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 TV+] '크라우디드' 톰 홀랜드에 관한 잔상
[Apple TV+] '크라우디드' 톰 홀랜드에 관한 잔상
  • 김민세
  • 승인 2023.10.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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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망설임이 잃어버리는 것들"

'톰 홀랜드'는 지난 6월 그가 제작하고 주연을 출연한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크라우디드>의 촬영 후, 연기 활동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연기하는 배역인 '대니 설리번'은 세계 최초로 법원에서 다중인격장애를 인정받고 무혐의 판정을 받은 희대의 인물 '빌리 밀리건'을 모티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만 들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23 아이덴티티>(2017)의 제임스 맥어보이처럼 톰 홀랜드가 수많은 인격을 넘나드는 신들린 연기를 작품 내내 보여주리라 기대하기 쉬울 것이다.

 

ⓒ Apple TV+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시리즈는 첫 화부터 대니가 맨해튼 도시 한복판에서 뜬금없이 권총을 꺼내 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을 겨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뒤돌아보는 남성의 얼굴을 보고 놀라 꼼짝 못 하는 대니를 아리아나가 다그치고, 결국 아리아나는 총을 빼앗아 든 뒤 도망치는 남성에게 수차례 총격을 가한다. 이후 시리즈는 그가 체포되어 심리학 박사 라이아에게 심문을 받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끝내 총격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으로 맺어진다. 한마디로 이 시리즈의 서사는 하나의 범죄 사건에 대한 심문과 재판이라는 법정극의 틀 안에서 진행되며, 그 속에서 사건과 관련된 대니의 과거가 소개되고, 그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를 지닌다.

첫 장면에서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가득 안고 시작하는 <크라우디드>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그 미스터리가 벗겨지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충격과 반전이 아니다. 애초에 <크라우디드>는 매회 등장하는 타이틀 시퀀스에서부터 이 시리즈가 다중인격자 빌리 멀리건을 다루는 대니얼 키스의 논픽션 『더 마인즈 오브 빌리 멀리건』을 원작으로 하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대니 설리번이 다중인격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시리즈의 중반부에 맥이 빠질 정도로 태연하고 평면적으로 그려낸다.

사실상 <크라우디드>의 서사는 미스터리가 발생할 수 없는 지점에서 시작하거나, 혹은 그것을 무시한 채 그만의 자의식으로 미스터리를 그려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포기해버린다. 이때 범죄, 미스터리 장르의 무대가 되는 법정극의 틀은 한 사람이 세상의 편견에 부딪히는 소수자의 서사를 담아내기 위한 심판의 장으로 탈바꿈한다. 다소 아쉬운 이 전환이 어설프거나 갑작스럽다고 하더라도, 결국 소수자의 서사로 나아가는 점은 다소 빈약한 미스터리에 대한 해결책 또는 변명이 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크라우디드>에 남는 것은 과하게 미국적이고 아가페적인 낡은 신화의 결말뿐이다.

 

ⓒ Apple TV+

흥행과 대중의 주목에 있어서 실패한 <크라우디드>에 대한 만연한 평 중 하나는 연기자 톰 홀랜드의 새로운 면모이다. 마블의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할리우드 스타로 발돋움한 톰 홀랜드가 연기자로서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고자 다중인격자 캐릭터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톰 홀랜드는 대니 설리번 이외의 다섯 명의 캐릭터를 오가고, 범죄 스릴러에서 시작해 휴머니즘의 결말로 맺어지는 다양한 폭의 정서를 연기하면서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 전체의 맥락상 톰 홀랜드의 연기는 다소 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의 연기력 문제가 아닌, 대니의 다섯 가지 인격을 보여주는 연출의 전략상의 문제와 연관된다.

시리즈의 초반부, <크라우디드>는 그만의 미스터리를 유지하기 위해 대니의 인격들을 각자 다른 배우의 몸을 빌려 재현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대니의 몸과 그의 또 다른 자아들의 몸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시리즈의 중반부, 대니가 다중인격 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부터 시리즈는 또 다른 자아들과 소통하던 대니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반복적으로 돌아본다. 이를테면 학교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던 대니가 이츠하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은 이츠하크의 자아가 발현된 대니가 혼자서 친구들을 때려눕히는 장면으로 재현되고, 클럽에서 어떤 남자와 춤을 추는 아리아나의 모습을 대니가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장면은 아리아나의 자아가 발현된 대니가 동성의 남성과 유사 관계를 맺는 장면 등으로 재현된다.

더불어 <크라우디드>는 때로 자아가 또 다른 배우의 몸으로 재현되었을 때와 당시의 실제 상황이 갖고 있는 아이러니와 간극을 이용해 대니의 정체에 대한 반전을 극대화하려 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대니가 애너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츠하크의 집에서 파티를 여는 장면이다. 대니와 조니, 마이크가 식탁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친구들을 데려온 애너벨은 그들을 보고 말한다. “이거 파티 맞지?” 파티원이라고는 대니를 포함한 두 명뿐인 초라한 모습을 보고 한 말일까. 아니다. 추후에 드러나는 실제 상황의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혼자서 애너벨을 기다리는 대니 혼자뿐이다.

 

ⓒ Apple TV+
ⓒ Apple TV+

<크라우디드>가 이런 반복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대니가 보고 있던 세계와 세계가 보고 있는 대니의 '간극'이다. 한마디로, 대니의 시선 안에 있을 때 어색하고 블완전해 보이던 세계가, 반대로 그 실체를 벗었을 때 대니의 비정상성을 강조한다. 이때 또 다른 자아로서 액팅하는 대니의 몸을 볼 때, 우리는 이 간극을 인지하는 동시에 그 이전에 각자의 자아에 해당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또 다른 배우의 액팅과 겹쳐볼 수 없게 된다.

이쯤에 돌이켜 볼 수 있는 것은 톰 홀랜드의 액팅이 과연 누구를 모사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것은 또 다른 자아의 모사인가. 또는 또 다른 자아를 연기한 배우의 액팅의 모사인가. 실제 촬영장에서 배우들 간의 앙상블과 그의 1인 연기 중 무엇이 선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크라우디드>가 반전을 보여주고자 하는 구조가 도리어 톰 홀랜드의 액팅을 '무언가의 모사'에 그친다는 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톰 홀랜드의 작고 위축되어 있는 듯한 몸은, 대니의 인격과 또 다른 인격을 넘나드는 연기를 펼칠 때도 이전의 배우들이 보여주었던 액팅의 잔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더한다.

결론적으로, 미스터리와 휴먼 드라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크라우디드>의 망설임은 톰 홀랜드의 열연이 보여주고 있는 것을 분출이 아니라 수렴으로 느끼게 만든다. 톰 홀랜드가 벗어내야 하는 것은 왜소한 몸이 드러나는 스파이더맨 슈트가 아니라 그의 연기가 무언가의 모사에 그친다는 인상이 아닐까. 어쩌면 <스파이더맨> 시리즈 이후의 톰 홀랜드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어드벤처 아래 있는 <언차티드>(2022)로 행보를 이어나가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글 김민세 영화평론가, minsemunji@ccoart.com]

 

ⓒ Apple TV+

크라우디드
The crowded room
연출
브래디 코베
Brady Corbet
모나 파스트볼드Mona Fastvold
코르넬 문드럭초Kornél Mundruczó
앨런 테일러Alan Taylor
각본
아키바 골즈먼
Akiva Goldsman
토드 그라프Todd Graff

 

출연
톰 홀랜드
Tom Holland
아만다 사이프리드Amanda Seyfried
에미 로섬Emmy Rossum
윌 체이스Will Chase
리번 호크Levon Hawke
사샤 레인Sasha Lane

 

제공 Apple TV+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0부작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2023년 6월 9일 ~ 2023년 7월 28일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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