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th Venice] 관계의 '가뭄'
[79th Venice] 관계의 '가뭄'
  • 이현동
  • 승인 2023.03.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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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곳에서 쌓인 가뭄의 흔적들"

이탈리아 영화감독 '파올로 비르지'(Paolo Virzi)의 비교적 최근작인 <레저 시커>(2017)를 보면서, 그가 굉장히 충실하게 이야기들을 쌓는 친절한 건축가 같은 감독이라 느꼈다. 그 건축이 설령 허술한 작업 같아 보이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 표면의 디자인이 매우 정돈되어 있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 영화 <레저 시커>(2017)

로드무비인 <레저 시커>는 치매와 암 투병으로 씨름하는 한 노년 부부의 삶을 희극적으로 다룬다. 자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몰래 시작된 이 영화의 시작은 기억을 망각하는 이야기면서 동시에 기억을 쌓아가며 코믹하고도 때로는 정겨운 에피소드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 로드무비의 결말이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지언정 비극이 아닌 희극처럼 보이게끔 유도하는 건 감독이 연속적으로 배치해온 부부의 웃음의 잔재들 때문일 것이다.

   

파올로 비르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서커스 예술가로 관객에게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웃음을 선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그는 "젊음의 이상주의적 동력을 잃은 지금, 자신의 정치적 모토가 그들의 삶의 슬픔을 해방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파올로 비르지의 영화제작의 주요한 동기는 비극이 아닌 '희망'에 있다.

 

 

ⓒ 영화 <가뭄>

여기서 재난영화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영화를 뒤로하고, 재난을 다루는 소설 하나를 떠올릴 수 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다. 전염병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세상, 인간의 나르시시즘으로 점차 파괴되는 세상 속에서 실존주의자인 카뮈는 이를 극복하고 세상을 갱신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비관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이 다시금 돌아올 것 암시하는 대목은 분명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예고하는 듯 보인다. 이 연속성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에 대한 정의를 재고하게 되는 실마리를 마련하는 셈이다.

다소 평면적으로 대중영화에서 사용되는 '재난'이란 소스는 스케일을 강조한 블록버스터와 가족주의 서사를 통해 대중들의 공감을 사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재난의 현장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죽음과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클리셰로 편의적으로 소비될 수 있지만 인간의 가장 본유적인 속성인 혈연관계를 지시한다는 지점에서 흥미로운 소재다.

 

파올로 비르지의 신작인 <가뭄> 역시나 그렇다. 영화에서 인물관계를 주도하는 건 '가족'이다. 그러나 가족관계의 갈등은 단순히 재난으로부터 유발된 것은 아니다. 재난과는 무관하게 파행되고 있었던 관계의 흔적은 오히려 재난을 통해 복권되기도 한다.

특히, <가뭄>은 인간에게 왜 재난이 닥쳤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장르적으로 소모되기 쉬운 환경 문제에 대해 파올로 비르지는 다른 선택지를 택한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재난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재난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욕심을 역행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뭄>의 시점은 비가 오지 않는 3년이란 기간에 말라버린 로마를 그 배경으로 한다. 감독이 영감을 받게 된 코로나19라는 재난과 이 영화에서의 3년은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는 물의 소멸로부터 생활환경의 제한과 연관성을 공유한다. 여기서 많은 캐릭터의 등장은 이 가뭄이 특정한 개인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 중간마다 하이 앵글 쇼트로 잡는 로마의 풍경에서 등장하는 다리와 그 밑의 척박한 지형도는 사회와 개인 사이의 단절과 균열을 내포한다. 로마의 정체성인 '물'이 없는 공간을 상정함으로 건조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 영화 <가뭄>

영화의 첫 장면에서 "로마는 해낼 것이다"라는 슬로건과 이어지는 클래식 연주, 유럽 음악을 대표하는 바로크 장르는, 가뭄이란 재난과 더불어 희화화되는 요소로 국가의 문제를 동시에 재고하게 한다. 여기서 전염병에 걸린 남성이 쓰러지는 건 이 슬로건이 무력화되는 일종의 선언과 같이 들린다.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가기 전에 이 장면을 포함한 세 개의 시퀀스는 사회와 개인이 격동하는 모습을 조명한다. 폭동이 일어난 현장을 뚫고 병원에 가는 한 의사와 사회에서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가진 약혼남을 가족에게 소개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는 이 개인과 사회라는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여기서  영화에서 최초로 바퀴벌레와 마주하는 장면이 이 약혼남의 환경에서 돌출된다는 점은 곧 물성의 지층 가운데 전염병이 생성되는 것임을 예고한다. 왜냐하면 이 바퀴벌레는 상위 계층에서는 목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곧 공공용수가 중단된다는 뉴스, 1인당 5리터의 식수 제한이라는 조치도 소멸할 위기에 처한 로마 사회를 비춘다.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거리, 이를 조롱하며 몰래 세차를 하는 사람을 체포하려는 경찰이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보고한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영웅이 되고 싶은 한 남자로 시선을 돌린다. 개인 방송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는 이 남성의 가족은 정작 희망이 없다. 아내는 몰래 다른 남성과 문자 보내며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산하고, 아들은 방문을 꼭 잠근 채 가족과의 소통을 거절한다. 여기서 엄마는 슈퍼마켓 가판대에서 일을 하고, 그런 엄마를 아들은 못마땅해한다. 

그리고 영화의 카메라는 또 다른 인물인 마약을 하며 환각 속에서도 겨우겨우 택시 운전을 하는 남성을 향한다. 이 남성도 가정의 문제가 있다. 그는 아내와 이혼으로 혼자 살며 둘 사이에 낳은 딸을 가끔 연락하며 지낸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유능한 남편하고 결혼했지만, 그 남편은 바로 직전에 언급한 유명 배우의 아내와 수시로 문자를 하며 얼마든지 파탄 날 수 있는 가정의 위기를 지속적으로 시사한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서 많은 인물의 에피소드가 영화를 경유하며 도착하는 목적지에는 관계의 분열이 있다. 교도소로 납품을 담당하는 유통업자는 사이가 멀어진 딸과 만나기 위해서 방방곡곡을 수소문하며, 방송국에 가뭄이 초래하게 될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교수는 가족들 몰래 유명 배우와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호텔을 운영하는 여자의 경호원으로 등장하는 남성도 결국 아내의 가족으로부터 강탈했던 시계로 인해 여자를 살해한다.

 

ⓒ 영화 <가뭄>

이 모든 이야기를 유의미하게 연동하기 위한 '가뭄'은 모두 재난의 파급효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안에 숨겨진 주제를 돌출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다. 가령 한 가족의 쩍쩍 갈라지는 관계 설정은 가뭄의 문제 이전 '관계의 가뭄'에 관한 주제 의식을 서로 교류하는 내적 이미지다.

'가뭄'에는 어떠한 주인공도 없이 모든 캐릭터는 관계를 재설정하거나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주시한다. 이 모든 회복에 대한 단초를 마련하는 비는 일순간 그 건조한 관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가뭄이 끝날 것처럼 굵은 빗줄기가 거세게 땅을 적시는 지점은 클래식 연주와 그 궤적을 함께한다. 이것은 초반 가뭄의 이미지와 함께 연주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탐색하는 이 비는 그들의 암울한 과거를 청산할 정도로 파괴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금 개인과 사회가 갱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가정에 불륜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남성과 여성은 전염병이 걸린 택시 드라이버와 아들 때문에 약속한 호텔에서 조우하지 못하고, 야외 온천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교수와 영화배우의 공간은 비워진 채로 앵글에 담긴다. 불륜 사실을 들킬까 봐 지하실에 숨겨놓았던 죽어가고 있던 화분 안의 나무는 창문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비를 맞는다. 생명력을 나타내는 이 은유는 가족주의를 함의하는 대표적 시퀀스이자 회복을 희망적으로 전망한다.

 

ⓒ 영화 <가뭄>

여기서 중년 남자와 흑인 청년이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큰 약점이기도 하다. 중년 남성은 이탈리아가 단점도 많지만 훌륭한 나라라고 말하고, 방송국에서 차별 대우를 받은 흑인 청년이 자신은 앞으로 결혼하여 시민권을 받겠다는 이 말은 결국 이 영화가 정치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란 오해를 불식시키긴 어려웠다.

<가뭄>은 개인과 사회의 영역 중간지점인 가족을 선택함으로 안전하게 영화에 대응한다. 각각의 인물의 이야기가 마치 옴니버스처럼 분절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절대 단절되지 않고 기묘하게 연결되어 가뭄의 의미를 단순히 외형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영리한 작품이기도 하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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