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BI] '더 파이브 데블스' 비이성적으로 작동하는 사랑의 힘
[MUBI] '더 파이브 데블스' 비이성적으로 작동하는 사랑의 힘
  • 이현동
  • 승인 2023.08.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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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미지위', 영민한 작가의 발견"

국적을 불문하고 재능 있는 여성감독의 등장은 남성이 주류였던 판도를 새롭게 만들어 냈다. 최근에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수상한 작품들의 감독을 보면, '쥐스틴 트리에', '쥘리아 뒤쿠르노', '오드리 디완', '클로이 자오', '로라 포이트러스', '카를라 시몬' 등 여성작가가 강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수상 결과를 보고 정치적 올바름이라며, 시대성을 대변하는 결과라 말하는 비평가의 몇몇 논평은 작품을 의미 있게 보는데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수상작이 한 장르로 통섭 되지 않고, 각각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성중심적문화와 산업이 불가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여성감독의 현실에 애석한 측면이 있다. 여전히 남자보다 영화계에서 종사하는 여성들의 숫자는 현저히 적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근거가 된다. 미국에서 2022년 상위 250개의 수익을 올렸던 영화 중 감독, 작가, 제작자, 편집자 및 촬영자 중 여성은 24%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여기에 '남성' 영화제는 없고, '여성' 영화제만 있으며, 스트리밍 사이트 분류하고 있는 '여성감독'이란 카테고리는 이를 방증하고 있다. 아무튼 평론가의 책무란 작품의 동시대성뿐만 아니라 얼마나 작품으로 유효한 요소가 있는지를 평가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면, 단지 숫자의 적고 많음이 결코 기준이 될 수 없다.

 

이 글의 주인공인 여성감독 '레아 미지위'는 자신의 독창성을 개진하고 있는 여성작가 중 한 명이다. 데뷔작부터 이 글에서 다룰 두 번째 작품까지 그녀는 스톡홀름영화제 최우수 촬영상을 비롯하여 제75회 칸영화제에서도 경쟁부문에 오를 정도로 주목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작가다. 특히,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는 그녀는 클레어 드니의 <정오의 별>(2022), 자크 오디아르의 <파리, 13구>(2021), 아르노 데플레솅의 <오 머시!>(2019) 등 굵직한 감독들과 협업한 이제 서른네 살이 된 젊은 작가다. 

 

ⓒ 영화 <아바>(2017)

레아 미지위의 <아바>(2017)와 <더 파이브 데블스>(2022)는 해외에서 꾸준히 주목받았음에도 상대적으로 한국에는 덜 알려졌다. 그녀가 갖고 있는 영화적 특성은 가족주의의 희망을 전망한다는 점에서 '루카스 돈트'와 '션 베이커'의 영화를 닮았고, 인물과 동물이 가진 동질성이나 세계를 은유하는 특성의 활용은 '안드레아 아놀드'를 닮았다. 

<아바>와 <더 파이브 데블스>는 소녀의 성장기를 동일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는 서로 다른 감각과 시제가 마찰하는 영역을 변주하며 전개된다. 전작이 '시각'이었다면 이번 작에선 '후각'을 통해 감각을 활성화한다. 시제로서 분류하자면 시각은 이동을 지시하는 미래 진행형의 형태로 기능하고 후각은 모종의 기억을 상기하는 과거형으로 존재한다. 레아 미지위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후각과 기억의 연관성에 관련하여 모티브로 사용된 대표적 작품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면 맛과 향기와 분위기에 이끌려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점차 성장한다는 이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전작과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아바>에서 13세 사춘기 소녀인 주인공은 야만성을 지닌 소년과 거침없이 성적 결합을 맺는다. 이런 일탈은 다음에 어떤 행위를 교정한다거나 윤리적 고찰보다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더 파이브 데블스>는 과거 회상을 통해 성장 서사에 깊이 집중한다.

<더 파이브 데블스>는 여덟 살 소녀 '비키'(샐리 드라메)가 엄마 조앤(아델 엑사르쇼풀로스)과 줄리아(스왈라 에마티)사이에 숨겨진 관계를 조망하면서 펼쳐지는 드라마다. 영화는 세대간 갈등과 부부 사이의 관계, LGBT, 혼혈 정체성을 동시적으로 다룬다. 가령 비키를 화장실 걸레라고 조롱하는 백인 아이들, 동성애를 혐오하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줄리아가 마을에서 사라진 후 결혼했던 조앤이 지미와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모습, 동료 수영 직원이자 친구인 나딘이 과거 방화로 인해 얼굴에 생긴 흉터는 이 영화는 혼재된 양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다채로운 소재를 균형 있게 조합하기보다 주변부 상황을 통해 인물이 어ᄄᅠᇂ게 성장할 수 있을지를 주목한다.

<더 파이브 데블스>의 가장 큰 분기점은 지미(무스타파 므방그)의 여동생인 줄리아가 등장하면서이다. 연인 관계였던 조앤과 줄리아는 이전의 감정을 잊지 못한 채 있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서로 10년 동안 마주하지 못한 둘은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집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하고, 그 둘과의 미묘한 관계를 포착하는 비키는 둘의 기억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 영화 <더 파이브 데블스>(2022)

미장센의 화학 작용

<더 파이브 데블스>가 전형적인 타임루프 물로 치부되지 않기 위한, 후각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변을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는 '불과 물'의 존재를 사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 영화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시간 탐험자 비키는 매우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다. 어떤 동물이 솔방울을 핥았는지를 구별할 수 있고, 먼 거리에서 나뭇잎을 덮고 있던 엄마 조앤의 냄새도 알아챌 수 있다. 가장 주요한 능력은 냄새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키는 소변과 죽은 까마귀를 재료로 기억을 상기하는 묘약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까마귀는 <아바>에서도 나왔던 검은색 개와 같이 야생과 인공성, 현실과 환상 사이를 연결하는 오브제로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고 두 종류의 세계를 명시한다. 어찌 보면 LGBT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타파하고 싶은 지점이란, 아이라는 순수하고도 보편적인 감정이 반대편에 있는 어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 능력은 과거와 현재를 융합하고, 또한 기억을 갱신해 낸다.

<더 파이브 데블스>의 미장센은 대체로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배열된다. 최근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2022)에서 방을 구성하는 붉은색 색감이 감정을 구동하는 원리임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감정은 색감에 의해 표현된다. 비키의 방은 주로 붉은색으로 표시되고, 조앤의 감정이 폭주하는 순간도 붉은색으로 포착된다.

 

ⓒ 영화 <더 파이브 데블스>(2022)

레아 미지위는 "모든 아기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혼란스럽고 야만적이며 불로 가득 찬 시야를 갖고 있다" 말한 정신분석학자 파스칼 퀴나르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를 "일종의 원시적 특성"이라 언급했다. 이 특성이 가장 잘 발휘되기 위해서 활용된 소재 중 하나는 먼저 부모를 향한 자녀의 '불'같은 애착일 것이고, 부모와 물리적으로 하나였던 시기를 반영하는 '물'일 것이다. 비키와 조앤 사이의 유대가 얼마나 긴밀하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시퀀스는 물에서 이뤄진다. 비키는 수영강사이자 구조대로 활동하는 조앤의 일터인 수영장에서 함께 스트레칭하거나 집 근방에 있는 호수에서 수영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말미에 줄리아가 조앤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장소도 호숫가다. 이는 회귀하는 물의 속성이 서로의 관계를 다시금 열망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줄리아는 죽지 않고 조앤과 마주하는 장면으로 둘의 이야기는 끝난다.

흥미롭게도 조앤을 연기하는 배우 '아델 엑사르쇼폴로스'는 가장 '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영화인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4) 등장한 바 있는 연기자다. 이 캐스팅은 두 영화를 봤던 관객이라면 '물'의 감각을 회상하는 동시에 이번 영화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불'과 같은 사랑은 더욱 극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아바>도 그렇지만, <더 파이브 데블스>는 온전하게 서사를 매듭 짓지 못한다. 그럼에도 비키가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탄탄한 내적 논리는 없다. 또한 시간 여행이라는 초현실주의를 토대로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비이성적으로 작동하는 사랑의 힘을 강력하게 개방한다. <더 파이브 데블스>가 보여주는 시각과 후각, 감각에서 동원되는 에너지는 이성적이라기보다 비이성적이라는 점에서 가장 각인되는 이미지는 사랑을 기억하는 게 아닐까.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더 파이브 데블스
The Five Devils
감독
레아 미지위
Lea Mysius

 

출연
아델 엑사르쇼폴로스
Adele Exarchopoulos
샐리 드라메Sally Drame
스왈라 에마티Swala Emati
무스타파 므방그Moustapha Mbengue
다프네 파타키아Daphne Patakia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3분
공개 MUBI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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