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th BIFF]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 컷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28th BIFF]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 컷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 김경수
  • 승인 2023.10.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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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리얼리즘 시대를 보는 종말론적 시선"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2023)를 기점으로 '라두 주데'를 거장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제71회 베를린 황금곰상을 수상한 그의 전작<배드 럭 뱅잉>(2021)은 파격적인 형식 실험을 시도한 영화다. 영화는 두 배우의 실제 성관계를 촬영한 포르노로 시작한다. 이윽고 감독은 소비주의에 잠식당한 부쿠레슈티의 시내, 파시즘과 보수주의가 만연한 루마니아의 정치, 지식인의 위선을 마구 폭로한다. 다만, 이 감독이 멀찍이서 인간군상을 냉소하는 감독에 불과했다면, 그를 거장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라두 주데가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이유는 '냉소를 그리는 형식'에 있다. 그는 시네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동시대의 감각을 영화에 담을 수 있는 형식을 성실하게 모색한다. 보통 형식 실험은 시각적 쾌감만 자극하는 치기 어린 눈요깃거리에 그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런데 라두 주데의 형식 실험은 에이젠슈타인, 발터 벤야민, 브레히트 등 여러 중요한 철학자의 지적인 자양분 아래서 형성되어서 정교하고도 아름답다. 올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그의 신작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도 마찬가지다. 유튜브와 틱톡, 줌Zoom 등의 매체와 영화를 넘나드는 형식 실험을 감행한다.

라두 주데는 이번 신작으로 형식 실험으로 현실을 비판하면서 정치에 참여하려는 아방가르드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를 감히 21세기의 루이스 부뉴엘이라고 말하고 싶다.

 

ⓒ 부산국제영화제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는 한 루마니아의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안젤라'(일린카 마놀라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영화다. 1부의 제목은 '1981년, 안젤라'다. 이 영화 속 안젤라는 둘이다. 한 명은 앞서 이야기한 2022년 COVID-19가 한창인 상황에서 계속 산업 안전 광고를 촬영할 모델을 물색하러 다니는 안젤라고, 다른 한 명은 1981년도 영화 '안젤라가 움직인다'의 주인공인 안젤라(도리나 라자르)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영화 속의 안젤라는 모두 운전수다. 2022년의 안젤라는 휴식할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를 오가는 긱 노동자다. 하물며 아버지의 무덤에 대한 법적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쉴 틈도 없다. 제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상사는 그녀더러 레드불이나 먹으라고 말한다.

두 안젤라의 이야기는 각각 흑백과 컬러로 촬영된다. 아이러니하게 둘 중 흑백 16mm 필름인 쪽은 2022년이다. 자칫하다가는 차우셰스쿠가 1970년대 오일 쇼크의 여파로 배급제를 실시하기 시작한 1981년의 풍경이 더욱 활기차 보일 수 있을 정도다. 안젤라는 산업 안전 광고 모델을 물색하러 돌아다니던 와중에 우연히 1981년 안젤라의 아들을 모델 후보 중 하나로 발탁한다. 2022년 안젤라는 그녀가 '안젤라가 움직인다'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모른다. 2부는 안젤라가 광고를 찍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3부는 광고 촬영 현장을 롱테이크로 기록한 영상이다. 전작인 <배드 럭 뱅잉>과 마찬가지로 3막 구성을 택하는 데다가, 1부와 2부가 충돌하면서 3부에 다다르는 변증법적인 구도마저도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전작에서 그러했듯 이번 영화의 3부도 인물 사이의 기나긴 논쟁이 이어진다.

 

ⓒ 부산국제영화제

감독이 언급했듯이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의 핵심 주제는 노동 착취이며, 그는 소개 영상에서 심지어 한국의 노동 착취 현실을 담은 뉴스까지 공유한다. 다만, 이 노동 착취를 다루기보다는 '노동 착취를 어떻게 체험하게 하느냐'의 문제가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듯하다.

영화 초반부터 카메라는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는다. 관객이 안젤라가 경험하는 시간을 함께 체험하도록 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플롯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절반 가까이 안젤라가 차 안에 있는 시간을 드러낸다. 안젤라가 하루에 16시간은 물론 그 이상까지 일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젤라가 자동차를 운전하기에 자칫 로드무비로 보일 수 있다. 그녀의 목적지는 그녀 본인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에서 정한 것이라 로드무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니 되려 이 영화는 로드무비를 빌려서 로드무비를 비판하는 반-로드무비의 문법을 발명한다. 안젤라는 부캐인 보비처로 틱톡을 찍기도 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다르게 틀어서 권태를 이기려 한다. 그러나 안젤라가 차에서 버리는 시간은 느리고도 힘겹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반면에 1981년도 안젤라는 택시 운전사인데도 로맨스코미디 장르에 있다. 그러므로 2022년의 안젤라가 경험하는 시간보다 더 빠른 템포로 시간을 경험한다. 영화는 1981년도의 안젤라를 찍다가 중간중간에 슬로우모션을 걸면서 제동을 건다. 1981년의 안젤라가 일하는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발하듯이 말이다. 감독은 둘의 대비로 노동자를 탈·낭만화한다. EU 최빈국이라는 오명 아래 다른 국가의 하청업을 주로 하는 루마니아에서 노동자는 착취 아래에 있으며, 산업 재해를 당해도 보상받지 못해서다.

영화의 시작은 안젤라의 육체다. 새벽에 깨어나 출근해야 하는 안젤라의 나체는 그야말로 축 처져 있다. 안젤라의 육체는 필름으로 촬영될 때는 한 번도 왜곡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틱톡과 유튜브, 줌 등등 뉴미디어에 접속할 때 왜곡되기 마련이다. 영화는 필름 이후의 뉴미디어가 실재를 왜곡하는 방식을 여러 차원에서 드러낸다. 안젤라와 보비처는 완전히 싱크가 되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필터가 벗겨진다든지 거울 너머로 금발이 비치는 등의 허점이 드러난다. 틱톡을 통해서 안젤라의 육체는 사라지고 본인이 바라는 프로필, 그리고 얼굴만 남는다. 감독은 보비처의 영상을 찍는 안젤라의 모습만 드러낼 뿐이지, 영상에 반응하는 시청자의 반응을 드러내지 않는다. 되려 이러한 연출이 보비처의 위력을 관객이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또한, 안젤라는 이를 "극단적 풍자"라고 항변하지만, 사실 이는 안젤라의 내면에 응어리진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안젤라의 몸은 현실에서는 노동자의 육체로 전환되고, 틱톡에서는 남성으로 전환된다. 셋 사이의 불일치는 영화의 웃음 코드다. 안젤라를 연기한 일린카 마놀라케는 진짜로 인스타그램에 남성 필터를 씌운 사진을 업로드한 배우다. 라두 주데는 둘을 동시에 캐스팅하길 원했고, 이는 감독의 세계관을 잘 드러낸다. 틱톡과 유튜브가 유행하는 시대에 인간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여러 즉흥적인 프로필로만 구성된 존재로 살아간다. "그쪽도 보비처 박사님을 아세요?"라고 물어봐도 보비처는 거기에 없다. 챌린지가 주체성을 대신하면서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만다.

 

ⓒ 4 Proof Film

안젤라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곳곳에서 디지털 기기로 육체가 절단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기이한 풍경을 계속 전시한다. 줌 회의에 독일의 클라이언트 도리스 괴테(니나 호스)가 참여한 장면이 그러하다. 도리스 괴테는 얼굴만 둥둥 뜬 채로 줌 회의에 참여한 이를 보고 있다. 틱톡은 기어이 이미지와 인간의 육체, 현실과 가상을 분리하기에 이른다.

하물며 디지털 이미지는 실제로 생기지 않은 사건마저도 있게끔 한다. 실재의 왜곡이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은 2부에 등장하는 B급 영화를 찍는 감독인 우베 볼의 영화 촬영 현장이다. 거대 곤충과 싸우는 영화이지만, 세트장에 있는 거대 곤충 모형은 움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만 움직이는 쉐도우복싱을 하고 있다. 우베 볼은 보비처와 틱톡 영상을 찍으며 그것을 극찬한다. 이는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라든지 여러 문학 레퍼런스를 조롱하고, 있지도 않은 여성을 강간했다고 주장하는 보비처의 행동과도 이어진다.

라두 주데는 이 상황으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적과 싸우는 SNS의 풍경을 암시한다. 또한 그 이미지가 과잉되어서 우리가 산만해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나아가 우베 볼의 영화나 다를 법 없는 싸구려 이미지에 매혹된 루미니아의 상황을 조롱한다. 그는 차우셰스쿠가 대통령 사저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인민궁전을 지을 때도 루마니아 대중이 저항하지 못하고 이미지에 홀렸다고 본다. 히토 슈타이얼이 민중을 구원하는 이미지로 이야기한 저화질의 빈곤한 이미지는 대중을 양극화하고 진실을 보지 못하게끔 하는 이미지에 불과해진다.

영화는 중간에 몽타주의 이미지를 삽입하는데, 바로 루마니아의 어떤 도로에 나열되는 죽은 십자가의 이미지다. 원래 일차로지만 모두가 갓길로 가려다가 사고가 나서 600명의 사람이 죽은 곳이다. 라두 주데는 십자가를 몽타주하고 거기에 죽은 이를 무덤덤히 본다. 일차로와 갓길은 지금 우리가 사는 라이프스타일의 은유로 보인다. 육체와 가상이 분리되었고, 진실이 가짜뉴스에 뒤덮인 지금 우리는 갓길로 가는 것이 아닌지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라두 주데는 <배드 럭 뱅잉>의 2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몽타주로 루마니아의 지형도를 그리려고 한다. 벤야민과 에밀 시오랑 등 아포리즘을 인용해 루마니아의 현실을 고발하고, 루마니아를 지도로 그리려는 데에 비해서 이번 작품에서는 더 급진적으로 나아간다. 루마니아가 이미 죽은 국가일지도 모른다는 급진적인 비전이다. 이는 곧장 제목값에 따라서 종말론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3부에 이르러서 1부와 2부에서 도출한 것을 쏟아낸다. 오비디우가 광고를 찍는 현장을 30분 동안 고정된 카메라로 포착한다. 이는 영화에서 언급되듯이 뤼미에르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1895)의 오마주다. 뤼미에르는 현실을 그대로 포착한 영상으로 유명하나, 사실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는 한 차례 더 촬영된 것이다. 다큐멘터리이자 연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 또한 오비디우의 증언이 대기업의 지시 아래서 왜곡되는 순간을 다룬다. 오비디우는 원래 트럭을 몰다가 노후화된 안전대에 머리를 부딪혀서 하반신이 마비된 노동자다. 그는 노후화된 시설을 바꾸지 않은 공장에 고소를 한 상태다. 하필이면 오비디우가 일한 공장이 그 광고의 클라이언트이다. 오비디우의 말은 하나하나 잘려 나간다. 푸틴을 자극할까봐 러시아가 하청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삭제한다. 하물며 그 노후화된 시설을 바꾸어달라는 말을 진즉에 안 했으므로 오비디우의 탓을 하기도 하며,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라는 투의 말도 오간다. 민중은 거기서 실종된다. 한국의 노동착취와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으리라는 감독의 소개 영상이 그제야 다가오는 순간이다.

오비디우는 그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윽고 오비디우는 자신이 하려는 말을 CGI에 담아야 하는 상황까지 온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이를 계속 보고 있는 관객의 입장일 것이다. 관객은 그것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라두 주데가 보는 현실이다. 3부에서 오비디우가 광고를 촬영하는 장소는 하필이면 원자폭탄에 대피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공호이다. 감독은 이 방공호가 유물로 전락한 실상을 드러내고, 그 바깥이 멸망하고 있는 풍경을 드러낸다.

감독은 우리에게 넌지시 말한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고. 그건 우리가 모든 것을 방관한 탓일지도 모른다고. 틱톡 리얼리즘 시대는 파멸로 나아갈 것이며, 거기서 노동자는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T.S.엘리엇은 시에서 세계는 쿵 하며 사라지지 않으며,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고 예언했다. 라두 주데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말한다. 세계는 컷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리고 만다고.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4 Proof Film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Do Not Expect Too Much from the End of the World
감독
라두 주데
Radu Jude

 

출연
일린카 마놀라케
Ilinca Manolache
오비디우 프르샨Ovidiu Pirsan
니나 호스Nina Hoss
도리나 라저르Dorina Lazar
라스즐로 미스케Laszlo Miske
카티아 파스칼리우Katia Pascariu
소피아 니콜라에스쿠Sofia Nicolaescu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63분
공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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