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나와 나의 삶을 책임지는 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나와 나의 삶을 책임지는 일
  • 변해빈
  • 승인 2023.07.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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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아졌지만 여전한 김희정의 영화"
ⓒ 디스테이션

김희정의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보는 이에게 스토리가 불명확하고 느슨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감독의 신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김애란의 단편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각색한, 그의 영화 중 처음으로 원작을 기반한 작품으로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다. 영화에 대한 반응을 보니 원작에 대한 언급이 대다수인 것도 사실이다. 엔딩을 포함, 크게 세 지점이 변용되었고 서사적인 구성과 전개에 있어서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원작을 터무니없이 훼손하지 않으면서 감독의 장편 영화들더러 '단편 소설 같다'라던 만듦새에 대한 불평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다음이다. 각색된 세 지점에는 그간 김희정 영화의 단점으로 언급되던 요소들이 여전히 겹쳐 있다. 무언가를 보충해 확장했다기보다 정확하게는 그의 기존 용법들로 교체가 이루어졌다. 작품 외적인 요소에 의한 착시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원작과 다르게 취한 요소들을 통해서 그것들이 더 이상 김희정 영화의 단점이 아니라 특징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반응의 이유를 알고 싶다.

 

미스터리가 사라지고 상투로 메워지는

김희정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단편적일 것 같아서' 소설에 한 줄 정도 언급된 인물(해수)이 필요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상 원작에서 잘 보이지 않던 지용(김정철)과 지은(정민주)의 미래에 관해서도 포커스가 주어졌고, 영화는 주인공 명지(박하선)을 비롯해 총 세 인물의 세계를 교차편집하는 구성이 됐다. 우선 좀 일차원적인 물음을 던지자면, 명지의 내면을 더 펼칠 수도 있지는 않았을까. 명지의 남편 도경(전석호)은 물에 빠진 자기 반 학생 지용을 구하려다 함께 빠져나오지 못했다.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고 위험으로 뛰어든 남편이 원망스럽기만, 한 명지의 마음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수도 있었다. 대학 동창 현석(김남희)에게 남편과 '헤어졌다'라고만 뭉뚱그려서 말하는 상황도 흥미롭다. 그런데 김희정은 한 인물에 집중하는 깊이감보단, 인물의 늘어난 수만큼 시선의 폭을 넓히는 쪽을 택했다. 이로써 주제 의식으로의 유입은 수월해졌다. 캐릭터가 지닌 복잡성 또한 얌전해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각자 다른 애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개별성 위에 올려진 캐릭터들이 이상하리만치 상투를 머금게 되었다. 인물의 의중을 알 수 없고 시종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유지해온 김희정의 세계에서 상투를 택하는 접근은 전에 없었다. 그런데 미스터리가 사라지며 이야기는 맑고 캐릭터는 따뜻하지만, 대신 주제의식에 개연적 흐름을 맡겨버리면서 관념에 붙잡힌 영화가 됐다. 낯설지만 분명 그녀의 세계들과 교감하고 있는 김희정의 다섯 번째 영화는 어느 지점에 놓이게 된 걸까.

 

ⓒ 디스테이션

명지 외의 인물들의 세계가 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관점의 분배보다 그만큼 명지의 세계가 납작해졌다는 게 더 눈에 띈다. 도경은 현재의 명지가 회상하는 과거의 인물로만 존재하는데, 여러 번 등장하는 회상 장면들은 '현재를 덮치는 과거'로 기능한다기보다 이미 '완결된 과거' 같다. 그녀는 극 마지막에서야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겨우 정립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이상하게도 도경은 극 속에서 이미 과거적 존재로 밀려난 인물처럼 보인다. 극 내부에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원작의 상징물들은 그 상징물에 내포된 삶의 궤적이 펼쳐지지 못하고 단지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매개적 장치로 단순화되면서 특정 장면 안을 채우는 역할만 수행한다. 모서리 가드와 아이스크림 등 남편과의 생활을 매개하는 무언가를 마주하면 그에 해당하는 과거의 한 장면이 틈입되는 구성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그 반복이 의도이든 아니든, 두 사람의 관계는 회상 구조의 형식 안에서 흔하고 단순한 은유로 굳어버린다.

여기에 여러 인물을 교차편집하는 구성까지 더해지면서 전반적으로 파편성을 띠는 이 영화의 장면들은 하나의 흐름을 지닌 스토리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느슨하게 놓아버린 것들이 많다. 예컨대 남편은 시큰둥하지만 명지는 좋아하는 시어머니의 음식. 남편은 이른 나이에 엄마 없는 삶을 살아온 명지가 근원적인 그리움을 지녔기 때문일거라고 말한다. 극의 중반부에 위치한 이 장면은 오프닝에서 음식을 만들던 그녀가 (소설의 표현을 차용하면) '잠시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자마자 남편의 부고 전화를 받는 상황, 다시 말하면 그것이 일순간의 기분에 그치며 미래가 무산되는 슬픔과 연결되는 서사적 흐름이지만, 각 장면은 뚝뚝 끊겨버리고 점층적으로 연결되는 힘이 약하다. 이는 김희정의 영화에서 반복되어 온 특징 중 하나다.

김희정은 특정 장면 안, 그 상황에 놓여진 인물이 느끼는 당장의 감정을 부각시키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킨다. 장면과 장면이 쌓이며 변화되는 극 전체의 '흐름'이 아니라 각 장면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쪽이다.

따라서 회상이라는 장면의 역할이 내용물에 해당하는 캐릭터의 삶의 지층을 덮쳐버리게 된다. 장례를 치른 후 반찬을 보내준 시어머니와 통화하던 장면에서 "살 안 빠졌어요" 하는 명지의 호응만 남겨둔다. 이는 극의 마지막 죽은 동생이 "밥 좀 챙겨 먹으라"던 꿈을 꾼 지은(정민주)의 편지 속 구절과 하나의 대화처럼 연결되었을 때, 말의 의미가 확장된다. 하지만 김희정은 '끼니 챙기라'고 말했을 시어머니의 액션 즉 극 전체에서 겹쳐보이는 대사, 행동, 장면을 강박적으로 제거해 반만 보여준다. 감독은 지금의 그 장면 안에서 요구되는 응집력을 극 속 어딘가의 다른 장면의 응집력을 끌어와서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 번 보여줬으니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격차가 벌어진 두 장면의 간격이 벌어질 대로 벌어짐으로 인해서 관객들은 이야기가 중간 단계를 뛰어넘었다고 느끼고 그 틈을 주제의식이 지닌 상투로 메워가게 된다.

언급했듯 무언가를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은 김희정의 세계에선 돌출적이었다. 그는 영화의 거의 마지막까지 중심적인 이야기 외곽에서 교묘하게 헛돌면서 미스터리를 형성해왔다. 꿈과 기억, 실재와 환상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프랑스여자>(2020)는 두말할 것도 없고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2)은 극의 절반까지 도통 인물들 사이에 형성된 모종의 불안감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다. 분명 서사상의 단계를 뛰어넘었다는 낌새가 있는데, 우리는 그걸 알 수 없다는 사실로 섬뜩함을 느끼고 인물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기 때문에 슬프다. 김희정은 장면과 장면, 쇼트와 쇼트, 파편화되고 뒤섞인 기억의 배열을, 특정 인물의 감정을 가지고 연결 짓는데 정작 인물들은 자기감정을 다른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심지어 그 상태를 표출하는 방면으로 중심인물이 영화 안에서 돌연 나타나거나 사라지곤 해서, 장면이 성급히 마무리된다거나 전후반부 극의 무게감이 불균형하게 기울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 특징이 가장 극심하게 드러나는 건 <설행_눈길을 걷다>(2016)이다. 엔딩 시퀀스에서 죄의식을 직면하는 행위로써 미스터리의 기저에 깔린 과거(기억)가 떠오르며 의문을 해소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특정 장면 안에서만 작동하는 감정을 통해 사건의 인과관계 전체를 봉합하려는 쪽이다. 이로 인해 관객은 영화 속 그 많은 장치나 서사적인 의문을, 감정선으로 일일이 연결 짓는 작업을 부여받게 된다.

감정은 아무리 투명해도 사실보다 객관적이지는 않다. 보는 이가 현실에서 이해하는 감정의 폭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정도와 강도가 달라진다. 더군다나 그의 영화에서 감정은 어떤 죽음에서 기인하는데, 죽음(사건) 자체가 과도하게 미스터리하고 매끄럽지 않다. 그러므로 김희정은 그런 감정선에 영화가 세세하게 설명을 덧붙이는 시도는 오히려 그 감정선을 해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에게 삶은 예기치 않은 슬픔과 불운을 직접 견뎌내는 것이지 세상의 상투로 대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개인의 책임을 경유하지 않는 거리감

김희정의 영화는 한 명의 인물이 지닌 디테일 대신, 하나의 사건에 연루된 여러 관점이 공존하는 세계다. 한동안 영화는 관점들을 통해 동일한 사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오해와 오류를 기입시킨다. 교집합을 이루지 못하거나 그럴 수 없는 인물들의 관점이 그대로 널려간다.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의 소라(박지윤)는 성인이 되어 만난 선주(박진희)가 자신과 전혀 다른 기억을 지녔다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그런데 그건 소라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17년 전 죽은, 또 다른 친구 여은(김보라)을 포함해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다. 과거에 대한 제 기억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여자>에서 계속해서 어긋나는 인물들의 대화도 그렇고, 중독증과 예지력이라는 비현실감이 필요한 <설행_눈길을 걷다>의 인물들도 자기가 지닌 기억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다소 뜬금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인물이 투입되면서 인물이 자기 주체에 대해 가지는 불신의 골을 깊어지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게 아니라 '나'를 불신해서 다른 이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우연을 빙자한 필연적 이유로 만나고 재회하면서 물리적으로 (재)접촉한다.

 

ⓒ 디스테이션
ⓒ 디스테이션

그러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같은 사건을 겪은 세 인물의 관점을 동등하게 교차편집하는 구성을 택하되, 인물들이 물리적으로 접촉하진 않는다. 명지는 해수를 통해 지은이 쓴 편지 한 통을 전달받지만 그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해수는 지용과 지은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개자이지만, 그의 존재로 확실해지는 또 하나는 인물들 사이 유지되는 적정 거리감이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지 서로에게 과거(기억)를 물어 따지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김희정의 전작들과 다른 결을 가진 영화로 느껴진다면, 죽음이 지니는 의문이 사라져서다. 소설은 사촌 언니의 초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영화는 명지가 부고 연락을 받는 장면으로 시간 순서를 재배치하면서 불필요한 의문을 제거했다. 인물들이 죽음에 연계된 사건 자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축도 달라졌다. 감독은 줄곧 타인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도의적인 죄책감, 또는 '내'가 (상징적으로) 죽는 경험에서 오는 윤리의 문제를 건드려왔기 때문이다. 만약 세 인물이 물리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면 그들은 죽음을 중심으로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정립해야만 했을 터, 누가 더 복합적인 입장인가에 따라서 애도에 윤리적인 문제가 결부되기 쉬웠을지 모른다. 남편이 물이 빠진 학생을 '잡은 손'과 그녀와의 미래를 '잡지 않은 손'이 바뀌었더라면 어땠을지, 당위로서의 윤리 앞에서 취약해지는 인간의 문제가 크게 드러났을 것이다. 영화로 오면서 존재감이 약해진, 남편을 원망스러워하는 명지의 마음은 비윤리적인 행위이며 그녀가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비윤리적 가정이다.

김희정이 동등하게 붙잡은 건 '손을 잡아준 마음' 앞에서 그저 눈물만 날 뿐인 반대편(지은)의 관점이다. 타인의 죽음과 슬픔에 대해 불필요하게 한 개인이 책임지는 일의 무게를 없앤 셈이다. 이 시도로 하여금 나는 김희정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던 죽음-추모-공간 이미지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됐다. 실제 장소를 극의 공간으로 설정하되 실제 사건과의 거리감을 좀처럼 좁히지 않던, 따라서 상징에 그치는 느슨한 재현에 불과하다는 지적.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의 성수대교(성수대교 붕괴 사고), <프랑스여자>의 광화문(세월호 참사)과 프랑스(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광주(광주 5.18 민주화 운동)와 폴란드 바르샤바(바르샤바 봉기)는 사회적인 재난과 죽음의 장소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인물들은 직접적으로 해당 장소에서 희생된 존재거나 외려 한 개인이 죄책감을 가지는 상황을 경유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김희정은 도경과 지용의 익사 사고에서 연상되는, 그리고 '세월호 문학'이기도 한 김애란의 소설에서 세월호 참사 대신 바르샤바 봉기 기념일의 풍경을 선명히 제시하는 선택을 했다.

모종의 거리감을 통해서 인물들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부여하기. 나와 내 주변의 가까운 사건을 바라볼 때, 감정선이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압도해버리는 상황에서 '개인과 선택' 아닌 '사회와 재난'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세우려는 거리감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책임지는 일의 방향을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그것을 겪은 '나'와 '나의 삶'으로 돌려놓으려는 쪽이다. 명지가 자동음성인식 서비스 '시리'에게 묻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에 대한 응답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엇나간 대화의 틈에서 명지의 삶을 향한 되물음이 나온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전과 달리, 사는 일의 보편으로 회로를 비틀게 된 김희정의 단계적 변화일지도 모른다. 극 마지막까지 감춰두던 죽음이 극의 전반부로 이동하고, 죽음의 음영이 옅어지는 '이후'에 해당하는 삶을 풀어놓는 서사는 데뷔작 <열세살, 수아>(2007) 다음으로 여러 단계를 밟은 뒤 어렵게 찾아온 영화이기도 하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 디스테이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Where Would You Like to Go?
감독
김희정
Kim Hee-jung

 

출연
박하선
김남희
전석호
문우진
정민주

 

제작 인벤트 스톤·SERCE·틀
배급 디스테이션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0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07.05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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