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재의 영화에서 '꿈'은 묘하게 비틀려 있다. 꿈을 가리키거나 꿈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시퀀스들은, 구조나 서사적인 면에 있어서 이상한 위치에 있거나 그것을 둘러싼 현실과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관계 맺는다.
<회오리 바람>(2010)부터 <잠 못 드는 밤>(2013),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까지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찍어온 그의 영화에서 꿈은 단순히 기능적으로 서사를 보완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자 지금의 세계를 긍정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으며,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틀'과 같았다. 또는 과거이자 기억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대하는 '미래'였다.
더 많은 가정을 해볼 수도 있겠으나 장건재의 영화를 보면서 가장 벅차게 되는 순간은, (관객인) 내가 보고 있는 빛과 그 빛이 만드는 상이 영화가 꾸는 꿈처럼 보일 때이다. 그 맑고 투명한 상상을 하는 듯한 장건재 영화의 미학은 개인적으로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절정에 달했다.
장건재의 장편 데뷔작 <회오리 바람>과 처음 만났을 때는 2년 전 한창 영화 대학 입시를 하던 무렵이었다. 십 대 시절의 방황과 사랑을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아 그려낸 이 작품은, 다소 실험적이고 이미지 중심적인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현실적이고 서사 중심적인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회오리 바람>을 일련의 세 작품 사이 작가성과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동떨어져 있는 평작으로 판단했다.
장건재의 작가론을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된 2년 후의 지금, 러닝타임이 흐르면 흐를수록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여자 친구 미정과의 만남을 금지당한 태훈의 서툰 사랑 이야기는 투박함이 아닌 생기 있는 활력으로 다가왔고, 일상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듯한 이미지들은 철저히 계산된 리듬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인물들의 간절하고도 작은 몸짓들을 숨죽여 지켜보고, 방황하는 마음을 따라 함께 질주하고 휘청이며 서성이는 카메라는 마치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과 초현실로 이입하는 환상적인 시퀀스는 장건재의 영화 중 가장 과감하고 실험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지난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나마 <회오리 바람>이 나의 마음에 정확하게 와닿은 일은 실로 유의미하고 유효한 사건이다.
<회오리 바람>은 난데없이 텅 빈 주유소, 그곳으로 태현이 끌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한 대, 그리고 서서히 출발하는 오토바이의 운동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3개월 전의 겨울 바다로 플래시백 한다. 손을 잡고 바다 근처를 서성이던 태현과 미정 커플은 서울에 있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행인들에게 차비를 빌린다. 겨우 터미널 버스를 탄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잠에 빠진다.
이렇듯 영화의 플래시백은 사건을 지목하지 않고 사후의 정서를 향한다. 어떠한 목적으로 바다에 온 커플은 목적 이후의 시간 안에서 망설이고 유령처럼 떠돈다. 그들의 도피처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볼 때도, 불이 꺼진 아파트 계단에서 몰래 키스를 나눌 때도 이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행위는 사건을 낳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이후의 잔여물로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판타지는 끝났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크나큰 걱정 혹은 이상하게나마 쓰린 낭패감이다. 그 이후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이 낭패감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플래시백을 통해 불러올 수 있는 것은 '기억'이다. 이 기억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태훈의 것이고, 그 오토바이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는 카메라를 든 장건재의 것이며, 이 영화의 이야기에 탑승한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기억하는 주체가 태훈(장건재 또는 관객)이라면 기억의 대상은 민정이다. 태훈은 민정에게 함께 집을 나가자고 말하고, 추운 날 민정의 집 앞에서 민정이 나오길 기다리며, 중국집 배달 일을 하다가 우연히 차 안에 있는 민정을 발견해 오토바이를 타고 차를 쫒는다. 태훈은 민정과 함께 기억 속에 숨기를 시도하고, 기억의 대상을 기다리고, 기억을 쫓아 방황한다. 태훈은 기억이라는 욕망을 따라 움직이며 영화는 마치 마음의 지도를 그리듯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태훈의 기억은 결국 꿈의 형태로 영화에 도착한다. 한적한 낮, 태훈은 주방에서 라면을 끓일 물을 올려놓고 다시 자신의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컷이 전환되면 예상치도 못한 민정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태훈과 민정은 침대 위에서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상치도 못한 학교 선생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실 이 일련의 장면에서 민정이 등장하는 장면은 과거의 기억, 즉 플래시백이다. 영화는 방에 들어가 잠이 든 태훈의 모습과 한심한 표정으로 태훈을 지켜보는 선생님의 모습 사이에 이 플래시백을 불러옴으로써 독특한 영화적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 플래시백은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 가능하다. 이것은 민정과 만나고 싶은 태훈의 욕망이 불러온 기억이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이 기억은 태훈의 상상, 또는 영화적 상상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비선형적 편집이라는 영화적 형식으로 완성된다. 영화가 꾸는 꿈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장면이다.
기억을 따라가는 태훈은 이동은 계속된다. 그는 담을 넘어 학교 뒤에 있는 숲을 헤맨다. 숲의 풍경과 태훈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영화는 태훈을 사막이라는 초현실에 내려놓는다. 이 공간은 갇혀 있는 기억의 물리적 현현이기도 하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서사가 봉착한 막다른 길이다. 고등학교 3학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의 시간에 태훈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기억의 대상인 민정은 보이지 않고 정서와 상황만이 앙상하게 남아있다.
이제 기억의 의무는 민정에게로 넘어간다. 기억의 대상에서 주체로. 또는 '기억이 기억하는 기억'이라는 역설적인 어구. 카메라는 태훈이 선물했던 목걸이를 매고 있는 민정에게로 천천히 다가간다. 이상하게도 체육관에 앉아있는 민정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사후의 정서만이 존재했던 바다라는 공간이 기억이라는 사건으로 지금의 민정에게 손을 내민다. 이 아름다운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민정이라는 기억은 태훈을 기억하고 있다.
<회오리 바람>의 영화적 성취는 배우의 존재와 그들의 움직임, 쇼트와 쇼트 간의 연결과 관계성, 어찌 보면 지극히 기본적인 것처럼 보이는 영화 언어들로 생생한 기억의 풍경을 그리는 데에 있다. 선선한 여름밤 같은 장건재가 이후에 찍은 두 작품들과는 달리 시린 겨울을 돌아보고 있는 투박한 에너지를 느끼는 것도 즐거운 감상 포인트이다.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플래시백에 대해 쓰지 않았다. 그 장면은 영화라는 형식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독자가 직접 확인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함께 <회오리 바람>에서 읽어낼 수 있는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가 기억을 기억하는 방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회오리 바람
Eighteen
감독
장건재
출연
서준영
이민지
권혁풍
한나
최효상
최현숙
박문아
제작 모쿠슈라
배급 진진
제작연도 2009년
상영시간 9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0.02.25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