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공작' 기립하십시오,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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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 승인 2023.09.3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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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인터내셔널한 독재요!"

제80회 베니스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파블로 라라인의 <공작>(2023)은 뱀파이어 장르와 블랙코미디를 혼합한 상상력이 인상 깊은 영화다. 영화는 실존 인물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뱀파이어로 각색하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시작된다. 정체 모를 늙은 여성의 내레이션이 뱀파이어 피노체트의 삶을 이야기한다. 피노체트의 본명은 클로드 피노슈로 프랑스 고아원 출신이다. 그는 루이 16세의 장교로 복무하던 중에 프랑스 대혁명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것을 두 눈으로 본다. 피노체트는 클로드 피노슈의 죽음을 가장하고 세계 곳곳을 방랑한다. 혁명을 막기 위해서라는 일념으로 그는 아이티부터 시작해 러시아, 알제리 등 세계 곳곳의 혁명에서 지배자 편에 선다. 피노슈는 칠레에 정착한 다음, 피노체트라는 이름의 군인으로 행세하고 사회주의 정권인 이사벨 아옌데를 쿠데타로 몰아낸다. 이 내레이션이 이야기하는 가상의 연대기는 믿음직하지 않다. 내레이션이 왜 피노체트의 과거를 아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이야기의 흐름은 전적으로 내레이션을 따라간다. 전지전능하기까지 한 이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최근에 이르러 <네루다>(2016)와 <재키>(2016), <스펜서>(2020) 등으로 할리우드와 칠레를 오가면서  (연작이라 불러도 무방할) 전기 영화를 연출했다. 그가 그간 전기 영화로 한 작업은 보통 전기 영화와는 다르다. 그는 역사에 족적을 남긴 한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데에 흥미가 없다. 되려 그 인물을 셀레브리티로 해석하고, 셀레브리티의 이미지를 장르 영화로 리메이크하는 작업에 흥미가 있는 듯하다. '파블로 네루다'의 삶은 느와르와 로드무비로 재해석되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뒤튼 고딕 영화로 재해석된다. 감독은 두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동명이인의 가상의 인물을 그려낸다. 외모나 말투 등 아이돌의 이미지를 인용해 창작을 펼치는 팬픽 문법에 가깝다. 파블로 라라인의 작법이 낯선 것은 아니다. 구스 반 산트가 커트 코베인과 J.D 샐린저라는 전설로 남은 예술가의 이미지를 빌려와 찍은 두 편의 영화, <라스트 데이즈>, <파인딩 포레스터>등이 대표적 사례다. 파블로 라라인은 시대의 격랑 아래서 개인(특히 여성과 예술가)이 온전히 그 자신으로 있기가 불가능하다는 테마를 변주해 찍은 셈이다. 픽션으로 우회해야만 그들의 감정적 진실과 표정을 포착할 수 있으리라는 야심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

<공작>(2023)도 피노체트의 전기 영화로 시작한다. 다만 이 영화는 보통 전기 영화와 달리 악역을 주인공으로 하는 피카레스크 장르라는 것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는 감독의 전작이기도 한 피노체트 정권을 소재로 블랙코미디 <노!>(2013)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영화의 분위기가 스탠리 큐브릭의 블랙코미디<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57)에 기반해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큐브릭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도 정체를 숨긴 채로 사는 나치주의자로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스탠리 큐브릭은 스트레인지러브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에게서 영감을 딴) 잭 D.리퍼의 공모를 통해서 전체주의와 핵무기의 필연적인 연결을 비판하고, 전체주의자의 속성을 탐구한다. 큐브릭의 영화도 흑백이며, <공작> 역시나 흑백이다. 피노체트를 둘러싼 이분법적인 시선을 드러내면서도 이 영화의 세계가 기본적으로 디스토피아라는 것을 시각화하기에 적합하다.

 

파블로 라라인이 '흡혈귀'라는 장르적 설정을 쓴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 듯하다. 흡혈귀야말로 파시스트로 비유하기에 적합한 존재다. 흡혈귀는 신선한 피를 수혈하는 한 불멸의 존재고, 불멸을 욕망한다.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가 지적하듯이 영웅과 독재자는 명예를 통해서 영원한 존재로 남으려 하고, 그 욕망으로 타인을 망치는 나르시시스트다. 피노셰에서 피노체트로 시대에 따라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독재자는 국경과 이름만 다를 뿐이지,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오고, 그 기저에는 나르시시즘이 있다. 이는 여성의 피를 흡혈해야만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설정과도 이어진다. 아름답고도 젊은 여성 곁에 있어야만 자신이 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다. 사람의 피를 먹어야 하는 흡혈귀의 장르적 설정은 대중의 자본을 착취하는 독재자의 습성과 이어져 있다. 피노체트뿐만 아니라 피노체트에게 물려서 흡혈귀가 되는 것을 택한 집사 표도르(알프레드 카스트로)가 뱀파이어로 살기 시작한다는 설정은, 독재자의 본성이 얼마든 다른 이에게 이식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파블로 라라인은 피노체트를 도화지로 파시스트의 보편적 이미지를 그려나간다. 피노체트는 칠레의 독재자에 그치지 않고, 독재자 전체의 환유로 기능한다.

영화는 이윽고 전기 영화에서 장르를 우회한다. 피노체트의 가족이 피노체트의 유산을 상속하러 그의 집으로 간 다음부터다. 피노체트는 도둑놈이라는 오명에 질려서 죽으려 하고 성당 측에서는 그들 가족에게 수녀 퇴마사 카르멘시타(파울라 루흐싱거)를 보낸다. 수녀 퇴마사는 정의감을 품은 채 피노체트 정권의 부정부패를 조사하고 악마가 들린 것으로 예상되는 피노체트를 승천하도록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친다. 카르멘시타가 등장한 후로 영화는 법정 드라마로 장르가 전환된다. 카르멘시타를 중심으로 감독은 선악 혹은 천사와 악마라는 이분법으로 독재자뿐만 아니라 독재자의 가정, 독재자의 공모자 등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특히 피노체트 정권에 협조한 것에 불과하다는 변명에는 협조하지 않더라도 폭행 등의 죄를 저질렀다는 등의 고발을 쏟아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이 한 변명으로 유명하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개념화되었다. 카르멘시타를 통해서 감독은 피노체트 가족의 위선을 까발린다. 다만 모든 것이 차분한 톤으로 진행되어서 전혀 과잉되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다만 선악의 이분법은 고발하는 데에는 적절하나 그 이상을 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태도이기는 하다.

 

<공작>의 미덕은 카르멘시타의 심문을 설정할 때 대중이 참여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보통 법정 영화에서는 심문이 이어진 다음에 대중의 집단적인 반응을 드러냄으로 관객이 거기에 이입할 틈을 준다. 이때 차갑기만 한 법정에 뭉쳐진 감정에 정동이 더해지고, 그것이 플롯과 플롯에 전제된 도덕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감독은 카르멘시타의 심문에 정동이 개입되는 것을 차단한다. 이는 피노체트의 집이라는 로케이션 때문이기도 하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피노체트의 집은 (아마도 미국과 결탁되어 있을) 그의 차명계좌처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있다. 피노체트의 죄악은 공공연히 드러난 것이 아니다. 대중매체로 드러나는 잘못 외에도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가득하다. 감독은 한정된 로케이션을 통해서 그들의 잘못이 결국 암암리에 드러나고, 은폐된다는 것을 그려낸다. 카르멘시타가 피노체트를 심판하려 시도한 것도, 피노체트가 카르멘시타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흡혈귀로 타락하게끔 한 것도 결국 대중의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공작>의 놀라운 지점은 결말에 있다. 어쩌면 이분법적인 고발 문학에 그칠 수 있는 영화를 한층 더 복잡한 텍스트로 만드는 것은 내레이터의 정체다. 내레이터는 후반에야 그 정체를 드러내는데, 바로 영국의 보수를 대표하는 수상인 '마가렛 대처'다. 마가렛 대처가 피노체트의 어머니라는 상상으로 감독은 독재자가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감독은 이것이 인터내셔널한 독재라고 그려내는 듯하다.

마가렛 대처는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하면서 서구의 영향력을 남미에 드러내기도 한 독재자이며 영화도 정확히 이 영향을 다룬다. 마가렛 대처의 등장으로 흡혈귀 전체가 독재자이며, 그 흡혈귀가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영화는 복잡해진다. 물론, 남미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모르는 이에게 이는 불친절한 설정이기는 하다. 미국과 영국 등 외세의 영향으로 전체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을 드러내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피노체트와 그의 가족을 모독하는 데에 집중해서다. 물론 이 이상을 말하는 것은 영화의 몫은 아니다. 또한, 넷플릭스에서 찍은 영화라 하더라도, 감독이 이 이상을 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공작>은 피상적인 차원에서 전체주의를 풍자하고 비꼬는 데에 그친다. 이 영화는 어떠한 질문도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감독이 심리적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의 힘으로 파시스트에 저항해서다. 파시스트의 가장 훌륭한 무기야말로 이야기이기 때문에.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넷플릭스

공작 
El Conde
감독
파블로 라라인
Pablo Larrain

 

출연
하이메 바델
Jaime Vadell
글로리아 문츠마예르Gloria Munchmeyer
알프레도 카스트로Alfredo Castro
파울라 루크싱게르Paula Luchsinger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11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3.09.15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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