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는 더는 "진행시켜!"를 외치지 않는다
한국영화는 더는 "진행시켜!"를 외치지 않는다
  • 김경수
  • 승인 2023.08.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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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비공식작전> 그리고 <더 문>

요즘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유튜브 채널은 코미디언 권혁수, 곽범, 황제성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경영자들》이다. 배우 이경영이 그간여러 영화에서 연기한 캐릭터를 본떠서 연기하는 부캐릭터(부캐)로 즉석 콩트를 하는 콘텐츠다. 셋이 만든 부캐의 이름은 각자의 성과 이경영을 더한 권경영, 곽경영, 황경영이다. 세 캐릭터는 이경영 특유의 웅얼대는 발음, 몸짓, 표정 등을 모사하지만, 하나도 비슷하지 않다. 이 셋은 즉석에서 아무말대잔치를 주고받으며 이경영이 연기한 캐릭터에서 파생된 인터넷 밈을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내뱉는다. 결과적으로, 이경영을 본뜬 이 세 캐릭터는 이경영이 연기했을 법한 악역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경영 배우는 10년 가까이 한국영화에서 윤리적으로 타락한 언론인이나 정치인, CEO 등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한, 개인이 희생당하거나 국가의 존폐가 걸린 상황에서도 제 잇속을 챙기고자 하는 캐릭터는 이제 한국영화의 클리셰가 됐다. 이 캐릭터는 선한 상대가 어떤 위기를 직면하든지 간에 "진행시켜!"라고 외친다.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는 지겨우리만치 되풀이됐다. 절대적 악을 설정하는 것은 플롯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끌어나가기 편한 장치이기도 해서이다. "진행시켜!"가 탄생한 시기가 정치적 음모론이 과포화되기 시작한 탈-진실 시대와 맞물리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시점이다.

"진행시켜!"는 복잡하게 에둘러 가야 할 사건을 생략하고, 절대적 악에 의해서 모든 사건이 결정된다는 사고에 가깝다. "진행시켜!"는 말 그대로 "서사를 진행시켜!"에 더 가깝다. 제작자의 시선에서 이토록 편한 서사 장치를 택하지 않기는 어렵다. 최근 "진행시켜!"가 담당하는 빠른 서사 진행은 파괴적인 힘을 발산하는 마동석의 주먹으로 대체되었다. 지레짐작하건대 <범죄도시>시리즈가 천만 영화가 되면서부터다.

한국영화 전반이 "진행시켜!"를 중심으로 구성될 정도로 서사 장치로의 중력이 강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국 상업 영화의 클리셰를 조롱하는 양산된 "시나리오 유출" 밈에서 "진행시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가까운, 합성 필수 요소로도 쓰인다. 오죽하면 이경영 배우가 워낙 비스름한 역할로 다작한 나머지 또경영이라는 싫증이 어린 인터넷 밈이 생기기도 했을까. 

이경영식 캐릭터에서 파생된 밈 중 가장 유명한 밈은 <내부자들>(2015)의 반나체의 장필우(이경영)가 성기로 맥주잔에 올려진 소주잔을 탁 쳐서 폭탄주를 제조하는 상황에서 파생되었다. 이때 장필우가 성기를 옆으로 움직이면서 외치는 "영차!"라는 대사를 외친다. 이와 함께 "좋았어!", "진행시켜!", "내 성격 까먹은 모양이네" 등 인터넷 밈도 파생되었다. 《경영자들》의 세 경영이 인터넷 밈을 상황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무턱대고 외쳐대는 상황은 그야말로 어이없다. 이제는 그 클리셰가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화 <더 문> ⓒ CJ ENM

올해 8월에 극장에서 부닥칠 한국의 세 편의 텐트풀 영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진행시켜!"에 관한 논의를 먼저 하는 이유가 있다. 올해 초에 개봉한 텐트풀 영화 <교섭>을 다루는 글(「'유령'vs'교섭' 야심이냐, 안심이냐」)에서 "진행시켜!"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언급했다. 당시 "진행시켜!"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속이 턱 막혔다. 10년 전에나 유행한 "진행시켜!"를 반복하는 것만큼이나 게으른 창작은 없다.  천만 영화의 두 기둥인 "진행시켜!"와 신파가 조롱거리가 된 상황이다. 영화가 콘텐츠와도 난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영화의 서사나 개성 있는 세계관은 나날이 중요해지는 지금, 서사를 편리하게 진행하려는 관성을 버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더욱이 "진행시켜!"가 막 유행했을 2010년대 중후반과는 다른 사회문화적인 분위기 안에서 여전히 그러한 악역이 통용된다는 믿음은 환상이다. 2020년의 악은 부패가 전면으로 드러나는 이전의 악과 다르다. "민중을 개돼지"라고 호명하는 <내부자들>의 악은 이제 없다. 제아무리 선한 인상을 지닌다고 한들, 정치적 업적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들, '사실 악마일 수 있다'는 여러 사건을 경험한 이상, 누가 봐도 심술이 나 있는 얼굴로 "진행시켜!"를 외치는 악역은 고루하다.

이제 이야기할 <밀수>, <비공식작전> 그리고 <더 문>은 "진행시켜!"를 벗어나는 영화의 가능성을 물색한다. 김종수 배우의 발견도 여기에 한몫한다. 세 영화는 천만 영화 법칙의 수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로는 긍정적이다. 여기에 이 영화들이 믿음이 실종된 우리 시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까지도.

 

영화 <밀수> ⓒ NEW

<밀수>, "믿어도 되나요? 당신을"

류승완 감독의 <밀수>는 1970년대 서해안의 도시 군천을 배경으로 해, 불법 밀수에 뒤엉키게 된 해녀 춘자(김혜수)와 엄진숙(염정아)의 서사를 중심으로 한다. 영화는 최헌의 '앵두'라는 노래로 시작된다. 춘자와 엄진숙이 흥얼거리는 "믿어도 되나요? 당신을..."이라는 노래의 후렴 가사는 믿음이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함축한다. 노래가 흐를 즈음에 춘자와 엄진숙을 중심으로 한 해녀 무리가 수산물을 채집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는 해양 공해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서 해녀가 있을 터전이 사라졌다는 설정을 드러내면서도, 후반부의 해양 액션이 어떠한 구도로 펼쳐지는지를 암시한다. 또 춘자와 엄진숙의 호흡, 훗날 악역으로 거듭날 장도리(박정민)의 허술함도 드러내면서 영화의 청사진을 그린다. 여기에 해녀의 수중 군무에 가까운 팀플레이는 나중에야 펼쳐질 케이퍼 무비의 장르 컨벤션을 그대로 압축한다. 마지막에는 수미상관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류승완의<밀수>는 감독의 오랜 공력을 처음부터 드러내는 영화다. 전작<모가디슈>(2021)에 비해 축소된 스케일의 영화이기는 하더라도, 곳곳에 드러나는 깔끔하고 밀도 높은 연출의 힘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 영화가 그간의 류승완 영화와는 다르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상황과 캐릭터를 만화적으로 그리는 류승완의 작법도 그대로다. 그런데 매력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어딘가 헛헛하다는 인상을 준다.

<밀수>를 이야기할 때 흔히들 타란티노의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재키 브라운>(1997)의 구도를 변주해서 그려내는 듯한 영화다. 범죄자의 삶을 택한 춘자, 그녀를 둘러싼 어설픈 남성 범죄자 장도리, 능수능란한 지능형 악역인 이 계장의 대립 구도가 그러하다. 서사 전개와 장 구성은 <펄프 픽션>(1995)의 파편적인 영화 구성을 따른다. 엔딩에서 춘자 일당이 다이아몬드가 든 호주머니를 연 순간에 그 안이 빛나는 연출도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1955)의 엔딩 시퀀스를 오마주한 <펄프 픽션>을 다시 오마주한 것이다. 또한 권 상사와 장도리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유혈 낭자하면서 만화적 액션도 타란티노의 영화를 연상하게끔 한다. 감독이 직접 선곡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액션의 쾌감을 극한으로 길어 올린다. 가이 리치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파편적 구성과 빠른 컷 편집 등도 언급할 만하다. 또 영화의 엔딩은 <죠스>(1975)를 연상하게끔 한다. 액션 키드라 불리는 류승완의 영화는 시대를 풍미했던 과거의 액션 영화를 저만의 방식으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그야말로 국경과 시대를 가리지 않는 류승완은 레퍼런스를 유영하면서 최선의 오락을 구현하려고 한다.

특히, 후반의 수중 액션 씬은 류승완이 이 영화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야심이 드러나기까지 한다. 류승완의 서사는 레퍼런스의 이음매를 마련하고 과잉된 액션의 쾌감을 배가하려는 목적으로 사건 진행을 빠르게 한다. 속마음이 외양으로 곧장 드러나는 만화적인 캐릭터를 설정한 이유도 여기 있다.

 

영화 <밀수> ⓒ NEW

<밀수>의 단점은 이 만화적인 캐릭터가 급발진한다는데 있다. 한마디로 캐릭터가 만화적 능력을 드러내고 사건이 재조립되기까지 과정이 미흡하다. 영화에서 춘자가 이야기하는 "너 나 모르냐?"라는 대사는 그 단점을 선명히 드러낸다. 이는 엄진숙에게 던지는 대사이기도 하면서 관객에게 던지는 대사이기도 하다. 배우 김혜수가 축적한 필모그래피 안에서 그 캐릭터를 해석해달라는 요청으로 다가온 것은 왜일까. 춘자는 <타짜>에서부터 축적된 강하되 팜므파탈로 드러나는 배우 자체의 이미지, 류승완 영화 속 마지막에야 본심을 드러내는 인물이 결합된 캐릭터다. 춘자의 동기 중 반 정도는 서사 안에서 설명된다기보다는 배우 김혜수의 이미지를 알아야만 설명되는 점이 있다. 또한 권 상사를 만나서 작전을 짜기까지의 과정은 김혜수의 이미지에 전반적으로 기댄 전개다. 그러나 중후반에 이르러 춘자의 여러 행동이 모두 엄진숙과의 화해를 위한 행동이라는 듯이 조립되는 전개는 춘자의 행동 전반에 의문을 지니게 한다. 엄진숙과의 우정이 빌드업이 없이 여러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로만 드러나서다. 그러한 동기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서 춘자가 앞으로 생길 사건 중 어디까지 예상하고 행동한 것인지의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사건을 내다보는 이단 헌트나 제임스 본드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서사의 재조립이 어느 정도 아귀가 맞물리지 않는 지점이 있다.

문제는 춘자와 엄진숙 사이의 캐릭터 온도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엄진숙은 춘자와 다르게 만화적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보통 사람에 가깝다.평범하되 복합적인 캐릭터인 엄진숙과 성격이 뒤죽박죽이되 만화적인 캐릭터인 춘자의 화해는 좀 더 복잡해야만 했다. 이 둘의 화해는 류승완의 픽션이 현실과 밀착하는 지점이기도 해서다. 만화적 캐릭터라도 신뢰를 유지할 수 있냐는 질문이 바탕이 되는 가운데에 이 영화는 둘의 접점을 물색하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춘자의 사과를 일방적으로 엄진숙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둘의 우정이 그만큼 깊은지도 의심이 되는 가운데, 팀플레이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야 하는 팀 간의 신뢰 회복은 빠져 있다. 빠른 사건 진행을 위해서 나머지 해녀의 서사를 제거한 탓이다.<밀수>는 이토록 에둘러 가야 하는 길을 거치지 않는다. 원래 감독의 강점이던 남성 캐릭터의 운용이 효과적이었던 데에 비해서 여성 캐릭터 사이의 인과는 걸크러쉬와 임파워링 서사의 느낌적인 느낌 아래서 퉁 쳐진다. 류승완 감독이 종종 드러내는 비루한 밑바닥 인생에 대한 묘사도 그대로 있는 데다가, 액션에서의 재기발랄도 있는데 왜인지 미흡했다.

그런데도 <밀수>의 장점은 이 영화가 만들려는 서스펜스에 있다. 감독의 말마따나 1970년의 서스펜스는 지금의 서스펜스와는 다르다. 핸드폰 등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매체가 없어서, 발화자 사이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속도가 달라서다. 또 정보 수용까지의 오랜 시간이 걸려서다. 류승완은 인물 사이의 정보가 엇갈리게끔 만들고, 서로의 오해로 빚어진 서스펜스를 구축하려고 했을 것이다. 다만, 춘자를 둘러싼 서스펜스에 더 치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계장이라는 개성 있는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이 캐릭터는 앞서 말했던 "진행시켜!"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선과 악을 모호하게 오간다는 점에서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선한 인상을 지닌 이 계장이 악역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이 영화의 진짜 주제가 시작된다. 감독은 장도리와 이 계장 사이의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지 보게끔 만든다. 악과 악 사이의 믿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통해서 선과 선 사이의 믿음을 드러내는 감독 특유의 휴머니티가 드러난다. 거기에 담긴 과장된 낙관에는 의문이 들기야 한다. 더욱이 믿음이라는 테마가 같은 시기 개봉한 <비공식작전>과 <더 문>에도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에서의 온정 어린 믿음이 셋 중에서는 '가장 대중친화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비공식작전> ⓒ 쇼박스

<비공식작전>, 아이러니로 한국영화의 클리셰를 뒤틀다

<비공식작전>은 예기치 못한 작품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직전에는 우려가 가득했다. 이 영화가 개봉 직전만 하더라도 그저 그런 텐트풀 영화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어서다. 심심한 제목부터가 그러했다. 거기에다가 하정우와 주지훈은 <신과 함께>시리즈에서 호흡을 본 적 있어서 기대되는 조합도 아니었다. 소재도 마찬가지로 기대감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 영화는 1986년에 레바논에서 일어난 도재승 서기관의 피랍을 바탕으로 한다. 레바논 테러리스트와 인질 협상 과정에서 전두환 정부가 인질 협상금의 반을 지불하지 않은 사실은 덤이다. 이 영화는 국가에서 파견한 공무원이 아랍에 납치된 인질을 구하러 떠나는 설정을 공유하는 <모가디슈>(2021)와 <교섭>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여러모로 이 영화는 관객의 눈에 잘 띄지는 않는 외양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비공식작전>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흔히들 아는 텐트풀 영화를 따라간다는 핸디캡으로 일부러 설정하고, 그것을 안에서부터 뒤집는 재미가 있다.

<교섭>과 <모가디슈>는 어느 정도 실화에 기대고 있다. 실화를 장르 영화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쟁점과 딜레마를 그대로 안고 가야 했다. 더군다나 두 영화 다 잘 알려진 문제적 사건을 기반으로 했으므로, 그에 마땅한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야 했다. 두 영화는 장르 영화로의 완성도는 물론, 정치 드라마로의 완성도까지 높아야 하는 제약 아래서 제작된 셈이다. 두 영화가 양당 체제로 분화된 한국의 정치 지형도가 그러하듯이 신념 체계가 다른 두 인간 사이의 믿음을 주제로 삼은 것도 그러하다.

<비공식작전>은 정치 드라마로의 제약을 영리한 작법으로 벗어버린다. 이 영화가 실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애초에 도재승 서기관이 1년 9개월 만에 아랍에서 귀환한 사건을 뼈대로, 그 과정의 공백을 메우는 데에서 시작한 영화다. 도재승 서기관은 영화 전체에서 겨우 10분 정도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만 등장하고, 나머지는 가상의 캐릭터가 나온다. 영화의 두 주인공 민준(하정우)와 판수(주지훈)는 가상의 캐릭터다.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영화의 제목도 이 점을 생각해볼 때 이해할 만한 것이다. 둘의 여정이 공식으로 적힌 역사가 아니어서다. 이 영화는 정치적 논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장르적 쾌감에 치중하려고 한다. 또 한편으로 한국영화가 서서히 태국이나 중동 등 해외 로케이션을 바탕으로 하면서 생기는 타 문화에 대한 대상화도 빗겨나가려고 한다. 이 영화는 납치가 연달아 생기면서 일이 꼬이는 벤 에플렉의 <아르고>(2012)를 따라가려고 한다. 동시에 전두환 시기라는 것을 드러내는 여러 장치를 심어두어서 관객에게 이를 각인시켜서 시대를 이탈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교섭>과 <모가디슈>가 전문가의 협상을 중심으로 한다면, <비공식작전>은 일반인에 가까운 두 주인공을 설정한다. 군대 PX병으로 근무한 데다가 평범한 30대 외교관 민준과 사업이 망한 뒤에 세계 곳곳을 방랑하는 판수는 어설픈 고강도의 액션을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은 전문적이지도 않은 데다가 정체도 모르는 상대방을 믿어야만 하냐는 영화의 주제로 이어진다. 상호 간의 신뢰가 사라져 버린 레바논은 그야말로 지금의 한국에 빗댈 수 있는 아귀지옥이다. 김성훈 감독은 거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에 대한 허물없는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는 주제의식을 관철한다. <교섭>과 <모가디슈>가 이해관계에 기반하는 공공적인 신뢰인 외교를 기반으로 사적인 신뢰를 이야기하는 데에 비해서 <비공식작전>은 반대다. <비공식작전>은 국가 시스템이 마비될 때의 개인의 태도에 초점을 두며, 사적인 신뢰로부터 공적인 신뢰로 나아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애국심에 대한 신파적 감정을 배제한 것은 강점이다. 이 영화는 어느 정도 관객을 설득한다.

 

영화 <비공식작전> ⓒ 쇼박스

<비공식작전>의 강점은 아이러니다. 김성훈 감독은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가되 그 안에서 아이러니한 유머를 통해서 텐트풀 영화에서도 제 개성을 드러낸다. 앞서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와 <킹덤>에서 폐쇄된 공간의 제약을 바탕으로 하는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장기를 선보인 적 있다. 감독의 장기가 거대 로케이션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대규모 액션 씬에서 감독의 장기가 드러날까 싶었다. 몹씬 등 대규모 액션을 연출한다기보다는 둘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고, 둘이 폐쇄된 공간에 있을 때마다 액션을 만든다. 와이어 액션이라든지 통로 안에서 차가 막힌다든지 하는 액션은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의 영향이 뚜렷하다. 미세한 디테일을 통해서 액션을 전개하기에 액션이 시원하다기보다 섬세하다는 감흥을 만든다. 일반인에 가까운 두 주인공의 액션은 코믹하면서도 사뭇 진지한 톤으로 보이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영화 전반에 흐른다. 진지해야 하는 순간에 피식거리는 웃음이 나오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설정은 바로 안기부 부장과 외교부 부장의 대립이다. 외교부 부장(김종수) 캐릭터는 헌신적인 캐릭터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올바른 관료에 가깝다. 반면 안기부 부장은 말 그대로 "진행시켜!"가 어울리는 캐릭터지만 감독은 전형적 캐릭터를 뒤튼다. <타짜>(2006)에서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 배우의 캐스팅이 그러하다. 김응수 배우는 최근에야 인터넷 밈으로 주목받으며, "묻고 떠블로 가!"라든지,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등 깡패 이미지이되 웃긴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안기부 부장을 일부러 김응수 배우로 캐스팅한 선택은 영화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비공식작전>은 한국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되 그것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메타-코미디로도 유효하다. 다른 한편으로 2010년대처럼 절대악으로 상정된 부정부패에 찌든 고위층 캐릭터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영화 <더 문> ⓒ CJ ENM

<더 문>, 무조건적인 선의에 기대어...

김용화 감독의<더 문>의 흥행 실패는 예정된 셈이었다. 예고편이 공개될 때부터 할리우드의 여러 우주 영화를 레퍼런스로 한 듯한 이미지로 인해서 진부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다. 얼핏 보아도 <그래비티>(2013), <애드 아스트라>(2019), <마션>(2015) 등의 영화가 보인다. <아마겟돈>(1998)과 같은 90년대 재난 블록버스터까지 익히 봐온 이미지도 있다. 또한 한국 최초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다루려는 야심으로 제작된 조성희의 <승리호>(2021)의 실패도 관객의 외면을 불렀다.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의 신파가 이제는 진부한 것이 된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여러모로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0에 가까운 편이었다. 그러나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더 문>은 작년의 텐트풀 영화인<비상선언>(2022)과 비슷하다. 두 영화는 장단점을 공유하고 있다. 우선<비상선언>의 스릴이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듯이, <더 문>의 스펙터클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버금갈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두 영화는 비주얼로는 장인의 경지에 우뚝 선 두 감독의 역량을 드러낸다. <더 문>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모방했다는 인상이 있어도 기술력만으로는 부정할 수가 없다. 특히 달 탐사라든지 쏟아지는 유성우 등은 <D-War>(2008)에서 드러나는 할리우드에 느끼는 콤플렉스를 달래기에는 충분한 퀄리티를 지니고 있다. <더 문>의 CG가 어색한 점이 있더라도 이는 장점으로 볼 만한 지점이 충분히 있다.

다만, <비상선언>과 <더 문>은 단점도 공유한다. 바로 세월호 참사 이후의 청년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시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더 문>의 서사는 설정으로만 볼 때 흔한 천만 영화 공식에 따르는 듯하다. <더 문>은 다큐멘터리 풍의 도입부로 시작한다.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 최초 달 착륙 우주선 우리호를 중심으로 한다. 우리호가 발사되기 전 한국은 한 차례 우주선 나래호의 발사에 실패한 적 있고, 이를 만회하려 우리호를 달에 쏘아올린다. 우리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세 명. 셋 중 UDT 출신의 황선우(도경수)만 살아남고, 국가는 황선우를 구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영화는 황선우의 상황을 따라가지 않는다. 도리어 황선우를 구하려는 우주선을 설계한 재국(설경구), 윤문영(김희애) 그리고 우주센터를 중심으로 그린다. 황선우에게는 태양 흑점 폭발부터 시작해 유성우까지 온갖 재난이 닥치고, 재국은 어떤 수로든 황선우가 귀국할 수 있도록 애쓴다.

<더 문>의 황선우와 재국의 거리는 마치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등을 직면한 청년과 이를 화면 너머로 볼 수밖에 없는 국민의 거리와 유사하다. 이 영화는 달로 구하러 간다는 무리수를 택하는 대신에 둘 사이의 거리감을 관객이 체험하게끔 한다. <비상선언>이 테러리스트로 인해서 전염병이 퍼지는 비행기 안과 통제 센터를 화면으로 매개하듯이 말이다. 중간에 툭툭 끊기는 통신으로 인해서 긴장을 자아내는 방식도 비슷하다. 다만, <더 문>은 <비상선언>의 문제적인 재현을 덜어낸다. <비상선언>에서는 국민이 비행기에 탑승한 이들의 귀환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을 재현하고 파시즘에 기반한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들춘다. 반면에 <더 문>은 외교의 문제만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정치적 문제를 제거한다. 거기에 남는 것은 청년을 구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사명과 거기서 비롯하는 신파적인 감정이다. <더 문>의 강점은 조연 강한별(홍승희) 등 캐릭터의 매력이 있기는 하다는 것이다. 흔히들 MZ세대라고 대상화되는 세대적인 감수성이 황선우를 구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더 문>의 무조건적인 선의는 동화의 논리에 가깝다.

 

영화 <더 문> ⓒ CJ ENM

<더 문>이 선의를 작동하는 방식에 의문이 든다. 황선우를 둘러싼 위기 상황을 계속 자아내고, 거기에 따르는 동정심을 관객에게 유발하기 때문이다. 황선우에게 위기가 닥칠수록 그를 구해야 하는 당위가 생기므로, 영화는 계속 황선우를 학대하다시피 한다. 또한 황선우의 학대가 스펙터클로 전개된다는 것은 이 영화에 담긴 선의에 의심을 더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 캐릭터의 일희일비는 황선우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해서 결정된다. 황선우와 우주센터 사이의 거리가 마치 게임 캐릭터와 플레이어 사이의 거리로도 느껴지는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황선우의 위기를 게임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더 문>은 쟁점에 다다를 즈음에 다른 서사로 회피한다. 바로 황선우의 서사가 드러나면서부터다. 영화는 국가적 재난에 대한 서사가 아니라 아버지-되기의 서사로 전환된다. 황선우는 아버지가 설계가 잘못된 우주선을 우주로 보냈다는 죄의식을 드러내면서부터 통신을 두절하고 죽기를 선택한다. 이는 세월호에 대한 부모 세대의 죄의식을 응축하기도 한다. 더불어 재국도 그 죄의식에 시달린다는 서사로 확장한다. 영화는 죄의식을 선우를 거쳐서 속죄하려하며, 영화 속의 어른은 (심지어 장관까지) 모두 선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진행시켜!"가 있을 틈이 없다. 영화는 황선우와 재국의 사이만 그려낼 뿐, 사회 전반을 일부러 그려내지 않아서 마땅히 마주쳐야 할 정치적인 쟁점을 피한다. 달 착륙선에서 황선우의 감정은 복잡하기보다는 기성세대에 대한 원망으로만 뭉뚱그려진다. 아울러 기성세대도 이해관계에 괴로워하고, 선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가 자기정당화와 같다는 의문도 생긴다. <더 문>은 <밀수>와 <비공식작전>과 같이 믿음의 문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되 그 믿음의 구체성을 질문하게끔 한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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