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 희망과 절망의 데칼코마니
'화란' 희망과 절망의 데칼코마니
  • 이현동
  • 승인 2023.10.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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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선택하지 않고, 관계를 선택하기"

김창훈 감독은 첫 단편작 <댄스 위드 마이 마더>(2012)로 봉준호 감독에게 특별 언급된 바 있다. 보통 단편은 대체로 감독이 가진 형식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댄스 위드 마이 마더>는 형식이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내용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부지런하게 모자의 관계를 해학적으로 조율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 영화 <댄스 위드 마이 마더>(2012)

<댄스 위드 마이 마더>는 등록금을 갚기 위해 일하는 늦깎이 대학생 아들과 도박으로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날 엄마는 꾀를 부려 차에 부딪혀 보험금을 타게 되고, 아들과 함께 이 사기극은 점차 커진다.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나가고, 병원을 드나들며, 돈이 쌓이는 계좌를 보고는 두 사람은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던 중 실수로 엄마가 크게 다치게 된다. 둘은 서로 핀잔을 주다가 길거리에 잠을 자는 사람을 발견하는데, 엄마가 그의 주머니를 털다가 주위에 눈치를 보고는 끝이 난다. 김창훈 감독은 이 단편에서 돈에 관한 보편적 세계관을 담아내면서 모자 관계가 연결되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묘사했다. 영화에서 그에게 주요한 관점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려는데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어떤 제스처를 취하냐'가 더 주요하다.

아울러 <댄스 위드 마이 마더>와 마찬가지로 <화란> 역시 관계를 그리는데, 이 영화는 부자관계, 이복동생, 같은 동네에서 자란 인물들을 명안이라는 보편성을 지닌 가상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같은 곳에서 같은 상처를 가진 연규(홍사빈)와 치건(송중기)은 마치 전작에서 모자가 함께 춤을 추는 숏을 닮은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화란>이 구축하는 세계관은 몇몇 한국 느와르 장르의 표현 방식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국회의원과 불법 조직과의 유착관계를 비롯한 조직을 배신하면서 발생하는 복수극은 이미 흔하디흔한 클리셰이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범죄조직에 뛰어드는 주인공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대중들에게도 너무도 많이 축적된 한국 느와르의 인식은 스타일 자체도 이제는 제도화됐다. 결국, <화란>이 뛰어넘어야 할 것은 바로 클리셰다. 반대로 전형성이 가진 장점은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방법론이긴 하지만, 늘 상 대중이 갖고 있는 의식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화란>을 평가할 때 단순히 자본주의 세계관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군상의 처절함을 강조한다면, 굳이 이 작품을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흉터'를 간직한 삶

<화란>의 제목은 한자로 '화할 화'(和), 난초 란(蘭)을 쓰며, 네덜란드를 뜻하는 한자어다. 다른 의미로는 '재앙과 난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절망)이다. 영문 제목인 Hopeless가 '희망이 없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한국 제목과 부합한다. 

<화란>이 지니고 있는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종류의 관념은 '관계'를 통해 발화된다. 특히, 영화에는 선과 악이라는 대립 관계가 없다 보니 쉽게 희망과 절망을 나열하지 않으며, 인물은 두 경계 속에서 배회한다. 여기서 영화를 통해 추적해 보아야 할 장치는 인물의 관계도를 형상하는 '흉터'라는 표식이다. 연규는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견뎌내며 네덜란드에서 살겠다는 일념만으로 돈을 모은다. 희망의 상징인 화란(네덜란드)를 위해 돈을 모으지만, 반대로 화란을 위한 돈을 모으는 과정은 절망을 유발하는 요소다. 이복 여동생인 하양을 괴롭히던 무리에게 보복을 해주게 되면서 연규는 합의금 때문에 학교에 출석하지 못하고 짜장면 배달 일을 하게 된다. 이때 300만 원이라는 합의금을 대신 지불해 주는 치건을 찾아가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되면서 그는 점차 '화란'이라는 '꿈'을 지향할 수 없게 되고 현실을 살아가게 된다. 이때 치건을 찾아온 연규에게 공부나 하라며 보내려고 하지만, 연규가 의붓아버지로부터 얻은 흉터를 보며 생각이 바뀌게 된다. 치건이 발견한 연규의 흉터와 자신에게도 아버지로부터 얻은 귀의 흉터라는 동질감으로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둘의 모습을 '데칼코마니'로 그려낸다.

연규와 치건이 갖고 있는 '흉터'는 영화 전체의 윤곽을 개시하는 오브제다. 흉터는 삶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반영한다. 폭력의 구속력을 무엇보다 쉽게 규명하는 장치이며, 그것은 낙관적이기보단 비관적으로 관철되기 쉽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연규의 눈가 상처와 치건의 귀 상처. 카메라는 둘의 흉터를 은연중에 계속해서 비춘다. 둘의 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맞은 흔적은 영화가 가정 폭력을 강조하려는 묘사라기보다, '둘의 관계를 서술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유독 물성이 짓누른 흉터가 치건의 감정을 얼마나 둔탁하고 무겁게 압박했는지를 보여준다. 치건이 사용하는 언어와 표정은 무심할 정도로 무정하다. 톤을 높이는 경우도 잘 없다. 이에 대해 감독은 "이제는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시체와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치건의 성격은 최초로 그와 연규의 관계가 균열이 나는 장면이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배송 일을 하는 완구(영건)는 치건의 무리로부터 과도한 이자에 시달린다. 마침, 조직에서 지역 장악을 위해 키워온 국회의원 정의석(서동갑)의 뛰어난 경쟁 상대가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완구를 이용해 모략을 꾸민다. 경쟁 상대에게 수면제를 먹여 침대 위에 완구와 자는 사진을 찍는 데 성공하고, 완구는 이자를 탕감받지만,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오토바이는 강탈해 버린다. 연규는 완구에 대한 연민으로 몰래 오토바이를 가져다주게 되지만 치건에게 들키고 만다. 여기서 훔친 값을 치르기 위한 그들의 룰은 손톱을 뽑는 것, 즉 흉터를 남기는 것이었다. 차디찬 음조로 치건은 연규에게 "해야되면 하는거야 우린"이라고 말한다. 연규는 "불쌍하지도 않냐"며 반항한다. 이때 치건은 연규의 손톱을 뽑으려다가 자기 손톱을 뽑는다. 흉터라는 빚을 대신 탕감해 주는 치건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연규와 데칼코마니를 이루기 위해, 그의 연민에 동참한다. 조직의 명령에 불응하더라도 말이다.

이후, 국회의원을 불출마하겠다는 정의석의 갑작스러운 선언과 그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은 연규는 주춤하다가 그를 죽이고 돈을 챙겨 나온다. 수리해야 할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했던 연규는 돌아가는 길에 오토바이가 고장 나 사고가 나고 돈은 물에 빠져 건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큰형님 중범(김종수)은 이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한 대가로 연규의 손을 자르라고 지시한다. 연규는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작두로 손목을 자르려고 하지만, 치건은 그걸 막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팔을 자르려는 연규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연규를 위해 치건은 자신이 본래 죽었던 몸이라며, 자신을 죽이라고 말한다. 이윽고 치건을 죽인 연규, 이때 그는 마치 치건을 닮은 표정을 하고 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이 가진 힘은 영화 내내 희망과 절망이라는 선을 계속해서 줄다리기하면서 관객에게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오토바이를 타고 연규와 하얀이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쇼트에는 어떠한 희망도 절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르 영화의 측면에서 <화란>은 평이하게 평가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 머물러 있는 비평은 보통 기존 레퍼런스의 잔재가 뒤섞인 영화로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강조되는 몇몇 포인트를 통해 영화 내내 음미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영화 내내 흉터가 어떻게 발생하고, 균열이 나며, 교합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관계에서 보이는 연대와 감응을 부여하는데 충실하다.

<화란>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꽃이 될 수도 있고, 재앙과 절망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과정을 탐닉할 때, 영화를 완성하는 주인은 장르가 아니라 바로 관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이 영화는 비로써 어떤 '화란'이 된다. 연규는 과연 화란에 갔을까?

분명한 건 조직을 피하다 들킨 연규가 숨겨놓은 '화란 사진'과 '돈'이 그가 증오하는 집에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치건을 죽이고 돌아온 그가 마주한 광경은 황망하다. '엄마와 함께' 가려고 모은 사진과 돈이 엄마 모경(박보경)의 싸늘한 주검과 함께 있다. 증오와 분노의 무덤이 되어버린 집에서 화란은 어떤 의미일까. 그곳을 나온 연규와 하얀에게 우리는 희망과 절망 중 무엇을 부여할 수 있을까.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
Hopeless
감독
김창훈

 

출연
홍사빈
송중기
비비
정재광
박보경
김종수
서동갑
홍서백

 

제작 사나이픽처스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24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3.10.11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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