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가까운, 그리고 닫힌 ['클로즈' #1]
너무나도 가까운, 그리고 닫힌 ['클로즈' #1]
  • 이현동
  • 승인 2023.05.0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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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서로를 투명하게 바라보았는가"
ⓒ 찬란

'루카스 돈트'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결합한 자연주의적 양식을 갖고 있다. 특정하자면 그의 연출은 '액션'이나 '컷'을 하지 않고 계속 찍는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 적이다. 이는 배우가 감독의 요구에 따라 행위를 하지 않고 카메라가 없을 때 관객과 영화 사이의 경계를 얼마나 허물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루카스 돈트의 영화에는 그러한 세팅이 많이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상기시키는 '핸드 헬드'의 사용 역시 현장감을 그대로 묘사하면서 배우의 감정을 급격하게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또 '색과 빛'을 활용한 인상주의적인 스타일은 영화를 일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클로즈>의 색감이 그렇다.

루카스 돈트의 연출은 색의 선명도인 채도를 조절할 때 빛의 활용뿐만이 아니라 목가적인 풍경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통적으로 루카스 돈트의 영화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관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있다. 루카스 돈트의 장편 데뷔작<걸>(2018)은 트랜스젠더인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고, 신작인 <클로즈>는 13세 소년들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단편 <헤들롱>(2012)이 있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로 16세 소년을 다루고 있고, 남자의 우정이 나오며 주인공이 발레리나라는 점에서 루카스 돈트의 작품 세계의 시작점임을 예고한다. <헤들롱>과 <걸>이 '몸'을 사용한 영화라면 <클로즈>는 '감정'(마음)을 겨냥한다. 가령 <클로즈>는 전작들과 달리 어린아이의 몸에 집중하기보다 결국 그들의 얼굴에 주목하게 된다. 이때, 표정과 몸짓, 시선 처리 등에서 발견하는 감정은 관객에게 상실된 기억을 다시금 소환하는 역할로 기능한다.

한편, <클로즈>가 LGBT로 분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감독인 루카스 돈트도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한 동성 간의 보편적인 우정 이야기일 수 있는데 말이다. 그건 단순히 LGBT가 아닌 성장기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원초적인 관계를 상기하게끔 한다. 먼저, 이 작품은 미국 심리학자 '니오베 웨이가' 5년 동안 150명의 소년의 삶을 조사한 결과를 통해 영감을 얻었다. 그때 13세 소년들이 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치 사랑 이야기처럼 표현했다고 한다. 더욱이 소년들이 성장하면서 남성성이 강화되고, 아름다운 사랑 혹은 우정이라는 친밀감이 소거되는 이유가 사회의 억압이 곳곳마다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니오베의 결과는 말한다. 이에 루카스 돈트는 두 남성이 한 침대에 누워 친밀한 대화를 하는 것마저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로의 욕망을 정열적으로 공유하고 그 모습이 퇴폐적이기도 한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이 17세 소년과 24세 청년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반대로 <클로즈>는 어떠한 성적인 스킨쉽도 등장하지 않는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어떤 감정이 있는지가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남자가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 나올 때 성별이란 선입견을 돌파하고 온전한 관계로 바라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이 특정한 의도와 목적을 지닌 영화라고 할 때 더욱 그렇다. 비교적 자연스럽게 보이는 사춘기가 오기 전의 아이들에게 발견될 수 있는 친밀감이란 어떠한 편견도 없는 보편적인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루카스 돈트는 배우에게 연기를 주문할 때 캐릭터의 섹슈얼리티 혹은 그들의 섹슈얼리티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 찬란

<클로즈>의 시작은 레오(에덴 담브라인)과 레미(구스타브 왤레)의 알 수 없는 장난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어디론가 함께 도주하고 가족들과 마주하는 모습을 담는다. 이 장면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먼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우정'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나란히 뛰고 있는 소년을 트래킹으로 잡는 건 그만큼 둘의 관계가 격정적이라는 사실과 둘의 관계가 단단히 팽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가족의 모습이 서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암시이다. 레오와 레미의 뜀박질에서 가족들을 지나치는 이유는 루카스 돈트의 영화에서 가족은 굉장히 희망적인 서사를 담아내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서 가족은 선입견의 굴레에서 유일하게 치유를 소망할 수 있는 공동체로 그려진다. (여기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로제타>(1999)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에밀리 드켄이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여유롭고도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는 <로제타>에서 어려운 과거를 이겨낸 한 소녀의 성장을 한편으로 다른 영화에서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후 레오와 레미가 대화를 나누게 되는 레미의 방은 진홍색 빛으로 칠해져 있다. 이 색감 구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묘한 정서는 둘의 친밀한 관계를 규명하면서도 혈연과 같이 끈끈한 연대로 구성되어 있음을 예고한다. 그것은 곧 단순히 남남이 아니라 소피(에밀리 드켄)이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가족'이란 말과도 상응한다.

 

ⓒ 찬란

레오와 레미의 관계를 가로막는 사건의 등장은 가족과 떨어졌을 때 발생한다. (루카스 돈트가 단편영화와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다는) 10분간의 장면이 끝나고 학교에 들어간 레오와 레미를 와이드로 조명한다. 이때 (사회에 보내졌다고 해도 무방한 학교에서) 이들을 줌인하지 않고, 서서히 줌아웃하는 장면은 그의 영화가 주로 클로즈업으로 인물 관계를 보여주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질감을 가진다. 남자아이들로 채워진 교실에서 이들의 자기소개는 주로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다, 농구랑 축구를 좋아한다 등 남성성이 짙은 모습을 보여준다. 더불어 밀접하게 붙어 이야기를 나누는 레오와 레미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들은 점차 두 소년을 옭아매는 코드로 발동한다. 

학교 아이들은 레오와 레미가 붙어있는 것을 보며 사귀는 것이냐 묻기 시작한다. 레오는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만, 이러한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고 점차 레미와 멀어지기 시작한다. 레오는―친밀감의 상징인―레미의 스킨쉽을 거부하고, 아이스하키를 하는 친구와 어울린다. 레오는 점차 남성적인 사람으로 성별과 관계 없이 투명했던 레미와의 관계에서 탈피한다. 이제 레오와 레미가 나란히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없다. 트래킹 숏은 또한 이들을 한 장면에 잡지 않는다. 그저 화면 밖으로 나아가는 레미만을 잡을 뿐이다. 점차 불투명해지는 둘의 관계는 결정적으로 레미를 기다리지 않았던 레오의 행동으로 인해 큰 다툼을 겪게 되면서 끝이 난다.

이후 레미의 죽음은 <클로즈>의 분기점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레미의 어머니인 '소피'를 통해 조금 더 큰 의의를 부여한다. 영화는 그때부터 레오의 시선을, 소피를 바라보는데 할당한다. 레오는 장례식에서 소피의 뒷모습과 학교에서 레미의 물건을 찾아가는 모습을 창문 프레임 틈 사이로 쳐다본다. 그리고 우연히 공연장에서 그녀를 쳐다보는 장면에서의 줌인은 레미와의 관계를 다시금 복원하려는 시선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장면의 색감은 레오와 레미가 침대에 누워서 우정을 나누던 색과 동일하다.

 

ⓒ 찬란

영화는 레오가 틈마다 아이스하키를 하고, 새로운 친구와 어울리는 장면, 형과 함께 잠을 자는 장면들을 삽입한다. 이는 레미와의 관계를 망각하려는 레오의 태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루카스 돈트가 말한 남성성이라는 굴레를 경험하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영화가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하는 건 레미와 그 가족이다. 레오는 소피와 함께 레미의 방에서 그의 잔재들을 확인하고, 자신의 투명했던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스하키로 손목 상처를 입은 레오는 붕대를 매고 소피를 찾아 사건의 원인이 자신임을 고백한다. 이때 핸드 헬드로 찍은 레오의 뒷모습은 로제타의 뒷모습과 닮았다. 소피는 레오를 말없이 껴안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오는 레미와 함께 거닐었던 꽃밭을 뛰고 걷는다. 레오의 표정에는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없는 무에 가까운 표정을 하고 있다. '왜 이 표정이어야 했을까' '무엇을 대변하는 표정일까' 우린 이런 전경화된 표정을 보면서 한편으로 닫히지 않을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투명한 관계에서 점차 불투명한 관계가 되는 건, 이 영화에서 겨냥하고 있는 '선입견'이란 프레임이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진부하게 보일지 모르는 가족주의지만, <클로즈>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영화적 요소는 보편적일지언정 '레오와 레미의 사랑과 우정을 얼마나 투명하게 볼 것인가'이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찬란

클로즈
Close
감독
루카스 돈트
Lukas Dhont

 

출연
에덴 담브린
Eden Dambrine
구스타브 드 와엘Gustav De Waele
에밀리 드켄Emilie Dequenne
레아 드루케Lea Drucker
이고르 반 드셀Igor van Dessel

 

수입|배급 찬란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3.05.0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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