를 통제하고 규제하려는 방식이 잘 드러나기도 한다. 역사에서 청교도 목사들은 인디언을 사탄의 아들로 취급하고, 잔혹하게 학살했던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신작에서도 기독교를 믿는 백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범죄를 자행한다. 영화에서 곳곳마다 짧게 언급되기도 하지만, 배경이 되는 오클라호마 주는 인종차별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장소다. 주인 없는 땅, 빨간색의 사람들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는 오클라호마는 아메리칸 원주민이 거주하는 땅이었다. 뒤늦게 이주했던 백인과 흑인은 이 땅에서 나는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을 통해 쉽게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흑인을 못 마땅해했고, 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던 털사(Tulsa)지역에서 1921년에 인종 학살을 일으켰다. 반면에 인디언들은 자원을 먼저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해 온 다른 인종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부를 강탈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혼하여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었다.

<플라워 킬링 문>은 이러한 시기에 발생했던 오세이지족 원주민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실화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영웅이 아니라 인간 군상이 얼마나 역설적인지를 다시금 설교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백인의 가르침

인디언들이 미국을 상징하는 파이프를 손에 올리고 이렇게 말한다. "백인에게 가르침을 받을 겁니다" 이는 영화 첫 대사다. 인디언들은 움막에서 장대한 서사시를 알리는 이 의식에서 그들의 표정은 어떠한 위엄도 깃들지 않은 무심함뿐이다. 다음 시퀀스는 땅에서 솟구치는 기름을 맞으며 환희인지 모를 몸짓으로 춤을 추는 인디언을 조명한다. 이는 앞으로 접촉하게 될 그들의 미래가 세계 자본을 조율할 수 있는 막대한 힘이 아닌 어떤 모호한 속에 방황하고 있음을 몽타주로 설명한다. 여기서 영화는 백인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물성으로 탄생한 인물임을 관철하기 위해, 그가 등장하기 전에 자동차, 경비행기, 골프치는 이들과 같은 부유한 모습을 배치한다. 스콜세지는 이 부분에서 관객의 지각행위를 '시간'으로 감응시키기 위해 흑백과 컬러, 그리고 화면비율을 축소함으로 과거와 현대를 접합하는 숏을 삽입한다. 이는 전작 <아이리쉬맨>에서도 올드보이들을 통해 과거와 현대를 이었던 것과 그 외형이 흡사하다.

어니스트는 마치 <택시 드라이버>의 퇴역한 군인 '트래비스'(를 연상시킨다. (그 역시 전역한 군인이었고, 택시 운전사로 활동한다) 트레비스가 뉴욕을 바라보며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킬 정도로 비관적이었다면, 어니스트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인종도 상관없이 여자면 좋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더욱 악랄한 사람일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 행위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니스트는 월리엄 킹 헤일(로버트 드 니로)을 만나 오 세이지 족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부를 착취하기 위해 인디언 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킹은 은밀하게 뒤에서 자살을 위장하거나 독살을 지시함으로 오클라호마에서 왕과 같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디언을 야만인이라고 여기면서도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킹과 그 지시를 수행하는 어니스트의 모습은 유사해 보인다. 여기엔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영적 권력을 이용하는 그들은 궁극적으로 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강조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반면에 어니스트가 사랑하는 아내인 몰리(릴리 글래드스톤)와 자녀들과의 관계는 영화에서 '선'과 '악'의 갈등이라기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상기하게 한다. 영화는 반복해서 킹의 주문에 따라 인디언이 살해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그 국면은 몰리에게도 닥쳐온다. 어니스트는 당뇨를 앓고 있었던 몰리에게 인슐린에 독약을 섞어 계속 투약한다. 점차 쇠약해진 몰리는 자신을 비롯한 부족에게 발생하는 사건을 보며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연방 정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정부는 FBI 요원 톰 화이트(제시 플레먼스)를 보내 수사를 시작한다.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몇몇 인디언의 죽음에서 수상함을 인지한 톰 화이트는 수사망을 좁혀 모든 사건의 원흉이 킹임을 밝혀낸다. 어니스트는 재판 과정에서 가족을 지켜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변호에 임하지만, 다시금 회유하려는 킹 앞에서 의견을 바꾸기도 한다. 

병을 갖고 있었던 자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니스트가 가족을 돌아보며 정당한 변호를 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 곧이어 독약을 먹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 몰리는 어니스트를 추궁하며 결국 그를 떠난다. 여기서 백인의 가르침이 얼마나 역설적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어니스트의 사랑은 진실했을까. 설사 진실했더라도 가능한 사랑이었을까. 몰리로 대표되는 인디언의 가르침은 초반에, 어니스트에 대한 생각을 밝힐 때 알 수 있다. 어니스트가 몰리게 접근할 때 그를 보며 "네가 가진 돈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라 친구는 말한다. 그때 어니스트는 삼촌인 킹이 돈이 많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를 '늑대'라 지칭하면서도 결혼한 몰리는 끝까지 그를 사랑하려 한다. 영화에서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주장하는 미국인이 도리어 야만적이고, 반대로 야만인이라 규정하는 인디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에서 조금은 뜬금없지만, 이 이야기가 연극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무대 위에서 결말을 내레이션하는 내레이터와 숏/역숏으로 관객들을 잡는다. 이 앵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점은 이러한 광경(영화)이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상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이례적으로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모습이 등장한다. 여기서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차별이라는 지점을 떠올릴 수 있다. 이탈리아 혼혈인 스콜세지의 삶이 연상되기도 하는 <플라워 킬링 문>은 자기 반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호소한다. <아네트>(2021)에서 무대에 깜짝 등장했던 레오 카락스의 모습도 그러한 예시다. 레오 카락스도 <아네트>가 가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내용이라 언급한 바 있다. 80세 거장 감독이 <코미디의 왕> 마지막 장면에서 로버트 드 니로를 브라운관 토크 쇼에 전파한 것과 같이 이번엔 자신을 연극 무대로 드러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아이리쉬맨>을, Apple TV+에서 <플라워 킬링 문>을 공개한 마틴 스콜세지. 극장뿐만 아니라 OTT 플랫폼을 통해 광범위하게 작품을 공개하는 그의 전략은 현대를 바라보는 유연한 사고에 일환처럼 보인다. 여전히 영화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는 관객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거장이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롯데엔터테인먼트

플라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감독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제시 플레먼스Jesse Plemons
릴리 글래드스톤Lily Gladstone

 

제작 Apple TV+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20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3.10.1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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