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21세기 '록키 호러 픽처쇼'
[Critique] 21세기 '록키 호러 픽처쇼'
  • 김경수
  • 승인 2023.06.05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킬링로맨스> 동시대 '인터넷 밈 이미지'의 풍경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2023)는 여성과 오타쿠, 사수생 루저, 타조가 연대해 초국가적인 자본가 일론 머스크를 처단하는 영화다. 이게 무슨말인가 싶겠지만, 영화에는 사수생이 동물과 대화를 하고, 타조가 하늘을 날고, 전자담배로 글씨를 적을 수 있는 인물이 맹활약한다. 심지어 최후의 결전에 이르러서는 SM과 JYP가 노래 배틀을 한다. 하나같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설명이다. 사실 보통의 관객에게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압축할 자신이 없다. 그 어떤 문장을 쓰더라도 황당하게 보일 것이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겠다는 시도가 미친 짓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2020) 속 대사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는 이 영화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점잖은 태도 따위는 진즉 포기하는 것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원석 감독은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2013)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린 적 있다. 비평가에게 호평 일색이었으나, 당시 여러 대작이 잇따라 개봉할 시점이라서 흥행에 실패했다. 이 영화가 개봉된 2013년은 한국 로맨틱 코미디가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나의 P.S 파트너>(2012) 등의 작품으로 정점을 찍고 인기가 차츰 시들어 가던 시기다. 불우한 작품인 셈이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B급 감성과 병맛 개그로 점철된 이 영화의 매력을 알아본 컬트 팬덤의 노력으로 재발굴되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오프닝 타이틀을 패러디한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감독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영상물은 남자의 사용법을 몰라 고통받는 전 세계 26억의 사용자 여성들을 위해 제작되었다"라는 자막은 이 영화의 B급 감성을 한껏 느끼게 한다.

이는 한편으로 이원석이 스케치 코미디나 꽁트 장르를 계승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남자사용설명서>는 기존의 한국 코미디 영화처럼 대사와 말장난에 의존한다기보다는, 꽁트와 상황극을 여럿 기워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즈음부터 유행한 스케치 코미디 쇼 <SNL>이나 스케치 코미디의 고전 <몬티 파이튼>에 더 가깝다. 안타깝게도 후속작 <상의원>(2015)도 흥행에 실패했다. 그의 영화를 다시는 못 볼 것으로 예상했다. 그가 8년 만에 복귀했다. 이 세상에 없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야심으로 가득하다. 이원석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 "어쩌면 우리 이민 가야 할 수도 있다"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킬링 로맨스>는 개봉 당시에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혹평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20대의 컬트 팬덤을 중심으로 평점이 역주행했고, 싱어롱과 팬 상영회가 열리기까지 했다. 컬트 현상을 일으킨 데다가 소수자를 대변하는 이 영화를 감히 21세기의 <록키 호러 픽처쇼>라고도 말하고 싶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킬링 로맨스>는 시작부터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2012) 스타일을 노골적으로 따라 한다. 외국인이 영어 나레이션으로 킬링 로맨스라는 동화를 낭독한다. 물론, 동화책을 읽는 듯한 스토리텔링은 흔하다. 영화를 여러 챕터를 분할하고 뒤이어 전개될 내용을 동화책의 삽화로 먼저 드러내고, 거기 적힌 내용을 이야기를 전개하는 식이다. 이 영화에서는 정반대다. 동화책의 삽화나 내용은 은폐된다.

이처럼 <킬링 로맨스>의 오프닝은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압축한다. 동화가 아닌 '구연동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구연동화는 동화의 하위 분야이다. 옛날옛적에라는 도입부에서 드러나는 시공간의 모호성을 전제로 한다는 서사의 규칙을 공유한다. 다만, 동화와 매체가 다르다는 점이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다. 구연동화의 스토리텔링은 영화와 닮아있다. 낭독자가 이야기의 전권을 쥐고 있으므로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청중이 예측하기 힘들다. 에피소드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도 낭독자의 톤이 일정하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듯한 착시효과를 자아낸다. 이야기는 개연성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숏과 숏이 이어지지 않고 끊기고 화면비가 뒤죽박죽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낭독자의 목소리로 인해서 이야기로 완성된다. 영화의 개연성을 지적하는 것은 되려 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하는 겉핥기식 비판에 불과하다.

자의식 과잉이자 형식 과잉이라는 비판도 마찬가지로 영화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는 듯하다. 구연동화라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이 영화는 뮤지컬과 스릴러, 히어로물, SF 장르를 결합한다. 매체로는 영화, 노래방과 인터넷 밈, 케이블TV 광고 등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 모든 이미지가 의미 단위로는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장면이 숏과 숏 사이의 연속성과 충돌에 기반한 영화 편집에 따라서 배치되지 않았을 뿐이다. <킬링 로맨스>는 중구난방인 에피소드와 설정, 이미지가 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야만 하는지를 두고 논의해야 하는 영화에 더 가깝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킬링 로맨스>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복잡하다. CF스타 황여래(이하늬)는 SF영화 <낯선 자들>의 실패로 대중에게 조롱거리가 된다. 번아웃이 온 그녀는 꽐라 섬으로 요양하러 간다. 그녀는 환경운동가이자 초국적 기업인인 조나단 나(이선균), 일명 존나를 만난다. 거기서 자신을 구하고, H.O.T의 '행복'을 불러주는 그와 결혼한다. 그로부터 7년 뒤, 조나단 나는 본인의 이름을 딴 조나단파크의 투자를 홍보하려 한국에 머무른다. 때마침 조나단 나의 옆집에는 범우(공명)가 산다. 범우의 집안은 일명 서울대 집안. 그 혼자만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하고 사수 생활을 견디고 있다. 오랜 수험생활로 인해서 동물과 대화까지 한다. 범우가 견딜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은 황여래다. 그는 황여래의 팬클럽 여래바래 3기의 멤버로 활동했고, 황여래의 복귀만을 기다리고 있다.

범우는 우연히 옆집에 황여래가 살고 있으며, 그녀가 조나단 나의 가정폭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조나단 나는 툭하면 황여래를 정신병자로 몰아세우고 가스라이팅을 하며, 그녀의 꿈을 꺾기까지 한다. 범우는 그런 여래를 돕고자 한다. 범우와 황여래는 신에 가까운 조나단 나를 죽이려는 갖은 애를 쓴다. 계획은 빈번히 어긋나고 조나단 나가 둘의 사이를 눈치채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황여래가 조나단파크 시공식 홍보 차원에서 워너 쇼핑에 복귀하고 범우는 황여래를 마지막으로 구출하려고 애쓴다. 이렇듯 내용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킬링 로맨스>의 미학은 세대를 막론하고 동시대 '인터넷 밈 이미지'를 한 데에 모아서 한국의 문화적 풍경을 지도로 그리려는 데에 있다.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언더 더 실버레이크>(2019)가 음모론적 상상력으로 할리우드 산업의 폭력을 지도로 그리려 했듯이 말이다. 

시대를 아우르려는 픽션은 다소 음모론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조나단은 자본주의와 주류문화의 상징으로, 이에 대항하는 황여래는 소수자와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유래한 하위문화의 상징이다. 영화는 둘의 대립으로 세계를 왜곡하고 비튼다. 이는 영화의 형식에서도 알 수 있다. 한편 영화 중간중간에 광고가 불쑥 끼어드는 연출은 영화를 보는 감각에서 한참 멀리 벗어나 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이나 카카오게임을 하는 듯한 감각에 더 가깝다. 물론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한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상이다. 또한 이를 구연동화로 그려낸 것도 제법 효과적이다. 유튜브나 SNS에서 숏폼을 보는 감각과도 닮아있다. 사용자는 영상을 계속 보고 있지만, 알고리즘이 어떠한 영상을 매개할지 몰라서다. <킬링 로맨스>는 SNS 풍속과 관심이 곧장 자본이 되는 관심경제에 대한 우화로 훌륭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황여래는 '영화 세대'의 상징에 가깝다. 영화는 오프닝 속 구연동화를 낭독하는 여성이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주한다. 황여래를 소개하면서 곧장 비의 <레이니즘>을 개사한 황여래의 응원가 <여래이즘>을 튼다. 곧이어 황여래가 출연한 여러 광고가 나열된다. 00년대에 유행한 써니텐과 엠씨스퀘어, 노스페이스 롱패딩 등의 광고가 언뜻 스친다. 황여래가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는 두 영화 <낯선자들>, <한라산>은 천만 영화를 타깃으로 한 충무로 영화가 생각나게끔 한다. 또 영화 곳곳에 히치콕의 영화와 <메트로폴리스>(1927), <샤이닝>(1980), <쥬라기 공원>(1993),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2003) 등 고전 영화를 노골적으로 따라하는 장면도 삽입되어 있다. 황여래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급작스레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알라딘>(2019) 등 여성과 소수자의 관점으로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재해석한 디즈니 라이브 액션을 뒤튼 것이다. 특히, 황여래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범우가 "왜 노래를 부르냐"며 뮤지컬 영화에 설정된 제4의 벽을 깨는 것이야말로 시네마가 마주한 위기를 이중으로 드러낸다. 황여래는 영화가 직면한 동시대의 위기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조나단 나는 '인스타그램 세대'의 상징에 가깝다. 푹쉭확쿵이나 잇츠 뀻 등 조나단 나의 포즈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앞에 더해진 (아마 유행어와 바이럴을 목표로 억지로 생산하는) 인터넷 BJ의 캐치프레이즈를 생각나게끔 한다. 조나단 나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인 것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범우와 조나단 나가 찜질방에서 벌이는 혈투(?)는 숏폼 시대의 감각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 영화의 화룡점정은 조나단 나가 범우에게 보내는 동영상이다. "덕이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은 수양의 산물이며 노력의 결과입니다"로 시작한다. 나레이션과 자막의 시간이 묘하게 어긋나는 동영상은 카카오스토리나 블로그 등 노년층이 주로 쓰는 매체에서 유행하는 영상과 닮아있다. "이 글은 펌글입니다"로 끝나는 이 영상은 크레딧에 나오듯 실제로 저자 미상의 글이다. 출처를 표기하기는 했어도 사실은 불펌인 셈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등 시대를 관통한 명언(?)도 마찬가지다. 조나단 나는 자본주의가 이미지를 통해서 어떻게 약자를 억압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둘의 대비는 동시대의 미디어 환경과 거기서 생기는 풍속도를 캐리커처로 그려내고 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 참 빠뜨린 것이 하나 있다. <킬링 로맨스>는 초능력 배틀물이기도 하다. 영화 속 캐릭터는 저마다 하나씩 초능력을 지닌다. 초능력의 정도는 그들의 소수자성에 비례한다. 사수생 범우는 동물과 대화하고, 여래는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오수생은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다. 또한 여래바래 3기 총무 이영찬(배유람)은 전자담배 연기로 글씨를 그릴 수가 있다. 여래바래는<여래이즘>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려 하는 여래를 구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타조(심달기)다. 타조는 처음에는 달리기로 범우와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 조나단에게 친구와 터전을 빼앗겨버린 타조는 각성해 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다. 조나단을 심판할 때는 스크린 너머로 조나단을 데려간다.

앞서 설명한 모든 캐릭터는 조나단의 대사대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찐따'다. <킬링 로맨스>의 여래바래가 이른바 찐따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유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여래의 팬도 시대착오적이어서다. 최첨단을 달리려는 초국적인 자본가이자 마초의 상징인 조나단 나에 맞서서 여성과 오타쿠, 동물이 연대하는 상상력은 자칫하면 중구난방으로 보일 수 있는 영화의 방법론으로 인해서 가능해진다. 찐따를 연대하게끔 하는 것이 이미지라는 관점은 동시대 미디어 아티스트 히토 슈타이얼의 작업과 이어져 있다. 히토는 불법 복제된 저화질의 빈곤한 이미지의 연결로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의 순환시스템에 침투해 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킬링 로맨스>도 마찬가지다. 케이블 TV광고와 불펌한 글 등 흔히 저화질로 접하는 이미지를 하나로 이어서 약자가 연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영화가 조나단의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은 놀랍다. 폭력에 폭력으로 응수하기보다 하위문화를 즐겨서 느낄 수 있는 행복으로 상대를 초대하려고 한다. 그때 노래방 자막이 깔리는 것은 신의 한수다. 노래방이야말로 소수자와 부자가 모두 한 데에 어우러져서 놀 수 있는 보편적인 놀이공간이어서다. 행복에 맞서서 여래이즘을 부르는 여래바래 3기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지 않을 수 없다. 조나단이 여전히 질 기세가 없자 영화는 최후의 해결책을 마련한다. 타조는 조나단을 스크린 너머에 데리고 간다. 하위문화가 상상력과 자유로움에 기반하듯이, 그 복수도 상상 에서만 가능하다는 듯이 말이다. 영화에서의 복수, 심지어 영화 안으로 데려가는 복수를 택한 것이다.

<킬링 로맨스>가 영화의 위기에 맞서는 태도는 그야말로 낭만적이면서 아름답다. 이 영화를 감히 동시대 한국 영화의 걸작으로 불러도 될까. 극장의 힘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한국 상업영화가 더욱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 롯데엔터테인먼트

킬링 로맨스 
Killing Romance
감독
이원석

 

출연
이하늬
이선균
공명
배유람
앤드류 비숍
심달기

 

제작 영화사 이창, 쇼트케이크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3.04.14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