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ney+] '무빙'은 어떻게 평범한 히어로 이야기가 되었나
[Disney+] '무빙'은 어떻게 평범한 히어로 이야기가 되었나
  • 변해빈
  • 승인 2023.09.27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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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과 일상과 클리셰, 그 평범함이 쓸모를 가질 때"

원작자이자 각본가인 강풀이 말하듯 <무빙>은 히어로에게서 “슈퍼히어로가 아닌 우리 주변 사람”이라는 자격을 중요시한다. 소시민이자 동네 이웃으로 등장하는 히어로들에 대해 할리우드식 히어로와 좀 다르다는 의미에서 무턱대고 평범하다는 표현을 붙이곤 하지만, <무빙>이 평범한 히어로들의 이야기가 된 건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남산 돈까스와 동네 치킨집,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해 먹고 사는 이야기는 평범하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아이들의 등하굣길과 시시콜콜한 대화와 우정이 차츰 쌓여가는 과정은 평범하다. 자식들에게 부모의 아픔이 물리적 형태로 물려지는 흐름도 보편적일 수 있다. 그런데 물려받은 것 중에 초능력이 있단 사실이 그럴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주변 사람이길 자처하며 자기 능력치를 감춘 채 사는 히어로의 삶은 평범한가.

우리는 왜 <무빙>을 보며 비범함보다 평범함을 강조해 말하게 되는 걸까.

사실 반장의 초능력을 알게 된 학급의 불량아 방기수의 말처럼, 주인공들은 그런 능력을 갖고도 써먹지 않는 히어로들이므로,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렇기에 극에 등장한 순간부터 능력을 드러내던 프랭크나 비밀리에 시행되는 프로젝트에 줄곧 달라붙어 있는 국정원의 고위직 간부들보다, 어떠한 내색 없던 이들에 내재된 반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평범하려 했으나 결코 평범할 수 없다는 것, 동네 사람들 틈에서 일상을 욕망할 때 <무빙>의 히어로들은 의도치 않게 특별해져 버린다. 이를 위해 <무빙>은 히어로의 능력이 동원되는 순간만큼 잘 감춰왔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이에 기여하는 건 우선 자식에서 부모로, 유전적 성향의 대물림 과정을 역순으로 보여주는 서사 전개이다. <무빙>은 1~7회까지 부모 세대인 장주원(류승룡), 이미현(한효주), 김두식(조인성), 이재만(김성균)의 과거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유독 귀와 눈이 밝고, 상처가 금방 치유되고, 깡통 캔을 종잇장처럼 짓이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당분간 희미하다. 중심 포커스가 향한 곳은 그들의 자녀 김봉석(이정하), 장희수(고윤정), 이강훈(김도훈)의 서사와 부모자식 관계에서 형성되는 일상의 부분들이다.

 

ⓒ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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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은 초능력이 '초능력이 아닌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1회, 가장 첫 장면에 펼쳐진 건 우주 궤도 어딘가에서 공중부양했던 봉석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꿈으로 치자면 흔하디흔한 꿈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현의 밥 짓는 소리와 냄새, 그걸 따라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봉석의 모습. 이상하리만치 많이 먹고, 또 이상하리만치 무게를 늘린 가방을 짊어 맨 봉석을 보며 커지는 의구심은 버스가 급정거할 때, 이상형에게 첫눈에 반한 소년의 휘청거림인지 공중 부양인지 모를, 딱 그 정도의 모호성 안에서 능력이 암시는 데 그친다. 몽상, 사랑, 소년과 소녀. 초반 <무빙>은 '슈퍼히어로'라는 개념에 일상 속 찰나의 설렘과 즐거움, 상대를 응원해주는 존재로서 히어로적인 의미를 청춘 멜로드라마의 색채와 함께 부각시킨다. 봉석이 희수에게 자기 능력을 고백하던 장면에서도 다름에 대한 특수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리숙하지만 귀여운 남자와 씩씩하고 예쁜 여자의 청춘 멜로드라마의 관계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봉석과 희수는 제대로 각성하지 않은 시기에 놓인 존재다. 두 인물은 도입부에서 우리에게 이 작품의 세계관, 능력의 구체적인 형태와 쓰임을 또렷이 전해주지 못하는 상태다. 그들에겐 자기 능력치와 정체성이 불완전하고 위태롭다는 사실이 먼저다. 그래서 <무빙>에서 미래적 진행보다 우선시해서 다뤄지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감추며 살아왔던 과거이다. 과거가 선명해질수록 상실의 빈자리와 삶에 고군분투하는 인간군상, 남들은 없는 능력의 쓸모없음의 쓸모가 극대화된다.

여기서 봉석과 희수의 과거에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쓰였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싶다. 한 회차 안에서 현재와 과거를 자주 오가며 이미지로 그려지는 기억 위에 현재 두 아이의 목소리를 덧입힌다.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의 쓰임은 이들의 과거가 그들 부모와 공유되는 기억이면서 기억의 대상을 잃은, 절반은 소실된 기억의 특성과 결합된다. 실종된 두식과 죽은 지희가 기억하는 두 아이의 과거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과거는 유년기 없는 주원과 미현의 과거를 대신한다. 이 부모들에겐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 능력을 유전 받은 아이이던 과거보다 부모되기의 과정으로서의 과거가 있을 뿐이다. 유전을 특이점으로 내세운 이 시리즈에서 주원, 미현, 두식, 재만의 부모에 대해 무관심한 건 의도가 숨겨진 선택이다. 그들 대척점엔 같은 세대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프랭크는 부모에게 버려져 비밀 병기로 키워진 아이다. 그에겐 내리사랑이 없고, 이에 대한 비참함과 분노로 들끓는 존재다. 북한 공작원들도 마찬가지, 그들의 과거엔 그들이 부모이건 아니건, 국가에 희생된 존재가 느끼는 비관적 정서가 팽배하고, 남한 부모들 사이에선 외려 느슨하게 묘사되는 동료의식으로 끈끈하게 뭉쳐있다.

한편에서 <무빙>의 인물들은 때로 천륜에 극도로 나약하게 굴고, 원작자인 강풀의 작품세계가 모든 걸 끌어안으려는 교화주의식 태도가 과잉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프랭크는 홍성화(나주)의 자식을 색출하려 방문한 장례식장에서 그녀가 입양한 아들과의 대화 끝에 그녀가 좋은 엄마였는지 묻는다. 그가 전계도를 곧장 죽이지 못한 것도, 흥분한 탓에 장주원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도 전부 그들이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블랙 요원들과 북한 공작원 간의 결정적인 대치가 벌어지는 마지막 세 회차의 걸림돌은 북한 공작원들이 남하하는 목적의 무의미함을 북한에서의 사건을 통해 이미 실감해버렸단 점이다. 단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임무에 동원된 인민들, '인민에게는 죄가 없다'를 주축으로 내세워 그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기구한지, 죽음으로 삶을 보상받는 비참하고 반인륜적인 처사에 의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 감상에 젖어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하던 힘을 눈물 한 방울의 기력으로 떨어트리고 만다. 분노가 말살된 체념의 눈물. 살해되거나 자살하거나, 그도 아니면 반역자가 되기.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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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미현, 두식 부모 세대의 서사는 구조적으로 그들 자녀 후반부에 한발 물러나 있다. 아이들을 대신해 CIA 소속 프랭크(류승범)가 은퇴자 진천(백현진), 봉평(최덕문), 나주(김국희)와 같은 변두리 인물을 따라 우회하며 주요 인물들의 일상, 평범성을 가능한 오래 보호하는 가운데, 강풀은 원작 웹툰의 구성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7회 이후 퇴장하는 프랭크 캐릭터의 역할을 인계받는 요소로 (캐릭터가 아닌) 편성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8회에 이르러서야 그는 부모 세대의 과거를 기입한다. 아파트 호수별로 문을 두드려서 입주민을 한 명씩 확인하듯 회차당 한 캐릭터를 집중 조명하고 그의 관점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데에 한 회를 모조리 소요한다. 14회에 소개되는 이재만을 연기한 배우 김성균이 "상한가 치고 있는데 큰일이다"라고 인터뷰하였듯 중간에서 시청자가 이탈할 가능성을 따지자면 모험이었다.

대물림의 역순행적 방향은 극 내 모든 인물이 '일상적 순간'을 유지하는 데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비극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캐릭터의 마음은 극의 구조와 호흡한다. 부모 세대 히어로들에게 '평범성'이란, 다음 세대가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는 것으로 위장을 목표로 한 다분히 의도된 평범성이다.

부모 세대 히어로들은 잘되어도 평생 감시받고 비윤리적 임무에 복종해야 하는 전직 블랙요원이었고, 그도 아니면 이재만처럼 남을 불필요하게 많이 해쳤다는 누명을 쓰고 전과자가 되어야 했던 시대의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이다. 그들은 불가피하게 적당히 고립되고 적당히 묵인하며 살아야 했다. 세 아이의 부모 세대의 문제에서 극이 시작되었다면, 자식들을 감춰야만 했던 이유를 곧장 전달할 순 있었겠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비범하게 각인되었을 터, 대의를 위한 잠재성이,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고 귀가를 챙기는 일상의 순간들을 가려버렸을 것이다. 또한 생계와 목숨이 전제된 부모 세대의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과 소외를 겪는 자식 세대의 문제를 좀 덤덤하거나 사치스러운 무언가로 치부시켜 버렸을지 모른다. 북한 공작원의 수장 김덕윤(박희순)이 말한 세대 간 대 끊기, '우리' 세대에서 난국을 끝내야 한다는 말은 이 같은 <무빙>의 구조에 의해 이미 실행되었다.

다른 축에서 <무빙>의 평범성은 클리셰를 가리키기도 한다. 봉석과 희수의 멜로드라마는 그들의 부모에게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예컨대 국정원 비밀 임무 수행 과정에서 사랑에 빠지는 두 블랙요원 미현, 두식의 이야기는 첩보 액션물을 가장한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개다. 거칠지만 순정 있는 남자 주원이 고작 길을 잃고 엉엉 울어버릴 때, 강하게 반응하는 법을 익혀 온 성노동자 지희에 의해 그 모습이 발각될 때, 그들을 감싸는 희망적인 기운은 여느 조폭 로맨스에서 볼 법한 클리셰와 다르지 않다. 장르적으로 그럴 뿐 아니라 이는 강풀의 전작 『바보』, 『순정만화』, 『통증』에서 유사성을 지닌 채 등장했던 남녀 관계이며, 다수 캐릭터를 하나에서 둘로, 개인에서 공동체로 수집하다시피 그러모으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흩어진 개인이 하나의 사건에 감기며 집약되는 구조, 곁눈질로 유지되던 느슨한 관계를 필연적인 연대로 증폭하는 서사는 『아파트』,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26년』 등 강풀의 옛 작품에서 보아 온 것들이다.

 

ⓒ 디즈니+

그런데 <무빙>의 클리셰 또는 평범함을 진부하다고 지적하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반응을 살펴 찾자면 <무빙>은 한국적인 무언가와 접목된 K-히어로, 한국형 히어로로 수렴되는 듯하다. 여기서 '한국적인 요소'의 재미와 차별점은 이전 콘텐츠들에서 부각되던 남북 분단 상황과 같은 한국의 지정학적, 국가 규모의 정치적 리얼리티를 허구적인 히어로물과 접목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물들은 국가와 달라붙기를 거부하고, 그들의 주변 사람을 지키려 한다는 평범성을 토대로 국가의 규모를 무의미하게 축소시킨다. 이 거부의 움직임의 일환으로 클리셰가 차단막을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이 중요하다. 남북의 사상과 정치적 차이에도 결국 부모 세대의 능력치는 개인의 희생과 비자유라는 공통분모로 집합된다.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순간은 각 능력들이 국가와 정부를 벗어날 때, 이 능력치가 결국 우리가 현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먹고 사는 노동의 문제로 귀결될 때다.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에게서 노동의 성실함과 패턴화된 일상의 고단함이 보이고, 그걸 상쇄하는 한 사람의 가치가 국가 규모의 대의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둔갑시킨다는 게 중요하다.

과거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는 있었지만, 어느 순간 쓸모없다고 여겨져 삭제되거나 압축되어버린 요소들, 그러나 강풀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수하며 다시금 <무빙>에 꺼내놓은 것. 그리움과 유사한 성질의 정서적 파장을 일으키는 그런 게 이 작품에는 있는 것 같다. 적어도 하나쯤은 호감가질 법한 다수의 캐릭터, 전부 다 다른 액션 씬이 제공하는 볼거리, 돈까스와 치킨이라는 서민 음식의 활용, 신인 배우의 신선함과 기성 배우의 노련미, 결국은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라는 점, 모두 중요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넘치는 요소들의 조화로움을 구축하는 건 일상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창작자의 태도 덕분인 것 같다. 

앞서 말한 1화 오프닝에서 눈길 끌기 좋은 액션 대신 잠에서 깨는 아이와 밥 짓는 엄마의 모습을 택하면서, 이를 히어로의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단계로 대하지 않고, 그 일상의 풍경 없이는 능력도 특별해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 한마디로 누구에게나 엇비슷한 것, 대체로 평범한 그 상태로 반복되며 벗어나서도 않되는 것으로서 일상의 쓸모가 <무빙>에선 잘 보인다. 극의 에너지를 조정하는 단조로운 것이란 프레임을 쓰고 종종 불필요하게 여겨져 온 일상, 클리셰, 동네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창작자의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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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장선상에서 보는 이들은 유일하게 쓸모없었다고 말하지만, 강풀에겐 원작과 달리 필요했던 '전계도' 캐릭터를 향한 분열적인 반응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무빙>의 활력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계도가 최후의 순간에 번개를 쏘는 장면을 포함해서 그를 원작에서처럼 삭제하고 장면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다른 캐릭터로 대체했어도 무리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전계도를 다른 인물로 대체가능한 순간을 비틀어, 다른 이로 대체불가능한 순간들에서 전계도가 수행하는 것, 큰 어려움이 요구되는 행위는 아니지만 정교하게 설계되어서 다른 캐릭터가 끼어드는 순간 극 전체 배열이 꼬여버리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목적도, 의심도, 개입도 없이 매번 같은 시공과 거리에서 하루 중 스쳐 지나간 여느 고등학생 일부로 봉석과 희수를 대하는 시선의 주체다. 느슨한 조직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로 투입된 전계도는 두 아이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구체적인 사건의 전위를 모르더라도, 아니 모른 채로 단지 염려된다는 자기 직감과 본능을 이유로 그들을 궁금해하는 존재로서 쓸모를 갖는다. 전계도만 단독으로 보면 뚜렷하지 않게 느껴지던 행동 동기와 욕망은 사실 가장 개인적인 것이다. 천륜, 혈연, 희생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닌 때에도 가능한 희망. 그런 게 없으면 강풀의 세계는 외롭고 절망적이어서 쉽게 포기해버리고 싶은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따금 방향성을 상실하고 자기 '쓸모'를 잃어버리던 강풀의 캐릭터들, 주원은 아내와 자식에게서 자기 쓸모를 찾았지만, 두식은 이제 잃어버린 상태인 쓸모의 잠재적인 특성 때문에 무수한 캐릭터 하나하나가 궁금하다.

강풀이 전계도를 통해 한층 더 강화시킨 느슨함에 지지를 보내는 까닭은 동등한 이유를 가지고 하나의 시공과 사건에 모여드는 다수 인물에게서 조금씩의 다른 점을 쌓아가는 부지런함이 공존하는 덕분인 것 같다. 클리셰의 유사성을 통해 일상의 보편을 '치밀하게' 설계하였기 때문에, 동등한 능력을 경유해도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능력을 덜어냈을 때 보이는 인간적인 공통점과 차이를 나란히 발견한다. 초능력자들은 자기만의 능력에 특화된 동시에 그 능력의 범주를 벗어나면 다치거나 죽고, 무언가를 반드시 상실한다. 극의 마지막, 인물들에겐 저마다의 흉터가 새겨지고 강풀은 이를 억지로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 이 필요한 보편과 허술함. 그런 이유에서 강풀의 캐릭터는 특별한 히어로와 평범한 주변사람 중 한 측면이 축소되는 상황에도 다른 하나에서 반드시 그 캐릭터가 필요한 관계성을 가지며 극 안의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 한 부분이 강하면 다른 부분이 약할 수밖에 없는, 혹은 그 반대로 작동하는 속성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moving)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원칙이 <무빙>이 쓸모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 디즈니+

무빙
Moving
연출
박인제
박윤서
극본
강풀

 

출연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류승범
김성균
김희원
문성근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
양동근
김신록
박희순

 

제공 디즈니+
제작연도 2022
회차 20부작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3.08.09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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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2023-09-30 10:50:14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