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디지'는 그녀의 두 딸 '제시카', '파라'와 함께 작고한 남편의 터전 코르시카섬으로 이동한다. 어딘가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얼굴로 첫 등장한 세 인물은 프레임 너머로 잘려 나간 그곳과 한 화면에 담기길 거부한다. 15년 만의 되돌아감으로 시작된 이 영화에서 모녀에게 바로 지금의 안식처가 될 무언가는 그들 앞에 없다. 이들은 그 과거에 관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이 문제는 동일한 하나로 시작된 모녀의 길이 기어이 세 갈래로 흩어지며 더해진다. 케이디지는 모녀의 터전이 되어주지 못하는 남편의 터전을 과거와 같은 결로 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의 옛 친구와 회고담을 나누는 사이이지만, 그와 짧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기억이 잡아끄는 남편의 집은 '그곳'으로 분리 취급할 뿐 아니라 외상을 안기는 사건에 개입되길 자처하면서 어떤 폭력의 기운을 목격하게 한다. 제시카는 아버지의 집을 찾아 나섰지만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고 느낀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버지와 접점이 없는 파라는 그들 주변부를 겉돈다는 생각에 붙잡혀 있다.
<귀환>은 인물을 수용하지 않는 장소에서 걸음의 실패가 남긴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영화에는 인물이 주어진 경로를 엇나가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케이디지는 자기 삶의 궤적을 두 딸과 나누지 않는다. 그의 지난날이 자매의 걸음을 안내하는 무언가로 치환될 수 없듯 케이디지 역시 자매가 이탈한 걸음을 뒤따르지 못하고 거듭 놓쳐버리곤 한다. 여름 휴양지의 열기로 가득한 대지에서 무방비한 질서로 작동하는 바다와 수풀 따위의 거칠고 위태로운 모습은 돌출적으로 그려진다. 인물들의 뒤틀린 관계와 불안한 현재를 닮은 그것들은 평온하던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무엇으로 여겨진다. 광란의 유희적 밤이 펼쳐지는 동안 장소가 너무 무심하게 밀어내버리는 힘 안에서 인물들이 눈물과 통증으로 발붙이는 순간들은 나약하고 빈궁한 것으로써만 눈에 밟힌다.
한편, 파라는 부유한 어느 집안의 보모로 고용된 엄마의 일터에 방문하며 그들을 초대받은 존재로 명명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떠남을 상정한 상태였다. 과거, 가족이라는 유대감 없이 머물다 갈 사람 같은 기분에 시달리던 케이디지는 이방인으로서의 예정된 비극에 대한 상실감과 외로움이 두려워서 스스로 그 길로 나아간다. 섬을 떠나기 직전 케이디지를 붙잡은 건 모녀를 쫓아 나선 남편의 죽음, 영영 벗어날 수 없는 슬픔과 회한의 정서다. 이후의 삶을 "침묵이 나아가게 했다"라고 말하지만 케이디지가 나누지 않은 죽음의 비밀은 딸들에게 사랑의 문제를 대물림한다. 제시카는 부유한 집안의 딸 가이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경직되어있지 않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간절함, 세속적 욕망이 지탱하는 관계이다. 섬세한 교감 없이 인연의 반복 안에서 생성된 파라의 사랑은 위험을 동반한다. 갈망하는 다른 무언가, 근원적 결핍을 간편하게 망각해주기에 그녀는 비행과 폭력이 내재한 사랑에 쉽게 유혹된다.
카트린 코르시니의 '그녀'들은 빈번히 비애 혹은 사랑, 둘 사이 갈림길에 선다. <귀환>은 짝 찾기의 조건으로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함을 전제했던 감독의 전작들에 이어 나 없는 시간을 품은 장소와 인물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그의 영화에서 친숙하게 쓰여온 사진은 더 이상 기억의 매개적 장치가 아니다. <귀환>에서 사진은 두 딸의 관점에 주력하며 교환되지 않는 생애의 틈을 보여준다. 파라의 입장에서 사진 속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인력이 시간의 연결을 단절시키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면 인물들의 경계에 걸친 제시카의 입장에선 흐르는 시간을 받아들인 운명의 잔인함이다. 내가 없는 과거에서 기인한 파라의 소외감은 제시카에 이르러선 아버지 없는 과거는 있지만 이에 관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는 무력감으로 심화된다. 실재하나 실제적이지는 않은 것, 내 주변을 구성하고 있지만 내가 섞여 들 수 없는 것. 그 때문에 제시카는 공백 속에서 자라게 한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상대를 향한 아름답다는 사랑의 언어로 시작해서 관계를 균열시키는 도구로까지, <귀환>에는 많은 비밀이 있지만 이것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요체로 사용되지 않는다. 영화는 비밀에 담긴 모든 면을 투명하게 전하는 데 관심이 없다. 모녀는 제삼자의 입을 통해 대신 전해 듣거나 상황의 양면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로 비밀을 알게 된다. 코르시니는 최근 영화들에서 말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어떤 실패를 무너진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는 데 필요한 동력으로 삼아왔는데 <귀환>의 말은 필요한 말을 다 끝마치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언어적 가능성이 도출된다.
엄마와 동생 곁을 떠나 남의 집들을 전전하던 제시카는 어느 날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는다. 케이디지에게서 도착한 뒤늦은 고백은 틈이 채워지지 않은 말이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말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결심이다. 여기서 영화는 말하는 목소리(내레이션)와 듣는 얼굴(이미지)을 겹치고, 어머니의 과거와 두 딸의 현재를 보여주는 컷을 부드럽게 섞어낸다. 코르시니 영화에서 이러한 말이 나오는 찰나만큼 (좀처럼 뒤섞이지 않던) 걸음과 장소와 생애가 뒤섞이는 형상은 없다. 사실상 무엇도 말하지 않은 케이디지의 유예된 말이 비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때의 '없음'이 아버지와 터전의 없음, 사랑의 상실을 전복시키는 언어적 가능성으로 변주되며 말이 필요 없는 관계의 힘을 모색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인물들을 가혹하게 분절시키는 코르시니의 영화에서 걸음을 지켜보는 일이 유의미하다면, 어그러지는 관계 위에서 '존재하던 서로'를 상실함으로써 부재한 무언가로부터는 온전하지 않던 상실의 감정을 정립하는 나의 시간과 리듬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계급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비극적 운명의 굴레를 도무지 포기할 생각이 없는 코르시니의 영화에서 그럼에도 사랑이 필요하다면, 결국 사랑이 시간을 함께 살았다는 증거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영화는 그러한 시간을 바깥으로 꺼내 보이는 시도로 인물이 떠나고, 겉돌고, 되돌아가는 걸음을 섬세하게 응시한다. 묵비의 장소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 영화는 인물들이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들이 무엇보다 강력하게 느끼는 건 사랑이다. 길의 끝에는 결국 사랑이 기다린다. 그 자기 확신 속에서 모녀에겐 그럴듯한 말 없이, 잠깐의 눈물과 지속되는 껴안음 그리고 이를 확인하는 서로의 시선만으로 충분하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귀환
Homecoming
감독
카트린 코르시니Catherine Corsini
출연
아이사투 디알로 사냐Aissatou Diallo Sagna
쉬지 벰바Suzy Bemba
에스더 고후루Esther Gohourou
세드릭 아피에토Cedric Appietto
마리-앙주 제로니미Marie-Ange Geronimi
비르지니 르도엥Virginie Ledoyen
드니 포달리데스Denis Podalydes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10분
공개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