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일 또 만나' 복원할 수 없지만, 미치게 복원하고 싶은, 약속의 연대기
'안녕, 내일 또 만나' 복원할 수 없지만, 미치게 복원하고 싶은, 약속의 연대기
  • 이상용
  • 승인 2023.10.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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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모두 같으리라."

"내일 또 만나"자는 약속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내일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 싫고, 내일 직장에 가야 한다는 것이 싫으며, 내일 또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싫증이 날 뿐만 아니라 종종 분노와 절망을 오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내일 또 만나"자는 것은 일상을 넘어서는 매우 특별한 행위이자 부탁이다.

하지만 내일 만나게 될지 아닐지는 정작 내일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 내일 갑작스럽게 눈이 멀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말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내일을 망각할 수도 있다. 특별하거나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면,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빌 머레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랑의 블랙홀>(1993)은 타임 루프의 서사를 SF의 방식이 아니라 마술적으로 활용해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되는 기상통보관 필코노스의 반복되는 하루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봄(혹은 내일)은 오지 않지만, 어느새 그는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인생의 교훈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처럼 과격한 오늘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내일 또 만나"는 대단한 각오와 결심 그리고 무엇보다 불변하는 환경의 유지와 이를 지탱하고자 하는 의지가 고루 반영된  약속이다. 무엇보다 당신과 나의 안부와 안녕을 걱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백승빈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영화가 자주 '약속'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작 <나와 봄날의 약속>(2018)에서도 그랬다. 원래 여러 감독이 옴니버스로 만들기 위해 구상되었지만(주로 대구출신의 독립영화 감독들), 결국 홀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고, 영화 속 감독처럼 근심 어린 상황을 맞이하며 내일을 걱정하고, 내일이 오기 전에 무엇이든 하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백승빈의 영화는 자전적 경험이나 현실과 영화적 현실이 강력하게 맞붙는 지점들이 있다. 그것은 백승빈을 아는 이들에게는 물론이고, 모르는 이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미래의 다짐으로 이어진다.

 

ⓒ 안다미로

<안녕, 내일 또 만나> 또한 내일을 걱정한다. 1995년의 대구의 가을이 등장한 이후, 그때의 한 만남, 하나의 사건이 등장한 이후,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가 죽은 이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를 부르지 못했던 후회가 남겨지고, 붙잡지 못했던 아쉬움이 쌓이면서 2020년의 대구, 서울, 부산이라는 세 번의 이야기로 등장한다.

표면적으로 평행우주을 내세운 구성이지만, 세 번의 내일을 보여주는 구성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1995년의 가을에 있었던 일들이 단박에 해결되거나 궁극의 지점을 찾지는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 번의 2020년이 반복되고 나서야 마지막 가을에 이르러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어쩌면 내일의 약속은 상호적인 교환이 아니라 일방적인 행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1995년을 살던 두 사람 사이에는 약속의 언급이 있었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것 또한 영화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약속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고,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약속이 있다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불안한 마음 이상으로 내일에는 기대가 있고, 희망이 있으며, 이야기를 밀고 가는 동력이 있다. 

2020년을 사는 각각의 주인공은 고교교사, 대학교수, 학원선생이다. 모두가 '영문학' 내지는 '영어'를 가르치는 인물로 계열을 이룬다. 물론 이와 다른 차이가 있다. 그런데 내일의 주인공이 지닌 직업의 변천사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어째서 이러한 변주가 생겨났을까', 혹은 '어째서 이러한 변주가 필요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모두가 교수(같은 직업)여도, 모두가 비슷한 가족 환경이어도, 모두가 서울의 이야기여도  크게 상관없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2020년이 세 번에 걸쳐 펼쳐지고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변주의 공통적 세부를 살피는 것은 결국 과거의 약속이 어떻게 현재에 드리워지는가를 보여주기에 결국에는 2020년의 세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1995년이라는 과거의 또 다른 변주일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25년의 격차를 둔 1995년 가을과 2020년에 펼쳐지는 세 번의 가을을 보게 되지만, 모두가 엇비슷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네 번의 이야기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25년의 시차가 결국 같은 날들의 반복이라면 인생이 무의미해질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지독하게도 어제의 세계를 오늘의 세계 혹은 내일의 세계에 반복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2020년 가을 대구

먼저 내일을 이야기해보자. 각기 다른 내일이지만 각기 닮은 내일임을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주인공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크게 보아 교사라는 직업군에 속하는) 표면적인 공통점 이외에도 2020년의 에피소드 속 주요한 등장인물은 (가족을 제외하고) 누군가의 선생이거나 누군가의 제자다. 그것은 1995년. 고교생이자 형과 동생이자 스승과 제자였던 두 사람의 변주이다. 애타게 그리운 형의 이름은 강현이고, 그를 그리워하지만 25년간 떠올리게만 했던 이의 이름은 동원이다.

2020년의 대구. 교사 동원은 '지오바니 룸'을 찾는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곳은 게이바이고, 영화 속에서 언급되지만 『지오바니 룸』은 제임슨 볼드윈이 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제목은 『조반니의 방』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꽤 유명한 영미권 작가이며, 흑인들의 이야기와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 중 영화로 옮겨진 것이 국내 개봉한 적도 있다. 베리 젠키스 감독이 만든 동명의 원작을 옮긴 <빌스트리가 말할 수 있다면>(2018)을 전주에 소개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제임스 볼드윈에 관한 글을 찾아본 기억이 난다. 

바에서 기다리던 교사 동원은 바람을 맞고, 담배를 피우러 가게 앞에 나왔다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고등학생 제자를 만난다. 동원은 이곳에서 제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당혹해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동원은 만나기로 했던 상대에게 분노의 메일을 보낸다. 그의 이름은 모른다. 아이디로 소통했을 뿐이다. Little Hippo!

이후 동원은 누이의 생일을 맞이하여 누이를 만나러 간다. 누이와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지만 동원은 생일 때마다 아버지가 보낸 돈을 전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 동원은 누이로부터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듣고는 당혹해한다. <안녕, 내일 또 만나>에서 불변하는 사항 중의 하나는 가족들의 관계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누이, 암에 걸린 누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동원의 친구이자 매형이 동원을 끌어안는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이들의 관계가 반복됨을 보여주는 감초 역할로 등장한다. 여기에 2020년 대구 장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조카의 존재도 슬쩍 눈길을 사로잡는다. 

 

ⓒ 안다미로

서로가 다른 내일이라고 해서, 이야기의 조건 전체가 다르지 않다. 가능한 미래의 몇 가지 상황과 조건만을 변주할 뿐이다. 그것은 평행우주의 세 가지 버전을 촘촘하게 연결하면서 1995년의 회상을 이야기 속에서 촘촘히 진행시킨다. 이때 회상 장면은 ‘변주’이기보다는 미처 보여주지 못했거나 일부러 하지 않았던 구성의 세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평행우주를 앞세운 이 영화가 결국 도달해야 하는 지점은 과거로부터 온 문제(약속, 죄의식, 만남)를 해결해야 하는 촘촘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복 속에서 도드라지는 새로운 이야기들은 에피소드마다 형성된 사제 간(부산편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로 변주된다)의 이야기를 통해 형성된다. 두 사람은 과거에 후회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화는 다른 내일의 에피소드에서도 반복되고 변주되는 요소다. 떠날 수 있었는데 남게 된 것을 후회하거나 떠난버렸기에 뒤늦게 돌아온 것을 후회한다는 말이 인물 사이에서 변주되어 등장하는데, 실상 과거의 후회가 깔고 있는 것은 '1995년 가을 대구의 그날'로 다가가기 위함이다.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의 대화 중에 플래쉬백 되는 1995년 대구의 장면은 이 사실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여하튼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제자는 제임스 볼드윈을 비롯하여 문학적 관심이 많다. 제자는 자신의 일화를 들려준다. 엄마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주기 위해 『조반니의 방』을 비롯해 사진들을 침대에 두고 왔는데 이를 본 엄마가 아무 말이 없었다는, 그리고 이상했던 일은 『조반니의 방』을 읽고 났더니 답답한 마음이 사라졌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엄마는 동원의 대학교 교수였고, 영문학자였다. 동원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에게 남겨진 후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제자가 교사 동원을 따로 만나고자 했던 이유가 등장한다. "제가 Little Hippo에요!" 이 고등학교 제자의 이름은 윤주호다. 2020년 대구의 이야기는 게이였던 교사가 게이 제자를 게이바에서 만날 뻔한 이야기로도 볼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제대로 성사되지도 않은, 흘러가는 현재가 된다. 무엇보다 동원에게 해결해야 할 후회는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아니라 과거에 있다.

누이가 있는 병원으로 온 동원은 조카가 읽고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동원은 앞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다가 읽고 싶은 것을 사라며 돈을 건네준 바 있다. 조카가 산 책은 『모든 만약은 아프다』였고, 작가의 이름은 ‘정강현’이다. 첫 번째 평행우주는 그토록 그리웠던 저자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순간에 끝난다.

 

ⓒ 안다미로

1995년 가을, 대구

이 지점에서 2020년 서울의 이야기가 아니라, 1995년 대구의 가을을 이야기할 필요를 느낀다. 참고로 글의 순서는 영화의 전개 순서가 아니라 임의적 순서다(원래는 맨 마지막에 서술함으로써 이 영화를 뒤집어 보여주려고 했지만 1995년을 계속 언급하다보니 이러한 형식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동원과 강현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의 위층과 아래층에 살았고, 과외 공부를 시작으로 붙어다니기 시작했으며, 동원은 어느새 강현을 좋아하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자란 강현은 캐나다의 문학상을 받은 적도 있고, 야구를 좋아하며, 음악을 좋아하는 등 예술적 향취가 높다. 동원은 그러한 형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좋아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형의 호의에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사건이 일어난다. 502호에 살던 형의 어머니가 자살을 한 것이다. 시인이기도 했던 어머니의 자살의 이유는 남편(강현의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다. 동원은 용돈을 주던 형의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엄마의 자살 이후 강현은 자동차 지붕에 올라가 아버지를 죽이겠다며 야구방망이로 분노를 터트린다. 이 모습을 동원이 지켜본다. 흠모하던 우상의 추락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위로해 줄지 모르겠다는 안타까움과 절망감이 동원을 감싼다. 

이날의 사건은 아주 조금씩 반복되면서 2020년의 대구, 서울, 부산의 일화 속에서 반복되고 재구성되며 등장한다. 세 번의 2020년은 1995년의 그날로부터 파생된, 그날을 복원하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지만 2020년에서 변주되고, 반복되는 새로운 관계들은 1995년의 형과 동생, 강현과 동원의 이야기를 비틀고 변형한 사제지간 혹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과거는 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옷을 입고 반복되고 있었다.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1995년에 문제적 아버지는 강현의 아버지였고, 그의 바람이 문제였지만 2020년의 에피소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동원의 아버지다. 동원의 어머니는 암(누이와 같은)으로 사망하였고, 그 후 아버지는 다른 가정을 꾸렸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기에 이후 누이와 아버지는 원수처럼 지낸다. 1995년의 강현 아버지와 2020년의 동현 아버지의 일화가 흥미로운 변주인 것은 동일한 사안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둘러싼 갈등의 결을 미묘하게 함께 하면서 자식들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 안다미로

2020년 가을, 서울

2020년 서울에서 동원은 영문학 교수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알게 되는 제자는 딸을 가진 유부남이자 아내의 죽음 이후 노동자이자 영문학도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주된 노동은 집을 고치거나 보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미장일을 하는 인물일 수도 있고, 특별한 기술이 없이 보조일을 하는 노동자일 수도 있다), 첫 수업에 뒤늦게 들어온 성일은 돌봐줄 사람이 없어 데리고 왔다면 양해를 구한다. 그가 데려온 인물은 자신의 어린 딸이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은 2020년 대구 버전에서 책을 읽는 소녀로 등장한 동원의 조카와 같은 이름의 '영지'다. 

2020년 서울에서는 1995년의 대구나 2020년의 대구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동원의 아버지가 직접 등장한다. 그는 동원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감 선생님이었다.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는 만큼 어머니의 과거 사연도 더 구체적으로 등장하는데 죽은 어머니의 사인은 누이와 동일한 암이었다. 이처럼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과거로부터 진행된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과거를 반복하는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원은 아버지가 주최한 식사 자리(중국집)에 참석한다. 그런데 전날 술에 취해 성일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된 동원은 미안한 마음에 일을 하는 성일을 대신해 '영지'를 돌보겠다며 데리고 나온다. 이 상황에 펼쳐지기까지 미묘하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전날 성일은 동료 여교수와 함께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하였고, 이 결혼식은 짐작하건대 동원이 좋아하던 누군가(남성)의 결혼식이었다. 

아무튼 학교에 나온 후 아버지의 생일에 참석하기 위해 영지와 함께 나온 동원은 아버지와 다툼을 벌이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커밍아웃처럼 묘사된다. 결국 중국집에서 나온 동원은 성일을 만난다. 이번에는 동네의 허름한 중국집에서 짬뽕과 소주를 마신다. 동원은 짬뽕을 국물까지 다 마신 것은 처음이라면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아버지의 중국집과 성일의 중국집을 비교하기 위한, 편안함과 위로의 순간을 대비시키기 위한 대사이자 공간의 비교일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처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동원은 미국의 교환학생으로 가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결국 교수가 되어 돌아왔고(2020년의 대구 이야기에서는 교환학생으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가지 못했다), 성일은 어딘가로 떠나지 못했던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후회는 떠난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모두에게 남겨진 셈이다. 분명한 것은 1995년 대구의 이야기에서 형 강현은 떠난 자였고, 동원은 남겨진 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강현의 책 이야기가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한다. 동료교수와 차를 타고 가던 중 대표(출판사로 짐작된다)로부터 연락이 온다. 한 작가의 행사에 사회자(모더레이터)로 나서달라는 것이다. 동원은 거부한다.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동료교수가 동원을 대신해 진행을 맡기로 하였고, 차 뒷자리에 있는 책을 보라는 말에 동원은 책을 살핀다. 『모든 만약은 아프다』, 작가의 이름은 정강현이다. 대구가 배경이고, 평행우주를 다뤘다는 말을 듣는다. 

어쩌면 <안녕, 내일 또 만나>는 정강현의 『모든 만약은 아프다』를 각색한 작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일종의 맥거핀이자 영감을 받았던 윌리엄 맥스웰의 동명소설에 대한 존경과 존중에서 출발한 영화였지만, 주인공 중 하나인 강현의 책이 등장하고, 이 책의 내용은 아주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결국 영화 전체와 맞물리면서 또 다른 상상의 영역을 오버랩 시킨다.

그러고 보면 <안녕, 내일 또 만나>가 표현하는 평행우주도 그러하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과 영화가 참조한 맥스웰의 소설이 겹쳐지면서 겹겹이 패스츄리를 쌓는 서사의 우주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단순한 구성 같지만 꽤나 겹겹이 쌓여 있는 서사의 결을 가진, 내일의 약속을 향해 달려가는 흥미진진한 구성의 영화.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은 촬영했던 장면을 거의 버리지 않고 쌓은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겹겹으로 쌓다보니 필수불가결했던 서사와 상상 그리고 이미지와 대사의 오버랩의 산물이기도 하다. 

 

ⓒ 안다미로

2020년 가을, 부산

2020년 가을 부산의 이야기는 학원 선생인 동원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한 번도 휴일을 쓰지 않았던 동원은 아들을 만나러 다녀와야 한다고 원장에게 말한다. 아내와는 6년 전에 헤어졌으며, 아들은 현재 소년 분류심사원 있다. 아들의 이름은 안민호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동원’은 결혼을 한 이력이 있는 인물로 등장하며, 자신의 가족과 연락이 단절된 채 살아왔다. 성정체성과 가족과의 연대는 반비례하며 두 항목을 가로지른다. 2020년 버전들을 정리해 보면 대구의 동원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게이바를 찾았고, 학교에서도 정체성을 둘러싼 소문이 났다. 서울의 동원은 누군가의 결혼식장을 찾았고, 그에게 청탁해 온 사회자의 역할 역시 정강현의 작품이 게이 문학이라는 사실과 관련을 맺는다. 차이가 있다면 대구의 동원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게이 제자가 있었던 것에 반해 서울의 동원과 인연을 맺는 제자는 아내를 잃고 아이를 홀로 키우는 유부남이다.

2020년 부산의 동원은 과거에 결혼하였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있다. 그의 모습은 서울의 동원이 만났던 제자의 상황과 슬쩍 닮아 있다. 그런데 대구와 서울의 과거 회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장면이 부산의 에피소드에는 수록되어 있다. 동원은 아들을 만나러 가는 자동차 안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그것은 강현과 야구를 했던 과거의 일화다(동원이 강현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전날 텔레비전에서 정강현 작가의 『모든 만약은 아프다』가 미국에서 펜 피츠제럴드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접한 탓이다. 알기로는 이 문학상은 가상의 설정이다). 강현을 투정을 부리는 자신을 향해 운동장의 수돗가에서 키스를 한다.

대략적인 흐름이기는 하지만 2020년의 동원은 대구-서울-부산으로 올수록 게이성을 약하게 묘사하는 데 반해 회상 장면에서는 가장 강력하게 부각한다. 그의 가족(특히 아버지)과의 일화를 감안해 보면 대구나 서울의 장면에서 동원의 정체성은 문제가 되었던 것에 반해 부산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속인 채 결혼을 하고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정체성에 반한 삶을 선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부산의 이야기에서 강현에 대한 회상 이외에도 중요한 과거가 등장한다. 아픈 어머니와의 대화들이다. 이전의 에피소드에서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번의 모습이 보다 구체적이고, 영화 전반과 연결하여 또렷하게 부각된다. 어머니는 동준과 누이인 동희에게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라"는 말과 함께 결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아이는 기회가 되고, 상황이 되면 나아보면 좋지."라고 말한다. 아픈 어머니는 두 자식을 안아주면서 "부모가 되는 느낌이 뭔지 경험해 보는 게 좋은 거라는 얘기다."라고 강조한다.

어머니와의 대화는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동원이 과거의 추억에 매달리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내일을 살아야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에 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퀴어 영화인 동시에 하나의 성장 영화로써, 그리고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와 책임에 대해 묻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것은 면회를 간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이어진다. 아들은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면서 "아빠가 젊었을 때 실수를 해서 나를 낳았기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는 말이 진심인지를 묻는다. 동준은 "실수가 아니라면서. 지금 꿈이 있고,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서 아들과 같이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주어진 면회 시간 동안 자신의 후회를 수정해 보려고 해도 쉽지는 않다.

 

ⓒ 안다미로

아들은 아버지의 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도 후회되는 것이 많다면서 아빠도 후회가 되는게 많은지를 묻는다. 동준은 아들 앞에서 필립 쁘티가 빌딩 사이에 줄을 놓고 걸어가는 사진을 건네다. 면회를 끝낸 후 동준이 향하는 곳은 대구다. 그것은 누이의 병문안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후회했던 과거의 그날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동준은 과거의 아파트(502호)를 찾는다. 자연스럽게 그날의 장면이 등장한다. 현재의 동원 앞으로 그날의 경찰차가 스쳐 가다가 멈추어 선다. 과거의 동원은 경찰차가 보이자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다르다. 나레이션이 깔린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거기서부터였다." 정확히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순간이 무엇인지를 가리킨다. 아버지를 죽이겠다며 야구방망이로 난동을 치던 형은 끝내 경찰차에 끌려갔다.

"그날 이후 형은 서울에 있는 친구집에 1년을 살았고 이듬해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뭣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는지. 그래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안녕, 내일 또 만나>가 희망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의 반항, 그날로부터의 반항, 평행우주라는 반복되는 삶으로부터의 반항이다. 하나의 메타포로 쓰인 필립 프티의 『Life on the wire』가 던져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과거에 형은 이 책을 이야기하면서 필립 프티의 말을 들려주었다. "인생을 가장 자리에서 살아야 한다. 줄위를 걷듣니 매일 매순간." 그리고 강현은 "그래야 인생이 안지루해지니까". "반항하는 거지"라고 덧붙였다. 

과거 두 사람의 대화는 동원에게 보낸 아들의 편지에서 이어진다. "나는 평행우주라는 말이 좋다. 뭔가 아슬아슬해서 좋다."도 마찬가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반복은 그날의 후회로 다가가기 위한 아슬아슬함이고, 인생의 윤리적, 정치적, 관계적 위태로움을 가리키면서 저항하고 반항하는 아슬아슬함이다. 또한, 줄 위에서의 인생을 살았던 필립 프티의 사진과 책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던 것이 ‘평행우주’라는 이야기의 구조와 맞물린다. 모두가 아슬아슬한 삶의 형태인 동시에 삶을 하나의 극단적인 것에서 바라보려는, 기존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에 저항하려는 의지가 숨어 있음을 피력한다. 

경찰차가 멈춘다. 이제 현재의 동원은 과거의 동원이 되어 경찰차로 달려간다. 문이 열리고 동원은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던진다. "형, 같이 가자."

어쩌면, 동원은 과거에도 같은 말을 했을지 모른다. 세월의 흔적 속에 묻어둔 채 망각하려는 삶의 의지로 살아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아들을 만나고, 가족(누이)을 만나러 오면서, 자신의 과거와도 적극적으로 마주한다. 강현이 동원에게 말한다.

"울지 말고 집에 가 있어. 내일 꼭 찾아갈게. 내일 보자!"라며 약속한다.

이것은 허구나 상상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날의 후회를 거듭하지 않겠다는 평행우주의 결과다. 과거는 무수한 잘못으로 점철되어 있고, 무수한 후회를 쌓으며 살아가는 일이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그것에 대해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평행우주 속에서 거듭하기를 멈추지 말고 대면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어느 우주에선가는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약속의 이행이다. 뉴스를 통해 알게 된 강현의 행사(책에 대한)를 찾아간 동원은 그와 마주한다. 두 사람이 인사를 한다. 무려 25년 만의 일이다. 이 우주는 여러 우주 중 하나이지만 어쩌면 그토록 기다렸던 우주일지 모른다. 최소한 이 영화는 벽에 갇혀 있거나 어쭙잖은 저항을 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사태에 맞서는 것이 곧 저항이라고 말한다.

대면한 순간 두 사람은 어제 헤어진 것 같은 기시감을 느낀다. 실상, 이 영화가 그것을 직조했으니 헤어진 순간으로부터 튀어나온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동원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마지막은 모두 같으리라." "형이 내 우주였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한 우주일 수 있다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그것은 가장 고귀하고 드문 것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조금은 말랑말랑한 감성의 결말일 수 있지만, 최소한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중(현재까지) 가장 눈에 들어온 점은 과거를 벽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끄집어 내면서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대면하고, 말을 걸면서 끝내 화해를 해 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것이 거대한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오직 왜곡된 환상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그것은 구원을 향한 치열한 반복이자 우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우주가 좋다.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poema@ccoart.com]

 

ⓒ 안다미로

안녕, 내일 또 만나 
So Long, See You Tomorrow
감독
백승빈

 

출연
심희섭
홍사빈
신주협
김주령
권동호

 

제작 루이스픽쳐스
배급 안다미로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4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09.13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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