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피쉬' 밝은 미래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것
'골드피쉬' 밝은 미래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것
  • 홍상현
  • 승인 2023.07.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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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기표를 걷어내다"
BIFAN 초청작 「원 퍼센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나루미 카논 배우는 「골드피쉬」 주인공 이치의 딸 ‘니코’로 분해 존재감을 과시한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BIFAN 초청작 「원 퍼센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나루미 카논 배우는 「골드피쉬」 주인공 이치의 딸 '니코'로 분해 존재감을 과시한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매혹적인, 너무나 매혹적인

페이드인하면 거친 질감의 화면 속 금붕어들.

하늘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항 속에 있는 그들을 비춰주던 카메라가 시부야로 옮겨가면 언제나처럼 거리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지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샐러리맨. 과장된 활기를 담아 오늘의 날씨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맞물리던 몽타주가 멈추는 순간 숨 막히는 비트가 사라지고 "영혼을 팔지 않아도 돼"라는 한 마디와 함께 귓가를 파고드는 멜로디. 이윽고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스케치에 열중하던 니코(나루미 카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3월 31일부터 전국 38개 스크린에서 숱한 만원사례를 기록하며 다양성 영화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골드피쉬>의 오프닝시퀀스.

"웬 겸손이람!"

무의식중에 객석에 앉아있던 필자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프로듀서 '카타시마 잇키'를 향해서였다. 하긴 1995년부터 2022년까지 여덟 편의 장편상업영화를 연출하고 1997년 <포스트맨 블루스>로 사부(다나카 히로유키)를 데뷔시키는가 하면 거장 스즈키 세이준의 후기 대표작 <피스톨 오페라>(2001),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2005) 등을 제작하기도 했던 그로서는 영화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말인, 즉 그럭저럭 만들었지만 스즈키 세이준이나 자신이 젊은 시절 함께한 독립영화의 대부 와카마츠 코지의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일 테다.

 

1980년대 사회현상 수준의 반향을 일으키던 펑크록밴드 ‘건즈’는 특유의 반항적 콘셉트로 선을 넘나들다 끝내 하루가 일으킨 상해사건을 계기로 해산한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1980년대 사회현상 수준의 반향을 일으키던 펑크록밴드 '건즈'는 특유의 반항적 콘셉트로 선을 넘나들다 끝내 하루가 일으킨 상해사건을 계기로 해산한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우울한 기표를 걷어내다

하지만 재차 언급하거니와 이는 썩 잘 만든 음식을 내놓으면서 '변변치 않습니다만'이라고 덧붙이는 관용구 같은 소리다. 예법에 관한 논평은 이쯤하고 우선 이 오프닝 시퀀스로 연상된 황지우의 시구(vers)를 살펴보자.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열대어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 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아침마다 머리맡에는 15층이 있다

이부자리에 엎드려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이건 삶이 아냐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어,

속으로 울부짖는 나는

비닐봉지 속의 금붕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머리맡에는 15층이 있다」

'물화(Verdinglichung)된 삶에 대한 공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기말을 풍미했던 황지우의 시에 등장하는 금붕어는 아파트 15층과 묶인다. 권위주의시대 사회변혁을 꿈꾸던 작가는 모든 절대적 가치가 붕괴되어버린 포스트모던의 세기말을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중년으로 살아가는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앞의 시) "하마터면 피아니스트가 될 뻔했던 아내가 출장 렛슨 나가"(「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벌어오는 수입으로 "살찐 소파"에서 뒹구는, 허나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의 민낯은 아래 시구에서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내는 지금 나의 무언과 과신의 무능에

손질하는 것이렸다

낮에도 남자가 집에 있다는 사실

이 사실에서, 이 혐의에서

검침원과 외판원에서 문 열어

줄 때마다 나는 죽는다

―「아내의 수공업」

금붕어는 작가의 '확장된 자아(extended ego)'이다. 여기에 굳이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을 하지는 않을 작정이지만 누군가는 '권위주의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황지우의 이력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날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소위 '민주화세력에 대한 부채의식'조차 전가의 보도가 될 수는 없다고 믿는 필자에게 있어 <골드피쉬>의 오프닝이 1990년대 이후 의식을 짓누르던 우울한 기표를 걷어내 주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 짐 자무쉬의 칸영화제 수상작 「미스테리 트레인」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이력을 가진 대배우, 나가세 마사토시는 감독이 실존모델인 주인공 ‘이치’를 연기했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30년 전 짐 자무쉬의 칸영화제 수상작 「미스테리 트레인」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이력을 가진 대배우, 나가세 마사토시는 감독이 실존모델인 주인공 '이치'를 연기했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열패감과 자기연민을 넘어

그렇게 시작된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1980년대 사회현상 수준의 반향을 일으키던 펑크록밴드 '건즈(Guns)'는 특유의 반항적 콘셉트로 선을 넘나들다 끝내 하루(기타무라 유키야 분, 젊은 시절은 야마기시 켄타 분)가 일으킨 상해사건을 계기로 해산한다. 그리고 30년 뒤, 대책 없긴 하지만 여전히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리더 애니멀(시부카와 키요히코 분ㆍ젊은 시절은 시노다 료 분)과 이치(나가세 마사토시 분ㆍ젊은 시절은 하세가와 티티 분)의 주도로 멤버들이 다시 모이고 그간 너무나 달라져버린 삶의 모습으로 인해 온갖 갈등이 빚어지는 가운데 재결성 콘서트를 향해 나아간다.

대략 위와 같이 요약되는 시납시스가 소환하는 작품은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다. 하지만 <골드피쉬>는 룸살롱에서 벌거벗고 취객의 노래에 반주를 넣으면서라도 오늘을 견뎌야 하는 주인공(이얼 분)의 시선으로 최규석의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같은 현실을 보여주며 "(이래도) 행복하니?"라고 다그치기보다 초라하고 궁상맞으며 다소 한심해 보일지라도 이를 악물며 꿈을 따라간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 이미 30년 전 짐 자무쉬의 칸영화제 수상작 <미스테리 트레인>(1989)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이력을 가진 대배우, 나가세 마사토시가 연기하는 '이치'다.

이치라는 캐릭터가 힘을 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애초에 <골드피쉬>는 실제 펑크록 밴드 아나키(Anarchy)의 실화에 바탕해 있으며 연출에 음악까지 담당한 후지누마 신이치는 그의 실존모델이다. 그는 아나키의 기타리스트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찬사를 받으며 42년간 100장의 앨범에 뮤지션으로 참가했으며, 지금도 일본의 5대 블루스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골드피쉬>는 후지누마 신이치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며 그런 까닭에 1960년대 펑크록의 아이콘으로 보수적인 행정당국에 의해 음반발매금지, 방송금지 처분은 물론 공연장 출입금지 명령까지 받았던 전설적 밴드 "두뇌경찰"의 보컬리스트 판타도 카페 바리스타 역으로 출연한다.

이런 내용들을 나열하면 '어차피 성공했으니 시선이 낙관적일 수밖에 없지 않냐'는 지적이 나올지 모르지만, 아니다. 업계의 명성이 경제적 여유로 이어지는 연주자가 극소수인 것은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을뿐더러, 후지누마 신이치의 실제 삶도 작은 녹음실을 운영하며 이혼한 배우자에게 간신히 양육비를 송금하는 <골드피쉬>의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이는 극중에서 공사장(테라, 마스코 나오즈미 분ㆍ젊은 시절은 조니 분)이나 처가의 세탁공장(마츠바야시 신지 분ㆍ젊은 시절은 세나 분)에서 일하는 걸로 묘사되는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건즈의 멤버들은 섣부른 열패감이나 자기연민에 휘둘리거나 변해버린 시대를 야속해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국민연금수령시기가 닥쳐오는"(극중의 자조적이 대사. ※주) 인생의 가을에서 뭔가 해내려 쉼 없이 달려갈 뿐.

 

건즈의 트러블메이커인 하루는 30년 뒤 공무원이 되어있는 열성팬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게 되지만 여전히 과거의 굴레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해 고통 받는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건즈의 트러블메이커인 하루는 30년 뒤 공무원이 되어있는 열성팬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게 되지만 여전히 과거의 굴레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해 고통 받는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지 않기

이즈음에서 <골드피쉬>가 전해주는 가장 큰 영화적 카타르시스의 단서로 들 수 있는 것이 넷플릭스 화제작 <마더>(2020), 아시아 필름 어워즈 수상작 <아, 황야 전ㆍ후편>(2017) 도쿄국제영화제 초청작 <미야모토>(2019) 등의 작가로 일본영화대학에서의 전공(영화학과 다큐멘터리코스)을 살려 다큐멘터리 기법까지 활용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각본가 미나토 다케히코의 필력이다.

서사가 '추억장사'로 끌려가지 않게 경종을 울리듯 끊임없이 스토리텔링의 행간에 끼어드는 '10대' 니코는 '밴드 이름을 누가 붙였든 무슨 상관이냐'며 자조적으로 웃던 아버지, 이치를 찾아가 질문한다.

"안 보여도 되는 게 보이면 살기 힘들지. 보고 싶은 대로 밖에 안 본다는 것도 있을까? 아빠 때부터 세상은 이랬어?"

"너... 뭐가 보이니?"

"밝은 미래."

뜻밖에 스스로도 지금껏 포기할 수 없었던 꿈에 대해 말하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딸에게 아빠는 아무런 첨언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동의하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삶이란 어느 쪽이 어느 쪽을 평가할 필요가 없는, 오롯이 각자의 것이니까. 영화는 이런 필자의 해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루의 빈소에서 금붕어를 바라보다 이치가 테라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있지. 금붕어라는 게, 원래는 붕어거든."

"뭔 소리야, 갑자기."

"근데 모양을 보기 좋게 바꾸니까 기형이 되어버린 거야."

과거를 덮어놓고 미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새 사람' 또 누군가에게는 '옛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세대를 분단하지 않는 미덕. <골드피쉬>의 금붕어는 황지우의 시에서처럼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지 않고는 벗어낼 수 없는 "어떤 방향"을 상징하지 않으며 "이건 삶이 아냐"라는 절규나 "그때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와이키키 브라더스>)라고 토로하는 회한과도 무관하다. 본질은 기나긴 세월이 흘러도 풍화되지 않는 것, 나는 언제까지라도 나일 뿐이니 영광도 좌절도 모두 나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영화는 그렇게 위 혹은 아래에서 어느 쪽을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지 않고 마주서있는 세대(들)를 그려낸다.

 

과거를 덮어놓고 미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새 사람’ 또 누군가에게는 ‘옛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세대를 분단하지 않는 「골드피쉬」의 미덕은 올해 상반기 세대를 초월한 다양성영화 관객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C)2023 Goldfish Film Partners
과거를 덮어놓고 미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새 사람' 또 누군가에게는 '옛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세대를 분단하지 않는 「골드피쉬」의 미덕은 올해 상반기 세대를 초월한 다양성영화 관객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C) 2023 Goldfish Film Partners

누구의 것도 아닌 '밝은 미래'

그리고 결말부로 가보자. 이치는 과거의 굴레에서 신음하다 끝내 세상을 등진 하루(실제로 아나키에서 하루에 해당하는 포지션을 맡았던 멤버 헨미 야스나리도 2017년 5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주)를 뒤로하고 콘서트홀로 향한다. 니코가 객석에서 기대에 부푼 얼굴로 아빠를 기다리는 따위의 해피엔딩은 없다. 한층 더 화려해진 색으로 자신의 캔버스를 채워가기도 바쁘니까. 바로 이어지는 라스트신에서 카메라는 하루를 괴롭히던 '어제의 망령'을 기타로 내리치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치의 뒷모습을 담는다. 어딘가에서 예순네 살 신인감독의 유쾌한 한 마디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이봐 친구, 밝은 미래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거라네!"

[글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C) 2023 Goldfish Film Partners
​(C) 2023 Goldfish Film Partners

 

골드피쉬

Goldfish

감독

후지누마 신이치Shinichi Fujinuma

프로듀서

카타시마 잇키Ikki Katashima

 

출연

나가세 마사토시Masatoshi Nagase

기타무라 유키야Yukiya Kitamura

시부카와 키요히코Kiyohiko Shibukawa

마스코 나오즈미Naozumi Masuko

마츠바야시 신지Shinji Matsubayashi

나무리 카논Kanon Narumi

 

배급 UZUMASA Incorporated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99분

등급 미정

현지개봉 2023년 3월 31일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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