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영화로 세계 속으로] 호주: 범죄자가 양성되는 이유
[박정수의 영화로 세계 속으로] 호주: 범죄자가 양성되는 이유
  • 박정수
  • 승인 2023.08.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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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과 어보리진 영화, 두 축에 관하여"

이 글에서 소개할 '호주영화'는 지난번에 소개한 '영국영화'(「영국: "우리는 단지 국적만 같을 뿐!"」)의 연장선에 있다. 영국이 18세기 후반부터 개척한 대륙이 호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앞서 호주에는 '어보리진'(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에 따라 호주영화는 '백인 영화'와 '어보리진 영화'라는 두 축으로 나뉜다.

주로 백인 영화는 '범죄영화'에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며, 어보리진 영화는 외부(백인)의 침략으로부터 세계가 어떻게 교란하고 망가뜨렸는지 분석한다. 특히, 백인 영화의 경우에는 남성 감독과 여성 감독의 영화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전자가 남성 범죄자의 기원을 탐구한다면, 후자는 남성 범죄자에 의해서 피해자로 전락한 여성의 증언을 채굴한다.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눠볼 수 있는 호주영화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특징은 '법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사람들'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영화 <켈리 갱> ⓒ 오드

가장 먼저 살펴볼 백인 영화에서, 특히 범죄영화다. 공통되게 '범죄자'에 주목하는 범죄 영화는 자연스럽게 호주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호주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영국 1세대는 죄수들이었다. 물론, 그 당시 죄수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흉악스럽고 잔혹한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대 사법 제도의 억울하고도 무고한 피해자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호주의 감독들은 이들의 후손으로, 개인을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부조리한 사법 제도'나 '구조'에 주목한다. 대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감독은 '저스틴 커젤'이다.

커젤은 <맥베스>(2015)나 <어쌔신 크리드>(2016) 등 문학, 게임을 영상화한 작업을 제외하곤 항상 '실화'에서 소재를 찾았다. <스노우타운>(2011)은 '스노우 타운 살인사건', <니트람>(2021)은 '포트 아서 학살'이 기반이고, <켈리 갱>(2019)은 아일랜드인 차별을 합법화한 호주 사법 체계에 반기를 든 아일랜드계 호주인 '네드 켈리'의 전기 영화다. 커젤은 소재의 자극성에만 매몰되지 않고 "왜 그들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국가의 무책임함'이라 답하며, 구조를 비판한다. 

가령 <스노우타운>과 <니트람> 모두 다 국가의 도움이 절실한 취약 계층이 주인공이다. <스노우타운>에서 당국은 아이들의 곁에서 '아동 성범죄자'를 분리해줘야 하고, <니트람>에서는 행동 장애 및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마틴 브라이언트'에게 적절한 복지와 '총기 제재'를 가해야 했다. 하지만 국가는 사회 정의 및 복지, 제도의 허점을 모른 체 한다. 국가가 손을 놔버린 '사각지대'에서 범죄자들이 양성된다. 교육은 부재하고 불법 총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에서 마틴 브라이언트는 포트 아서 학살을 일으켰고,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 아동 성범죄자를 민간이 단죄하겠다는 미명 하에 허용된 무력은 이내 곧 '테러'로 뒤바뀌어 사회는 무법천지가 된다.

 

ⓒ 영화 <어큐트 미스포춘>(2018)

이렇듯 구조 내에서 폭력이 '누구나 다 하는 것', '따라 해도 괜찮은 것'으로 인식되면서, 호주 범죄영화에서는 유독 '모방 범죄'가 줄기차게 이어진다. 호주의 또 다른 영화감독으로는 작년 떠들썩한 파문을 일으킨 <블론드>(2022)를 연출한 '앤드류 도미닉', 작년 하반기 넷플릭스에 공개된 <더 스트레인저>(2022)를 연출한 '토마스 M. 라이트'가 있다. 이들의 작업에서 모방 범죄가 겹친다.

라이트는 커젤처럼 호주에서 실존했던 화가이자 범죄자 '아담 쿨렌'의 전기를 <어큐트 미스포춘>(2018)으로 영상화한다. <더 스트레인저> 또한 실화인 '다니엘 모콤베 살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고, 두 작품 모두 범죄자의 발자취를 누군가가 뒤따라가며 모방한다. <어큐트 미스포춘>에서는 '사회 초년생'이자 사회에 불만을 품은 '인셀'이 강하고 당당해 보이는 범죄자를 모방하고, <더 스트레인저>에서는 용의자를 추적하는 경찰의 무의식이 범죄자와 동기화된다.

도미닉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7)에서도 '비겁한' 로버트 포드는 사회적으로 선망 받는 갱 제시 제임스를 존경하며 따라한다. 이후 상세히 설명한 롤프 드 히어의 <배드 보이 버비>(1994)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학대에 의해 정신 연령이 유아기에 머물러있는 버비는 상대방의 행동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데, 그의 행동에 반영되는 것이 호주의 민낯이다. 버비의 눈에 일반 남성과 경찰은 구분되지 않는다. 일반 남성들은 폭력적인 범죄자이고, 경찰 또한 폭력을 오남용하여 법을 유린하는 불한당이다. 즉 '롤모델'이 필요한 청소년 및 사회초년생이 구조에 만연한 범죄자를 선망함에 범죄는 악순환된다.

 

ⓒ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7)

호주영화 속 인물들은 왜 범죄를 선망하게 되는가? 도미닉의 <차퍼>(2000)와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타인의 눈에 비칠 '자신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소위 '연예인'과 같은 범죄자들이 등장한다. 당장 작년 악평으로 떠들썩하던 <블론드>에서 건질만했던 시퀀스는, 마릴린 먼로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이미지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강하다.' 인간은 위엄 넘치는 사법 제도에 타협하고 순응하는 측면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도미닉의 작품에서 범죄자들은 법을 위풍당당하게 무시하는 모습, 그 누구도 감히 꿇어앉힐 수 없을 것만 같은 강인한 모습을 전시한다.

그 여파를 누군가는 비판하는 한편, 또 다른 누군가는 라이트의 <어큐트 미스포춘>, 커젤의 <니트람>으로 이어져 선망한다. 또 다른 이미지는 '정의로움'이다. 커젤의 <켈리 갱>에서 도드라지는 특징으로, 아일랜드계 켈리는 아일랜드인을 차별하는 부조리한 법에 저항하며, 범죄로써 정의를 되찾았다. 도미닉이 미국에서 연출한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도 유사하다. 즉 믿을 수 없는 법이 '정의로운 범죄자'를 기어코 탄생시키며, 사회에서 억압을 느끼는 이들은 자연스레 동조한다. 이렇게 백인 남성들은 비교적 당당하게 범죄자가 된다. 몇몇 '모방꾼'들이 소수자·약자로서 사회에서 억압을 당한다 한들, 커젤의 <스노우타운>이나 도미닉의 <차퍼>처럼 남성인 범죄자들은 '가부장제'의 비호를 받으며 사회를 당당하게 누비고 다닌다. 반면에 해당 법에 의해서 강제로 '피해자'가 되거나 '무고한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여성'과 '어보리진'이다. 

 

ⓒ 영화 <피아노>(1993)
영화 <나이팅게일>(2018) ⓒ 제이앤씨미디어 그룹

호주는 영국 영화나 독일-오스트리아 영화계처럼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이 두텁지는 않지만, 영화사에서 꽤 중요하게 다뤄질만한 굵직한 여성 시네아스트들이 혜성처럼 등장하곤 했다. 칸 영화제 최초로 여성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제인 캠피온'(그녀는 뉴질랜드 국적이나, 활동 무대는 주로 호주였다)부터, 호러나 서부극 등 아주 거칠어서 소위 남성적이라 일컬어지는 장르들을 척척 연출하는 '제니퍼 켄트'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장편 데뷔작 <베이비티스>로 76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섀넌 머티'도 기대를 받고 있다.

캠피온이 '드라마'를 연출한다면, 켄트는 '우락부락한 장르물'을 선호하기에 양자의 색채는 확연히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남성에 의해서 피해자'로 전락하는 여성의 삶을 증언하고, 이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당돌하고도 주체적인 여성'으로의 도약을 영화로써 꿈꾼다는 점이다. 캠피온은 가부장제에 속박된 여성이 느끼는 '갑갑함'을 표현하고, 켄트는 남성에 의해 겁탈당한 여성의 '울분', 가부장제에서 남편 잃은 아내의 '공포'를 재현한다.

캠피온과 켄트의 영화에서 살아남아 여성을 괴롭히는 범죄자 남성, 이를 비호하는 가부장제는 여성의 눈에 타파해야 할 '악마'로 비친다. 영화에서 남성(가부장제)은 여성을 피해자로 전락시키고, 심지어 자신들의 악행을 반성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성차별을 합리화하고 강화하는 구조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범죄자'가 되려고 하거나(제니퍼 켄트의 <나이팅 게일>), 가부장제의 정상성에서 이탈한 '광인'이 된다. 여성의 광기는 캠피온이 주로 탐구하는데, 현실에서 불가능한 여성의 자유를 '예술'로써 이탈하거나, 의식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출구를 찾아 무의식에서 간접적인 자유를 들이킨다.

 

ⓒ <스위트 컨트리>(2017)

백인 여성의 반항이 비교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과 달리, 어보리진 남성이 백인 남성의 법을 전복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젠더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호주 내 인종의 위계를 느낄 수 있는데, 어보리진 영화는 '롤프 드 히어'와 '워윅 쏜톤'이 선도한다.

'욜랭구족'을 탐구하는 롤프 드 히어, '카이테티예족' 출신으로서 전통을 보존하는 워윅 쏜톤은 잉글랜드인 침략 이전 호주에 고유한 법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법은 오늘날 호주의 법처럼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히어의 영화에선 욜랭구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들과 대척 관계에 서서 다른 언어와 법을 따르는 '비니족' 또한 등장한다. 처음에 두 부족은 다툰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언어를 차츰 이해하고 수교하며 두 개의 언어와 법, 더 나아가 어보리진 집단의 개수만큼 존재하는 무수한 법과 언어를 존중한다. 이는 네덜란드에서 호주로 이민을 와서, 익숙한 백인 집단 대신 어보리진의 고유한 문화와 법을 배운 히어의 개인적 경험을 투영한 것이다. 고유한 법과 언어를 사용하는 어보리진은 '길잡이'로 묘사된다. 그래서 어보리진 영화는 '로드 무비'가 많다. 광활한 호주의 땅 중 다수는 위험천만한 오지요 황무지다. 어보리진은 천신만고의 경험 끝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을 밝혀냈고, 이를 언어와 법에 녹여냈다. 백인 또한 어보리진 없이는 호주에서 발을 쉽사리 뗄 수 없고, 길잡이들을 고용해야지만 호기롭게 개척을 시작한다.

하지만 백인은 호주의 풍토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영국의 법을 막무가내로 들이민다. 영국 법과 어보리진의 생활사는 충돌하고, 잉글랜드 침략 이전 지극히 '합법'이었던 어보리진의 법이 영국 법에 의해 '불법'이 된다. 영국 법이 아니라 어보리진 법을 따르는 어보리진은 영국인에 의해 범죄자로 전락한다. 그래서 어보리진 영화 속 어보리진은 교도소, 변두리, 오지 등으로 밀려나 있는 경우가 잦고, 쏜톤의 <스위트 컨트리>(2017)에서 등장하는 어보리진처럼 백인의 법에 순응하여 '변절자'가 되기도 한다.

 

ⓒ 영화 <더 뉴 보이>(2023)

하지만 히어와 쏜톤은 어보리진이 백인에게 저항하는 모습을 항상 부각하는데, 이를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도 반영한다. 히어는 어보리진의 설화와 회화를 적극 인서트하고, 쏜톤은 어보리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다큐멘터리와 흡사한 푸티지를 교차하여 그들의 진실을 보존한다. 또 그간 백인 남성이 주도한 서부극을 제니퍼 켄트가 여성과 어보리진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시 쓴 <나이팅게일>처럼, 쏜톤 또한 어보리진의 시점에서 전개한 서부극 <스위트 컨트리>로 백인 남성의 편향된 서부극을 수정한다. 다만, 그들은 현재 어쩔 수 없이 백인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화해'를 논한다. 히어의 경우 호주의 영국인들이 길잡이인 어보리진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척박한 호주 땅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백인이 어보리진에게 사과를 건네야 한다고 본다. 또 히어와 쏜톤, 모두 다 어보리진 사회의 '가부장제'를 지적하는데, 어보리진 또한 백인 문명과 화해하여 어보리진 문화가 가진 여성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살펴본 호주영화 중에서 올해와 내년엔 새로운 어보리진 영화를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롤프 드 히어의 <더 서바이벌 오브 카인드니스>가 73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워윅 쏜톤의 <더 뉴 보이>가 76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서 관객들과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

[글 박정수 영화평론가, green1022@ccoart.com]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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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현실과 차별화된 고유하고도 독립적인 차원입니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타 예술 매체와 구분되는 고유한 시각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만의, 오직 영화만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영화는 현실에서 비롯되고, 인간에게 이바지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예술, 인간-영화를 이어내는 교두보와 같은 글을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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