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흘러넘치는 배우의 이미지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흘러넘치는 배우의 이미지
  • 변해빈
  • 승인 2023.10.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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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관객에게 강력한 동기가 되었을까?"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은 사람의 육체를 활용하는 영화다. 저명한 무당이던 할아버지(김원해)의 영력을 물려받은 천박사(강동원)의 혈족부터 귀신 보는 유경(이솜)의 눈을 노리는 악귀 범천(허준호)이 잘린 손가락을 재물로 이용해 사람 몸에 빙의하는 설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박되고 죽는 몸. 무엇보다 천박사의 관찰력과 통찰력, 유경의 영험한 신기를 포함해 '눈빨'을 강조하는 이 영화에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확대된 인물의 눈이 노골적으로, 자주 등장한다. 오컬트 장르에서 인간의 공포와 욕망을 심어두는 요소로, 남들은 못 보는 걸 보는 눈이라는 기관은 매력적인 소재임은 틀림없다.

 

ⓒ CJ ENM

그러나 <천박사>가 눈의 쓰임을 클로즈업하는 시도는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며 가장 기대하게 되는 요소는 대사로도 언급되었듯 유경의 '눈빨'과 천박사가 칼을 휘두르는 액션, '칼빨'의 협업이 아닐까. 하지만 호기와 달리 범천이 첫등장하던 장면이자 그들의 협업 가능성이 거론되던 순간 이후 이를 충족하는 협업은 펼쳐지지 않는다. 영화는 천박사와 그의 동업자 인배(이동휘), 두 사람에서 시작해 황사장(김종수)의 조력을 받고 유경을 팀에 합류시키는 결말로 공동체적 정서를 '의식'할 뿐, 실질적으론 천박사가 단독으로 위험한 시공에 뛰어들어 악전고투하는 등 각 인물의 몸이 분리된 채 반쪽짜리 협업만 시도할 따름이다.

인물들의 미흡한 협업만큼이나 <천박사>는 장르를 위해 선택된 개별 장치의 힘이 서사적인 짜임새가 맞춰지는 이음매 부근까지 밀어붙여지지 않은 영화다. 결국은 사람의 심리를 치유해야 하는 문제라던 천박사의 철학도, 부모 없는 자매, 그중 특히 어린 여자아이가 희생되는 극단적인 위기 설정도, 고립된 외곽마을과 지저분하게 끈끈한 악의 세력의 대치도, 협력하는 주요 인물들이 대면하게 되는 잔인하고 슬픈 과거도, 이 영화가 '갖추고는' 있지만 특정 시퀀스 내의 구성물로 작동할 뿐 다른 시퀀스 전개와 동시에 존재감을 간단하게 잃는다. 유경의 동생을 악귀 세력에게서 구해야 하는 현재 목표와 천박사가 영력이 약한 동생을 희생시켰던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가족의 희생을 내건,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기 좋은 요소인데도, 두 목표가 좀처럼 연결되지 않고 경중을 따져 관객에게 전달하는 식이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화면에선 인물의 육체가 아니라 배우의 육체가 과도하게 흘러넘친다. 악귀 세력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강한 존재인지 정립되지 않은 픽션 세계에 장르를 기입하기 위한 단초로 활용되는 건 배우들이 가진 실제의 몸, 육중한 몸으로 찍어 누르는 액션이나 그들이 가능한 극단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실제 표정으로 방출되는 기괴함이다. 그들은 서사를 가지지 못한 채 역대 빌런 캐릭터의 강함을 뛰어넘는 강함에 속박되어 있고, 불필요한 에너지로 초과되어 배우로서 누군가의 뇌리엔 각인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캐릭터의 힘은 탈진해버린 것 같다.

 

ⓒ CJ ENM
ⓒ CJ ENM

<천박사>의 재미가 있다면, 엄밀하게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아니라, 배우를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말해야 한다. <기생충>의 지하실 부부였던 이정은과 박명훈이 부유한 저택의 부부로 나오고, 배우 박정민과 블랙핑크 지수가 접신 관계로 얽히며 선녀무당으로 등장한다. <기생충>,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헤어질 결심> 등 오랜 조감독 생활 끝에 첫 장편데뷔를 하게 된 김성식 감독의 인연은 흥미로운 비하인드일 수 있다. 문제는 출연 배우들이 여타 작품에서 구축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선택이 반복되고, 심지어 그 배우들이 두터운 이미지층이 <천박사>의 주요 캐릭터의 깊이보다 범람하면서, 결국 <천박사>에는 특정 인물 아닌 배우의 이미지만 남는다. 선녀 귀신에 빙의된 선녀무당은 <파수꾼>부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지옥> 등에서 만들어진 박정민의 시큰둥하고 방정맞은, 이미 보았던 것들을 그대로 기워 넣은 모습과 다르지 않다.

특히, 유경의 동생 유민으로 출연한 박소이는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주목받으면서 어린 나이대 캐릭터에 단골처럼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위 표현은 대다수 어린아이가 그 나이대에 통상적으로 겪지 않을 법한, 겪어서는 안 되는 고난과 시련과 고통을 이미지화한다는 데 방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박소이가 연기한 또 다른 캐릭터(드라마 <악귀> 이목단 역) 역시 마을의 악습으로 희생된 '어린 여자아이'였는데, 거의 죽은 상태로 설정된 연로한 남성 범천에 빙의된 그 괴리적인 유민의 이미지는 마케팅 과정에서 곧잘 사용되는 여자 아역배우 계보의 일환에 불과하다. 그들이 어떤 캐릭터인가보다 어린 나이의 배우가 보편의 감정 이상을 표현해내는 문제에 의존하고, 그 순간 캐릭터는 단지 강하고 괴리적인 에너지만이 우글거리는 아역배우의 연기력을 평가하는 척도로만 기능핟다.

<천박사>에서 박소이가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음에도 <곡성>의 효진(김환희)이 되지 못한 것은, 캐릭터에 배우 히스토리가 무의식중에 덧씌워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유경은 유민을 구하기 위해서 천박사를 찾았고, 그는 유민을 경유해 죽은 동생을 떠올린다. 다른 캐릭터들의 경로를 인도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야 하는 유민이 극에서 이렇게 납작한 형태로 존재해버리니 결국 배우의 외형과 이질적인 범천의 말을 대사로 읊을 때 그 대사의 이물감만이 거슬린다.

이와 반대로, 그간 해왔던 연기를 선보임에도 적어도 배우 이동휘가 극에 필요한 존재로 생각되는 까닭은 그가 영화의 문제를 직접 지적하던 대사 한 줄의 영향력 때문인 것 같다. 진짜 귀신과 접촉한 천박사의 소식이 동떨어진 장소의 황사장에게 전달되던 대목, 악사였던 황사장의 과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박사를 우려를 표하는 그의 액션은 다소 과장스럽게 느껴진다. 이때, 인배가 그 과잉 반응을 짚어내는 대사는 상황 바깥의 관객을 의식한 반응처럼 들린다. 즉 적재적소에 분위기를 조율하는 캐릭터로 위치한 그는 주로 작중 분위기와 달라붙은 채가 아니라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을 고려한, 극장의 분위기를 예측해 설계된 쪽이다. 이는 이동휘가 <천박사> 바깥에서 쌓아온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영리하게 화합한 유일한 결과일 것이다. 영화의 과장스러움에 대해 직접 지적하는 캐릭터라니. 하기야 빙의해서 행동하기, 접신해서 말하기, 인생을 바꿔치기했던 천박사의 과거, 갈음되는 노선이 이 영화를 가늠하는 방법이긴 하다.

 

ⓒ CJ ENM

분위기만 내다

<천박사>는 장르적으로 현실성을 벗어난 이질적인 것들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성립 불가능성을 옹호하거나 봉사하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분위기'만' 낸 것에 관해 떠올리고 싶다.

극중 가장 희한한 장면은 천박사가 사당에서 죽은 할아버지와 동생의 환영을 보던 때이다. 여기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롱 쇼트가 발견되는데, 범천의 속임수로 재연된 과거의 환영체에 붙잡힌 천박사가 길게 눈을 감았다가 뜨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이 눈의 움직임은 허구인 그것을 제대로 마주 보기 위한 각성과 개안의 상징이다). 이어, 천박사가 할아버지 환영을 칼로 내려치는 비장한 몸짓은 다소 급작스러운 롱 쇼트 안에 담겨 제시된다. 영화는 그들 주변의 드넓은 풀밭과 검푸른 하늘의 규모 한가운데에서 인물의 결정적인 액션을 사뭇 고요하고 간소하게 그려낸다. 의문스러운 건 과잉된 액션의 활기와 달리, 익스트림 롱 쇼트의 거리감을 유지한 상태로 거의 정지된 이미지처럼 한동안 서먹하고 음산한 분위기만으로 장면이 지속된다는 점, 게다가 이 쇼트를 끝으로 해당 장면은 닫혀버린다. 편집으로 인한 누락일지 모를 이다음으로는 천박사가 퇴마용 부적 설경을 찾아 영웅처럼 귀환하는 모습으로 어떠한 경과 없이 점프해버린다.

영화에는 종종 초상난 마을의 안개나 신묘한 연기로 불투명하게 처리된 화면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음험한 분위기가 주는 취기를 가림막으로 앞세워 위기 상황을 묘사하는 표식으로 기능한다(안개 낀 마을에서 범천이 빙의한 사람들과의 전투의 경우, 관계없는 일반인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윤리 의식이 <천박사>엔 없다. 이 한쪽이 지워진 설정은 캐릭터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구실로 작동하는 가림막에 불과해 보인다). 사당 장면의 롱 쇼트가 주는 불투명함은 장소가 바뀔 때마다, 인물 기준으로 길게 후퇴하는 트래킹 카메라의 움직임 등으로 변주해 나타난다. 돌이키면 인물들의 클로즈업된 눈은 한쪽 눈, 그리고 얼굴 없는 눈. 모두 구체적인 표정 대신 범람하는 분위기를 위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눈에 드는 걸 피하라”고 천박사가 번지레하게 내뱉었던 말을 상기하라는 신호인가. 그렇다면 롱 쇼트 안에서 천박사는 어떤 표정으로 화면을 지탱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분위기만 내고 사라지지만, 그런데도 손쉽게 연상을 일으키는 혈혈단신이 되고 마는 쓸쓸하고 가련한 유랑자. 아무리 넓은 화각을 택해도 이 쇼트가 지탱되는 건 결국 강동원이란 배우의 분위기가 그 무위를 치장하는, 무언가 갖춰진 듯한 허깨비 때문인 것 같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 CJ ENM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Dr. Cheon And Lost Talisman
감독
김성식

 

출연
강동원
허준호
이솜
이동휘
김종수
박소이

 

제작 외유내강
배급 CJ ENM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9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09.27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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