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th BIFAN] '흡연하면 기침한다' 막 나가는 농담
[27th BIFAN] '흡연하면 기침한다' 막 나가는 농담
  • 김경수
  • 승인 2023.07.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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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꼴이었다면 아무도 웃지 않을 것이 뻔했다"

캉탱 뒤피외 감독의 성장세가 무섭다. DJ 오이조로 DJ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그는 <루버>(2010)와 같은 B급 영화로 컬트적인 인기를 서서히 끌기 시작했다. 그러다 <디어스킨>(2019)이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오르더니, 이윽고 <믿거나 말거야 진짜야>(2022)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정됐다. 며칠 전에는 그의 신작 <Yannik>(2023)이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기도 했다. 또 그의 작품은 장르적 색채가 가미된 코미디영화인 만큼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의 단골이기도 하다. 이 감독만큼이나 매년 작품을 촬영하고, 매번 그 영화제의 화제작으로 언급되는 감독은 홍상수 감독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뒤피외의 영화는 지금껏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 등등 영화제에서만  주로 상영됐다. 그의 영화가 속된 말로 마라맛 영화이어서다. 병맛 코드의 막 나가는 설정과 예측불가능한 전개, 컬트적 유머 코드로 인해서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가 정식으로 수입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디어 스킨>(2019)을 시작으로 최근 개봉한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2023)까지 단 2편으로 아쉬울 정도다. 캉탱 뒤피외 감독의 영화가 대중과 더 만나기를 바랄 뿐. 올해 부천에서 본 <흡연하면 기침한다>(2022)를 보면서 감독의 세계가 한층 더 확장되었을뿐더러, 유머의 층위가 깊어져서 새삼 놀랐다.

 

© 2022 – CHI-FOU-MI PRODUCTIONS - GAUMONT

<흡연하면 기침한다>는 지난해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언뜻 보기에 이 영화는 <파워레인저>나 <울트라맨>, <가면라이더> 등의 일본 특수촬영물을 오마주한다. 특수촬영물은 특수촬영 기법을 도입한 영상물을 뜻한다기보다는 일본 슈퍼히어로 영화 장르를 뜻한다. 서구권에서는 일본어 음차를 빌려서 토쿠사츠라고 한다. <고질라> 등의 일본 전후의 괴수물에서 특수촬영기법이 도입되어서다. 특촬물로 줄여서 부르는 이 장르는 아동용 채널에 자주 상영되기에 우리에게도 제법 친숙하다.

<흡연하면 기침한다>는 가장 유명한 특촬물 시리즈인 슈퍼 전대 시리즈 중 <지구방위대 후레쉬맨>를 오마주한다. 지구방위대를 총괄하는 대장이 있고, 각자 색이 다른 수트를 입은 다섯 명의 히어로가 그 대장의 명령을 받들어 괴수로부터 지구를 지킨다. 그 다섯 히어로는 각자의 슈퍼파워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육탄전을 벌이는 중에 위기에 직면하고, 다섯이서 힘을 합쳐서 악당을 무찌른다. 특촬물의 매력은 MCU만큼의 자본이 없이 히어로를 그려내야 한다는 데에서 나온다. CG를 실사처럼 그려내기보다 완구류나 수공예품에 가까운 비주얼을 연출한다. 특히 현대 특촬물 속 캐릭터는 완구로 쓰이기도 한다. 장난감 회사에서 먼저 디자인을 하고, 그에 따라서 만드는 산업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그 조악함이야말로 히어로만이 줄 수 있는 낭만을 구사한다.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은 여기에 없다.

<흡연하면 기침한다>도 오프닝까지만 하더라도 이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는 듯하다. 담배 특공대라는 다소 황당한 이름을 지닌 히어로가 지구를 지킨다는 설정만 하더라도 그러하다. 영화는 가족과 함께 자동차를 탄 한 아이가 우연히 담배 특공대의 전투를 우연히 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는 차를 멈추더니 가족과 함께 전투를 구경한다. 담배 특공대는 아이의 눈에는 인플루언서에 더 가까운 듯이 묘사된다. 이윽고 전투가 펼쳐지는 평원으로 카메라가 옮겨진다. 담배 특공대 셋은 어설픈 무술로 악당과 육탄전을 벌이는 중이다. 나머지 둘은 쉬는 중에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내는 중이다. 나머지 대원이 부르고 난 뒤에야 이 둘은 전투에 합류한다.

담배 특공대는 담배의 해로운 성분만 가져다가 슈퍼파워로 쓰는 히어로다. 벤젠이나 니코틴, 메탄올, 수은, 암모니아가 그러하다. 그들은 담배의 발암물질을 빔으로 쏘고 악당이 물리쳐진다. 고무 의상으로 조악하게 만든 악당의 몸이 터지고 화면은 피범벅이 된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영화는 조금 짓궂은 특촬물로만 보인다. 문제는 이 특촬물 대원을 다스리는 대장인 디디에가 사람이 아니라 초록색 침을 질질 흘리는 데다가 카사노바인 쥐라는 데에 있다. 또 대원 중 두 여성은 그 쥐를 짝사랑하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 2022 – CHI-FOU-MI PRODUCTIONS - GAUMONT

사실 <흡연하면 기침한다>는 특촬물로 보기 힘들다. 이 다섯 명이 어설픈 히어로라는 기표만 빌릴 뿐이다. 디디에는 도마비암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지니는 악당이 있고, 악당에 맞서려면 다섯 명이 뭉쳐야 한다고 워크숍을 떠나라 한다. 다섯 대원이 캠핑카를 타고 팀워크를 기르는 워크샵을 떠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기서 느닷없이 로봇이 자살하고 노르베르트 5000으로 대체되는 등 황당한 일이 이어진다.

밤이 되자마자 다섯은 캠프파이어를 시작한다. 바로 이 다섯 명이 캠프파이어를 하는 동안에 꺼내는 '무서운 이야기'가 이 영화의 진짜 플롯인 셈이다. 영화는 마치 천일야화처럼 온갖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한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동시대를 우화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지시된 담배 특공대의 이야기는 정작 한 편뿐이고, 나머지는 히어로가 아닌 이의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특촬물은 노골적으로 조악하기에 현실성을 지니지 않는다. 결국 특촬물 대원과 이야기하는 이들 사이의 거리는 픽션과 현실 사이의 거리로 이행된다. 영화는 영화와 현실의 괴리를 이야기하려고 제4의 벽을 깨기보단 이야기 사이의 층위를 설정한다.

처음에는 괴담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가 오간다. 친한 두 커플이 새로 이사한 집에서 우연히 생각을 멈출 수 없게끔 하는 생각 헬멧을 발견한다. 1930년대에 발명된 헬멧을 쓴 사람은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살인마로 돌변한다. 헬멧을 쓰고 무작정 달려들기만 하는 이 캐릭터의 기원을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3)의 흑기사에게서 볼 수 있다. 이는 이 감독의 부조리한 유머의 출처를 알 수 있게끔 한다. 이때 헬멧의 구멍이 직사각형이라는 것은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 직사각형으로만 세계를 보기에 살인마가 된다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흔하다. (한편, 매스컴 속 컴퓨터나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보도가 사례일 것이다. 맹목적인 살인에 이르는 인물은 그의 전작 <디어스킨>에서도 나온다.)

이 이야기가 오간 뒤 인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픽션은 공포스럽기는 하더라도 잠깐 무섭고 말 뿐이지 극장 밖에서 공포로 이어지지는 않아서다. 뒤피외는 괴담이 괴담에 불과할 뿐이라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접한 다음에 어린아이가 와서 하는 이야기다. 아이는 딱 한 문장만으로 이 괴담이 얼마나 허울뿐인지를 이야기한다. 아이는 강에다가 누가 폐기물을 투하해서 물고기가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관객은 당연히 전자를 호러로 느끼지만,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는 후자를 호러로 느끼기에 이른다. 뒤피외는 이를 통해서 한 문장뿐인 후자가 더 호러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이 픽션보다 공포스럽다는 뒤피외의 컬트적인 유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벤젠이 잡은 물고기가 그릴에 구워지다가 급작스레 자기도 무서운 이야기를 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 물고기가 앞서 소녀가 언급한 폐기물에 의해서 오염된 물고기라는 점이다. 오염된 물고기는 오염된 이 시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러가 된다.

이 물고기는 뒤피외식 유머의 화신이다. 뒤피외의 전작 <디어 스킨>의 프랑스어 제목은 le daim이다. 사슴이라는 뜻도 있으나 멍청이라는 뜻도 있다. 시네필이 바보에 불과하다는 농담이기도 하다. 이 제목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이 감독이 다루는 모든 캐릭터가 '멍청이'라는 데에도 있다. 뒤피외가 이 멍청이 캐릭터로 만드는 유머는 고유하다. 베르그송은 웃음 이면에 있는 우리의 지독한 심리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바로 기계적으로 움직이기에 우스꽝스러운 대상을 비하하고 처벌하는 의미로 웃는다는 것이다. 비하적 웃음으로 구성된 코미디는 이 멍청이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드러날 때 클로즈업을 하는 방식으로 그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뒤피외의 유머는 그보다 한 층 더 나간다. 바로 이 멍청이로 보이는 인물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자연스러운 데다가 절대 멈추지 않는 데에서 나온다. 영화 제목처럼 '흡연하면 기침하듯'이. 잠시라도 머뭇거리는 순간에 혐오적인 농담이 되어버릴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 넘어가기에 섬뜩한 웃음으로 발전한다. 폐기물에 오염된 물고기가 비참한 꼴이었다면 아무도 웃지 않을 것이 뻔했다.

 

© 2022 – CHI-FOU-MI PRODUCTIONS - GAUMONT

물고기는 공장주와 그의 조카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장주는 어느 날 공장 속 분쇄기에 조카의 발이 끼인 것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공장주는 버튼을 눌러 그를 구출하려고 애쓴다. 버튼을 누르려 할수록 조카의 몸이 톱니바퀴에 맞물려 갈려나간다. 조카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이 괜찮다는 말만 연발한다. 공장주는 비상 정지 버튼을 눌러서 조카를 구하려 하지만 기계가 오작동한다. 조카의 몸은 다 갈려서 사라진 채로, 핏물 가득한 물웅덩이에 남아 있다. 그때 조카의 입이 마구 살아 움직인다. 스플래터 장르에 기반한 이 이야기는 우리가 기후 위기나 환경 오염에 무심한 만큼이나 노동자의 고통에도 무심하다는 듯한 염세적 시선으로 가득하다. 공장주가 조카의 입을 애써 그의 어머니에게로 보내던 즈음에 초인종 소리에 놀라서 조카의 입이 달린 양동이를 쏟는다. 조카가 기르던 개가 조카의 입을 먹는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이 이야기는 일상처럼 그려진다. 이 이야기가 끝마칠 즈음에 물고기는 다 구워져서 죽는다.

뒤피외는 아이가 오염된 물고기를, 오염된 물고기가 노동자를 이야기하게끔 한다. 타인의 고통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권한이 괴담을 즐기는 히어로에게 없다는 듯이 말이다. 히어로는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펼쳐질수록 무기력해지기에 이른다.

<흡연하면 기침한다>가 감동적인 이유는 결말에 의해서다. 물고기의 이야기가 끝난 그다음 날, 급작스레 도마비암이 지구를 멸망시키려 카운트다운을 센다. 히어로는 지구를 구한다기보다는 무기력하게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작별 인사를 나눈다. 도마비암은 지구를 멸망시키려 하던 참에 가족과 식사 약속을 지키러 간다. 그때를 틈타 디디에는 히어로를 따라다니는 노르베르트 5000으로 시간을 역행하는 버튼을 가동하라고 명령한다. 이 도마비암은 놀랍게도 그 외양이 푸틴과 흡사하다. 핵미사일 버튼을 누르려는 푸틴, 시대를 역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 등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전지구적인 문제가 펼쳐진다. 뒤피외는 이 둘 중 어느 쪽도 실행되지 않게 한다. 도마비암은 가족에게 독살당하고, 노르베르트 5000의 시간 역행은 영영 로딩만 할 뿐이지 가동되지 않는다.

담배 특공대는 도마비암이 죽은 사실도 모르는 채로 밤새 그 역행 프로그램을 기다린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듯이. 그때 디디에는 대원을 부르다가 그만두고 또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려고 한다. 그 다른 여성은 디디에에게 그냥 사랑하면 안 되냐고 질문한다. 지금까지 뒤피외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결말일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수포가 되고, 핵전쟁 위기가 닥친 종말론적인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마치 사랑이라는 듯이 말이다. 비인간적이고 부조리한 일이 자행되더라도 그 부조리 안에 구원의 희망은 있다. 뒤피에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랑 하나만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확실한 최선이라고 보는 듯하다. 뒤피외는 그간 멍청이를 조소하는 냉소적인 유머 감각을 선보인다. 그는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이토록 건강한 염세주의에 반하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2022 – CHI-FOU-MI PRODUCTIONS - GAUMONT

흡연하면 기침한다

Smoking Causes Coughing
감독
캉탱 뒤피외
Quentin Dupieux

 

출연
질 를르슈
Gilles Lellouche
뱅상 라코스테Vincent Lacoste
아나이스 드무스티에Anais Demoustier
장-파스칼 자디Jean-Pascal Zadi
울라야 아맘라Oulaya Amamra
도리아 틸리어Doria Tillier
아델 엑사르쇼폴로스Adele Exarchopoulos
블랑슈 가르댕Blanche Gardin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80분
공개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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